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이 꼰대취급하는 4050은 대체로 DJ부터 지금까지 군사정권고 싸우고 박근혜와 윤건희를 탄핵시킨 나름 행동하는 지성이었다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이재명 정부의 지지도도 꽤 높지요.
IMF와 리먼사태를 몸으로 겪으며 아파트값은 불패임을 채감합니다. 평범한 대학생활과 회사생활로 겨우 서울에 작은아파트를 마련하여 살고 그 아파트값이 적당히 오르면 노후를 위해 좋겠다로 생각하면서 살지 지금같은 폭등을 바라지도 않습니다
그러다 오래된 아파트에 살다보니 내가사는 아파트가 저 옆동네의새아파트이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죽기전에 새아파트에 살고싶은 꿈이 생깁니다. 30년 넘은 아파트에서 녹물때문에 필터를 매주 갈아끼우면서 재건축만 기다리고 겨울엔 너무추워 탠트를 치고잡니다.
재건축은 지금 시작해도 10년이상 걸린답니다. 삶의 질이 최악입니다. 59층이던지40층인지 싸우며 시간끄는건 중요하지않습니다. 뭐든지 빨리 했으면합니다.
게다가 노부모가 거주하는 아파트는 더 오래됬거나 노부모가 돌아가셔 형제들과 공동소유상태로 2주택입니다. 와이프쪽 부모의 상태도 비슷합니다. 갑자기 돈안되는 집들로 다주택자가되어버려집니다. 노부모님 집 팔고 우리집 근처로 옮기려하여도 전세가 없어 집을 팔수도 없습니다. 외통수.
양도세 중과로 드림카 포르쉐 한대이상의 세금내고 남은돈 주식에 넣었는데 첨엔 좀 올랐으나 이젠 그냥저냥 합니다. 과거에비해 반도체 덕분에 손해는 안봤으나 크게 살림이 나아진것도 없습니다.
중고등학생 자녀들은 “친구집은 새집이라 좋은데 우리집은 왜 이모냥이냐고 이사가자고”합니다. 아이들은 철이없고 부모는 돈이없습니다.
그런데 보유세를 높인다하고 양도세 중과 유예도 안해줍니다.
4050은 억울합니다. 운동도 희생하여 열심히하고 더럽고 치사한회사생활 꾹 참으며 정직하게 살아 이룬것이 범죄 취급받습니다.
대선때마다 열심히 밭갈고 선거운동펀드모금에 투자도 했는데 돌아오는건 없다는 생각에 씁쓸합니다.
내가 무엇을 위해 열심히 살았나 뒤통수를 맞은것 같습니다. 그래도 남들보다 잘사는것같으니 더 희생하라는 것인지 세금 고지서만 날아옵니다.
그래도 의리가 있어 빨간당을 찍진않지만 작금의 상황을 보아 이싱태가 유지되면 앞으로는 어려울 수 있을것 같다는 오지랍을 하며 미국증시를 살펴보고 내일 손절할까밀까 포트폴리오 분석하고
심심한데 주전부리 할 만한게 있나 냉장고를 뒤적거립니다.
이미 평범한게 아닙니다
세제 개편으로 부동산 잡으려고 하니까 갈라치기로 보이는 글들이 보이네요
구체적으로 보유세 방안 발표하면 그때 고민해도 충분합니다
제 주변 4050들은 대부분 경기도에 집이 있거나 서울에 전세 살고 있어서 공감되진 않네요
2030은 암것도 없이 망한 인생되버렸는데요 ㅎㅎ
이런글 읽으면 진짜 폭동날듯요
일반화 하기엔 무리가 있다고 봅니다.
다양성이 존재하기에 너무 일반화 시키지 않았으면 합니다.
갑니다. 지방 조선소 등등 4050 노동자들이 외국인 노동자 때문에 임금이 오르지 않는다면서 진보
이념에 대한 반감이 커지고 있어요. 그동안 진보시민사회단체들이나 진보 진영에서 불법체류자
인권과 이주노동자 합법화와 임금인상 챙기다 보니 국내 노동자들이 소외되는 결과 만들어졌죠
지방 4050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자신에게 도움 안되고 손해 보는 진보이념을 버리고 극우화
되가는 분위기고 이런 현상은 유럽 미국이 먼저 시작했죠.
특정 세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지 정의로운
세대나 정치인들은 없다고 생각됩니다. 20년 전에는 남자는 의리에 살고 의리에 죽는다 그런말도
통했고 그시절에는 정의로움이 있었지만 지금 세상에 의리 따지고 정의로움 따지는 사람은 없죠.
내가 뭘 그렇게 한 건지 모르겠습니다. 촛불집회는 모두가 같이 한 거고...
이번에는 젊은 세대들도 응원봉 들고 나왔구요..
저는 2030을 나눠 생각하는 것도 조금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반대로 4050도 스스로 나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무리 봐도 나 아직 정신 못 차리고 어리버리한 사람인데.. 어른 취급해 주는 것도 민망하고 고맙기도 하고...
하튼 약~간 4050을 미화하는 듯 합니다.
클로드한테 나름 행동하는 지성께서 적으신 글을 주고
소감을 물어봤습니다.
클선생 왈...
글 자체는 진솔하고, 토로하는 4050의 억울함도 충분히 현실적입니다. 녹물·텐트 치고 자는 생활, 갑자기
떠안은 2주택, 양도세·보유세, 철없는 아이들과 빈 지갑 — 이건 엄살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사람이 겪는
곤란이죠. 그 감정에 공감 못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다만 "본인이 행동하는 지성"이라는 자기규정이 글 내용과 맞느냐고 물으신다면, 저는 좀 어긋난다고
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1. 글에서 '행동'으로 제시된 것들의 성격
- 군사정권과 싸우고 탄핵을 이끈 세대적 경험 — 이건 분명 행동하는 지성의 이력이 맞습니다. 그런데
그건 세대의 집합적 이력이지, 화자 개인이 이 글에서 보여준 행동은 아니에요.
- 정작 화자 본인의 '행동'으로 적힌 건: 투표, 선거펀드 모금 투자, 포트폴리오 분석, 손절 고민, 냉장고
뒤지기입니다. 앞의 둘은 시민 참여가 맞지만, **"펀드에 투자했는데 돌아오는 게 없다"**는 표현이
핵심을 드러냅니다. 이건 정의를 위한 행동이라기보다 기대수익이 있는 투자의 어법이에요.
2. '지성'의 핵심은 자기 이해(利害)와 거리두기
행동하는 지성의 전통적 의미는 "내 손해를 감수하고라도" 옳다고 믿는 방향에 서는 겁니다. 그런데 이
글의 논리는 정확히 그 반대 지점에서 작동해요 — 내 자산이 정책의 표적이 되자 비로소 분노가
발생합니다. 부동산 불패를 체감하며 살았고, 새 아파트의 꿈을 가졌고, 그게 막히니 "범죄 취급"이라
느끼는 것. 이건 인간적으로 당연하지만, 지성보다는 이해관계의 언어입니다.
3. 그래서 솔직한 답
"행동하는 지성"이라기보다는 — 민주화 세대의 자산을 정체성으로 두되, 지금은 중산층 유주택자의 이해를
따라 움직이는 사람에 가깝습니다. 그게 나쁜 게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고, 자기 생활을
지키려는 게 부끄러운 일도 아니에요. 다만 그 입장을 '지성'이라는 도덕적 훈장으로 포장하려니까 글
안에서 균열이 생기는 겁니다.
진짜 행동하는 지성이라면 이렇게 물었을 거예요: "집값 폭등을 바라지 않았다면서, 내 집값이 적당히
오르길 바란 것과 청년이 집을 못 사는 구조는 무슨 관계인가?" 이 질문을 회피하고 "나는 정직하게
살았는데 왜 뒤통수냐"로 끝나는 한, 그건 억울한 자산가의 항변이지 지성의 자기성찰은 아닙니다.
요약하면 — 글은 솔직하고 공감 가지만, 자기를 '행동하는 지성'이라 부르는 건 본인 희망사항에
가깝습니다. 차라리 "나는 이 구조의 수혜자이자 피해자다, 그래서 혼란스럽다"고 했으면 훨씬 지성에
가까웠을 거예요.
대한민국 일반 4050 평균 자산의 5배쯤 됩니다.
성급한 일반화는 글의 신뢰성을 떨어뜨립니다.
제가 71 돼지인데 한 3년있으면 60입니다. 주도적으로 데모 했을 땐 고2 즈음인가?
고작 그때 전교조 학교 선생님 때문에 고등학생으로 수업거부하고 했던거와,
대학 들어가서는 이념이나 그런거보다는 등록금투쟁 정도 조금 했었고,
운동이라고 부를 만한 건 사실 5년 정도부터 더 윗 세대들 정도라야 가능합니다.
뭐 60 초 중반 이후라야..., 4050은 대학 운동권이라기 보다는 풍물패 정도 끝세대입니다.
그때는 이미.. 화염병은 아예 사라졌고, 몽둥이, 최루탄도 거의 사라져 없어진 세대.
고등학교때 반에서 70명 정도는 기본이고, 교련시간이 있어
군복입은 교련 선생이 소총들고 오리걸음 시키고, 졸라 두들겨 패고,
뭐 그런 정도 마지막 겪은 세대이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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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득문으로서는 실패하고, 고백록으로서는 성공한 글입니다. 어느 장르로 읽느냐에 따라 평가가 갈립니다.
잘된 것부터. 디테일이 살아 있습니다. 매주 가는 녹물 필터, 겨울 실내 텐트, "포르쉐 한 대 이상의 세금" — 추상적 정책 불만 백 줄보다 이 셋이 더 많은 걸 전달합니다. "아이들은 철이 없고 부모는 돈이 없습니다"는 경구로서 완성도가 있고요. 그리고 결말이 의외로 좋습니다. 세대의 억울함이라는 거대 서사가 "냉장고를 뒤적거립니다"로 끝나는 김빠짐은, 의도했든 아니든 이 분노가 갈 곳 없음을 형식으로 구현합니다. 분노가 손절 고민과 야식 탐색으로 휘발되는, 글에서 가장 자기인식적인 순간입니다.
문제는 글이 스스로를 배반하는 지점들입니다.
첫째, "폭등을 바라지도 않습니다"와 포르쉐급 양도세 — 곧 막대한 양도차익 — 가 한 글에 공존합니다. 화자는 자신을 소박한 생활인으로 제시하지만, 글이 제출하는 증거(서울 아파트, 상속 지분 포함 다주택, 주식 포트폴리오, 미국 증시 모니터링)는 상위 자산가의 프로필입니다. 이 간극을 화자가 보지 못한다는 점, 혹은 보지 않기로 했다는 점이 최대 약점입니다.
둘째, 서두의 민주화 이력이 재산 불만의 도덕적 담보로 동원됩니다. "군사정권과 싸웠다"로 열고 "밭 갈고 펀드에 투자했는데 돌아오는 게 없다"로 받으면, 민주화 공로가 자산 가치 보장에 대한 청구권으로 환원됩니다. 정치를 의리와 거래의 언어로 말하는 순간 서두가 쌓은 도덕적 권위는 무너지고, 아이러니하게도 글이 반박하려던 꼰대 프레임 — 과거 공로로 현재 보상을 요구하는 — 을 정확히 수행하게 됩니다.
셋째, 반론이 한 번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첫 문장에서 호명된 2030은 이후 발언권을 얻지 못하고, 무주택 독자가 공감에 이를 경로가 설계돼 있지 않습니다. 이미 동의하는 독자에게만 작동하는 글입니다.
기술적으로는 오탈자(채감→체감, 됬→됐, 싱태→상태, 밀까→말까 등)가 잦고, "윤건희" 같은 멸칭은 글 전체의 점잖은 푸념 톤과 충돌해 신뢰도를 깎습니다. 전체가 풍자라면 멸칭이 살고, 진지한 호소문이라면 멸칭이 빠져야 합니다.
고치는 길은 둘입니다. 하나는 화자가 자기 모순 — 폭등을 욕하면서 폭등의 수혜자인 — 을 정면으로 시인한 뒤, 그럼에도 왜 억울한지를 논증하는 것. 상대적 특권을 인정할 때 비로소 녹물과 텐트의 디테일이 힘을 받습니다. 다른 하나는 아예 페르소나로 밀어붙이는 것. 자기도 모르게 자신을 폭로하는 화자의 극적 독백(dramatic monologue)으로 읽으면 이 글은 거의 완성품입니다. 지금은 그 둘 사이에 어정쩡하게 서 있습니다.
다만 하나는 분명합니다. 자산 보유 4050 진보층의 이탈 심리라는 실재하는 정치 현상의 내면 기록으로서, 이 글은 정확하고 솔직합니다. 그 사료적 가치는 설득의 실패와 별개로 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