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는 다른 언어에 비해 존댓말이 잘 발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존댓말은 경로 사상, 선후배 인식과 연결되어 있지요. 존댓말을 통해 나이가 많음, 선배임을 상위 지위로 인정해 주지요. 나이가 많은 사람이 젊은 사람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은 옵션이지만, 나이가 적은 사람이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일상어를 사용하는 것은 옵션이 아닌 언어가 한국어입니다.
제가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언어로 인해 자동적으로 상위 지위로 인정받는 것의 단점입니다. 두 가지 사회적 단점을 저는 애석하게 보고 있습니다.
- 직장에서 연장자를 동료 또는 하위직으로 두는 것이 불편해지는 것
- 연장자와 말을 섞는 것을 불편해하는 것
두 가지 모두 사회적으로 손실을 야기합니다. 먼저, 단체에서 연장자를 동료나 하위직으로 두는 것이 불편한 사회에서 연장자는 승진하지 않으면 같이 일하기 거북한 짐이 되므로 퇴사해야 합니다. 하지만 굳이 승진할 필요가 없는 기능직(예를 들어 만년 개발자)도 있고, 어떤 이유로 다른 회사에 낮은 직급으로 재입사하고 싶은 경우도 있는데, 한국어의 존댓말은 이런 상황을 불편하게 만듭니다.
미국에서는 나이든 사람과 젊은 사람이 같은 직급에서 일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습니다. 여기도 승진하면서 나이도 들기 때문에 상위 직급은 노인네, 하위 직급은 젊은이로 구성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다니던 회사가 없어지면서 제 회사로 입사한 사람도 있거든요. 제 부서에도 저보다 나이가 5살쯤 많은 부하 직원이 있습니다. 그 직원은 10살쯤 젊은 동료 직원들과 잘 지냅니다. 서로서로 모르는 것은 물어보고, 같이 잘 일합니다. 그 분은 젊은 동료들과 지내니 젊어지시는 느낌도 듭니다.
영어에도 존댓말까지는 아니지만 예의를 갖추는 표현은 있기 때문에 저는 그 분에게는 다른 젊은 직원에게보다는 살짝 더 예의를 갖추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젊은이와 100%, 기계적으로 평등하게 대해드리지는 않는다는 의미지요.
두번째로는 연장자와 말을 섞는 것을 불편해함에 따른 세대간 소통의 단절입니다. 존대말의 어법이 틀리지 않을까, 덜 나이든 연장자와 초 연장자가 함께 있는 자리에서는 어떻게 존대말을 써야 하는지 순발력있게 척척 나오는 젊은이가 아니라면, 내가 쓰는 존대말이 틀려서 연장자 누군가 역정을 내지 않을까 걱정되어 아예 말을 꺼내지 않는다는 것이 제가 한국에 갔을 때 본 광경입니다. 역정을 내지 않도록 하다 보니 "주문하신 커피 나오셨습니다"같은 왜곡된 존댓말을 하게 되는 것인데, 말을 하는 사람도 그 말을 자랑스럽게 하지는 않을겁니다. 일 이니까 마지못해 쓰는 표현이지요. 일만 아니라면 괴상한 존댓말도 쓰지 않고, 아예 말도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습니다.
저는 미국에서 패스트푸드 집에서 주방이 엄청나게 바빠서 카운터에서 주문 접수가 늦어질 때 주문하려고 줄서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저에게 "이 상태라면 주문하고 음식이 언제 나올까? 그지?"라고 비(非) 존대말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또는 제가 철물점에서 물건 두 가지를 양손에 들고 고민하고 지나가는 할아버지가 저에게 그 물건 써 봤냐고 물어보는 것으로 시작해서 집 수리에 대한 노하우, 그리고 이 철물점보다 더 합리적인 가격에 파는 상점에 대한 정보 등이 나눠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한국에서 보면 대화의 빈도가 훨씬 적다는 느낌입니다. 위와 같은 스몰 토크가 아니고, 제가 보기에는 필요한 토크인데도 사람들이 입을 다물어버리는 느낌입니다. 그 결과는 지하철에서 서서 가는 임산부에 대한 자리 양보가 시작되지 않는다던가, 어려움에 처한 듯이 보이는 노인에게 도움을 제안하지 않는다던가 하는 개인적인 사회로 한발짝 한발짝 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연장자와 말을 섞는 것을 불편해한다는 것은 젊은 세대의 생각을 연장자와 맞춰가면서 정치, 사회적인 부분에서 서로의 생각을 "직접" 듣는 기회가 적다는 문제도 야기합니다. "충격! 젊은이들은 다 이렇게 생각한다!"는 유튜브 영상들만 봤을 뿐, 진짜 젊은이들이 사회의 여러 활동 중에 나에게 말을 걸어와서 대화해봤는가 하는 것이죠. 그것은 연장자의 생각이 완고해서 생긴 잘못이 아니라 존댓말이 만드는 장벽의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존댓말의 단점을 극복할 것인지 딱 부러지는 답은 저에게 없습니다. 아직도 극진한 존댓말을 듣지 않으면 역정을 내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조차 언어의 사회성의 일부니까요. 제가 사용하는 무난한 접근법은, 열린 소통에 대한 의사가 확인된 사람에게는 적당한 상호 존대말입니다.
이것도 단점은 있어서, 피상적인 관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존댓말의 단점 중 하나가 허물없는 관계가 되는 것을 막고 위계질서를 세우는 것이라서 상호 존댓말을 쓰면 그 단점이 피상적인 관계로 나타나 버립니다.
여러분은 존댓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그런데 위에 언급하신 경험이 좋은 예이지만, 안좋은 것도 많아요. 케바케이지요 ㅎㅎ
다만 .. 여자저차해서 . 어른 = 무조건 공경의 대상 = 존댓말 + 공손 의 법칙은 더 바뀔필요가 있어요. 전 무례한 나쁜 어른은 존대안해요
해외에 살다 보니, 이제는 재적응이 안되는 우리나라 문화 중 하나가 나이 따지고 나이에 따라 위아래 관계가 생기는 것 이 되더라구요.
그렇긴 해도, 저에게는 상호 존대가 현재 최선의 선택입니다.
존댓말/반말 구분이 없어도 충분히 존중은 할 수 있으니깐요.
위계가 정해졌을 때 상대적으로 아래 위치에 있는 사람이 이를 쉽게 인식할 수 있도록 반말이 사용되게 되고, 그 위계가 납득되지 않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워질 경우 위계 구분 자체에 대한 반감이 생기면서 여러 부작용이 나타난다고 생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언어라는게 그 나라의 사회상을 반영하는 거죠.
근데 한국 역사가 양천제(실생활에서는 반상제로 발전)나 노비제(노예제)가 발달한 나라였구요.
그런 신분/서열의식이 언어에 반영되어 한국어에 유독 존댓말이 발달한 거라 봅니다.
그리고 갑오개혁때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었고 신분제가 사라진 상황에서 존댓말 표현은 적합하지 않을수 밖엔 없어요.
한국 사회에서 존대의 폐해가 상당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해야할말을 막아서 병폐를 키우거나 발전을 더디게 합니다.
존대와 위계 질서는 선배들의 노하우와 경험 중요했던 과거 제조업 시대의 산물이라고 생각합니다.
피상적인 관계라는 것도 저는 오해가 있으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형, 동생하며 존대하는 관계.. 가까워 보이지만 많은 경우 일방의 편안함일 뿐입니다. 죽고 못사는 관계인줄 알았는데, 서로 뒷담화하는 걸보고 놀랐던 일이 적지 않습니다.
사회 생활에서 "허물 제로"를 바라는 것 자체가 욕심이지 싶습니다. 세대간 차이는 분명히 존재합니다. 존대하며 친한, 소위 "가족같은" 관계를 바라는 세대도 있으니까요.
다만, 제 경험+주변미터 상으로는 90년대생 즈음부터는 적당한 거리는 유지하되 존대하는 쪽이, 하대하며 살갑게 구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관계가 되는 것 같습니다.
다자녀 부모로서
아이들이 5살무렵만 넘으면
만나서 왜 나이로
상호 태도를 결정해야하나라는
생각이 매번듭니다
그냥 좋은 성품과 개성을 가지고 서로
탐색하고 배려하는 장이 아니라
우선 나이를 묻고 위치와 태도를 가지는
계급문화가 무척 이상합니다
나이가많으면 지적하고 가르치려고 들고요
상대에 대한 탐색이 나이로 끝나버려요
이장벽을 거치지않으면 놀이가 성립이 안되는듯
하는 모습을 많이봅니다
외국은
자기가 하고싶은 놀이 .
조금 친해지면 이름정도만
나누고 노는데 말이죠
ai에게도 평어 사용을 강조하고요.
은근 서열 따지고 지네들 바운더리 만듭니다
여전히 봉건제가 있는게 외국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을뿐
그리고
상대에대한 배려 존중은 내가 찾아가는겁니다
예전처럼 한곳에 머물라는 규칙도 없을 뿐더러 내게 맞는 직장, 사회..등등에 가시면 됩니다
은근 vs 대놓고 서로 불편한 상황 자주 발생
(노골적인)존비어 체계가 있고 없고는 이 차이 아닌가 합니다.
마치 경조사비 같아요. 내는 쪽도 받는 쪽도 피곤한데. 그냥 서로 안 받고 안주면 얼마나 좋았을까.
존대말이라는 게 없었으면 우리나라에서 불필요한 싸움 수가 절반은 줄었을 겁니다.
1) 김대리, 해.
2) 김대리님, 해요.
3) 김대리님, 해 주세요. - 친밀하지 않는 타인에게 보통 이 정도로 이야기하죠. 클리앙의 경어체 기준 정도고요.
4) 김과장님, 해 주실 수 있나요?
5) 이부장님,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여기서 이부장이 김대리에게 "김대리님,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옵션인데, 김대리가 이부장에게 "이부장님, 해 주세요"라고 말했을 때 이부장이 고개를 들어 눈을 치켜뜨지 않는 회사는 흔치 않다는 것이 제 이야기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김대리가 나이가 10살 많은 옆 부서 박주임에게 "박주임님, 이거 해 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을 불편해할거라는 것이 제 관찰이고요.
Thou 라는 반말이 사라졌죠
정말 그렇게 표현을 신경써야 하는 조직, 관계라면, 그게 문제인 거죠.
보통의 경우라면 상대방에 대한 존중을 중심에 놓고 말하고, 행동하면 크게 불편하진 않은 것 같습니다. 글쓰신 분도 이 부분 잘 아시고 잘 하시는 분 같습니다.
저는 존대의 목적이 하나 더 있는데요. 내성적이기도 하고, 맘에 안드는 사람들하고는 꼭 존대를 합니다, 그 사람이 하든 말든. 내 영역에서 멀리 떼어 내는 용도로요. 그 사람들은 자기들이 우위에 선다고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쉅게 말을 하지는 않게 되더라고요.
개인적으로 아주 만족합니다. 어느정도 최저한의 존중을 갖게되고
과하게 선넘는걸 막는 효과도 있고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