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였더라?
대학교 동아리의 선배였나?
대학교에서 만난 지인이었나?
누구인지 중요친 않다.
그저 과거의 그가 나에게 했던 말과 그 순간의 공기가
어젯밤 번뜩 떠올랐다.
그는 나와 지극히 일상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 이야기 속에 그의 적대감은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나를 쳐다보며 그가 말했다.
"너 친구 없지?"
그때의 난 그게 그렇게 쪽팔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때의 나에겐
다른 건 다 들켜도
그것만은 들키면 안되는 것이었다.
게다가 너무나 갑작스럽게
내 방어막이 뚫린지라,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 느낌은 흡사
교통사고 직전의 당혹감과 비슷하다고 적을까 싶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보다 더 컸다.
맞다. 그때도 난 뇌가 차가워지는 느낌을 받았던 것 같다.
뇌가 차갑다는 느낌이 공감이 갈까?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물리적으로 뇌가 차가운 느낌이 든다는 말이다.
지금은 그런 점에선 조금의 미동도 없을 일이지만
그땐 그러했다.
게다가 그가 이어서 한 말은
너무 합리적이고 논리적이라
지금 생각해도 그의 통찰은 옳았다고 생각한다.
"너처럼 돈 아끼는 거 보면..
주변에 친구들이 별로 없더라고.."
어릴 적엔 남녀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지만
내가 어둠에 빠진 이후
나에게 친구는 거의 없었다.
실제로,
난 평생을 베풀지 못했다.
핑계로 들릴지도 모르겠다만
난 그런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아니다.
어릴 적 악착같이 절약하던 부모님께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고 싶었다.
어린 나도 그들처럼 아끼는 모습을 보이면
그들이 나를 인정해주고, 더 사랑해줄 것만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알게 된 것이지만
나는 돈만 옥죄고 있던 것이 아니었다.
돈은 표면에 드러나는 것일 뿐,
난 내 마음까지 옥죄고 있었다.
그렇게 친구는 하나둘씩 멀어져갔다.
난 사랑받고 자라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더 정확히 말한다면,
사랑이란 감정적인 단어는 적합하지 않다고 본다.
그저 난 그들의 생존 과정에서 탄생해버렸고,
그들은 그들의 방식대로 다뤘다고 말하는 것이 더 어울린다고 느낀다.
사랑 사랑.. 같은 그런 간지러운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오랜만에 아주 어린 시절의 사진을 꺼내보았다.
정지된 사진 속의 부모님은
내 기억과 달리 나를 사랑하는 듯한 얼굴이 보인다.
다만 그것은 정지된 순간의 이미지이며, 모든 것은 변하기 마련이다.
이어서
생동감 넘치고 애교 많고 감성적이던 어린 시절의 내가 보인다.
반면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 속 내 얼굴은..
내가 살면서 본 모든 인간들 중
가장 인간이 아닌 얼굴을 하고 있다.
잘생기고, 못생기고, 슬퍼 보이고, 힘없어 보이는 류의 것들의 궤도에서 한참을 벗어난다.
이게 사람인가?
온 몸의 피를 다 빼낸 시체 같기도 하지만
단순히 시체라고 하기에도 부족하다.
혈색만 빠진 것이 아니라 영혼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그 사진을 보고 있는 나의 생명력조차 줄어드는 느낌마저 든다.
내 바로 옆에서
내 얼굴을 쳐다보며
말하던 그와
들켜선 안될 극비의
무언가를 들킨 나
그 순간의 당혹감이 몇십년이나 지난 지금
문득 떠올랐고
그 감정 만큼은 여전히 생생하다.
난 끝끝내 죽기 전까지
베풀지 않아왔나?
다시 생각해본다.
그래도
아내와 아이에겐
베풀었다 생각한다.
아내와 아이에게
'베푼다'는 표현이 부적절해보이지만.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사진과 글, 그리고 영상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그리고 글 잘 쓰시네요.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