클리앙에서도 그렇고 대통령의 언어도 그렇고,
불로소득이라는 말을 참 많이들 합니다.
이 분들은 부동산, 주식, 금융투자 등에서 생긴 돈을 불로소득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경제학에 그런 말이 있는지 찾아보니 없더군요.
Unearned income은 세법에서나 나오는 기술적 용어로 일반인은 별로 관심없는 말이고, 소득격차를 빗대서 쓰는 fair share 라는 다른 의미의 말이 있을 뿐 입니다.
부동산, 주식, 금융투자 등에서 생긴 돈은 불로소득이 아니라 자본소득입니다.
Capital Gain 이라고 하죠.
나라경제가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투자자 위험감수의 대가와 소비자 시간선택(소비유보=저축)의 대가입니다.
대통령께서 자본소득과 불로소득을 혼동하시면 안 됩니다.
기자회견이나 정책 발표에서 경제학적으로 정의되지 않은 감성적 언어를 반복적으로 사용한다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를 의미합니다.
의도적으로 대중의 감정에 호소하는 말을 구사하고 있거나, 아니면 자본소득에 대한 개념적 이해가 충분하지 않거나,,
어느 쪽이든 국가최고정책 결정권자의 언어로서는 적절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를 분명히 해두죠.
저는 자본소득에 대한 합리적 증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으로 다른 선진국들처럼 보유세는 올리고 거래세는 낮추라는 주장을 오래전부터 해 왔습니다.
과세정책을 논하는 건 당연한 정치적 의제입니다.
제가 문제를 삼는 것은 대통령의 attitude 입니다.
앞으로는 이렇게 이야기하세요.
"우리나라 자본소득에 대한 현행 세율은 노동소득에 비해 낮고 투명하지도 않습니다, 저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세율을 조정하고자 합니다."
깔끔하죠? 이렇게 말하면 이 말의 사실여부와는 관계없이 적어도 대통령의 품성이나 언어의 상스러움을 들먹이며 시비를 걸지는 않을 것 입니다.
반면 대통령이 불로소득처럼 감성적이고 족보가 불명확한 언어를 사용하면 이런 말이 됩니다.
"자본소득은 불로소득이라 도덕적으로 정당하지 않다. 따라서 그것을 세금으로 거두어들이는 것이 징벌이고 정의다."
한심하죠? 대통령 개인 가치관에 따른 윤리적 판단을 선언함으로써 반론 자체를 봉쇄합니다. 민주주의의 정책결정 과정에서 대통령이 선택해야 할 언어가 전혀 아닙니다.
자본은 하늘에서 떨어진 돈벼락이 아닙니다.
위험을 감수한 투자, 과거의 소비절제와 저축이 응결된 산물입니다.
설령 자기 자신의 저축과 투자가 아닌 상속자산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그 사람의 선대 누군가의 노동과 희생이 물질화된 형태입니다.
물론 수혜자(수증자) 개인이 그 형성에 직접 기여하지 않은 경우, 여기에 대해서는 적절하고 합리적인 부분만큼 추가과세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한국은 이미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압도적 세율의 상속세 증여세 추징국가이므로 걱정할 필요 없긴 하지만요)
그러나 적어도 누군가의 노동/절제/저축/투자의 결실로 형성된 자본에서 발생하는 소득을 가리켜 삐딱한 표정과 꼬인 말투로 불로소득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별로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비거주1주택을 가리켜 함부로 투기라고 규정하는 것도 어이가 없습니다. 어이없는 언어를 비판하기는 커녕 깨춤을 추며 열광하는 일부 여론은 한심합니다.
대통령께서는 장특공 폐지 또는 대폭 축소를 시사하면서 이런 말씀을 하셨죠?
“오래 보유했다고 왜 깎아줘요? 오래 투기했다고 깎아줘요?”
1주택을 오래 보유했다고 투기입니까?
예를들어,, 어렸을때부터 살아 온 정든 고향집을 수 십 년 째 보유하고 있다고 그게 투기입니까? 그 집을 비워두고 있는 것도 아니고 임차수요에 공급하고 있는 엄연한 합법적 경제활동주체인데, 사정이 천차만별인 그 사람들을 두고 그게 대통령이 할 소리입니까?
투기란 단기차익을 노린 매매행위를 말 합니다.
대통령이라고해서 모든 개념을 정확하게 분별해서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태도와 언어가 천박하게 보여서는 곤란합니다.
그건 트럼프나 하는 짓 입니다.
고쳐 주시기 바랍니다.
사족: 요즘 여권 내 내부분쟁으로 이재명 대통령을 직격하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고 엔트리즘(클리앙 용어로는 테라포밍) 시비도 있는 것 같은데, 저는 그 문제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알지도 못하니까 신경 쓰지 마시고요. 극우세력 비판문제에 대해서는 댓글로 따로 달아놓았습니다.
하지만 비판과 감시의 촛점은 일단 현실권력일 수 밖에는 없습니다.
예전 리버럴정부 시절(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시절)에는 현실권력이 아닌 보수매체와 보수논객들에게 공격의 집중포화를 줄기차게 퍼 부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정규재, 조갑제, 이병태, 김동길(작고) 등등 짱짱한 보수논객들이 설치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가까스로 집권을 한 리버럴진영을 방어하는 게 급선무일때가 많았거든요. 근데 지금 극우논객들의 수준이라는 게 말을 섞을 깜도 안되는 시궁창 수준입니다. 대부분 황당한 부정선거론자들이죠. 그들을 상대하면서 시간소비하는게 가성비 떨어지는 일이라 비판은 커녕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18일째 이어지고 있는 잠실시위, 공권력 투입해서 강제해산하면 좋겠고요. 실제로 2차내란 기도한 조희대 탄핵해서 수사하고, 김건희 윤석열 김용현 노상원 등 국민살해음모에 대해서는 소급특별법을 제정해서라도 반드시 재수사해서 범죄혐의 소명되고 사형 판결나면 사형폐지국가 10 년 다시 유보되더라도 집행까지 완료했으면 합니다.
참, 제가 앞에 진보라는 말대신 리버럴이라는 용어를 썼는데, 엄격하게 말하면 진보정부라는 말은 잘못된 말 입니다.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 지금까지 진보진영이 집권했던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 대통령은 진보가 아니라 Liberal로 분류하는 게 맞고요. 이 두 개념이 무엇이 다른지 댓글창에서 설명하는 건 부적절해 보이니 안 하겠습니다. 근데 이재명 정부는 무엇으로 분류해야 할지 아직 애매합니다.
그렇다면 그 내란세력이 현실 권력이였을때 비판했던 귀하의 과거글을 소개해 주시면 될것 같군요
그럴까요? 백 단위가 넘을텐데 윤석열 당선 직후 쓴 것 한 개만 링크할게요.
https://cndreams.com/cnboard/board_read-d.php?bIdx=1&idx=15919
잘못 올렸네요. 왜 소개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https://cndreams.com/cnboard/board_read-d.php?bIdx=1&idx=15901
제가 불로소득이라는 용어를 비판했으니 그 말은 안 하겠지만 주식이 투기적 성격이 가장 큰 투자임에는 분명하죠.
제가 20 년 전엔가 주식이 좀 생긴적이 있었습니다. 선라이프가 합병되면서 배당받았었는데요 . 몇 달 있다가 팔아버렸어요. 모니터링하고 신경쓰이는데 이러다가 사람 버리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배당받은 주식도 그 정도인데 자기 돈 투자했으면 그 정신노동으로 소비되는 에너지가 오죽할까 싶었습니다. 그 에너지 소비를 생각하면 불로소득은 아닌데, 부동산 오래 가지고 있는 것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명백한 투기행위인 것 만큼은 맞습니다.
그걸 부정적으로 쓰지 않는, 가치판단과 무관히 쓰는 경우도 많은데요.
‘ 대통령의 태도와 언어가 천박하게 보여‘
??어디 집단에서 많이 하는 레파토리인데요.
오늘 왜이러죠..
근데 분위기가 싸한게 혹시 AI 글인가요
물론 사람이겠죠. 차라리 AI면 좋겠네요
AI가 구조적 글쓰기에 숙련된 사람들만큼 글쓰기에 능숙하다면 텍스트 게시판 수명은 끝나는 겁니다.
마침 어느 분이 요청해서 위에 링크한 글 두 개는 LLM이 태어나기 전에 작성한 글이니 비교해 보시든가요 ^^
(참고로 LLM 생일은 2022 년 11 월 30 일 입니다)
기본적으로 독점 상품이고 주변 인프라 등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은 사람이 이익을 얻는거잖아요.
자본소득하곤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원글 쓰신 분은
부동산 시장 정보 수집 분석하고 집 보러 다니느라 발품 팔고
기름쓰고, 대출 받으러 다니는 수고를 했으니
불로소득 아니라고 하실 것 같네요.
불로소득을 악으로 보는건 과거 낡은 사회주의 체제 이념이죠
요즘은 중국 베트남 등 사회주의 국가도 투자에 대해 악으로 보지 읺는게 현실입니다
그게 악이면 그냥 금이고 원자재나 그림 등 투자하는 모든 종류의 금융업 모든 정류의 투자를 다 제재 해야하죠
땀 흘려 번 돈이 아니면 악이란 생각은 지금 시대에 적합하지 읺다고 봅니다
굳이 과거 운동권이 쓰던 그런 낡은 이념적 단어는 안쓰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 단어 쓰는 사람들 보면 586 운동권 같이 시대 흐름에 뒤떨어진 사람들 같아보여요
문자 그대로 ’노동‘ 이 없이 버는 소득이니 불로소득이죠.
주식 투자하기 위해 공부하고 스트레스 받으니 정신 노동이라고
주장하는 건 억지입니다.
어린 학생이 밤늦게까지 게임하고 ’거기서도 배우는 게 있으니
공부한 거' 라고 엄마한테 우기면 꿀밤 한 대 맞겠죠.
그렇군요.
그렇다면 주식 매매차익에도 부동산만큼 양도소득세 부과하라는 건의를 강력하게 해 주세요.
제가 건의하고 안하고는 중요하지 않죠.
건의하건 안하건 불로소득이냐 아니냐가 달라지는 건 아니니까요.
주식으로 돈도 벌고 좋은 평판도 얻고 싶으신가봐요.!
불로소득이라는 평가를 받기가 엄청 싫으신 것 같아요.
전 일기 안 씁니다.
잼프가 부동산 투기 비판하는것은 다주택자들 투기꾼들 이야기하는건데요?
건전한 거래가 아니라 투기를 통해서 소수가 다수의 부동산을 매점매석하고, 가격을 비정상적으로 올리고. 담합하고... 등등 정상적인 부동산 거래를 방해하는것이죠. 이를 주식시장으로 비유하자면 "주가조작범"이랑 비슷한겁니다. 주가조작범들 처벌이 엄청쌔죠???
그걸 불로소득이라고 말씀하신겁니다.
그리고 주식과는 다르게 부동산은 의식"주"의 하나로, 인간의 생존을 위한 필수 요소중 하나입니다.
이것을 가지고 투기를 하고, 가격을 담합하고 이러니, 그걸 단속하겠다는거지요.
앞에 어느 분도 AI 이야기를 하던데, 텍스트 게시판에서 AI 활용은 조심해야 합니다. 저는 주로 팩트체크에 교차사용하고 (주로 클로드와 제미나이 프로) 글작성은 교정조차 부탁하지 않습니다. 기반자료가 압도적으로 많은 영어는 모르겠으나 한국말은 아직 기계티가 나서요.
말씀하신 설명은 바로 반박되는데, 이 논거역시 유도질문에 의해 재반박됩니다. 영어를 사용하면 더 정교하게 반론을 만들 수 있지요.
텍스트게시판에서 만큼은 될수록 사람이 사람의 언어를 사용했으면 합니다. 그래야 클리앙 텍스트 게시판도 오래 갈 수 있으니까요?
암튼 AI 재반박은 서론만 이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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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AI의 설명은 '국민계정체계(SNA)'나 '세법'과 같은 행정적, 통계적 분류 기준을 앵무새처럼 읊은 것에 불과합니다. 세법에서 말하는 '근로소득'은 단순히 '고용 계약에 얽매인 종속적 노동'만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과세표준을 잡기 위한 행정 편의적 분류를 '불로(노동하지 않음)'라는 도덕적이고 감정적인 잣대로 직결시키는 것은 심각한 논리적 비약입니다. 이 분류가 왜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는 낡고 잘못된 프레임인지 반박할 수 있는 4가지 논거를 제안합니다.
1. '인지적 노동(Cognitive Labor)'과 '위험 관리'의 소외
현대의 투자는 돈을 묻어두고 기도하는 행위가 아닙니다. 거시경제를 분석하고, 기업의 재무제표를 해독하며, 부동산 시장의 수급을 읽어내는 고도의 '인지적 노동(지적 노동)'과 정보 수집 과정이 필수적입니다. 또한, 불확실성 속에서 자신의 자산을 잃을 수 있는 '위험을 관리하는 스트레스' 역시 엄청난 심리적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단지 출퇴근 카드를 찍지 않고 고용주가 없다는 이유만으로 이 치열한 분석과 리스크 감수의 과정을 '노동이 아니다'라고 규정하는 것은, 육체노동과 공장제 기계 공업 시대의 낡은 노동관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2. '비임금소득'을 '불로소득'으로 치환하는 언어적 왜곡
통계청이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통계에서 자본소득은 그저 '비임금소득(Non-wage Income)' 또는 '재산소득(Property Income)'으로 분류될 뿐입니다. 어디에도 이를 'Unearned(거저 얻은)'라고 명시하지 않습니다. 고전파 경제학에서 말하는 진정한 의미의 '불로소득(Economic Rent)'은 독점적 지위나 인구 증가로 인해 토지 소유자가 아무 노력 없이 얻는 '지대' 정도에 국한됩니다. 행정 용어인 비임금소득을 '불로'라는 단어로 번역해 악의적 프레임을 씌우는 것은 통계의 본래 목적을 왜곡하는 선동입니다.
3. '펀드매니저의 역설'이 보여주는 형식의 모순
논리의 허술함은 이 역설에서 가장 극명하게 드러납니다.
펀드매니저가 고객의 돈을 굴리기 위해 밤새워 차트를 분석하고 주식을 매매하여 수익을 내면, 그는 그 대가로 '연봉(근로소득)'을 받습니다. 이는 신성한 노동으로 인정받습니다.
반면 개인 투자자가 퇴근 후 똑같이 밤을 새워 차트를 분석하고 자기 자본을 투자해 같은 수익을 냈다고 가정해 봅시다. 세법과 통계는 이를 '자본소득'으로 분류하고, 사회는 이를 '불로소득'이라 손가락질합니다.
행위의 본질(분석과 투자)은 완전히 동일한데, '고용 계약서'라는 형식 하나가 없다고 해서 신성한 노동이 하루아침에 불로소득으로 전락하는 모순이 발생합니다.
4. 자본주의 시스템의 '시간 선호' 무시
결국 자본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과거 노동'이 축적된 것입니다.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소비할 수 있었던 돈을, 미래를 위해 인내하며 묶어둔 '시간 선호의 희생'에 대한 대가가 바로 자본소득입니다. 투자 과정의 노력뿐만 아니라, 그 종잣돈을 모으기 위해 과거에 흘렸던 땀방울과 인내의 시간마저 통계적 분류라는 이유로 지워버리는 것은 자본주의의 근간을 부정하는 일입니다.
불로소득은 경제학의 표준 분석 개념이 아닙니다. 경제학은 소득을 노동소득(labor income)과 자본소득(capital income)으로 구분하며, 여기서 자본소득은 중립적인 분석 범주입니다. 반면 '불로소득'은 소득의 발생 방식에 도덕적 판단을 선제적으로 내장한 일상어입니다.
한국의 조세 정책 담론, 특히 양도소득세 논쟁에서 가장 빈번하게 소환되는 단어는 '불로소득(不勞所得)'입니다. '노동하지 않고 얻은 소득'이라는 이 표현은 직관적인 감정 호소력 덕분에, 자산 가치 상승분에 대한 고율 과세를 정당화하는 핵심 수사로 기능해 왔습니다. 그러나 경제학적 렌즈로 들여다보면, '불로소득'은 엄밀한 분석 개념이 아니라 특정 정책 목표를 향한 정치적 언어에 가깝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이 낡고 편향된 프레임에서 벗어나, '자본소득(Capital Income)'이라는 보다 실체적이고 중립적인 용어로 현상을 직시하는 일입니다.
1. 자본소득의 본질: 경제학에 '불로'는 없다
경제학은 소득을 크게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으로 구분합니다. 자본소득이란 토지·설비·금융자산 등의 자본을 생산 과정에 투입하거나 타인에게 제공한 대가로 발생하는 수익입니다.
핵심은 2. '불로소득' 프레임의 두 가지 논리적 오류
첫째, 위험 감수의 대가를 지운다. 투자에는 언제나 손실의 가능성이 내재합니다. 상승 국면의 이익을 '불로'로 규정하는 논리라면, 자산 가격 하락이 야기하는 손실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자본 배분과 위험 부담은 그 자체로 생산적인 경제 행위입니다. 결과적으로 이익이 실현되었다는 이유만으로 이를 '공짜 수익'으로 치부하는 것은, 경제 전체의 위험 감수 유인을 약화시키는 효과를 낳습니다.
둘째, 시간 선호의 가치를 외면한다. 경제학의 '시간 선호(time preference)' 개념에 따르면, 사람들은 즉각적인 소비를 포기하고 미래의 더 큰 가치를 위해 자본을 묶어두는 선택을 합니다. 자본소득은 이처럼 '현재 소비의 포기'와 '유동성의 희생'에 대한 시장의 보상입니다. 이 합리적인 시간 선택을 '불로'라는 단어로 덮어버리는 것은 경제 주체의 행동 원리를 의도적으로 왜곡하는 일입니다.
3. 언어의 정치경제학: 왜 '자본소득'이어야 하는가
'불로소득'이라는 단어는 자산 보유자를 '사회적 기여 없이 이익만 취하는 존재'로 낙인찍어 계층 간 갈등을 증폭시킵니다. 반면 '자본소득'은 수익의 발생 원천(자본의 투입)과 성격(위험과 시간의 대가)을 명료하게 드러내는 중립적 분석 개념입니다.
한 가지 유의할 점이 있습니다. 경제학 내부에서도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전통에 입각하여 토지 지대(rent)만큼은 순수한 사회적 산물로 보아 별도 과세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는 견해가 엄연히 존재합니다. 이 논쟁은 간단히 기각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옳다 하더라도, 지대소득에 대한 논의가 모든 자본소득 일반을 '불로'로 환원하는 근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개념의 정밀함이 정책의 정밀함을 낳습니다.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는 '불로의 환수'라는 징벌적 논리가 아니라, '자본의 효율적 운용'과 '조세 중립성'을 축으로 하는 세제 설계의 영역이어야 합니다. 소득에 도덕적 낙인을 찍는 순간, 건강한 경제 토론은 실종되고 포퓰리즘의 수사만이 남습니다.
결론: 더 정직한 담론을 위하여
자본은 경제 성장의 연료이며, 자본소득은 그 연료의 공급을 지속시키는 시장 기제입니다. 성숙한 경제 담론은 개념의 정확성에서 시작됩니다. 누군가의 축적된 선택과 위험 부담을 '불로'라는 단어 하나로 소거하는 언어 관행이 지속되는 한, 조세 정책 논쟁은 경제학의 언어가 아닌 도덕 감정의 언어로 귀결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본소득'의 관점에서 세제를 논의할 때, 비로소 투명하고 합리적인 정책이 자리를 잡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우리가 쓰는 단어를 바꾸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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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튼 얘는 말이 많군요. 귀찮아서 다 읽어보지도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