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라 평생을 안고 살던 제 오랜 고민거리 하나가 속 시원하게 풀려서, 혹시 저 같은 분들이 또 계실까 싶어 반가운 마음에 글을 남겨봅니다. (치매관련 AI 검색하면서 알게 되고 팩트 체크 따로 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옛날 일들, 특히 대학교 때나 군대 시절 기억이 거의 안 나서 늘 찜찜했거든요. 방금 물건 둔 곳이나 일할 때 필요한 정보는 기가 막히게 잘 찾는데 (특히 숫자는 30년전꺼도 잘 기억합니다. 냉장고 얼마주고 샀고 등등) 유독 제 과거 경험은 뭉텅이로 날아간 느낌이었습니다.
남들은 "그때 누가 무슨 옷 입고 이런 농담 했잖아~" 하면서 영화 장면처럼 생생하게 썰을 풀던데, 저는 제가 겪은 일인데도 디테일이나 감정은 하나도 안 떠오르고 그냥 '20XX년에 군대 전역함', '그때쯤 누구랑 사귀었음' 이렇게 이력서 한 줄처럼 팩트만 남더라고요. 그것도 일년에 한두가지만 기억에 남는 정도 였습니다. 어머니랑 대화할때 너는 왜 그것도 기억을 못하니, 병원가봐라 이런 이야기도 가끔하고 . '젊은 나이에 벌써 치매인가?' 하고 엄청 쫄았(?)습니다. 헌데 저는 어렸을때 부터도 과거 기억을 잘 하지 못하던게 떠 올랐어요. 초등학교 때는 유치원기억이 1~2가지 밖에 없고, 중학교때는 초등학교 기억 몇개 기억 안나고..
그런데 며칠 전에 이게 병이나 기억상실이 아니라 SDAM(Severely Deficient Autobiographical Memory자전적 기억 결핍 증후군)이라는 인지적 특성이라는 걸 알게 됐습니다. 놀랍게도 이게 학계에서도 2015년쯤에야 처음 이름이 붙은 아주 최근 개념이더라고요. 그래서 아마 국내에는 이 단어조차 거의 안 알려져 있을 겁니다. 전체 인구의 한 1~2% 정도가 저 같은 방식으로 기억을 처리한다네요. 이게 장애 개념이 아니라 왼손 잡이가 있듯이 하나의 특징이라고 하네요
저 같은 사람들은 과거를 1인칭 시점의 동영상이나 감정으로 재체험하지 않고, 마치 위키백과 문서를 읽듯 철저하게 '객관적인 데이터'로만 분류해서 저장한대요. (미드 프렌즈의 모니카 역할이었던 배우 코트니 콕스도 최근에 자기가 이런 특성이라고 고백한 적이 있더라고요. 수 많은 애피소드 찍었지만 자기는 기억이 없다고)
처음엔 제가 기억력이 몹시 나쁜 줄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이게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엄청 많은 뇌 구조였습니다. 뇌가 과거의 무거운 동영상 파일(감정, 디테일)을 싹 지워버리는 대신, 현재의 문제 해결이나 논리적 시스템 설계에 리소스를 몰빵한 '최적화 상태'라는 걸 알게 된 거죠. (저는 MBTI 극 T이고, 과거 직장들에서 준천재란 말을 가끔 들었습니다)
뇌의 능력을 쓸데없는 '과거 회상'에 낭비하지 않고, 철저히 '현재와 미래의 구조 설계'에만 쓰고 있는거라고 하네요. 덕분에 과거의 흑역사나 이불킥할 일들에 감정적으로 얽매이지 않아서 멘탈 회복도 엄청 빠르고요.
평생을 '나는 왜 남들처럼 추억을 기억하지 못할까' 자책하고 불안해했는데, 내 뇌가 고장 난 게 아니라 그저 뇌 안의 하드디스크 파티션을 엄청나게 효율적으로 나눠 쓰고 있었을 뿐이라는 걸 깨닫고 나니 뛸 듯이 고민거리가 날아갔네요. 마침내 제 자신을 온전히 이해하게 된 기분이에요.
클리앙에는 워낙 논리적이시고 개발이나 IT 쪽 기획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SDAM 쪽 분들이 꽤 계실 것 같은데요. 국내엔 아직 자료도 거의 없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길게 적어봤습니다.
유튜브 찾아보면 국내 영상은 없는듯 하며, 해외에서는 해당 특성을 가진 사람들 영상이 좀 있습니다.
https://youtu.be/PV5KmAwlSOQ
실용서들은 잘 기억이 나구요. 팩트 위주로 기억에 담는거 같아요
마이티마키님과 비슷하게, 과거의 기억이 항상 한줄로만 남아있어서 최근 뇌에 문제가 있는건 아닌가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제 30대 초에도 10대 후반 과거의 일을 디테일하게 기억을 못하고 있긴 했었어요..
최근에 20대 때 일들이 너무 단편적으로만 기억에 남아있다는걸 깨닫고 다시 고민을 하긴 했지만요..
치매라고 하기엔, 지금 회사도 운영하면서, 고객들의 제안을 컨설팅해주고, 전략을 짜는데 있어서 여러 도움들을 주고 있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에 머리가 나쁘다고는 생각하진 않았습니다.
다만 기억력이 좀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여겼었는데, SDAM 이라는 인지적 특성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일단 학계에서는 기억력이 나쁘거나 뇌의 퇴화 원인은 아니라고 해서 저도 큰 힘을 얻었습니다.
그 전에도 추억에 대한 기억이 없다라는건 늘 느꼈는데, 나이가 들어가면서 살짝 걱정이 되기 시작하더라구요.
단, 어렸을때 부터 그랬다는걸 상기하고, 또 본문에서도 언급했듯이 직장에서는 오히려 남들보다 일에 대한 처리는 메모를 하지 않아도 거의 놓치는게 없어서 천재 소리도 가끔 들어서 일상 생활, 직장 생활에는 전혀 문제가 없었습니다. 단, 너무 성격이 극 T의 성격이라 사는게 좀 너무 피곤하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혹시 MBTI가 T이신가요?
저는 극단적으로 기억력이 좋지 않은 편에 속하는데,
장단기 구별도 없고, 패턴을 찾기도 어려워서,
(구입한 물건 가격도 가게 나오면서 얼마였더라 하는 수준이고,
핸드폰 없던 시절 몇년간 거의 매일 전화한 번호도 기억 못 하고,
방학 지나 학교 가면 반 친구들 이름 얼굴 거의 다 리셋이고. 등등.)
그냥 기억력이 좋은 건 '스스로 의도한대로 정보를 오래 잘 기억할 수 있다' 정도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거 안되는 사람도 있다고 해서 혹시 그게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모든걸 텍스트로 기억을 하는거죠ㅎㅎ
용어로는 아판타시아 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사과를 떠올려봐” 했을 때
개념상 사과가 뭔지는 아는데, 머릿속에 그림처럼 안 보이는 상태.
완전한 암흑처럼 아무 이미지도 안 떠오르는 사람도 있고, 아주 흐릿하게만 떠오르는 사람도 있음. 스펙트럼임.
중요한 건 이게 지능 낮음, 상상력 없음, 정신병 이런 뜻은 아님. 그냥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방식이 다른 거에 가까움. 어떤 사람은 말, 논리, 공간감, 기억 구조로 생각하고, 어떤 사람은 이미지로 생각하는 차이.
이신건 아니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