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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또 다른 미로

2026-06-08 21:43:28 58.♡.152.39
Oros

미로가 있다.
때때로 변형하고 움직이기까지 하는 미로.

그 복잡하고 거대한 미로 안에는,
햄스터들이 살고 있다.

대부분의 햄스터들은 미로의 구조를 알지 못한다.
그렇기 때문에 특정 구간에서 미로가 점점 좁아질 때면
햄스터끼리는 좁은 공간을 공유해야만 한다.

덥고, 불편하고, 번식하기도 어려우며, 먹이를 찾기도 힘들고, 숨쉬기도 힘들다.
햄스터들은 서로 싸우거나 특정 햄스터가 모든 문제의 원인이라며 죽이기도 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다시 미로의 공간이 넓어지는 타이밍에
한 햄스터가 마침 "찍!"하고 외친다.

다른 햄스터들은 그 햄스터를 칭송하고 우상화한다.
그 햄스터는 마침 외모도 준수했다.

찍하고 내뱉은 그는 어느새 성인군자가 되었고,
먹이를 독식하게 되며 순식간에 체중이 불어났다.

다시 미로가 좁아지던 어느 날,
그는 다른 햄스터보다 훨씬 굼떴다.

미로의 문이 닫힐 때
그는 문에 끼게 되었고

좁아진 공간에서 잔뜩 스트레스가 쌓여 있던 햄스터들은,

저 돼지같은 햄스터 때문에
이 사단이 난 것이라 생각한다.

누군가가 그 생각을 말로 내뱉었을 때
그 생각은 순식간에 감염되며
무리 전체의 생각이 되었다.

문에 낀 그 햄스터는 결국 눈알이 파인 채
죽임을 당한다.

일련의 이런 상황을 지켜 보며 무리 속 또 다른 햄스터는 생각한다.

'왜 구조를 보지 못하지?'

'햄스터의 문제가 아니라 미로가 갖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인데
왜 그걸 햄스터에서 찾으려 하는거지?'

그 햄스터는 평생에 걸쳐 구조를 바라봐왔고,
미로의 표면보단 그 이면, 미로 구조가 가진 본질이 무엇인지 탐구해왔다.

그런 구조와 본질을 보지 못하는 햄스터들이 어리석다 생각했다.
그는 늘 미로의 탈출구를 찾았다.

구조를 잘 파악하니까
탈출구를 찾으면 그 밖의 세상에
자신이 찾는 것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다.

얼마나 오랜 시간이 지났을까.

그는 그가 살아온 미로의 구조를 완벽히 머릿속에 담았고
결국 그는 끝내 탈출구를 찾았다.


















탈출구 밖엔 또 다른 미로가 있었다.

기존의 미로와는 다른 외향과 구조였으나
어쨌든 미로임에는 틀림없었다.

멍하니 탈출구 앞에 선 햄스터는
어느새 혼자였다.

아니, 실은 한참을 혼자 살아왔다.

그는 무리 속에서 싸우고 죽이고 칭송하고 웃고 떠들었던 기억에 잠겨본다.

한때 그는 누구보다 무리에서 활동적이었던 핵심 멤버였다.

'이제는 그들과는 너무 다른 길을 이렇게나 멀리까지 와버렸구나'라고 생각한다.

문득 극심한 허기짐을 느낀다.

정신없이 탈출구만 바라보며 달려오느라 며칠째 먹이를 먹지 못한 지 기억나지도 않았다.

햄스터는 킁킁대며 냄새를 맡으며 먹이가 있을 방향을 찾아본다.

'이 근처에는 없다'

먹이는 무리들이 살고 있는 한참 떨어진 곳에 몰려 있었다.

햄스터는 탈출구의 기로에 서서 몇 번 양쪽을 번갈아 보며 생각한다.

'어떤 길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각각의 길에는 장단점이 있다. 난 그 사실을 분명히 인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나는 여전히 내 몸이 이끄는 대로 가고 싶다. 그 결과 배고픔에 굶주려 죽게 될지라도 나는 내 식대로 살고 싶다.'

그는 탈출구를 넘으며 이내 다른 미로를 향한다.

 

 

 



걸어가며 그는 생각한다.

'내 식대로 산다는 건 무엇이지?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을 알려면 나라는 존재부터 명확히 따지고 봐야 한다. 나는 뭐지? 내가 지금 깨어있을 때 인식하는 것이 내 전부인가?'

그런데 햄스터는 미로 밖 인간이 자주 보는 티비에서 분명 과학 관련 뉴스를 본 적이 있었다.

인간은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 생명체이며, 인간이 의식 상태에서 내리는 결정을 뇌파로 측정해본 결과 의식적으로 결정을 내리기 수 밀리초 전에 이미 뇌는 그 결정을 먼저 내렸고 그 뒤에 의식의 단계에서 그 생각을 했다는 실험을 본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생각하고 감정을 느끼는 이 모든 게 진짜 내 전부가 아닐 수 있는 건 아닐까? 의식이라는 소프트웨어 혹은 알고리즘 때문에 이것이 나의 전부인 양 생각하지 못하는 '구조'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건 마치 내가 살아온 미로의 구조와 다를 바가 없어 보인다. 또 다른 개념의 구조 속에 살아왔고, 내가 살던 미로의 구조는 인식할 수 있는 반면 생명체의 인지 구조는 인식할 수 없는 것 자체가 생명체의 한계라면? 그렇다면 나는 대체 무엇이지? 마치 내가 두 명 있는 느낌이 든다. 나와 내가 인식하지 못한 채 나를 조종하는 또 다른 나. 내가 지금 걷는 이 길을 선택한 건, 어디까지나 내 의식으론 내가 결정했다고 믿지만 어쩌면 애초에 난 이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던 건 아니었을까? 또 다른 나에 의해, 혹은 알고리즘에 의해?'

'근데 그렇다면..
진정한 나, 진짜 나라는 게 그래서 중요한걸까? 어차피 모든 생명체가 이런 구조에 놓여있다면 진짜와 가짜를 알아서 달라질 건 무엇인가? 어차피 흘러갈대로 흘러갈 수 밖에 없고, 내 의식과 달리 내 몸은 이미 무언가를 늘 의식보다 먼저 결정하고 느낀다면,
그런 것에 머리 싸매고 생각하는 것보다 그저 순간을 즐기면 그만 아닐까? 어쩌면 나란 존재는 그런 쪽으로 파고 들고, 본질과 구조를 찾으려고 애쓸 수 밖에 없는 생명체일지도 모를 것이다.'

그는 생각에 잠겨 있으면서도 걷는 동안 지나치는 다른 햄스터들을 무척 의식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고독하지 않은 척
배고프지 않은 척
무리에서 벗어나지 않은 척

그는 한참을 걷다가 우연히 다른 햄스터를 볼 때면
그들과 포옹하고 싶은 충동이 들곤 했다.

수컷, 암컷이든 나이가 어떻든
상관없었다.

그저 온기를 느끼고 싶었고
진정 어린 대화를 나누고 싶었다.

하지만 걷는 내내 그가 마주친 다른 햄스터들과는 그저 형식적인 대화 몇 마디를 하며 사회에서 흔히 통용될 법한 흔한 표정을 지은 것이 전부였다.

그는 다시금
생각에 잠긴다.

'지금까지는 구조를 파악하고, 탈출구를 찾으면 될 줄 알았다. 하지만 왜인지 그런 방법으론 무언가가 단순하게 해결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문득 그는 생애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 본다.

'과연 본질이 더 중요하긴 한걸까?'

'어쩌면 표면도 중요한 것이고, 무엇이 더 우위에 있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시선이 아닐까?
그저 표면과 본질이 존재할 뿐인 것은 아닐까?'

'그러니까 만일 표면이 없다면, 본질도 존재할 수가 없을 것이다.
미로의 형태가 없다면, 탈출구도 존재할 수 없듯이 말이다'

'삶에 정답이 없고 가치란 그저 상대적일 뿐이라고 그렇게나 스스로 반복적으로 되뇌어 왔음에도 나는 본질과 표면을 위계 구조에 두고 저울질해 왔던 것은 아닌가?'

길에 놓여 있던 버려진 음식물을 본 그는
주위에 다른 햄스터가 없는지 눈치를 본 뒤,

재빠르게 먼지 묻은 음식물을
입에 가져가
허겁지겁 먹어댄다.

입 아래로 떨어진 음식물이 털 사이에 군데군데 낀 채,
그는 하던 생각을 이어간다.

'무리 속에서 시덥잖은 걸로 서로 죽이고, 아무 논리적 근거도 없는 이유로 칭송하고, 실은 사랑 때문이 아닌데 진정한 사랑의 위대함을 노래하는 햄스터 무리들이 어쩌면 어리석은 게 아닐지 모른다. 그들은 설령 진실을 잘못 파악할지라도 적어도 나보단 훨씬 덜 고독해보인다. 무리에서 옆에 있는 수많은 햄스터들을 볼 때면 든든하기도 할테고, 자신이 잘 살고 있다는 안정감을 주기도 할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은 나보다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높고 소중한 것들을 나보다 더 오래 지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더 나아가, 삶과 죽음, 빛과 어둠, 수컷과 암컷 그리고 진짜와 가짜 마저도 어느 한 쪽이 우위에 있는 류의 문제가 아닌 건 아닐까? 즉 가짜도 다 귀할 수 있는 것이고 필요할 수 있는 것은 아닐까?'

어쩐지 그는 자유로운 기분이 든다.
그 어떤 일을 해도,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어느새 다른 미로의 깊은 곳까지 들어온 그는
골목에서 하체가 매력적인 암컷 햄스터를 발견한다.

'빛과 그림자, 선과 악..
모든 것이 괜찮다면..'

햄스터는 다양한 상상을 했지만
아무 일도 벌이지 않은 채,

미로 속 화장실 칸에 조용히 들어간다.

"뿌지직.."

"뿌직"

'먹은 것도 얼마 없는데
똥은 왜 이리 나오지' 라고 생각한다.

일을 다 본 뒤,

그는
자신의 배설물에 다가가 냄새를 맡는다.

왜 맡았지에 대해선 생각하지 않는다.

그저 몸이 나간 것이었다.

화장실에서 나온 그는,

새로운 이 미로 공간의 구조는 어떠한지
본격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이곳은 세 개의 레이어가 쌓여있는....'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사진과 글, 그리고 영상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Oros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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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풀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외계인을 향한 마지막 신호
https://orosarchiv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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