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편화된 정보를 접하는 경우는 많을 텐데,
연결을 잘 짓지 않는 것 같습니다.
철의 수급 및 제련 기술 등 여러 요건에 의해
동서양 및 주변 지역 별로 다소 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공통점은...비싸도 엄청나게 비싼 물건이었다는 것입니다.
나중에 기술이 더 발전하면서 싸지긴 합니다만,
싸져도 비쌌고,
그 전에는 무시무시한 가격이었습니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지극히 제한적인 수가 사용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국력이 아주 좋은 나라라면... 그 비중이 높을 것이나
부강한 나라에서도 부담 되는 수준이 중세의 검과 값옷입니다.
중세 말부터 가격이 싸지기 시작합니다.
무기 뿐만 아니라 농기구부터 산업기구까지 철이 일반적으로 보급된 시점입니다.
검이나 갑옷은 철의 사용량이 많고 손과 시간이 많이가기 때문에 비싼것일뿐입니다
대부분 병사들은 값싸고 제조가 간단한 창을 사용하죠
반면 농민의 삶은 비참한 상황이었죠. 당시 평민의 첫끼는 아점으로 잡곡으로 만든 Tranchoir와 차 혹은 ale 맥주를 먹는 Dinner라고 했고, 일몰 직전에 두번째 식사로 Supper라 해서 Pottage라는 스튜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상은 남은 채소와 곡물을 넣고 푹 끓여 먹는 개죽입니다. 이유는 채소와 곡물의 품질이 좋지 않아서 곡물은 도정과 정제가 제대로 되지 않았고, 채소는 온전한 것이 없어서 대부분 상한 채소였기 때문이죠(당대 냉장고는 당연히 없고, 저장 창고라는 게 보편화되지도 않았음.).
뜬금없이 식사 이야기를 한 이유는 과연 서민들이 저런 음식을 먹기 위해 어디에 담아 먹었을까요? 유리 그릇은 당연히 아니고, 도자기...요? 철제요? 바로 Tranchoir라는 도정, 발효도 제대도 되지 않은 곰팡이가 다수 있는(매일 만들 수 없으니 몇일 두고 먹기 때문이고 당시 가장 귀한 재산인 가축과 함께 살았기 때문에 곰팡이와 세균은 넘쳐났었음) 그 검은 빵 Pottage에 담아서 먹었고, 먹다보면 눅눅해진 빵을 같이 먹었던 겁니다. 이게 빵을 스프에 찍어 먹는 것처럼 마치 고상한 식문화인 것 처럼.....이게 현실인데 그 검은 썩은 빵 조차 먹는 것도 대부분의 평민들은 큰 사치였습니다. 이유는 바로 화덕 조차 아무나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왜 아침 식사를 안 먹었냐면...물론 인두세를 포함해 교회에서 어마어마한 세금을 걷고 영주가 또 약탈하고 하기도 했지만 매일 아침 교회에서 기도를 해야 했기 때문이고, 기도 전 배를 채운 것은 매우 불경한 일이었습니다.
p.s. 그런데 웃긴 건 한국에서 발효도 제대로 되지 않은 우리밀(글루텐 함량이 1/4 수준)을 가지고 딱딱하게 만들어 놓고 건강한 빵이라고......잉? 하다하다 중세 시대 평민의 삶을 체험하라는 건지...그런데 가격은 일반 프랜차이즈 빵집의 가격은 5~10배까지도 하죠.
철이 풍부해서 이기도 한듯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