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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역사적으로 조선 평민의 삶은 어떠했고 왜 이해해야 하는가? 17

2026-06-03 09:46:22 61.♡.202.154
행복주식회사

간혹 역사적 관점의 글들이 올라오는 것을 접합니다.


인류사에서 산업혁명 이전은 농업국가였고, 이는 선사시대이후 고대, 중세, 식민지 열강시대.....즉 산업혁명까지 그러했습니다.

농민은 절대 다수의 국민이었고, 당연히 평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삶은 어떠했을까요? 국가 통치 즉 행정 시스템에 대해 기록이 잘되어 있다고 해서 그 행정이 잘 지켜졌고, 그래서 그 행정의 옮고 그름을 판단하면 평민의 삶을 예측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건 너무 낭만적 생각입니다.


이 주제를 꺼내면 너무 방대하기 때문에 군사제도에 관핸 한정해서 동서양을 비교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평민의 삶을 보기 위해서는 평민의 절대 다수였던 농민이 그 주체이고, 당연히 그 나라의 그 시대적 농업 특성도 함께 이해하면서 살펴보아야 한다는 관점입니다.


역사적으로 동서양을 막론하고 군사제도는 병농 일치제를 택했던 적이 많습니다.

한국은 현재 병역제의 근간이 되는 조선의 군사제도를 많이 차용했는데, 조선은 남성 양인을 대상으로 하는 부병제를 통해 병농일치를 유지했었습니다. 고려 또한 당나라를 모방한 군인전을 지급하는 댓가의 부병제를 택했습니다.


한국의 군사제도는 결국 당나라 부병제를 찾아가야 겠습니다. 중국 수당은 균전제를 통해 조세와 함께 군역을 부과하는 부병제였고, 수도와 국경 수비를 담당케 했습니다. 


조선은 단순히 고려시대의 병역제만 참고했을까요? 조선은 고려가 수용한 수당의 부병제를 당대 고려 사정에 따라 변형한 군반제까지 응용하여 조선의 보법이라는 병농일치 군사제도를 완성하게 된 것입니다. 즉 앞서 말한대로 양인 남성이라면 누구나 가야한다는 양인개병을 원칙으로 한 것입니다. 


자, 혹시 눈치 채셨나요?

혹시 여기서 조선은 수당, 고려의 부병제를 조선 실정에 맞춰 잘 고쳤네. 정치를 잘한 건가? 이렇게 생각하실지도 모르겠네요.

여기서 젠더갈등 원흉을 보셨다면....님은 눈치가 있으시네요.


즉, 수당, 고려는 토지를 지급하는 댓가로 군역을 부과했는데, 조선은 토지 지급도 없이 아무 맷가 없이 성인 남성이면 군역을 부과하는 양인개병을 적용한 겁니다. 20세 한국 남성이면 군대를 가야 하는 지금의 대한민국 징집제와 동일하네요. 고려시대까지는 그래도 군인전이라는 토지 지급을 해주었는데...지금 군필자에게 토지를 준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왜 이런 시덥지 않은 질문을 하냐고요?


아니, 그러면 고려시대까지 군인전을 주던 걸 이조차 주지 않으면서 부병제라는 걸 하면 반발이 없었겠냐는 겁니다.

당연히 큰 반발이 생기겠죠. 우리나라도 군 가산점 논란이 결국 젠더 갈등, 세대 갈등의 단초가 되었는데요.

성리학의 모화사상을 가진 선비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말이 되지 않았겠죠. 바로 여기서 보법이 나옵니다. 토지 지급을 하지 않으려는 조선은 대산 군역을 면하려는 평민에게 대신 돈과 노동력을 받아서 그 군역을 하라는 제도가 바로 보법입니다.


이런 식의 행정을 하는데 실록의 기록량을 보고 과연 좋은 나라라 할수 있는지....수탈을 하기 위해 이런 식으로까지 했어야 하는지....의아하지 않으세요? 아직도요?


이게 와닿지 않는다고요? 보법이 왜 시궁창이냐면 

내가 군역을 하는 동안 보상을 다른 양인에게 받으라는 것에 국한대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무슨 이야기냐고요? 조금 전에 임란에서 일본군과 조선군을 비교한 게시글이 이었는데요. 보법은 단순히 노동력 착취가 문제가 아닙니다. 군역을 하는 동안 월급, 군복, 식량...심지어 무기까지 양인이 모두 감당해야 했습니다. 이러니 제대로 군대 꼴이었을까요? 무기도 월급, 군복, 식량은 둘째치고 무기조차 사입인데....그런데 군사훈련의 정규군이라고요? 드라마 보고 관복에 삼지창이나 장칼 들고 있는 군인들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데 평시에도 전쟁에 참가할 정도의 상비군 수준이었을까요? 이 정도까지 상상하시면 방송 작가 재능이 있다고 보셔야 해요. 


그러면 복무하는 동안 식량과 자신의 농사는 누가 해줘요? 아까 말했죠. 보법이라고요. 여기서 1보는 2명의 양입니다. 즉 부병제의 1명이 복무하면 군대를 가지 않으려는 자의 2명이 이를 대납하는 건데, 과연 제대로 조달되었을까요? 이것도 상상해보시면 어떠했을지 아시지 않으세요.


군역하는 1명만 고달픈 게 아니고 보법에 따라 대납하는 2명도 고달픈 겁니다. 즉 3명이 힘들어지죠. 군수품, 월급도 줘야 하고 복무하는 자의 농사도 대신 해줘야 하니까요. 대신 농사를 지어주면 어떻게 될까요? 텃밭이라도 해본 분들은 잘 아실 거예요. 1주일만 방치해도.....그런데 그때는 종자는 말할 것도 없고 비료, 농약, 농자재(비닐 등)도 당연히 없습니다. 쑥대밭 되는 건 당연한 것이고 트랙터가 있을리 없으니 내 땅과 다른 자의 땅 중에 어떤 땅부터 할지.....


즉 나라가 병역에 대한 책임을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그걸 대상자 즉 평민들끼리 해결하라고 던져둔 겁니다. 더 이상 설명하면 제가 마치 한국을 무시하는 친일식민주의자로 오해하실 분들이 계실지 모르니 이건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그러면 서양을 살펴보겠습니다. 서양도 고대 그리스에서 로마 공화정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서양도 병농일치였습니다만 스파르타 정복 직계 시민만 군사훈련에 전념하고 피정복민 즉 헤이일로타이는 병농일치였습니다. 이후 비잔틴, 유럽의 모든 봉건국가 모두 산업혁면 이전까지 병농일치 국가였습니다.


자, 그러면 왜 여기서 평민의 주류였던 농민 즉 농업의 이해가 필요할까요?

이를 상술하면 자학이 되어서 마치 극우들이 주장하는 일제 경제 발달론을 가진 사람으로 오해하지 마세요. 문제가 있으면 까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일 뿐이지 일본에 의해 근대 성장론을 찬성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이미 제대로적으로 조선의 부병제는 보법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막장이라는 건 이해하셨을 것 같고요.

조선 평민의 주식은 무엇이었을까? 한국은 먹는 것, 입는 것 모두 하얀 것이어서 백의민족 아니냐? 그러니 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조선 평민의 주식은 봄~여름은 보리였고, 가을~겨울은 조, 피, 기장, 수수였고, 일부 산간은 메밀과 귀리였습니다. 즉 잡곡을 이용한 개죽이었습니다. 


무슨 소리냐 실록에 보면 몇몇 왕들이 백성을 위해 쌀 농사 기술 개발과 보급에 힘썼는데....


네, 그 사실은 맞아요.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을 성군이라고 배우기도 했어요. 그들이 쌀 기술 개발과 보급을 한 건 세금으로 더 많이 받기 위함입니다. 여기서 그들의 통치 연민이 있다면 쌀 농사를 제대로 못해 납세를 못하면 그 이후 닥칠 고리와 형량을 근심해서 세금을 낼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냐 관점에서 기술 개발하고 보급한 겁니다. 당시는 종자, 비료, 농약, 농자재, 농기계가 없던 시절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그리고 당대는 아까 말한대로 고리와 보법, 대립이 성행하여 현실은 시궁창 같은 문란한 사회였습니다.


백성을 위한 환곡은 바로 고리대화 되었고, 이를 어여삐 여겨 농업기술 개발하고 보급(보급이라는게 한문으로 씌인 책인데...평민은 한자를 몰라요......)이었고, 내수라는 왕실 자금조차 30~50% 장리를 이용해 쌀과 포의 국채(?) 영업을 했었습니다. 그리고 내수사의 장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평민의 토지 몰수, 관노 귀속을 빈번하게 했었습니다. 


자, 그러면 왜 보법 같은 것이 나왔고, 이게 왜 문란해질 수 밖에 없었냐? 물론 이미 설명한 것으로도 충분할텐데......많은 분들이 오해 하시는 게(아니 정규 교과과정에 문제이니....) 임란 이전 즉, 조선 전기는 세종대왕도 있고 해서 멀쩡히 잘 돌아가던 거 아닌가 하는 분들이 계실까 추가 설명 들어가겠습니다.

소위 공납이라는 것, 방납이라는 제도가 존선 전기부터 있어왔습니다. 방납은 무엇이냐? 지역 특산물을 국가(왕)이 지정해서 납부하도록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서 지방 향리와 이와 연결된 상인들이 품질을 이유로 합법적인 납부를 막았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체납은 어떻게 될까요? 고리, 토지 몰수, 노비 전략의 단계를 거치게 됩니다. 

그리고 공납으로 거둬들인 특산물은 다시 평민들에게 최소 10배 이상 되팔았습니다. 그냥 비싸게 되파는 것이니 안 사면 되는 거 아니냐? 하는 분들이 계실까 해서 그러면 조선의 향리가 아닙니다. 아까 말했죠. 공납을 가로 막았다고요. 예를 들어 곶감 10개가 평시 쌀 1가니였다면 아까 합법적으로 가로 막혀 체납된 평민의 빚은 쌀 1가니가 아니라 쌀 10가니에서 고리가 붙기 시작하는 겁니다. 


자 그런데 보법이 제대로 지켜졌을리 있었을까요? 왜 대립이 문란해질 수 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되시나요?


자 그런데 아직 시작도 안했어요. 

아까 말한 보법과 공납을 통해 지방은 병작반수 현상으로 소위 더 많은 토지의 지주층이 형성되기 시작했습니다. 소위 말해 내 땅을 밟지 않고서는 우리 고을을 들어오지도 나가지도 못한다는 것....이게 이미 조선 전기때 만들어졌습니다. 그런데 병작반수라 했죠,. 즉 수확량의 50%가 지주 몫입니다. 그런데 이건 그들이 정한 나름의 룰이고, 여기에 종자대금, 농기구 대여비, 수확량 손실분을 평민에게 모두 전가했으니 실제로 50% 이상은 분명했습니다. 자, 그런데 문제는 수확량 손실분....어? 그러면 수확량을 누가 정해요? 평민이요 아니면 쌍방간에요? 아니요 토지를 빌려주는 사람, 즉 지주 마음입니다. 내가 그냥 쌀 100가니가 수확량이라 하면 토지를 빌려야 하는 입장의 평민은 50가니는 그냥 기본 값입니다. 농사를 열심히 했고 재해와 무관하게 무조건 100가니이기 때문에 80가니가 수확되면 그 절반인 40가니가 아닌 50가니가 기본값이고, 여기에 종자대, 농기구 임대료등.....을 지급해야 합니다. 


조선은 군역만 보법으로 무상 착취했던 게 아닙니다. 마치 교과서에서는 군역을 도성과 국경 병역 그리고 공역까지 하나인 것처럼 오해하게금 가르치는데 도로 정비, 궁궐 공사 및 성과 축조 등 토목 공사에는 요역이라 해서 무상으로 징벌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국가는 1년 6일로 제한했던 실록의 기록으로 매우 합리적인 국가 시스템으로 오해하시는데 지방 향리들은 이 법을 제대로 지킬리가 있겠습니까? 농사철과 무관하게 수시로 동원했습니다.


즉 조선의 평민은 조선 전기부터 전세, 공납, 군역, 요역을 부과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기에 군역의 보법 뿐 아니라 양인 남성이라면 기피하는 군역을 담보로 한 방군수포와 대립은 군 지휘관과 아전들의 수탈의 도구였습니다. 징집 해지의 권한도 지방 향리가 갖고 있었고 이를 바로 방군수포라 하는데 이를 댓가로 군포를 받았는데 당연히 제 값을 받을리 없고 이 역시도 수 배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방군을 계속 들어주면 군포가 쌓여 좋지만 한정되어 있으니 해 먹을 게 없어지잖아요. 그래서 바로 대립을 강요했었습니다. 군복무를 할 양인을 징수하고 이들에게 매우 적은 금액 심지어 먹여준다는 이유만으로 아무 댓가를 지급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과정에서 소위 대리 복무로 양쪽에서 이득을 챙겼습니다.


군대가 정상일리 없고, 이 상황에서 벼, 기장, 보리, 수수 등 초본성 작물은 잠시라도 비우면 개판되는 건 시간 문제죠. 즉 조선 평민의 농업은 부병제, 대립, 요역 등으로 농업이 제대로 될리 없고, 그러니 국가에서는 지방 향리의 부정부패를 떠나 제대로 세금 수취가 될리 없었죠. 그런데 성리학을 숭상하는 문치주의 정권이고 지방 권력층과 맞서기 보다는 모든 원인을 농민에게 찾아야 하니 오로지 기술개발해서 생산량을 늘려보아야 한다는 관점에서 농업기술 개발과 보급을 선택했었죠. 그래서 국가 나서서 사채업의 내수사 장리 사업까지 했습니다. 30~50%의 장리가 당시에는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할 정도로 고리와 봉납은 시궁창이었습니다.


반면 유럽의 국가들의 농업은 조선과 다른 측면이 있습니다. 즉,  조선과 유럽의 농업구조에서 가장 큰 차이는 바로 직약농업과 조방 농업으로 이루졌기 때문입니다. 우선 평민들의 주식은 밀, 보리를 이용해 Porridge 라는 개죽과 소위 검은 빵 Trarchoir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고대부터 정복사업으로 식민지를 갖고 있던 유럽은 본토는 올리브, 포도를 재배하고 곡물은 식민지에서 조달 받았습니다. 물론 본토의 평민들도 곡물 재배를 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유럽에서는 가장 큰 차이를 갖고 있는 바로 manor라는 공동 농경지 경작을 통해 삼포식 농법이 발달했단즌 점입니다. 한국의 보법과 대립에서 발생하는 대작은 농업의 노동력 공백은 초본성 농작물의 집약 농업에서는 매우 치명적인 결함이 있고, 이를 해결할 수 없지만 유럽은 조방 농업 기반의 삼포식 농법을 적용했기 때문에 노동력 공백이 상대적으로 문제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언급한 manor는 영주 지배하에 공동 농경지를 격자형으로 배치하여 징집되지 않는 남성이 자신의 농경지만 모니터링하는 일이 원천적으로 없도록 설계되었으니 과학적으로 노동력 착취 설계를 했다고 봐야 할지....????

조선과 유럽의 가장 차이의 원인은 다름 아닌 기후 차이에 따른 농업 주기 즉 재배력의 차이입니다. 한국은 장마, 겨울철을 포함해 농사를 할 수 없는 농극기가 있지만 유럽은 지중해성 해양기후를 기반으로 조방 농업을 기반으로 삼포식으로 관리한 것이 매우 큰 차이를 가져오게 됩니다. 


따라서 조선 평민의 입장에서는 부병제는 단순히 징집에 끝나지 않고 가족 생계를 위협하는 동시에 조선전기때 부터 만연한 공납, 고리/장리 그리고 향리들의 농간까지 더해져 실상은 참혹했었습니다. 

행복주식회사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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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7]
lcoy
IP 121.♡.180.210
10:01 2026-06-03 10:01:06 / 수정일: 2026-06-03 10:01:22
·
유발 하라리가 농경은 인류 최대의 사기라고 했던가요.

아마 (종으로서는 번성하게 되었지만) 개인들로서는 가장 비참한 시기가 농경사회고,
그 전의 수렵채집 사회와 현대의 몇몇 선진국이 그보다는 그나마 나은 것 같기도 합니다.
행복주식회사
IP 61.♡.202.154
10:04 2026-06-03 10:04:59
·
@lcoy님

유발 하라리는 막스에 비하면 어린아이 같은 통찰력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막시즘 신봉자입니다.

농경은 신석기, 수렵채집은 구석기입니다. 물론 다른 주장을 하는 일부 의견이 있지만 주류는 그렇습니다. 구석기는 신석기와 비교해 다른 이면으로 다른 참혹함이 있었습니다.
lcoy
IP 121.♡.180.210
10:27 2026-06-03 10:27:07
·
@행복주식회사님
언제나 다른 참혹함은 있긴 하겠습니다.
지금의 한국인들도 너도 나도 흙수저라고 비참해하고
몇달만에 집값이 1억 올랐다는 사람도 그 사이에 삼성주식으로 돈 벌었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괴로워 죽으려고 하니...
여름철개장수
IP 182.♡.67.152
10:08 2026-06-03 10:08:17
·
경제사에 대해 생각했거나 의문가는점을 말하면 근 10년 사이에 무작정 식민사관이라고 하는 분들이 계셔서... 오랜만에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행복주식회사
IP 61.♡.202.154
10:22 2026-06-03 10:22:34
·
@여름철개장수님

으음....
댓글 달기 조심스럽지만 그냥 쓰겠습니다.
이병도와 서울대학교 교수들이 주축되어 친일 인맥이 형성된 바 있고, 여기에는 단순히 사학과 교수 뿐 아니라 경제, 교육, 미술, 음악 등 다양한 분야의 교수 및 문학도들이 참여했었습니다.

그 모임과 연관된 낙성대경제연구소(사실상 핵심 단체), 한국경제사학회, 교과서포럼이 교류한 바 있습니다.

P.S 관련해 조선사편수회, 청구학회, 진단학회는 너무 진부하고 나름 오래된 식민사관관련 단체이니 더 논하지 않겠습니다.
heterotopia
IP 211.♡.157.174
11:56 2026-06-03 11:56:05
·
@행복주식회사님 아 ㅠㅠ 이부분은 좀...연구사적으로 이병도는 근대 실증사학을 도입하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라는 근본적인 시대 한계에 부딛혀 여러 가지 한계를 지닌 연구자로 보는게 맞고, 이후 학계의 흐름은 실증적 학풍을 계승하는 과정에서 이전 스승을 극복하려고 비판하는 비판적 계승 내지는 90년대 이후 기존 실증 사학의 연구 결과와 담론들에 대해 사회사, 민중사, 근대성 다양한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적이거나 포스트콜로니얼적이거나 등등 다양한 다른 시각에서 보려는 수많은 수정적 학자들이 배출된 상황입니다. 애초에 해방이후 학계가 식민사학을 반복했으면 왜 수탈론이 대두가 됩니까? 너무 과하신 거 같습니다.
행복주식회사
IP 61.♡.202.154
12:12 2026-06-03 12:12:09
·
@heterotopia님

한국의 실증사학이라는 시작이 누구로부터 인가를 찾아보시면 불필요한 논쟁은 필요없을 것 같습니다. 지금 실증사학의 개념을 정립하고 이를 주장하는 학자, 그들의 스승을 찾아보세요.
사막여우
IP 223.♡.177.171
10:18 2026-06-03 10:18:32
·
왕조시대 신분제사회에서
'평민'이 평안한 삶을 살 가능성이 희박하죠.
더구나 생산력이 부족한 시대인데..

드라마 영향으로
왕조시대 판타지 가진 사람도 많고
능력에 따른 신분제 사회를 원하는 친구들도 있죠 ㅋ
행복주식회사
IP 61.♡.202.154
10:32 2026-06-03 10:32:04
·
@사막여우님

대전제는 동의하는데, 제가 이 글을 적게 된 이유는....

조선이 민도를 위한 국가이거나 아니라거나.....이런 관점이 아닙니다. 실록의 어마어마한 기록이 마치 엄청난 국가 행정시스템이고 이것으로 완벽히 돌아가는 사회였다고까지 오해하게 만드는 공교육이 1차 문제이고, 이를 무 비판적으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다는 게 2차 문제입니다.

단순히 문치를 위해 조선 전기부터 군사력이 약했던 게 아닙니다. 조선은 역성 정권이었기 때문에 모든 역사를 왜곡시킬 수 밖에 없었습니다. 즉 기존의 국가들처럼 다른 지역에서 거병해서 침략을 통해 이전 국가를 토벌한 게 아니고, 분명히 고려 왕조의 군신관계가 있던 장수가 왕의 명령을 어기고 회군한 역성 정권으로 탄행한 겁니다.

그래서 조선은 단군조선은 미개해서 계승하지 않으며 실체가 존재하지도 않는 기자조선을 뿌리를 두었고, 수거령을 통해 분서와 개작을 국가적으로 200여년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원초가 사라진 삼국사기 또한 고려 김부식외 11명이 집필한 원초가 전해지는 게 아닙니다. 고려사 역시 이성계의 건국 정당성을 위해 작성되었기 때문에 고려 왕조를 비판적으로 기술되었음은 잘 아실 겁니다.

문제는 삼국사기 개작하면서 백제의 도읍을 세종 조차 모르면서 개작했으며, 고려사 또한 4,000여곳이 넘는 지명을 모르는 것이니 모른 척 한 것이지 정사가 만들어진 겁니다. 물론 삼국사기도 2,000여곳의 지명이 아직도 어디인지 모르고 조선시대 전후 내려오는 지명의 국어학적 음운 유사성으로 비정된 곳이 대부분입니다. 즉 소설 같은 전래동화로 역사를 쓰고 있죠.

그러면서 방대한 조선실록으로 행정 시스템.....전국의 지방 행정은 시궁창 그 자체인데, 이를 그 누구도 보지 않고 볼수 없는 서책으로 발간해서 기술개발하고 보급했다고 하면.....이게 유물로 남아서 전해지고 있어 조선의 행정은 좋았다고 판단하는 게 옳은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사막여우
IP 223.♡.177.171
10:51 2026-06-03 10:51:41
·
@행복주식회사님
'중앙행정시스템'의 완성이 조선인 건 맞아요.
15,16세기에 중앙행정권력이 조선만큼 모든 통치지역에 미치는 국가는 없습니다.

현대 국가들처럼 권력이 분리되고 감시되는 시스템이 부족하고, 생산력이 부족한 것이 문제라고 봐야죠.
행복주식회사
IP 61.♡.202.154
11:07 2026-06-03 11:07:50 / 수정일: 2026-06-03 11:15:56
·
@사막여우님

조선이 중앙행정이 완성 혹은 미완성 여부를 논한 게 아닙니다. (당연히 형식적으로 이미 중앙집권화되었죠. 삼국시대에 이미 중앙집권화되었는데....)

보법은 중앙에서 만든 겁니다. 보법에 대해 어디에서 찾을수도 없을 만큼 길게 썼는데...제가 설명이 부족한 건지....부병제로 양인 남성을 징집하기 위해서 다른 양인 남성에게 부과하는 보법은 세계사에서 그 어디에도 없어요. 이걸 두고 중앙행정의 완성이라고 본다면 서양식 정치구조 봉건과 중앙집권의 관점으로만 보는 공교육의 문제겠죠.

보법은 말 그대로 국짐당이 하는 국민을 시궁창으로 만드는 행정을 통해 모두 못 살게 만들면 먹고 살기 바빠서 아무런 정치적 저항도 없이 권력자는 모든 걸 누리는 세상을 만들수 있다는 것을 말 그대로 제도화한 겁니다.

여기에 내수사 장리 사업까지 했고, 방군수포제는 지방 향리들은 너희들이 알아서 해먹어라는 제도예요. 이런 것 모두 중앙에서 해놓고 지방향리 부정부패해서 나라가 문란해졌다? 동의하세요?

군부독재가 되면 경제가 어려워지고 국민의 삶은 극도로 어려워지지만 새로운 쿠데타가 있지 않다면 절대 권력을 누리죠. 그래서 조선은 사병혁파를 했고, 성리학 문치를 하겠다고 통치 이념으로 내세웠고, 내부 반란을 막기 위해 군대 양성을 하지 않았죠.

이런 걸 모두 제도화했던 게 조선입니다. 이걸 중앙행정이라 한다면...아니 님외에도 클리앙에서 대부분이 이러하신데, 이 곳이 진보적 커뮤니티임에도 매우 놀랍습니다. 사실상 국짐당 정치 행보와 크게 다르지 않아요.
새끼발꼬락
IP 211.♡.91.223
10:29 2026-06-03 10:29:12 / 수정일: 2026-06-03 10:3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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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르고 등따시고..안전하고
이게 가장 중요한 선결 조건이 아닐까 싶더군요.

조선의 농경 사회가 시대가 받아들일수 없을 정도로 심각했다면 다시 수렵사회로 돌아갔거나 수렵 민족이 모인 국가가 대성했겠죠.

저시대는 어느 국가든 안정적으로 한끼의 밥이 중요했고 의식주를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으며 식량의 약탈을 막아야 했던 시대가 아닐까 싶더군요.

농공상 평민의 삶이 안락했던 나라는 없을것 같네요. 옆의 일본도 유럽도..
행복주식회사
IP 61.♡.202.154
10:36 2026-06-03 10:36:33
·
@새끼발꼬락님

채집 수렵과 농경 사회간 비교나 위민을 논하고자 쓴 글이 아닙니다.
조선의 방대한 기록 유산으로 조선이 무 비판적으로 행정 시스템만큼은 대단했고, 그게 조선 전체로 확대해석하려는 것에 대해 이견을 적은 겁니다.
새끼발꼬락
IP 211.♡.91.223
10:38 2026-06-03 10:38:29 / 수정일: 2026-06-03 10:3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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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주식회사님 조선이 무 비판적으로 행정 시스템만큼은 대단하지 않다는 내용에 일부 공감합니다.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많죠.
행복주식회사
IP 61.♡.202.154
10:43 2026-06-03 10:43:53 / 수정일: 2026-06-03 11: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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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발꼬락님

오위제로 마치 엄청난 수비 군제를 가진 것 같지만 본 글에서 언급한대로 실상은 방납, 대립, 보법에 고리와 장리로 평민(농민)의 삶을 얽어 놓았다는 겁니다.

만병통치약 같은 이야기로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많다는 의미가 아니라 조선의 장고한 기록 유산에 감춰진 이면은 평민(농민)을 얽매여 수탈했다는 겁니다. 즉 부작용으로 단점이 나왔다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중앙(왕)은 좋은 정치인데 지방 정권(향리)이 문제라는 지적이 아닙니다.

보법만 다시 한번 읽어보시고 생각해보세요. 이게 얼마나 말이 안되는 제도이고, 이런 제도는 세계사에 어디에도 없어요.
heterotopia
IP 211.♡.157.174
11:53 2026-06-03 11:53:02 / 수정일: 2026-06-03 11:5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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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유산을 근거로 조선이 낭만화되어서는 안 된다는 대전제 자체에는 동의합니다. 실제 일반 대중의 삶과 제도적 정비 사이에는 괴리가 있었고, 기층민의 삶이 법전이나 실록에 나타난 제도적 이상만큼 안정적이거나 풍족하지 않았다는 지적 역시 타당합니다.

다만 논증 측면에서는 몇 가지 지적하고 싶습니다.
우선 쓰신 글에서는 제도 자체의 문제와 제도 운영 과정에서 발생한 문란 사이의 구분이 모호합니다. 제도 자체가 문제라고 보신다면 그 제도가 왜 구조적으로 타당하지 않았는지를 논증하셔야 하고, 운영상의 폐단이 문제라고 보신다면 그 폐단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발생했는지를 설명하시는게 좋겠습니다. 그런데 본문에서는 보법, 대립, 방군수포, 방납, 환곡의 고리대화, 향리 수탈 등이 한꺼번에 묶여 있어, 무엇이 제도 설계의 문제이고 무엇이 운영 과정의 문란인지 모호합니다.

비교방식도 납득하기 어렵습니다. 조선은 폐단과 문란을 기준으로 비판하면서, 서양에 대해서는 장원제나 삼포제 같은 제도적 구조만 설명하고 제도 외부에서 발생한 폐단은 거의 언급하지 않습니다. 전근대 유럽에도 농노제, 십일조, 영주권, 강제부역, 전쟁 징발, 용병 약탈, 농민반란 등 기층민의 삶을 압박한 요소가 많았습니다. 조선을 현실의 폐단으로 평가하려면, 서양 역시 현실의 폐단까지 포함해서 비교해야 합니다.

서양의 병농일치와 조선의 양인개병제는 근본적인 논리의 시작점과 층위 자체도 다릅니다. 서구의 장원제나 비잔틴의 프로니아제도는 군인에 해당하는 이들의 수조권을 보장해주는 제도이지 농민이나 일반 기층의 군역에 대한 내용과는 거리가 있고 농민을 생산 기반으로 삼는 제도입니다. 조선은 특정한 전사계층이 지방에 할거하는 체계가 아니고 일반 양인 남성을 군역 자원으로 파악하고, 직접 복무 또는 보인 부담을 부과하는 체계였습니다.
이를 둘 다 병농일치의 맥락에서 바라보면 농민이 군역의 주체인지 군사층 부양의 기반인지가 혼동되구요.
조선의 농민이 군역의 주체인 동시에 부양의 주체이기 때문에 그것이 잘못되었다 라고 주장하고 싶으신거라면 그것이 왜 어떻게 근본적으로(현상과 양상의 측면에서 말고) 서양의 제도와 비교해 열위에 있는 것인지를 말씀해주시길 바랍니다. 애초에 동아시아와 서구는 전시 동원에 대한 지향점 자체가 다른겁니다 그냥.
고려 군인전이나 비잔틴의 프로니아 제도같이 군인에 해당하는 이들에게 토지를 지급하는 형태의 군사제도가 더 낫다는 말씀이시면 애초에 이는 근본적인 시대발전상의 오류입니다. 군인에게 수조권을 보장하고 그 대가로 군사 봉사를 요구하는 방식은 중세적 군사,토지 질서에 가깝습니다. 반면 일반 백성을 국가의 병역 자원으로 파악하고 중앙에서 군역을 제도적으로 관리하려는 발상은, 조선에서 완성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더 강한 중앙집권적 국가 운영과 연결된 방향입니다. 문제는 그 방향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당시 조선의 재정 능력과 행정 침투력, 지방 통제력의 한계 속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고려에 대한 서술도 균형이 맞지 않습니다. 조선은 군역제의 문란을 이유로 비판하면서, 고려는 군인전이라는 제도적 명분을 근거로 상대적으로 낭만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려 군인전 역시 실제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지급되고 유지되었는지, 군역 담당층이 어떤 부담을 졌는지, 제도와 현실 사이에 어떤 괴리가 있었는지를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조선은 군역제의 현실적 문란을 기준으로 비판하면서, 고려는 군인전이라는 제도적 명분을 기준으로 평가한다면 딱히 타당성이 있는 거 같지는 않습니다.

글고 본문에서 지적한 폐단들이 전근대 행정체계의 일반적 한계 자체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조선 체제 자체의 특수한 구조적 문제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한 논증도 부족합니다.
전근대 국가는 근본적으로 낮은 행정 침투력, 제한된 재정 능력, 지방 권력층에 대한 의존, 느린 정보 전달, 불완전한 감찰 체계라는 한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조선의 문제를 비판하려면, 그것이 전근대 국가 일반의 총체적 한계로부터 비롯된 문제인지, 조선에서 특히 심하게 나타난 문제인지 구분해야 합니다.

이쪽분야 몸담는 사람으로서 시선을 빼고 그냥 개인의 시선에서 조선의 비판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저도 뭐 조선이 낭만화되고 과하게 추켜세워질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이부분은 님 말씀에 동의해요. 하나 첨언하자면 그놈의 자본주의맹아론은 교과서에서 끝도없이 나오더군요. 무슨 얼어죽을 자본주의 맹아입니까? 그냥 조선 후기의 새로운 경제사적 흐름이 낳은 사회경제적 변화상이지. 그냥 자본주의라는 결론에 조선 후기 사회의 현상을 끼워맞춘 식인데. 조선은 애초에 전근대에 있었던 하나의 국가이지 조선을 비판하면 민족적 결이 상하는거마냥 발작하는 사람들 보면 저도 지겹고 꼴사납습니다.
행복주식회사
IP 61.♡.202.154
12:09 2026-06-03 1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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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terotopia님

네 반갑습니다.

일단 유럽 군대 부분에 대한 논증 부분은 부족했습니다. 쓰다가 저도 현타가 왔습니다. 제대로 된 논쟁이 될리도 없는데 왜 시간을 들여서 이걸 쓰고 있지.....특히나 요즘 클리앙 분위기로는 더더욱 그러한데...이런 현타가 심하게 와요.

유럽의 병역제도 문제가 많습니다. 군역제 가장 큰 핵심인 징집이 고대~근대 농업에서 노동력 공백이라는 측면이 평민 당사자와 가족의 생계를 위협한다고 생각하는데....이 글을 쓰기 전 현타가 왔어요^^ 그래서 급하게 마무리하고 끝냈습니다. 사실 2부로 써야 하나 고민도 했는데...이런 정성까지 써야 하나 싶어요.

다시 제 취지로 돌아오면, 유럽은 조방 농업을 기반으로 한 삼포제를 운영했었고, 식민지라는 약탈적 농업 기반과 기후적 차이로 인해 집약적 농업구조와 식민지가 일절 없고 농극기가 있는 조선의 평민이 경험하는 노동력의 공백은 더 큰 타격을 준다는 것이고, 이것이 보법, 방납, 방군수포와 함께 고리와 장리로 이어져 참혹했다는 겁니다.

그리고 제도와 운영을 지적하셨는데, 일단 제도와 운영이 다른가에 대한 의문도 있지만, 무엇보다 언급한 부병제, 보법, 방납, 내수사 장리, 방군수포 모두 중앙 정부에서 정한 겁니다. 개인적으로 원흉이라 생각하는 보법을 봐도 이를 단지 지방 향리의 운영 문제로 볼수 있습니까? 나머지 제도도 모두 중앙에서 정한 겁니다.

이런 글에 대해 항상 언급되는 무적 논리가 있죠.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다. 왕정 국가가 다 그렇다. 제가 지적하는 건 이 문제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조선 자체를 부정하거나 무조건 열등하다는 게 아닙니다. 본 글과 댓글에서도 여러 차례 언급했지만 조선의 장고한 기록 유산으로 과대 포장된 낭만적 해석으로 무비판적인 확대 해석을 언급한 것으로 이해 해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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