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는 일제시대에 태어난 평범한 시민이자 소작농이었습니다
일제시대에는 어린이었고 그나마 소학교에 다녔다가
자의식이 생기는 청소년 시절에 625전쟁이 터져
가족과 친척들, 이웃이 죽어나가는 걸 눈으로 보고 겪었습니다
일자무식하면 농지 다 빼앗기고 계속 빌어먹겠다는 생각에
얼마 안되는 소 팔고 논밭 팔아
장남은 서울에 대학은 무조건 보내 집안을 일으키겠다 하셨죠
장남인 아버지는 58년 개띠로 태어나 기대에 부응하여
서울의 유명대학 공대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그 때의 여느 대학생처럼
박정희의 유신독재를 혐오하고 도서관 인근에서 친구들과 술에 취한채 욕하다가 개머리판으로 두드려맞고 유치장에 갔고,
아버지에게 1987이라는 영화는 기억을 되살리는 역사영화가 아니라 삼엄하고 잔인한 기억을 끄집어내는 불편한 영화였습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정치적 성향은 그들이 청년일때 겪었던 많은 일들로 인해 내내 평행선을 달렸습니다
할아버지는 빨갱이들 때문에 사람이 길에서 죽어 썩어나갔는데 공부는 안하고 운동권에 속해 전과자가 되는 아버지 세대를 한심하게 여겼고, 다시 남침이 이루어질까 불안해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운동권 친구가 반병신이 되어 평생 제대로 살지 못하고, 당시의 공안검사들이 득세하고 전두환이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모습에 분개하고, 저희 동네 국회의원이 내내 심재철인 것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두 분의 살아있는 기억을 직접 듣고 자란 손자 세대인 저는
둘을 이해하면서도 아버지 쪽에 더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97년의 경제적 충격과, 08년도의 충격을 연타로 맞으며
운동권 선배들의 서사나 행동은 사치라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북한이 뭐 어쩌자는 말인지?
취업은 언제하며 집은 언제 마련하고 곁혼은 어떻게 하고 애는 어떻게 키워야 하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내심 아버지 세대의 역사는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했죠
약 10년이 지나며
선배세대들도 저희세대도 박근혜-문재인 대통령 때 많은 수가
취업을 해서 집을 작게나마 마련했고 가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집값은 폭등했고 전세도 마찬가지로 올랐습니다
90년대 중반에 태어난 친구들은 그 때 반정도만 대출을 할 수 있었기에
연일 폭등하는 집값에 동동거렸죠. 취업이 안된 친구들도 많았고 어려움도 많았죠. 미트나 리트를 보고 전문직으로 전환하려는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약자나 청년을 위한 정책을 적극적으로 하다가 실패한 것이고 새누리당보다 민주당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후에 조민 의전원, 성추행 등 여러 사건들이 겹치며 겪은 도덕적 배신감에 많은 90년대생들이 뒤돌았습니다
정 비유를 들자면
사랑과전쟁을 보며 바람핀 저놈 나쁜놈이다 해도
정작 믿던 내 배우자가 바람피면 받는 충격같았죠
아니면 저희 아버지가 서울대에서 심재철이 배신하지 않을 것이고 민주화가 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엥? 한나라당으로 데뷔하는 모습을 보며 여느 친일파 국힘의원들보다 더 미워하게 된 것 같이요
결국 뭘 말하려나면,
민주사회(계엄공포)가 얼마나 소중한 가치인지 몸소 느끼시는 선배 세대들은 후배 세대들이 철없고 멍청해보일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대는 다 다르니까 이해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처구니 없다해도 정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은 재재로 압도적 공급해야 합니다.
각자의 세대에는 각자의 십자가가 있습니다
그들이 당장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려고 30년된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30년간 막대한 금액을 대출하려는데, 그마저도 막아서 안되어도 저희 아버지 세대의 투쟁이 마음속에 더 와닿을수가 있을까요?
그런 고통은 부차적인거야. 자유가 더 중요해라고 말해주는 선배 세대가
정작 본인들은 1주택으로 갓 10여년된 33평 아파트에서 대출도 얼마없이 사는 걸 보면, 당장의 대출도 안되는 현실과 입시비리에 분개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을 이해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을 마냥 철없다 무시하지 말고 대책을 세웁시다.
듣다보니 그럴수도 있겠다 싶네요.
서로를 이해하고 상생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아바지 세대의 마음이 계속 이어져 나가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