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역시 40대 끝물인 시점에서 정확히 딱 저 40,,50 세대에 포함되어 있는데,
제가 느끼기에 40,50세대의 특이점은
엄청난 가난을 느끼지는 못했지만 비교적 나라가 가난했던 시대에 태어 났었고,
민주화 운동이 정점인 시점은 아니지만, 어느정도 민주화 운동의 필요성을 느끼면서 자랐던 세대이고,
폭발적인 경제 성정의 혜택을 어릴 때 간접적으로 누린 세대인 듯 합니다.
여기까지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던 세대인 듯 싶은데,
문제는 이후에 본격적으로 성인 또는 사회 생활을 시작하면서
기득권이 만들어낸 거대판 폭탄인 IMF를 직접 적으로 때려 맞고,,
지지하던 대통령이 정치적 탄압으로 서거하시고,,
글로벌 경제 위기로 한방 더 때려 맞기도 했죠.
이후에 다시 박근혜 탄핵, 문재인 대통령 시기에 선진국 진입(국가 경쟁력 성장 및 민주주의 성장에 엄청난 기여를 한 세대), 다시 최악의 윤석열 겪었고, 다시금 이재명 대통령을 이끌어 낸 세대이기도 하죠.
정치적인 측면에서 봤을 때에는 국내 정치판의 최악부터 최정상까지 겪어 봤고,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잘나가다 망하고 다시 잘나가는 걸 체험하고 있습니다.
쉽게 말해서 정치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편향된 사고를 가질래야 가질 수 없는 세대인 듯 싶습니다.
공동체를 바라보는 면에 있어서도, 어릴 적 함께 사는 사회를 보다가 IMF때 그런 사회적 풍토가 산산히 무너지는걸 보았고,
또한 그걸 금모으기 운동등 공동체의 힘으로 이겨내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노통의 서거를 통해서 우리가 함께 해야 한다는 것도 배웠구요.
박근혜 및 윤석열 탄핵을 통해서 깨어있는 시민의 힘도 배웠습니다.
즉, 우리가 함께해야 더 잘사는 사회가 된다는걸 몸소 체험한 세대라고 봅니다.
아마 세대를 굳이 20~30 40~50, 60~70으로 나누어서 본다면,
아마 평균적으로 유일하게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다 같이 잘되는걸 바라는 세대인 듯 싶습니다.
정말 다이나믹한 세대이기에 현재의 허탈감 정도는 쉽게 이겨내고,
다시 한번 시대를 이끌어 갈 수 있다고 생각이 됩니다.
우리 조금만 노력합니다.
힘 냅시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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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가...
생각해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있고, 또 다시 적응해야 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ㅎ
변화와 적응에 능숙한 세대인 만큼,,이 또한 이겨내리라 믿습니다.~ ㅎ
동년배로서 느끼는 감정에는 매우매우 공감합니다.
"내가 조금 손해보더라도 다 같이 잘되는걸 바라는 세대인 듯 싶습니다."
나라 살린다고 애 돌반지까지... 꺼내서 금모으기에 동참하는 것을 목격했고
나중에서야.. 일부 기업들이 배불린 것도 알얐죠...
공동체를 위해 어느정도의 희생은 감당하지만,
속았다는 경험으로 비판적 사고도 하는 것 같습니다.
윗 세대 보다 덜 감성적이고, 아랫세대 보다 덜 비판적이죠..
어쩌면 양쪽이 섞인 세대 일 수도 있고요
기타 갈등들이 봉합되기가 굉장히 힘들어보이긴 하네요~
말씀하신 그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태도가 달라보여요~
저또한 이젠 40대 중반이니까요.
근데 이번 선거에서 2030의 동향을 보고 내가 구지? 라는 생각이 더 강해지고 있습니다.
누구 때문인지
누구한테 요구해야하는지
누구한테 투표해야 뽑아야 하는지는 아는 세대입니다.
다만 지금 26년에 공동체의 가치를 다시 만들어내자! 하는 더불어의 구호가 과연 의미가 있는가?
는 재고해볼 여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새로운 형태의 대안을 던져주는게 더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다른 세대의 평가가 중요하겠지요
영포티 밈도 어쩌면 나쁜 이미지 극대화 해서
정치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고도의 설계일 수 있어요
원래 정치공학이 그런 거 아니겠어요. 가장 약한 고리를 공격해라...
진보진영을 공격할 때 쓰이는 약한 고리들, 극성페미, 위선적 진보주의자 등등...
반대로 보수진영을 공격할 때는 그냥 구멍이 너무 많죠.
반백년 이상의 세월 동안 실세여서 자기들의 처신에 별 고민이 없었거든요.
그 구멍을 메우려고 뉴라이트 같은 게 생긴거고...
그렇군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식견이네요
생각해보면 저도 그 나이때에 기성세대 마음에 안든다고 욕한 기억도 있구요.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제가 생각하는 그대로의 나라가 마냥 행복할까 하는 의심도 항상 하게 됩니다.
역하면 역한대로 살아야지 어쩔 수 없죠. 각자가 원하는 부흥회 가서 마음 편해지셔야...
각자가 원하는 부흥회 가서 마음 편해지라는 말씀은, 결국 본인들도 세대적 모순과 기득권으로서의 한계를 인정하기 싫으니 귀 닫고 살겠다는 선언으로 들리네요.
다른 세대의 비판을 '마음 편해지려는 투정' 정도로 치부하는 그 오만함이 바로 지금 4050 세대가 고립되고 있는 진짜 이유입니다.
불편한 진실을 마주했을 때 논리적 반박 대신 싫으면 떠나라 식으로 대처하는 모습, 참 보기 좋습니다.
화이팅하시는 건 얼마든지 좋죠. 서로 힘내자는데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
다만 아쉬운 점은, 본인 세대의 화이팅을 위해 우리 세대만 유일하게 타인을 위한다 라는 뉘앙스로 다른 세대를 은근히 이기적인 집단으로 깎아내리셨기 때문입니다. 타 세대에 대한 존중이 빠진 자화자찬은 응원이 아니라 오만으로 비춰질 수밖에 없습니다.
건강한 응원은 다른 세대의 삶과 고충도 함께 인정할 때 비로소 힘을 얻는 법입니다. 다음에는 정말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따뜻한 화이팅을 기대하겠습니다.
어디서 들은 얘긴지 모르겠지만....
이런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더군요.
그런데 말입니다.
저 문장의 한 줄... 한 줄의 깊이를 알고 말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IMF 때... 지금으로 치면 현대차와 같은 기업이 하나 둘도 아니고 여럿이 무더기로 무너졌습니다.
상상이 가실지 모르겠습니다.
빚더미에 앉아서 길거리에 쫓겨나는 사람들이 TV에서만 보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알던 아저씨들이...그렇게 어느 날 잠수 타고, 한강에 가고 그랬습니다.
즉, 멀리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 바로 가까이에서 모두가 체감하던 어려움이었습니다.
당대의 어려움을 이해 못하는 것은 이해하지만,
너무 가볍게 취급해선 안 될 것 같습니다.
남자는 30세 전후면 결혼을 준비해야 한다고 해서,
주어진 시간 내에 하지 못하면 도태 되는 것 같은...압박감이 있었습니다.
이건 참... 말해도 이해가 될지 모르겠는... 거긴 합니다.
IMF 당시 졸업한 사람들.. 몇 년을 취업하지 못하고,
30이 넘어가면 아예 기업이 취업 문을 열어주지 않았습니다.
나이 제한이 있었다는 거에요.
이 부분은 이해가 갈 수 있겠단 생각이 드는군요.
졸업하고 3~4년 안에 취업에 성공하지 못하면 도태 되는 느낌.
좋은 직장으로 가는 길이 원천 차단 되는...그 절박함을 말입니다.
당장 이건 지금 적용해도 엄청난 부담이라는 것을 알 것 같네요.
이름 있는 기업은 전부 그랬습니다.
아주 이름 없는 곳이 아니라면요.
님이 말하는 모든 것에 왜곡이 있습니다.
아무리 경제적 성장을 하던 시기라고 하더라도,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린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그 당시에 이슈가 되던 것이.. 낙수효과라는 것이 있느냐 .. 였습니다.
2030이 나중에 4050이 되잖아요?
그럼 그 때의 2030이 또 님 같은 이야기를 할 겁니다.
제가 다른 글에서도 적은 바가 있지만,
다른 점이 있긴 합니다.
과거 경제가 성장하던 시기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는 ... 누가 말하지 않아도...
굳이 의식하지 않아도... 막연하게... 기대는 바가 있었습니다.
취업이 어려워도 당장의 눈 앞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그래도 나라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면서,
화이팅을 외칠 수 있었습니다.
지금 그런 것이 부족한....그 때 보다 더 안개가 낀 것 같은,
그런 심리가 있겠죠.
그러나 그것은 세대가 지나갈 수록 나라의 발전 모델이
어느 선에 다다른 나라는 다 그렇습니다.
폭발적 고도 성장기에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것이 아니지 않겠습니까.
사실, 이것도 다르고 저것도 다르고 다른 것들이 많지만,
퉁치만 그 때나 지금이나 어려운 부분들이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금이야 당연한 일 같지만,
부자들만 유치원을 보냈어요.
이 부분도 변화의 속도가 빨랐습니다.
불과 몇 년 후에는 중산층도 유치원을 보내는 것이 가능했고,
또 90년대 들어서는 일반화가 되었습니다.
빠르게 변해갔죠.
학교 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해서 수도물로 배채우는 것이
비단 영화나 드라마에서 나오는...과장된 무언가가 아니라
실제 그랬습니다.
그런 친구들이 한 반에 몇 명씩 있었습니다.
님이 올린 이 댓글과 비슷한 댓글을 여러 본 보았지만,
항상 패턴이 비슷합니다.
기성 세대는 그래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그것이 잘 못 된 기준이나 방향일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성세대의 하루 근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들어 본 적 있는지 궁금합니다.
부모님에게 물어 보세요.
살인적인 일과였습니다.
토요일에도 일을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요.
아래를 보고 살아가게 되어 있습니다.
부모 세대는 아래 세대를 위하는 마음이 있어요.
많냐 적으냐가 차이일뿐입니다.
님이 부모 세대가 되면 또 그렇게 될 겁니다.
4050의 부모님 세대도 바라는 것 없이 다 내리사랑을 했습니다.
나중에 지금의 2030이 4050이 되었을 때
그래도 아래 세대를 살펴 보게 될 것입니다.
지금처럼 하는냐 조금 덜하느냐 차이는 있겠지만요.
과거나 지금이나 앞으로나
아래 세대가 위세대를 제대로 이해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지나고 봐야 아는 것이어서,
사람 인생이 그렇습니다.
아무튼...
다 이해해주길 바라진 않지만,
몇 줄의 짧은 글로 정의 내리기 쉬운.. 그런 것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립니다.
물론 제 아버지가 사업을 제대로 못 하셔서 망한것도 있지만요~~
진짜 그 당시에 집 날라가고,,,돈 없어서 군대간 사람 수두룩 빡빡했죠..
80년초 수도권 인구 1천만명였어요. 지금은 2천5백만명이 몰려 있고요.
당연 수요와 공급이 불균형을 이루는데, 전두환이 집값은 잘 잡았다? 지금 전대갈 할아비의 할배가 와도 그 당시 정책으로 씨알이 먹힐지요?
각 세대는 그 안에서 스스로 고립되어 있습니다. 사오십대가 깨어있다고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어이없는 얘기죠. 그냥 물이 흘러가듯 나름의 정치문화나 인식을 안고 사는 겁니다. 서로를 이해한다고 하는 말처럼 오만한 얘기도 없는거죠. 이런 시도 저런 시도도 다 주제넘는 얘기일 뿐... 지금 위에서 얘기되는 핵심은 불가능한 걸 못한다고 성토하는 겁니다. 그런 식이면 왜 이십대는 같은 방식으로 접근을 못합니까. 손바닥 마주치는 얘기만큼 허무한 겁니다.
글쓴이님께서 남겨주신 장문의 글, 행간마다 묻어나는 IMF 시절의 처절함과 그 시대를 온몸으로 버텨내신 선배 세대의 고단함이 그대로 전해져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대기업들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고, 주위의 평범했던 이웃과 아저씨들이 하루아침에 한강으로 향하시던 그 시절의 공포와 체감되던 고통을 감히 제가 다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토요일까지 출근하며 살인적인 노동을 견뎌내신 선배님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점은 늘 마음 깊이 존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글을 읽는 내내 씁쓸함이 가시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글쓴이님께서는 "문장의 깊이를 알고 말하는지 궁금하다"며 현세대의 목소리를 '가볍다'고 치부하셨지만, 정작 글쓴이님 역시 지금의 2030 세대가 마주한 구조적 절망의 '깊이'를 기성세대의 해묵은 잣대로 재단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몇 가지 뼈아픈 왜곡에 대해 조목조목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IMF 시절의 나이 제한과 지금의 '기회 박탈'은 체급 자체가 다릅니다.
당시 졸업 후 3~4년 내에 취업하지 못하면 도태되던 절박함, 30세 전후로 결혼 압박에 시달리던 나이 제한의 가혹함은 인정합니다. 당장 지금 적용해도 엄청난 부담이라는 말씀에도 동의합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IMF는 미증유의 재난이었지만, 본질적으로는 대외적 충격에 의한 '일시적 수축'이었습니다. 구조조정의 피바람이 분 뒤, 경제가 회복되면서 기업들은 다시 대규모 공채의 문을 열고 청년들을 대거 흡수했습니다. 즉, 당시의 절박함은 ‘열려 있는 문을 향해 정해진 시간 내에 골인해야 하는 압박’이었습니다.
반면 지금의 2030은 어떻습니까? 나이 제한이 문제가 아니라 ‘채용 시장의 패러다임 자체가 붕괴’되었습니다. 대기업 정기 공채는 종말을 고했고, 경력직 위주의 수시 채용만 남았습니다. 신입을 안 뽑는데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는 말입니까? 과거의 절박함이 허들을 넘어야 하는 고통이었다면, 지금의 절박함은 트랙 자체가 사라진 절망입니다. 감히 비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둘째, '낙수효과'를 논하던 시절의 '희망'과 지금의 '확정된 절망'을 퉁치지 마십시오.
과거 경제 성장기에 모두가 혜택을 누린 것이 아니고 낙수효과 유무가 이슈였다고 하셨지요. 맞습니다. 대기업 위주의 성장이었으니 소외감도 컸을 것입니다. 하지만 글쓴이님께서도 스스로 적으셨듯, 그때는 ‘내일은 오늘보다 나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와 사회적 역동성이 공기처럼 존재하던 시대였습니다. 나라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주 6일 살인적인 노동을 버텨낼 수 있었던 원동력도, 결국 ‘내가 오늘 땀 흘리면 내 집을 마련하고 내 자식은 나보다 나은 세상에서 살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선진국 모델에 다다라 안개가 낀 것 같다고 변명하셨는데, 이건 청년들이 배가 불러서 부리는 투정이 아닙니다. 지금의 2030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가난해지는 것이 확정된 세대’입니다. 폭발적 고도 성장기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라는 핑계는 무책임합니다. 성장의 과실을 맛보며 달렸던 세대가, 성장이 멈춘 좁은 방에 갇혀 질식해가는 세대를 향해 "우리 때도 안개는 꼈었다"며 고통의 무게를 줄 세우기 하는 것은 가혹한 기만입니다.
셋째, '수돗물로 배 채우던 시절'의 감성으로 지금의 자산 양극화를 가릴 순 없습니다.
학교마다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해 수돗물로 배를 채우던 친구들이 한 반에 몇 명씩 있었다는 말씀, 참 가슴 아픈 역사의 단면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사회 전체가 절대적으로 빈곤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당시에는 유치원을 보내는 가정이 불과 몇 년 만에 중산층, 일반층으로 빠르게 확대되는 ‘상향 평준화’의 서사가 있었습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던 시절이었습니다.
지금 청년들이 마주한 것은 절대적 빈곤이 아니라 고착화된 '신계급 사회'와 상대적 박탈감입니다. 이제 근로 소득만으로는 평생을 숨만 쉬고 일해도 서울에 번듯한 집 한 채 사는 것이 원천 차단되었습니다. 부모의 자산 규모(수저)에 따라 인생의 출발선과 한계선이 아예 결정되어 버립니다. 과거의 가난은 열심히 달리면 극복할 수 있는 대상이었지만, 지금의 격차는 아무리 발버둥 쳐도 깨지지 않는 거대한 벽입니다. 수돗물 마시던 시절의 서러움을 소환해 지금 청년들이 느끼는 무기력과 거대한 시스템적 장벽을 가볍게 치부하지 마십시오.
넷째, 기성세대의 '내리사랑'이라는 프레임만큼 오만하고 무책임한 것은 없습니다.
부모 세대가 자식 세대를 위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 부정하지 않습니다. 4050의 부모님 세대도 다 바라는 것 없이 내리사랑을 실천하셨겠지요. 하지만 감정적인 영역을 걷어내고, 냉정하게 사회 구조와 숫자를 보십시오.
지금의 기성세대는 청년 세대의 기회를 가장 적극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이해당사자들입니다. 자신들이 구축한 자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 부동산 가격을 천정부지로 폭등시켜 청년들의 주거 사다리를 끊어놓으셨고, 호봉제와 정년 연장을 굳건히 고수하시면서 기업들의 신규 채용 여력을 소멸시키고 계십니다.
그로 인해 청년들이 결혼을 포기하고 출산율 0.6명대라는 국가 소멸의 성적표를 받아들었을 때, 기성세대는 어떤 대안을 내놓으셨습니까? 구조적 개혁이나 기득권의 양보는 단 하나도 없이, 그저 "우리도 살인적으로 일했다", "나이 들면 이해할 거다", "아래 세대를 살펴보는 내리사랑이 있다"는 감성적인 서사와 훈계로 본질을 흐리고 계시지 않습니까.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기성세대의 시혜적인 '이해'나 '사랑'이 아닙니다. 공정한 기회의 분배와 무너진 사다리의 복원입니다.
글쓴이님의 말씀대로 사람 인생은 지나고 봐야 아는 것일지 모릅니다. 아래 세대가 위 세대를 완벽히 이해하기 어렵듯, 위 세대 역시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인구 절벽과 수축 사회’를 살아가는 지금 청년들의 절망을 온전히 이해하긴 불가능할 것입니다.
선배 세대가 겪으신 IMF의 눈물과 궤적이 몇 줄의 글로 정의될 수 없을 만큼 깊고 아픈 것이라면, 지금 2030 세대가 마주한 숨 막히는 절망 역시 "라떼는 말이야, 다 지나고 나면 안다"는 세대론적 낭만주의로 퉁쳐질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기성세대의 경험만을 절대 진리로 두고 후배 세대의 고통을 가볍게 여기는 그 오만함이야말로, 글쓴이님이 말씀하신 모든 논리에 왜곡이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입니다.
씁쓸한 마음으로 글을 마칩니다.
수도권 인구 밀집은 수십 년간 지속된 현상인데, 최근 몇 년간의 폭등을 단지 자연스러운 수요공급 탓으로 돌리는 것은 본질 흐리기입니다. 진짜 주범은 초저금리와 금융 완화 흐름을 타고 청년들의 주거 사다리를 갭투자와 투기판으로 만들어버린 기성세대의 유동성 독점입니다. 게다가 자신들의 자산 가치가 떨어질까 봐 공급 정책과 제도 개혁을 온몸으로 가로막고 있는 이해당사자 역시 지금의 기성세대 정치권과 자산가들입니다. 막대한 자산 인플레이션의 달콤한 과실은 선배 세대가 다 누려놓고, 그로 인한 주거 절벽과 출생률 소멸의 고통은 2030에게 전가하며 시장 법칙으로 퉁치려는 태도는 참 잔인하게 느껴집니다.
세대 간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다는 허무주의적 시선 뒤에 숨어, 현재의 불평등을 자연스러운 세대적 흐름으로 퉁치려는 태도야말로 가장 무책임한 방관입니다. 지금 2030의 목소리는 단순히 윗세대를 향한 이해의 요구나 문화적 성토가 아니라, 생존이 걸린 사회 구조적 불공정과 사다리 걷어차기에 대한 최소한의 저항이자 생존 투쟁입니다. 모든 세대가 각자의 물길을 흘러갈 뿐이라며 갈등을 봉합하려는 논리는, 결국 기득권을 쥔 기성세대의 체제를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현상 유지의 또 다른 화법일 뿐입니다. 손바닥이 마주치는 허무한 싸움이 아니라, 한쪽이 방을 독점하고 누르는 구조에서 나오는 비명이라는 본질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말의 요점이 잘 전해지지 않은 것 같네요.
자! 사람은요. 언제 태어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그저 그 때를 살아 갑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40년 전의 어느 날 어떤 청년이 느끼는 절박함은... 그 뒤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겪는 것이겠죠.
지금부터 40년 후의 청년은 어떨 것 같나요.
어떤 때에 내가 태어나는 것을 졀정할 수 없고,
그 때에 부딪힌 문제에 대해 이해를 돕기 위 해 한 말이었습니다.
오만함이라고 하셨는데,
말이 좀 많이 가시네요.
이런 겁니다.
어떤 이해의 배경이 있는지는 경험으로 압니다.
다 겪어 본 것이니까요.
그런데 디테일은 원래부터 알 수 없습니다.
아니 달라진 세태의 경험을 그 나이가 되어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알겠습니까.
재밌는 말 하나 해드릴까요.
약 20년 전 즈음이었을 겁니다.
그 때 .. 나왔던 말이... 님이 지금 하는 말과 비슷했습니다.
완전히 같진 않지만... 그 때의 청년들이 하던 말이...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특히 부동산에 대해서요.
사회는 말입니다. 이어지는 것이지 누군가 어느 한 시점에 바꾸거나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4050의 부동산 시장 왜곡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잘 못 생각하는 점은,
여러 차례 반복 된 부동산 열풍 당시에
4050이 지금의 청년 보다 재정적으로 나은 상태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지나고 나서 하는 말은 누구나 할 수 있어요.
역사는 실시간으로 새로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니
처해 있는 그 시점 기준이 어땠을지를 봐야 됩니다.
또 다른 착시 하나 알려드릴까요.
80년대 90년대 이야기는 많이 안 나오죠?
그 때의 부동산이 얼마나 가파르게 올랐는지.. 말하는 사람도 별로 없고, 이해도 못할 겁니다.
그걸 보고 자란 사람들이 선대를 어떻게 생각했을까요.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거냐면요.
4050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뭔가를 홱책한 것도 아니라는 겁니다.
이 요란의 출발점은요. 탓을 돌린다는데 있습니다.
뭔가를 바꾸려면요. 4050이 현재 주축이잖아요? 함께하고 연대해야 가능하지,
탓을 돌리고, 원망만 해선 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또 시간이 지나면 지금의 청년들이 4050이 될거에요.
그러면 새로이 청년이 된 세대는 그 세대의 어려움을 말할 겁니다.
그럼 뭐가 문제냐...면,
우리 편이 아니었고 우리 편이 될 수 없고... 믿지도 못하겠다.. 라는 건가...
이런 의문이 듭니다.
4050이 지금의 주류 세대가 된 것은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그저 살다가 그리 된 겁니다.
그리고 누구나 다 그렇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뒷세대에 밀려나 은퇴를 하겠죠.
계속 바뀌어 가는 중에 지금 현재 그럴 뿐입니다.
어디서 그럼 의견이 부딪히느냐...
커뮤니티를 조금 돌아 보니,
4050이 현재의 부동산의 질서를 지키고 싶어 한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어디서 나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처럼 어처구니 없는 말이 있는지...
물론 이 지점은 생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아니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실 여기서 갈리는 것인데,
어떤 한 시점에 부동산의 움직임은...
어떤 특정 세대에 의해 결정 되는 것이 아닙니다.
20년 정도 전에 부동산이 크게 흥할 때...
어떤 특정 세대가 다 그렇게 했을 까요.
그게 전부였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죠.
그 때 30세 청년이 무슨 재력이 많아 그렇게 했겠습니까.
30년 전에는요.
아니 40년 전에는 어땠을 것 같습니까.
언제나 특정 세대가 아니라 부동산에 대한 신념은
내용이 조금 바뀌어 갔을 뿐
계속 이어졌습니다.
부동산 상승의 장기 사이클 중에
모두가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어서,
특정 세대가 그렇게 만들어 온 것이라는 말은 애초에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 말이고,
지키고 싶어 한다는 것 역시 마찬가집니다.
그럼 변화를 만들어 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탓을 하고 있으면 바뀌나요.
더 많은 연대 의식으로 변화의 힘을 모으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서울 외곽에 살던 제 또래 동네 친구들 다 어디 살까요.
지극히 제한적인 개인 경험이긴 하지만...
대부분 동네에서 벗어나 경기도로 빠져 나갔습니다.
서울에서 살기 힘들어서 집을 구하려고요.
서울에 남은 친구가 몇 명 없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슷한 경험을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친구들과 대화를 할 때 간혹 나오는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친구가 30대 초중반일 때 대출끼고 ...
서울 아파트는 외곽조차 어려우니,
서울 인근의 작은 아파트라도 사두자고...
그런데 그 때 그 말을 한 친구 외에 그렇게 한 경우가 많지 않았습니다.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느냐면,
마치 주식이 그러한 것처럼,
하이닉스 주식이 지금 보면 그렇게 높이 올라가 있지만,
그 때는 모르는 거에요.
아무도 모르지만 4050 보다 더 강한 부동산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던 세대부터
당시에 젊은 층 중에서도 따라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이 있었습니다.
왜... 모르니까요.
전에도 그랬으니 앞으로도 재산은 부동산으로 형성하는 거라는 믿음과
이제부터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더 적었고,
재력의 부족으로 모험을 하지 않는 추세도 있었던 겁니다.
하이닉스가 지금의 수백 분의 1 가격이었을 때 지금처럼 될 줄 알았으면 누구나 사서 묵혔겠죠.
아무도 모르지만, 관성을 믿고 한 선택과 아닌 선택이 혼재했었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아무도 모르는 미래 때문에 다른 판단을 할 겁니다.
즉, 4050은 그 시절에 각기 다른 선택을 했었던 것 뿐이지,
무슨 대단한 전체적인 합의에 의해 거창한 결단으로 정책마저 좌지우지 하던...
그런 것이 아닙니다.
또한 좁혀지지 않는 관점의 차이도 있습니다.
가장 큰 차이를 만들어 내는 두 축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민주 성향의 지지자들은 ... 전부는 아니나 대부분...
민주당의 부동산 정책 결정에 대해 이렇게 봅니다.
부동산 시장을 개선하기 위해 노력을 했지만
시장에 대한 이해 판단의 부족으로 부동산 세력을 이기지 못했고,
오히려 부동산 세력이 대중의 정서를 더 잘 이해할 뿐만 아니라,
정책의 허점을 너무 잘 이용해 왔다고요.
그래서 아무리 뭘 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시장에
더 나은 방법을 찾으려고 하지만 잘 안되고 있는...어려운 문제로 봅니다.
그런데 다른 관점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적극적으로 이용했던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겠습니다.
...동의 하지 않는 관점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부동산에 참여한 모두가 만들어 온 것이지,
특정 세대가 고의적으로 그렇게 할 수도 없고 되지도 않습니다.
민주당 내에도 기득권 세력이 있었으므로,
실제로는 지키려고 하는 것이지 진정으로 변화를 원하지 않았다는 식의 해석은...
아주 단편적 시각일 뿐입니다.
변화는 그리 쉽게 만들어지지 않아요.
세대를 거칠 정도의 문제로,
급하게 이루려고 해서 된.. 케이스는... 아마 인류 역사상 없을 겁니다.
무슨 말이냐면...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의 부동산 불패 신화가 만들어져 온 과정을 공부를 해보면 좋을 겁니다.
그런 배경이 있었으니... 그렇게 엄청난 믿음이 있었구나..라고요.
이 점은 달리 생각한다해도 더 할 말은 없습니다.
일정 부분의 책임은 모두에게 있는 것이고,
4050도 그 일부에 해당하기도 하니까요.
그런데, 이해할 수 없는 대목은 있습니다.
판단의 지점이 다른 점은 알겠지만,
민주당 보다 보수 정당이 부동산을 인위적으로 끌어 올리는 것에 열심이었는데,
보수당을 지지하는 이유는 뭘까요.
이건 이해를 하지 못하겠습니다.
민주당이 차선도 되지 못한다는 걸까요.
잘 하려고 했지만..도 믿지 못하고,
당내에 기득권자들이 있었으니...그게 민주당이라고 단정하면 마음이 편한지 모르겠습니다.
지나치게 형식적이라고 보일지 모르겠지만,
청년들을 위한 온갖 정책에 힘을 실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군 생활 하면서 고생하는데 월급 더 올려주자고 하고,
지금은 당연한 것 같은 것들...
사회적 자원을 어디에 쓸지에 대해 나름 우리가 아닌
청년 세대를 위한다고 생각해서 지지한 제도들이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들도 덜 중요하고 별 큰 도움이 안 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그저 4050이 민주당을 지지하면서 했던 정책과 변화들은
이런 생각이 주류였기 때문에... 가능한 것들이라는 말을 하는 것으로,
개의치 않는다 해도 상관은 없습니다.
하려고 해서 한 것일 뿐이니까요.
인정 받지 않아도 되고,
심지어 청년 세대를 위한 것이 아니라고 해도 됩니다.
나아가 한 것이 있느냐, 하지 말아야 할 것도 한 게 많지 않느냐 해도 됩니다.
그냥 4050 중 민주 게열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하던 것들이니까요.
결론은 이렇습니다.
더 옛 시절의 어른들이 믿던 부동산 불패 신화는 거의 종교 이상의 수준이었고,
그 다음과 다음을 이어가며 우리나라 전체의 시장 컨센서스를 만들어 온 것이지,
4050이 청년일 때 대단한 무언가가 있던 것은 아니고,
그 전 시대 청년도 그 때의 청년도 그 이후의 청년도...다 마찬가집니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정책을 폈다...라고 하는 지적에 대해선,
입장의 차이 정도로 보겠습니다.
이 부분은 같은 사실을 보더라도 각기 다른 판단을 하는 것이어서요.
그럼에도 고착화된 사회에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은
연대가 아니고서는 점점 더 어려워질 것입니다.
87 때 백만이 모였던 시위 당시 출근 하던 넥타이 부대가 함께 했던...
그 연대 말입니다.
글쓴이님께서 조목조목 남겨주신 고언 어떤 맥락에서 말씀하시는지 이해합니다. 사람은 언제 태어날지 스스로 결정할 수 없고 그저 그 시대를 살아갈 뿐이라는 실존적인 한계나 4050 역시 당시엔 미래를 모르고 각자 선택했을 뿐이라는 말씀은 얼핏 들으면 지극히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시장 논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말입니다. 글쓴이님의 긴 글을 관통하는 핵심은 결국 우리도 몰랐고 다 같이 만든 컨센서스이니 특정 세대의 책임이 아니며 억울하면 원망하지 말고 연대해라라는 책임 회피성 세대론적 물타기에 불과합니다. 청년들이 말하는 구조적 모순을 그저 개인들의 무지성 투자 선택과 역사적 관성으로 치환해 버리시는 그 서사 속 거대한 왜곡에 대해 다시 한번 짚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첫째 4050도 그땐 돈이 없었다는 말은 구조적 자산 격차의 본질을 가리는 착시입니다.
20년 전 부동산 열풍 당시 4050 역시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못했고 하이닉스 주식 비유처럼 미래를 모르고 모험하지 못한 사람도 많았다고 하셨지요. 맞습니다. 당연히 기성세대 안에서도 자산 격차가 존재하고 모든 4050이 강남에 아파트를 가진 부자는 아닐 겁니다.
그러나 여기서 결정적인 왜곡이 발생합니다. 그 당시 4050이 겪었던 주거 문제는 소득 대비 자산 가격이 감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살까 말까를 고민하던 선택의 영역이었습니다. 대출을 끼고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작은 아파트라도 사둔 친구와 안 산 친구의 격차가 커졌다는 에피소드 자체가 당시엔 평범한 직장인의 근로 소득과 대출로 주택을 구입할 수 있는 시스템적 사다리가 존재했음을 반증합니다.
지금 2030이 마주한 현실은 다릅니다. 지금은 살까 말까를 고민하는 선택의 장이 아닙니다. 대기업 직장인이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20년 30년을 모아야 서울 평균 아파트를 살 수 있는 시대입니다. 기성세대가 누린 자산 인플레이션의 결과로 사다리 자체가 완전히 부서졌는데 우리 때도 돈 없어서 경기도로 밀려났다며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지금 청년들이 느끼는 절망의 체급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발언입니다.
둘째 의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책임이 없다는 뜻은 아닙니다.
4050이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기득권을 지키려 획책한 것도 아니고 그저 살다 보니 주류 세대가 되었을 뿐이라는 말씀 맞습니다. 4050이 악마라서 청년들을 괴롭히려고 부동산을 올린 게 아니라는 것 청년들도 잘 압니다.
하지만 사회학적으로 기득권이란 고의로 음모를 꾸며야만 형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이룩한 자산 부동산 가치를 지키기 위해 공급 대책을 반대하고 자신들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호봉제와 정년 연장을 사수하는 그 수많은 개인적이고 당연한 욕망들이 덩어리져 거대한 사회적 장벽을 만든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 장벽이 청년들의 진입을 원천 차단하고 있다면 설령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시스템의 최대 수혜자인 기성세대는 결자해지의 책임감을 느껴야 마땅합니다. 우린 고의가 아니었으니 탓하지 말라고 선을 그어버리는 것은 너무나 무책임한 주류의 오만입니다.
셋째 청년 정책을 시혜로 베풀었다는 식의 서사는 참 정치가 유치하게 느껴집니다.
글의 후반부에 민주당 지지 세력으로서 군인 월급 인상 등 청년 정책에 힘을 실어왔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인정받지 않아도 되고 우리가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한 일뿐이라고 하셨지요. 참 점잖고 고결해 보이는 서사입니다만 청년들의 눈에는 지독한 가시이자 훈계로 보입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표를 얻기 위해 부차적으로 던져주는 용돈 몇 푼 군대 월급 인상이나 청년 수당이 아닙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노동한 만큼 자산을 형성할 수 있는 공정한 게임의 규칙과 부모의 수저에 의해 인생이 결정되지 않는 기회의 평등입니다. 기성세대의 자산 카르텔과 호봉제 기득권이라는 거대한 핵심 모순은 단 하나도 내려놓지 않으면서 우리가 너희 군대 월급 올려주는 당 지지해 줬잖아라며 생색을 내고 심지어 보수당 지지하는 청년들을 향해 그건 이해 못 하겠다며 가르치려 드는 오만함이야말로 지금 청년들이 기성세대 민주화 서사에 진저리를 치는 이유입니다. 청년들이 차선도 안 되는 당을 선택하는 정서의 기저에는 바로 그런 선민의식과 위선에 대한 환멸이 깔려 있는 것입니다.
넷째 원인 제공을 해놓고 탓하지 말고 연대하자라는 결론은 공허한 낭만주의입니다.
마지막에 87년 넥타이 부대의 연대를 말씀하시며 힘을 모으자고 하셨지요. 참 감동적인 마무리입니다만 현실을 냉정하게 보십시오. 연대라는 것은 대등한 주체들이 공통의 목표를 가질 때 가능한 것입니다.
지금 기성세대는 방의 따뜻한 아랫목을 차지하고 앉아 연대하자고 외치고 있고 청년들은 차가운 문턱에서 질식해가고 있습니다.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청년들의 비명을 그저 남 탓 원망으로 치부하면서 정작 기성세대의 기득권 양보 예를 들면 부동산 자산 가치의 하락 감내나 노동 시장 유연화 수용 같은 것들에는 입을 닫은 채 연대하자고 하는 것은 결국 지금의 불평등한 질서를 인정하고 우리 세대의 정치적 목표를 위해 청년들이 머릿수를 채워달라는 요구와 다를 바 없습니다.
글쓴이님 역사는 실시간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맞고 누구나 처한 시대의 한계 속에서 살아갑니다. 하지만 지나온 시대의 관성을 핑계로 현재 청년들이 겪는 유례없는 수축 사회의 절망을 그때나 지금이나 다 모르는 미래에 선택한 결과일 뿐이라며 흩어버리지는 마십시오.
4050 세대의 삶이 그저 열심히 살다 보니 주류가 된 궤적이었듯이 지금 2030의 분노 역시 기성세대가 촘촘하게 짜놓은 자산과 기회의 그물망에 걸려 숨이 막힌 청년들의 지극히 자연스럽고 상식적인 반응입니다.
본인 세대의 선택은 어쩔 수 없었던 역사적 관성으로 정당화하면서 청년 세대의 고통과 정치적 선택은 공부가 부족하거나 남 탓만 하는 미성숙함으로 재단하시는 한 세대 간의 진정한 연대도 사회의 변화도 결코 오지 않을 것입니다.
님. 언제나 관점은 되는 방향으로 보지 않고 문제만을 짚으려고 하면 끝도 없는 쳇바퀴가 됩니다.
왜냐면 그 문제 자체도 모두가 동의 하는 정의 내리기부터가 가능하지 않아서입니다.
그러하므로 좁히는 과정이 중요한 것입니다. 완전한 일치는 아니더라도 범위를 좁히고 절충점을 찾는 것이죠.
1. 님은 지금 부동산 문제가 중요하긴 하지만 그것 하나로 너무 많은 것을 재단하고 있습니다.
2. 맞고 틀리고가 아니라 그저 관점이 다른 부분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3. 부동산 문제가 가식적으로 느껴진다는 것에 전 동의하지 않지만 이해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환멸이 보다 더 책임이 무거운 쪽 보다 더한 무게를 둔다는 것은 말이 되는 것 같진 않습니다.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지금 청년들이 자라나던 시절의 출발선은 과거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격차가 줄었습니다.
주택 가격 하나만 본다면 님처럼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의 선에서 어떤 한 지점과 그 다음 지점에 부딪히는 문제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어떤 세대든 억울함이 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내려 온 것이니까요.
그런데 반대의 관점에서 생각해 본 적 있는지 되물어 본 적 있나요.
80년대에 가정 형편 때문에 대학 진학을 가지 못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부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교육의 기회와 그것으로 인한 사회 진출시의 격차가 굉장히 컸습니다.
당시 이러한 시스템이 만들어져 있는 것을 원망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벗어날 방법이 없는 구조적 문제였는데 말입니다.
그 어떤 곳도.. 이름 있는 기업은 나이 제한이 넘어가면 서류를 받지 않았고,
고졸은... 기회 자체가 없었습니다. (극히 일부 가능했고 본 적도 있지만... 천에 하나 있을까 말까이니 생략합니다.)
제가 이전 글에서 한 말은 한 줄의 옛 이야기 속에 담긴 것을 과소 평가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은, 그 한줄의 말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의 짐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학을 나오고, 못 나오고에 따라 일생의 가치가 평가 받는 것의 무게를 이해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이것만 그럴까요.
제가 간간히 예를 드는 것들은 그저 일부입니다.
글이 길어지죠? 일일이 꺼내 들 수 있는 것들이 많지만 그 중 일부만으로도 이렇습니다.
앞서 예를 든 것 중 30세는 잘못 적은 것이고 27세 (석사는 연장) ..
졸업 후 1년 가량 지날 때까지 취직이 안되면 패배자 취급 받던 무게... 이 또한 일부가 아닙니다.
이런 일들이 총체적으로 헤아릴 수가 없죠.
이해한다고 말하지만 이해하는 것 같지 않게 느껴집니다.
이 순간 하나 때문에 일생이 달라지는 겁니다. 부동산 취득의 기회도 여기서 많이 갈리는 것이고요.
하고자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과거에 부딪히는 문제는 지금과 같지 않은 것들이 많고, 일일이 정량적으로 비교할 수 없습니다.
님이 말한 그 어려움은요. 절대 기준으로 님의 말이 맞는 부분이 있습니다. 아니라고 하지 않아요.
어려움의 출발선, 종류, 크기 모두 다른 시대라는 것입니다.
남은 것은 결국 자산의 구조,
그 중 가장 중요하게 보고, 본질적인 문제는 그대로인 부동산 취득에 대한 접근성에 대한 것이라면, 그 책임은 기성세대가 지고 있겠죠.
그러나 부동산을 포함한 기존 체계의 문제를 연속성을 가지고 판단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함에도 계속해서 그것이 무게를 무겁게 여기지 않는 것처럼 보입니다.
과거 25~35세 가량의 청년이 부동산 정책 결정 과정에 그렇게 깊은 책임이 있을 것 같은지 되묻고 싶네요. 부동산 정책은 긴 호흡을 가지고 변해 오는 겁니다.
모든 세대가 같이 만들어 온 것을 왜 특정 세대로 몰아가는 것인지... 공급 대책을 반대 했던 것이라면... 그 반대한 모든 이들이라고 해야 맞지 않겠습니까.
또한 역대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있어서 민주 세력 집권시 그린벨트 해체를 더 많이 할 정도로, 공급 대책을 실시 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오히려 말입니다.
지금의 4050이 만들어 가는 지금의 정책 결정에 지지 여부가 실은 더 중요할 것입니다.
별로 정치적 영향력도 크지 않았고, 세대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정치인도 별로 없던 과거 보다 말입니다.
상대적으로 덜한 과거가 아니라 지금이 상대적으로 더 영향을 주는 시기인데... 말이죠.
어려움만 따지려고 하면 끝이 없습니다.
지금도 근로 시간이 길다고 힘들어 하죠.
앞서 많은 다름이 있었다고 했죠.
일이라는 것이, 하루에 한 시간만 더 일을 해도 그 피로도가 이루 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검색을 해보세요. 80년대, 90년대에 얼만큼 일을 했었는지를요.
정말 사실인가 싶을 정도로 ...
지금 기준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한 두 시간 추가가 아닌.. 그런 직장 생활을 견디어 온 세대입니다.
텍스트가 아니라 한 번 본인이 다니는 직장 일로 치환해서 보세요.
세계 최고 수준의 ... 그래서 그것이 화제가 되기도 했던 지독하게 긴...그리고 실은 통계로 다 드러나지 않은 ... 실제로는 더 긴 근무시간이었습니다.
어떤 한 지점으로 보면 님 말대로 자산 구조에 대해 더 깊은 ... 더 높아진 ...그런 벽으로 느껴질 수 있음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데 왜 모르겠습니까.
과거에요. 문제라 생각했던 것들... 지금 많이 바뀌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부당하다 생각했던 것들... 그저 우연히 바뀐 것이 아니라 공감대가 많아지고 수렴이 되어가며 바뀌게 된 것입니다.
보다 합리적인 방향에 의견이 모이는 것은 그 사회의 노력 때문입니다.
어떤 정책이든 모두가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누구나 압니다.
모두는 아니어도 다수가... 그리고 그것이 합당한 방향이라면,
지지하고 바꾸어 나갑니다.
그런데 바뀌지 않는 것들도 있어요.
제가 어릴 때 겪었고 보았고, 문제라 여겼던 것들... 지금도 그대로 인 것들도 있습니다.
더 많은 수가 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나의 의견에 함께 하는 사람이 있을 때, 비로서 변화는 시작 됩니다.
제도의 변혁이라는 것은 상당수가 나 자신에게는 혜택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도 바꾸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게 직접 혜택이 오는 제도 변화가 많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기에 변화가 쉽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게 변화를 만들어 온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시혜로 생각한다는 것은... 뭔가 좀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저 사회 구조가 그런 것인데, 아니라고 하면 ...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 구성 되어 있어서,
지금의 7080이 살던 시대에 한 것들이 비록 불완전할 지언정
최선을 다해 왔다는 것을 그 자녀 세대가 모르겠습니까.
비록 집안에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직하고 살았어도,
부모 세대가 얼마나 힘든 상황에서 그렇게까지라도 했다는 것을...
나중에 몰라봤겠습니까.
몰라주어도 상관 없다...고 한 것은 그저 시혜적 생각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인간 사회는 그렇게 구성 되어 있는 것을 말하는 것 뿐입니다.
시혜가 아니라 구성원들이 만들어 왔고, 만들어 나가는 사회 문화 시스템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말이 많이 길어졌네요.
우리도 참여자로서 보다 더 나은 세상이 되길 원했고,
보다 더 나은 제도라 만들어지길 원했습니다.
그 과정 중에 민주 세력 내에서도 기득권화가 진행 되기도 하면서,
내부 갈등과 분쟁도 많았습니다.
그럼에도 지향하는 가치에 따라 지지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고,
지향점에 따라 투표할 뿐입니다.
잘 안 된 부분만 볼 것이 아니라 잘 된 부분도 보아 가면서,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의 투표를 하니다.
그렇게 모두가 한 ... 그 투표로 만들어 온 세상이에요.
청년 시절에 변화를 원했던 것들...
지금의 청년 세대도 마찬가집니다.
사회라는 것은 그렇게 흘러갑니다.
지금의 청년 세대가 원하는 변화가 이루어질 무렵이 되면,
그 아랫세대가 그것을 누리게 됩니다. 대부분 그래요.
그 마저도 다 되는 것도 아닙니다.
긴 시간의 투쟁으로 얻어 내는 것이어서 어렵고 지난한 과정입니다.
정답을 내릴 수는 없겠지만
긴 호흡으로...세상의 변화를 위해 투쟁하시길 바랍니다.
부동산에 갇히는 사회가 아니라
보다 더 큰 지향점은 사람 사는 세상이고,
더 나은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모두가 더 많은 희생을 통해 도달하는 변화가 아니라
모두가 불편을 감수하면 그것을 통해 즉각적으로 다른 이익을 누릴 수 있는
비전을 가지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의 실용주의가 이런 맥락입니다.
더 많은 가처분 소득이 가능해지고,
기회가 더 많이 주어지고,
기술적 진보와 구조적 성장을 통해
국가의 부를 늘리고, 그것이 선순환을 이루는 과정이 뒷받침 된다면,
안 될 것처럼 보이는 문제도 해소가 되고,
그래도 안 되는 것들은 대안이 마련 될 수 있을 것입니다.
투쟁을 통해 얻어가려 할 때
어떤 투쟁의 방법을 택하는지는... 각자의 몫이겠습니다.
민주세력은 민주당을 통해... 그 변화를 꾀하려 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민주세력이 보는 관점과 다르게,
보수 정당 보다 더 나쁘다고 여기는 근거를 좀 되돌아 보시면 좋겠습니다.
다 맞는지를요.
다 검토해보고나서도 더 책임이 크다고 여긴다면...
어쩔 수 없겠습니다.
어떤 부분은 그저 지향하는 바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합니다.
글쓴이님께서 문제보다 해결을 위한 범위를 좁히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신 부분이나 과거 학력과 나이 제한으로 평생의 짐을 안고 살았던 세대의 억울함에 대한 지적은 그 자체로 일리가 있습니다. 80년대에 가정 형편으로 대학에 가지 못해 기회조차 얻지 못했던 분들의 한과 세계 최고 수준의 살인적인 근로시간을 버텨온 선배 세대의 노고를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하지만 글쓴이님의 이번 글 역시 교묘한 논점 일탈과 본질 흐리기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과거의 고통을 끊임없이 나열하면서 청년들의 현실을 지극히 일부의 자산 문제로 축소하고 결국에는 본인들의 정치적 지향점을 정답이라 믿고 따르라는 훈계로 끝을 맺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첫째 과거의 학력 차별과 현재의 자산 격차는 비교의 대상이 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문제입니다.
80년대 대학 진학을 하지 못해 기회를 박탈당했던 구조적 문제가 가혹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열심히 노력해서 대학에 가거나 기술을 배우면 계층을 이동할 수 있는 사다리가 개인의 노력과 결부되어 존재하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고졸이라도 대기업 생산직이나 중소기업에서 땀 흘려 일하면 집을 사고 가정을 꾸릴 수 있는 최소한의 생계 안정망이 있었습니다.
지금의 자산 격차는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현재 2030이 마주한 벽은 대학을 나오고 안 나오고의 문제가 아니라 부모가 가진 자산의 유무가 자녀의 계급을 영구적으로 고착화하는 신카스트 제도에 가깝습니다. 아무리 좋은 대학을 나와 대기업에 취업해도 근로 소득만으로는 평생 서울에 집 한 채 살 수 없는 구조입니다. 과거의 고통이 사회 진입로에서의 차별이었다면 지금의 고통은 진입 이후의 삶 전체가 저당 잡힌 절망입니다. 이것을 단순히 시대별로 종류가 다른 어려움일 뿐이라며 평면적으로 비교하는 것은 궤변입니다.
둘째 부동산 정책의 연속성을 핑계로 기성세대의 책임을 지우려 하지 마십시오.
과거 20대 30대 청년이었던 4050에게 무슨 책임이 있냐고 되물으셨지요. 물론 당시의 청년들이 정책을 결정하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청년들이 지적하는 것은 과거의 책임이 아니라 주류 세대가 된 지금 현재 4050이 보여주고 있는 이중성과 기득권 사수 태도입니다. 민주당 정부 시절 공급 대책을 위해 그린벨트를 해제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언급하셨지만 결과적으로 집값은 폭등했고 자산 양극화는 심화되었습니다.
진정으로 시장 판단이 부족해서 실패한 것이라면 그 실패로 인해 주거 사다리가 끊어진 청년들에게 사과하고 기득권을 내려놓는 정책적 양보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현실의 4050은 자신들의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 봐 공급을 막고 호봉제를 유지하며 청년 일자리를 압박하는 이해당사자로 행동하고 있습니다. 과거엔 힘이 없어서 책임이 없고 지금은 정책을 지지하고 있으니 책임이 없다는 식의 유체이탈 화법은 청년들을 기만하는 행위입니다.
셋째 청년들의 정치적 선택을 공부 부족이나 오판으로 재단하는 오만함을 버리십시오.
민주당이 차선도 되지 못한다고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청년들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하셨지요. 청년들을 위해 군대 월급을 올려주고 온갖 정책에 힘을 실어줬는데 왜 우리를 지지하지 않느냐는 섭섭함이 행간에 가득 묻어납니다. 바로 그 지점이 청년들이 기성세대 민주 세력에게 환멸을 느끼는 핵심입니다.
청년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자신들의 삶을 송두리째 흔든 주거 절벽과 일자리 붕괴라는 거대한 구조적 모순 앞에서는 침묵하거나 실패해 놓고 군대 월급 몇 푼 올려준 것을 대단한 시혜인 양 포장하며 표를 구걸하는 위선에 분노하는 것입니다. 보수 정당이 더 낫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자신들을 가르치려 들고 선민의식에 가득 차 자신들의 표를 당연히 여기는 민주 세력의 독선에 찬성할 수 없는 것입니다. 청년들의 표심을 분석하려 들기 전에 본인들이 지지하는 세력이 청년들의 미래 소득을 얼마나 처참하게 붕괴시켰는지부터 철저하게 반성하는 것이 순서입니다.
넷째 우리 편이 되어 연대하고 투쟁하라는 낭만적 서사는 기만적인 머릿수 채우기 제안일 뿐입니다.
마지막에 특정 정치인의 실용주의를 언급하며 더 큰 지향점을 위해 민주당과 함께 투쟁하고 연대하자고 결론을 내리셨습니다. 참으로 편리하고 이기적인 결론입니다.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청년들의 정당한 비판을 문제만을 짚으려고 하면 쳇바퀴가 된다며 입을 막아버리고 결국에는 우리 진영의 논리를 따르고 투쟁하는 방식도 우리 틀 안에서 선택하라고 강요하고 계십니다.
지금 4050 주류 세대가 청년들에게 요구하는 연대는 대등한 파트너십이 아닙니다. 이미 자산과 권력을 독점한 세대가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과 진영 승리를 위해 청년들을 행동대원으로 소비하겠다는 서사에 불과합니다. 청년들이 원하는 것은 거창한 투쟁의 구호가 아니라 기성세대가 쥐고 있는 자산 기득권의 실질적인 양보와 공정한 기회의 재분배입니다. 자신들의 것은 하나도 내놓지 않으면서 미래를 위해 불편을 감수하자는 비전을 가지라는 말은 아랫목에 앉아 윗목의 굶주린 이들에게 인내를 강요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글쓴이님 세상은 흘러가는 것이 맞고 아랫세대가 혜택을 누리게 된다는 말씀도 일반적인 상황에선 맞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인구 소멸로 가라앉고 있는 비상 상황입니다. 이 파국의 가장 큰 원인이 바로 기성세대가 쌓아 올린 자산 카르텔 때문입니다.
본인들이 치열하게 살아온 세월을 훈장의 근거로 삼아 현재 청년들의 비명을 남 탓이나 미성숙함으로 치부하지 마십시오. 정답을 내릴 수 없다며 논점을 흐리지 마시고 기성세대가 만들어놓은 이 숨 막히는 체제 자체를 어떻게 개혁할 것인지 구체적인 양보의 안을 먼저 제시하십시오. 그것이 없는 연대의 제안은 그저 기득권을 영속하려는 주류 세대의 공허한 외침일 뿐입니다.
윗세대 안에서도 계층 차이에 따라 삶의 질이 차이가 많이 납니다. 후세대는 대부분 계급을 계승하는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꼰대부장이 그만두면 세상이 바뀔 거 같은데 그렇게 흘러갈 거 같지 않단거죠. 화살을 엉뚱한데 돌리지 말고 나이라는 명찰을 떼고 연대를 해야죠. 양쪽에서 다 세대가르기에 편승해서 부족전쟁이라고 벌이려나 본데... 알아서들 하세요.
윗세대 내부의 계층 격차와 계급 세습을 인정하면서도 이를 세대 갈등이나 부족전쟁으로 격하하는 양비론은 기성세대의 구조적 자산 독점 책임을 은폐하는 교묘한 물타기입니다. 계급 세습의 엔진이 된 부동산 카르텔과 호봉제 기득권을 공고히 다져놓은 주체는 결국 주류 세대가 된 지금의 기성세대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나이라는 명찰을 떼고 연대하자는 주장은 자산과 기회를 독점한 강자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청년들에게 구조적 모순을 덮고 현상을 유지하자며 강요하는 비겁한 책임 회피일 뿐입니다. 진정한 연대는 기성세대의 자산 가치 하락과 일자리 양보라는 실질적인 고통 분담이 선언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며 이를 외면한 채 청년들의 비명을 철없는 투정으로 매도하는 방관자적 오만함을 당장 버려야 합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지 몰라도 이미 세습은 이루어지고 있죠. 이미 어느 학자가 조사한 통계엔 젊은 세대 사이에서도 심한 격차가 벌어져있고 부모의 부와 권력은 대물림되고 있는데 적을 윗세대로 설정하는 게 도움이 됩니까? 야금야금 그렇게 교묘하게 세대 갈라치기 하면서 사세요. 말리지 않을테니.. 독기만 남으셨네. 구조적 모순은 계층에 있지 세대에 있다고 보지 않습니다. 꼰대부장이 자리를 양보하면 그 아들이 그 자리에 들어갑니다. 그게 계급상속이죠.
젊은 세대 내부의 격차와 계급 세습을 핑계로 기성세대의 책임을 지우려는 논리는 세대 전체가 누린 시스템적 과실을 은폐하려는 비겁한 면죄부입니다. 청년들이 분노하는 본질은 일부 상류층의 대물림이 아니라 지난 수십 년간 대한민국 부동산을 투기판으로 만들고 호봉제를 사수하며 청년 전체의 주거 사다리와 일자리를 차단해 온 기성세대 전체의 자산 카르텔입니다. 계급 상속이 원활하도록 채용 시장을 망가뜨리고 자산 인플레이션의 수혜를 누린 주류 세대가 이제 와서 계층의 문제라며 꼬리를 자르고 청년들의 정당한 비명을 독기나 갈라치기로 매도하는 것은 적반하장입니다. 진정한 연대는 기성세대가 구축한 자산 권력 체계의 실질적인 양보와 고통 분담이 선언될 때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며 이를 외면한 채 계급론 뒤로 숨어 책임을 회피하려는 위선을 당장 멈춰야 합니다
여기서 이러지 말라니까요. 국힘 우세 커뮤니티에 가서 독재시대 장차관 관료의 탈을 뒤집어쓴 군인들, 복부인들 이런 개발독재시대에서 꿀빨아서 고층에 올라가서 아귀다툼하는 거 보고 즐거워하는 그 사람들을 욕해야 할 거 아닙니까. 어차피 당신이나 우리나 다같이 밑바닥에서 아등바등하고 있어요. 그리고 타겟을 정확히 하세요. 독재정권말 민주정부초 느즈막히 랠리에 합승한 이십퍼 남짓의 마름역할을 하는 부동산 충견들도 성토하세요. 어차피 지금 언급한 이 두 세력들이 실제로 지휘하는 세상이니까요.
민주당 정부나 민주세력 책임이 있죠. 어떤 책임이냐하면 민주정부 선지 꽤 오래 되었는데 아직도 저 한줌 토건버블 세력들에게 놀아나고 있으니까요. 일부가 편승해서 꿀빤 거 인정합니다. 대다수는 그냥 당신들이나 똑같아요. 한국 소득통계 보세요. 중위소득의 함정에 걸려서ㅓ 밑바닥을 깔고 있는 다수를 무시하는데, 타겟을 정확하게 잡아야되요. 어차피 당신이 꼰대라고 성토하는 대부분의 450대는 힘이 없어요. 그러니까 거지들끼리 뭉쳐서 20퍼 내외의 트렌드주도층을 흔들어야죠. 총구가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그리고 내가 얘기했쟎아요. 적체된 청년층일자리 위의 일부를 쳐낸다고 해도 대다수 청년들에겐 그 일자리 안돌아가요. 그건 이미 사회적으로 어디 줄설지 잘 조련된 기득권 예비군청년들의 몫입니다. 그리고 그 머리 잘돌아가는 잘배운 청년들이 부모의 자장안에서 계속 세대론을 읊겠죠.
여기 클리앙에서 이러지 말고 국힘 커뮤니티나 가라며 진영 논리로 청년들의 입을 막으려는 태도야말로 기성세대의 얄팍한 독선이자 오만함의 극치입니다. 이곳이 진정으로 깨어있는 시민들의 공간이라면 거대한 토건 세력 핑계를 대며 입을 닫을 게 아니라 청년들의 미래를 파탄 낸 정책적 무능과 자산 카르텔의 과오에 대해 그 누구보다 처절하게 내부 반성부터 하는 것이 상식이라 생각합니다
자신들의 집값 하락과 고용 안정을 수호하기 위해 청년 전체의 사다리를 부수고 개혁을 가로막아 온 기성세대 전체의 카르텔을 향해 있는 진짜 총구를 왜 자꾸 다른 데로 돌리려 하십니까. 어차피 개혁해 봐야 일부 청년들만 이득을 볼 테니 건드리지 말라는 냉소적인 진단은 결국 자신들의 아랫목을 사수하기 위해 불평등한 현상을 유지하겠다는 비겁한 핑계일 뿐입니다. 자신들을 비판하는 청년들을 첩자 취급하며 쫓아내려는 위선적인 태도를 버리고 자신들의 안락한 성역 안에서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집단 이기주의와 가스라이팅을 당장 멈춰야합니다.
끝까지 본인은 냉골에 앉아있는 약자라며 감성에 호소하고 입장 차이로 정신승리하시는 모습에서 기성세대 논리의 전형적인 바닥을 봅니다. 글쓴이님이 스스로를 어떻게 포장하든 청년 세대 전체의 사다리를 부수고 기회를 독점한 그 거대한 시스템의 단단한 지지자이자 수혜자가 바로 글쓴이님이 속한 주류 세대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습니다.
정책적 실패와 자산 카르텔의 과오는 끝내 외면한 채 벽을 보고 얘기하는 것 같다며 청년들의 비명을 투정으로 치부해 버리는 그 방관자적 오만함이야말로 이 사회를 소멸의 파국으로 몰고 간 진짜 주범입니다. 더 이상 연대를 가장한 위선적인 훈계로 청년들을 진영 논리에 동원하려 하지 마시고 그 안락하고 정당한 냉골 안에서 선배 세대만의 낭만적인 역사관을 안고 평생 행복하게 사시길 바랍니다 씁쓸하네요
청년들 계속 비명 지르세요. 같이 죽어봅시다. 저도 씁쓸합니다. 뭔 사과를 하라니..
훈계, 위선.. 어디 어떻게 되나 봅시다..
결국 논리가 막히고 기득권의 실체를 드러내니 청년들 다 같이 죽어보자며 본색을 드러내시는군요. 그동안 깨어있는 시민인 척 연대와 정의를 외치던 서사의 밑바닥이 고작 청년 세대를 향한 저주와 멸시였다니 참으로 위선자다운 반전입니다.
한 가지 거대한 착각을 하고 계신데 저는 글쓴이님이 그토록 가르치려 들고 갈라치기라 매도하던 청년 세대가 아닙니다. 저 역시 글쓴이님과 비슷한 시대를 걸어왔거나 혹은 그 궤적을 명확히 지켜봐 온 사람으로서 주류 세대가 저지른 정책적 무능과 자산 독점의 탐욕이 후세대의 삶을 어떻게 파탄 냈는지 그 부끄러운 과오를 똑똑히 인지하고 있을 뿐입니다.
자신들이 망쳐놓은 세상에 대해 최소한의 부끄러움이나 결자해지의 책임감은커녕 사과하라는 상식적인 요구에 분노하며 어디 어떻게 되나 보자고 악담을 퍼붓는 모습에서 기성세대의 유치하고 가혹한 오만함의 극치를 봅니다. 어디 어떻게 되는지 멀리 갈 것도 없이 당장 청년들이 출산율 0.6명대로 응답하며 선배 세대의 안락한 자산 성벽과 연금 시스템의 기반부터 무너뜨리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끝까지 위선적인 냉골 타령 뒤에 숨어 후세대의 비명을 조롱하시는 그 추악한 기득권의 서사를 안고 어디 대한민국과 함께 바닥까지 멋지게 침몰해 보시길 바랍니다 참 보기 좋습니다
끝까지 떼쓰기와 투정이라는 프레임으로 정신승리를 거두시는 모습에서 기성세대 논리의 처참한 파산을 목격합니다. 구조적 모순을 지적하는 합리적인 비판을 그저 혼자만의 스토리로 치부해 버리는 그 지독한 확증편향이야말로 이 세대가 왜 고립된 섬이 되었는지를 스스로 증명하는 꼴입니다.
윗세대의 책임은 마지못해 인정하면서도 주류 세대인 자신들의 집단적 자산 독점 앞에서는 끝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는 태도가 참으로 비겁합니다. 각자 책임을 지고 같이 망해보자는 조롱은 이미 자산을 선점해 둔 자의 안락함에서 나오는 추악한 오만일 뿐입니다. 사다리를 불태워 청년들을 벼랑 끝으로 밀어 넣은 과오는 외면한 채 끝까지 저주를 퍼붓는 그 무책임하고 잔인한 역사관을 안고 홀로 안락하게 늙어가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더불어란 말을 참 좋아합니다. 더불어 잘 사는 대한민국이 되길 진심으로 희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