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바로크 음악의 거장이자 루이 14세의 총애를 받았던 작곡가 장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의 죽음은 음악사에서 가장 황당하고도 비극적인 사건 중 하나로 꼽힙니다.
그의 사망 원인은 다름 아닌 '지휘봉'으로 인한 패혈증이었습니다.
1. 사건의 발단: 왕의 쾌유를 축하하는 콘서트
1687년 1월 8일, 륄리는 최근 큰 수술(치루 수술)을 받고 건강을 회복한 루이 14세를 축하하기 위해 파리의 Feuillants 교회에서 자신의 종교 음악인 《테 데움(Te Deum)》을 지휘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이 연주에는 약 150명의 음악가가 참여한 대규모 공연이었습니다.
2. 황당한 사고
오늘날의 가볍고 작은 지휘봉과 달리, 당시 바로크 시대에는 박자를 맞추기 위해 크고 무거운 나무나 금속으로 된 지휘봉을 바닥에 쿵쿵 찧으며 지휘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습니다.
륄리는 열정적으로 음악을 지휘하며 바닥을 내리치던 중, 순간적으로 실수를 하여 자신의 엄지발가락을 지휘봉으로 강하게 찍고 말았습니다.
3. 치료 거부와 비극적 결말
지휘봉에 찍힌 상처는 심각하게 감염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괴저(음식물이 부패하듯 조직이 썩는 현상)로 발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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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권고: 의사들은 감염이 온몸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당장 발가락(나중에는 발 전체)을 절단해야 한다고 강력히 권고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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륄리의 거부: 무용수 출신이기도 했던 륄리는 다리를 자르면 다시는 춤을 출 수 없다는 이유로, 그리고 예술가로서의 자존심 때문에 수술을 완강히 거부했습니다. 대신 민간요법 등에 의존하며 버텼습니다.
결국 감염은 다리를 타고 온몸으로 퍼졌고, 륄리는 사고가 발생한 지 약 두 달 뒤인 1687년 3월 22일 54세의 나이로 사망하게 됩니다.
절대왕정 시대 프랑스 음악을 지배했던 권력자이자 천재 작곡가는, 자신이 음악을 통제하기 위해 휘두르던 지휘봉에 발가락을 찍혀 허망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 사건은 음악사에서 '가장 치명적인 지휘 사고'로 늘 회자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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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적인 지휘봉을 대중화하고 음악계의 표준으로 정착시킨 핵심 인물은 낭만파 시대의 작곡가, 피아니스트, 오르가니스트, 지휘자였던 펠릭스 멘델스존 이라고 합니다.
멘델스존은 1835년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 오케스트라의 지휘자로 부임하면서 고래수염을 흰 가죽으로 감싼 가볍고 유연한 지휘봉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참고로 왕의 춤(Le roi danse)이라는 영화가 이양반하고 루이14세를 소재로 나온 건데 꽤 볼만합니다
1687년이면 그러고도 남겠네요.
20세기 초 페니실린 개발이 인류의 역사를 바꿨는지도.
역사를 보면 과거에 가끔 큰상처에도 잘 살아남는 사람도 있던데.. 그런사람은 면역이 타고난걸까요 ㄷ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