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아래 한겨레 기사는 저에게 신선한 충격이었습니다.
세상에 대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들게 만들었습니다.
아래 기사를 지인들에게 추천해주고 읽어 보라고 많이 권유도 했었고, 좋은 글 소개 시켜줘서 고맙다는 답변도 많이 많이 받았습니다.
인터뷰가 굉장히 다채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보니,
사람들마다 인상 깊었던 점이 제각기 달랐다는 점도 저에게는 매우 흥미로운 포인트였습니다.
세상의 가상의 적을 만들고, 필요 없는 갈등을 만드는 사람은 '장의사적 인간형' 이라고 규정합니다.
남이 피해보고 고통받는 상황이 있어야 이득을 보는 사람입니다.
지금의 시끄러운 시대 상황에서 누가 이득을 보는 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출처: “노인들이 저 모양이란 걸 잘 봐두어라”. 2014. 1. 3
(중략)
-보통 선생 연배에 이른 분들을 뵈면, 4·19에 열렬히 참여하고 독재에 반대했던 분들이 나이 들며 급격히 보수화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의제든 종북이냐 아니냐로 색칠을 해서 다른 모든 가치에 우선시하는데, 이런 세대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세상엔 장의사적인 직업과 산파적인 직업이 있다. 갈등이 필요한 세력, 모순이 있어야만 사는 세력이 장의사적인 직업인데, 판사 검사 변호사들은 범죄가 있어야 먹고살고 남의 불행이 있어야 성립하는 직업들 아닌가. 그중에 제일 고약한 게, 갈등이 있어야 설 자리가 생기는 정치가들이다. 이념이고 뭐고 중요하지 않다. 남의 사이가 나빠져야만 말발 서고 화목하면 못 견디는…. 난 그걸 장의사적인 직업이라고 한다.”
-그럼 산파적인 직업은 뭔가?
“시시하게 사는 사람들, 월급 적게 받고 이웃하고 행복하게 살려는 사람들…. 장의사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실제 장의사는 산파적인 사람들인데. 여하튼 갈등을 먹고 사는 장의사적인 사람들이 이런 노인네들을 갈등 속에 불러들여서 이용하는 거다. 아무리 젊어서 날렸어도 늙고 정신력 약해지면 심심한 노인네에 지나지 않는다. 심심한 노인네들을 뭐 힘이라도 있는 것처럼 꾸며 가지고 이용하는 거다. 우리가 원래 좀 부실했는데다가… 부실할 수밖에 없지, 교육받거나 살아온 꼬라지가…. 비겁해야만 목숨을 지킬 수 있었고 야비하게 남의 사정 안 돌봐야만 편하게 살았는데. 이 부실한 사람들, 늙어서 정신력도 시원찮은 이들을 갈등 속에 집어넣으니 저 꼴이 나는 거다.”
(후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