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긴 글을 씁니다.
회원님들과 어떠한 언쟁도 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해서 제 속 이야기를 안 올리기 시작한지가 꽤 되는데 오늘 인사동에서 굉장히 하드한 촬영을 해서 기진맥진한 상태로 덕수궁 앞 카페에서 쉬면서 이 글을 씁니다.
클리앙에 아주 옛날에 한번 쓴거 같은데 세월이 꽤 흘렀는데도 잊혀지지 않는 저의 회사 퇴사 수기입니다.
자기가 갑이라고 생각하는 인간하고 싱종하고 싶지 않아서 저는 퇴사를 한적이 있는데요 퇴사하겠다고 하니 놀라더군요.
회사가 저로 인해 크게 돈을 벌어 새 사옥으로 이전하기 바로 직전이었습니다.
굉장히 큰 곳으로 갑자기 이전을 할 자신만만한 이유가 저에게서 앞으로도 돈되는 디자인을 뽑아낼 수 있겠다고 대표가 계산한거죠.
하지만 저는 그 고압적인 태도가 싫어 복수를 하는 차원에서라도 회사를 나가고 싶다고 하니 대표가 일주일만, 딱 일주일만 새 후임을 구할때까지 일주일 뒤에 퇴사 하라고 그러더군요.
정리도 할겸 저도 수락했는데요. 내면에는 새 후임이 들어오면 분명 어마무시한 업무량을 이겨내지 못하고 곧바로 퇴사할거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하루에 500페이지 작업을 쿽익스프레스라는 anti-Wyswyg(보이는대로 결과물을 내놓지 않고 철저히 컴퓨터가 만들어내는 가상의 뷰를 보고 결과물을 디자이너가 알아서 예측해야 한다는 굉장히 리스크가 큰 소프트웨어입니다.
초보자가 이 소프트웨어로 작업하면 인쇄 사고에 당첨될 확률이 높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망할놈의 소프트웨어에게 붙인 별명입니다. 원래 위지윅(WYSWYG)이라는 단어는 What you see, what you get이라는 직관적인 소프트웨어 운영 방식을 말하는 문장의 앞글자를 딴 단어입니다.
저는 아름다운 선을 만들고 직관적인 색을 칠하는 일러스트레이터로 페이지를 만들어 내는 방식을 취했는데 입사하자마자 쿽을 다뤄야 한다고 해서 애를 참 많이 먹었습니다.
인쇄 사고를 종종 일으켰죠.
그런 제가 회사에 일을 따오는 시안을 만들어낸게 표지 디자인이었습니다.
일러스트레이터, 포토샵과 손으로 만들어 낸 수채화를 스캔해서 콘텐츠진흥원과 서울 애니메이션센터의 관계자의 마음에 들게 해서 연속으로 계속 일을 따냈습니다. 콘진의 팀장이 다른 시안은 처다보지도 않고 제 것을 택할 정도였습니다.
회사가 지속적안 돈을 벌기 시작해서 MT를 갔는데 대표가 술을 마시면서 저에게 '너 덕분에 회사가 커졌다' 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유로와지니까 대표가 아침에 출근을 안하고 테니스를 치러 다니더군요. 차도 바꾸고요.
제 월급은 안오르면서 업무량이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미칠 것 같았습니다.
싸구려 의자에 앉아 하루종일 야근을 하니 디스크가 걸려 입원했는데 병원에서 그때 모처럼 평소 부족했던 잠을 하루종일 잔 것으로 기억납니다.
그래서 이 회사에 계속 있다간 제 미래가 없을 것 같다고 생각할 무렵... 어떤 분이 우리 회사에 디자인 견적을 의뢰하러 왔다가 회사 대표가 굉장히 높은 가격을 불렀는지 그냥 사무실을 나가더군요.
성장 장애인이셨습니다. 그분을 쫓아나가 부르고 혹시 디자인 비용이 안맞아 그냥 가시는 것 같은데 제가 개인적으로 해드리면 어떨까요 하니까 수락을 하셨고 정말 멋지게 디자인 해드렸습니다.
그 분의 친구들인 일본에서 활동하는 라틴음악가의 앨범을 디자인 하는 것인데 회사 퇴근해서 집에서 수작업으로 그리고 스캔해서 파워북 피스모로 새벽에 작업을 해드렸는데 그때 받았던 돈이 회사 한달 월급과 맞먹더군요. 그래서 차라리 프리랜서로 집에서 내마음대로 편하게 한번만 디자인해도 월급이 되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고 퇴사를 결심했습니다.
그 성장 장애인분하고 그 일 이후로 저에게 계속 일을 맡기셔서 생활하는데 문제가 없었고 지금까지 친구입니다.
22년 되었네요.
퇴사를 한다고 하니 환송파티겸 저녁식사를 모두 같이 하자고 해서 새 후임과 모두 같이 식사를 했는데 대표가 고백하더군요.
'너를 쪼으고 쥐어짜면 좋은 디자인이 나오더라 그래서 너를 하대하고 괴롭혔다' 말했습니다.
그걸 사람들 앞에서 들었을 때 굉장한 모멸감을 느꼈습니다.
퇴사한다고 할 때 갑자기 퇴사한다고 하니 안된다고, 회사 규칙상 한달은 인수인계 차원에서 근무하고 나가야 한다고 하길래 제가 대표에게 한 말은 '이렇게 야근을 계속하니 죽을 것 같다' 라고 말하니 그제서야 퇴사 신청을 받아줬습니다.
20년 넘게 시간이 흘렀는데 그때 상황이 고스란히 기억나네요.
그리고 그 새 후임은 3일 뒤에 퇴사했다고 합니다.
대우라도 잘해줘야 하는데 대표가 덕이 없네요.
다 공덕이라고 여깁니다
쿽익스프레스... 와 오랫만에 듣는 이름이군요.
어떻게 어떻게 연명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인스타그램 알고리즘에 한번 떴는데 회사명을 바꿨더군요
AI 시대인데 디자인 회사 운영하기가 더욱 힘들 것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렇게 글로써 하나의 마무리를 하셨으니,
지나간 기억들로 기분이 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회사 망한 스토리까지는 안갔나 보내요.
안타깝습니다.
좋은 말씀 너무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