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골치아픈 부동산 이야기말고, 옛날 노래들으며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나 하나 할까요?
한국 진보진영에 양보없는 노선투쟁이 고착화된 시기는 1985 년경입니다.
그 이전에는 학생운동 언더에서만 존재했던 이론투쟁이 이 시기에 NL-PD 간 사회구성체 논쟁으로 확산되면서 시민단체(당시 용어는 재야), 노동계, 학계, 언론계 등 진보진영 전체로 확산됩니다.
한국의 모순이 국가독점자본주의 라는둥 식민지 반봉건제 라는둥 하는, 지금 생각하면 말도되지 않는 소리들을 가지고 마오의 모순론까지 견강부회로 가져다 붙이며 싸움박질을 했었죠.
이때부터 진보진영 안에서 노선이 다르다는건 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이유가 되었습니다.
두 노선의 극단에는 사노맹과 주사가 각각 자리잡았습니다.
나중에 시인이 된 박노해와 나중에 극우로 전향한 강철서신 김영환이 각각 생각나는군요.
NL진영은 주사계열이 거의 10년 가까이 절대권력을 행사했습니다.
80년대 후반과 90년대 초까지 NL이 진보진영 주류를 장악하고 있었고요.
수령론, 당의 무오류론, 품성론이 무엇인지 아는 분은 알고 모르는 분은 모르겠지만, 대한민국 진보진영 10년을 알게모르게 지배했던 이 논리들이 다양성 말살과 생각이 조금이라도 다른 이들에 대한 극단적인 혐오를 광범위하게 확산시켰습니다.
이들이 남긴 ‘내 이론만 정답이며, 나와 노선이 다른 자는 개량주의자 아니면 프락치’이라는 지적 독선과 배타성은, 당파 패권주의와 함께 한국 진보진영을 극우 파시스트들 비슷한 집단으로 퇴화시켰습니다.
명색이 진보(liberal)라면서 다양성을 포용하지 못하고 스스로를 배타적 혐오로 가득찬 기형적 집단으로 만드는데 일조한 나쁜 유산이 된 셈이지요.
이 집단의 독특한 선민의식은 진보진영이 배출한 대통령들을 향해서도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특히 노무현과 이재명이라는 두 인물이 진영 안에서 마주했던(이재명은 계속 겪고 있는) 거대한 보이지 않는 벽 역시 그들이 학생운동권 출신으로 순혈주의적 학습을 받지 못한 굴러온 돌이라는 편견과 텃세 때문이었습니다.
한국의 기성 진보진영은 1980년대 대학가에서 정교한 이념서적을 읽고, 커리큘럼에 따라 체계적인 학습을 하고, 감옥에 가고, 노동현장에 가고, 지하조직 활동을 했던 경험을 공유하며 권력의 정당성과 지적 신분증을 발급받았습니다.(고등학교때도 하지 않던 수학공부를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미분 적분을 자본론-중 자본의 순환 챕터- 공부하면서 마스터했다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였지요)
이 주류세력의 시각에서 노무현과 이재명은 철저하게 '이방인'이자 '굴러온 돌'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이 두 사람은 체계적인 이념학습과 현장경험(감옥이든 노동현장이든)을 거치지 않은 사람, 즉 사상적 깊이나 족보가 없는 인물이었습니다.
86세대 주류는 수십 년에 걸쳐 지역구, 시민사회, 노조 네트워크를 촘촘하게 구축해 왔습니다. 공천은 이 네트워크 안에서 순환되었고, 원내 입성과 낙천 역시 그 안의 논리로 결정되었습니다.
이재명은 이 구조를 우회했습니다.
그는 시민사회의 인준을 받는 대신 팬덤의 직접 동원력을 무기로 삼았고, 경기도지사 시절의 정책 성과와 소셜미디어(SNS) 정치를 통해 기존 네트워크를 건너뛰는 독자적 동원 경로를 만들었습니다.
노무현은 그래도 족보있는 83 학번들로부터 일정한 학습을 받았지만, 독도다이 기질이 좀 더 강한 이재명은 또 달랐습니다. 그가 비슷한 또래들에게 재교육을 받을리도 없었습니다.
86 주류 입장에서 이것은 단순한 노선 이탈이 아니라, 자신들이 수십 년 동안 공들여 쌓아온 권력자원 자체를 무력화하는 위협이었습니다.
이재명에 대한 견제가 다층적으로 교묘하고도 집요하게 이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이 가진 실용주의적 사고나 파격적인 탈권위 행보는, 교조적 순혈주의에 절어있는 주류 운동권 출신들 눈에는 운동의 본질을 모르는 돌출행동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한국 진보진영의 주류 86 세대는 자신들이 독점해 온 '민주화의 정통성'이라는 성골(聖骨) 의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무현과 이재명은 그 성벽 밖에서 자생하여 대중의 지지를 동력 삼아 성벽을 무너뜨리고 들어온 인물들입니다.
그렇기에 주류가 느꼈던 위기감과 텃세는 단순한 정치적 견해 차이를 넘어, 족보도 없고 이념적 순혈성도 검증되지 않은 이방인에게 안방을 내줄 수 없다’는 지독한 폐쇄성과 오만함의 발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재명이 이념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라는 낙인은, 그의 독자적 동원력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위협할 때 그 견제를 정당화하는 언어로 적절히 써 먹어왔습니다.
앞서 언급한 과거 NL·PD 극단주의의 배타적 유산이, 시대가 흘러 기득권이 된 운동권의 텃세라는 형태로 고스란히 발현된 셈입니다.
세계 어느 나라 리버럴 진영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당파주의와 집단주의 유전자는 이제 지울 수 없는 화인처럼 남은 것 같습니다.
그들의 집단본능에 가까운 이 당파주의적 텃세와 집단주의가 사라질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들 대부분의 나이가 60 을 넘기고 있지만, 이젠 건강하게 오래들 살아서 당분간은 예의 그 똘망똘망함 역시 쉽게 무뎌지지도 않을 것 같고요.
본선거가 내일(3일)인가요?
투표들 잘 하세요.
책에서 곰팡내 나는 기분이 드네요.
그 세대가 아니고 책이라든가 선배님들의 술자리 이야기 정도로만 들어서 알고있기는한데.
그 암혹하고 엄울한 세대를 헤쳐나가는 동력이 되었던 어떤 사상과 이론/배타성들이
이미 시대적 종말을 고했긴 했지만.(대략.. 소련 붕괴와 문민정부의 탄생정도 쯤일 듯 한데요)
운동권 출신 직업정치인/작가는 아직도 그 방식을 놓지 못하는 것 같네요.
그런데, 과학, 기술, 문화, 경제, 철학... 더 공부할 역량이 없다면 이제 퇴장의 시기가 다가오고 있다고 보입니다.
21세기는 너무 넓은 범위에서 너무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이분들이 이걸 캐치업하기에는 한계가 분명한 것 같습니다.
"당파주의적 텃세와 집단주의"로 진보 진영 전체를 왜곡하지 마세요. 본투표 전날 이런글 올리시면서 투표 독려하는 이유가 뭔가요?
최근 민주당 내 갈등이 예전 노무현 대통령 때의 데자뷰 같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이면에 있는 86주류 세대의 위기감이 그 원인일 수 있겠군요
유시민의 CBA분류도.. 어찌보면 이부류를 분류한거라고 봐야져... (물론 내란2찍은 제외..)
너무 깊이 들어가려 하면서 정확히 할 수 없는 부분을 정확히 하려는 것 같습니다.
즉, 어느 깊이 까지는 그간의 어떤 분석 보다 사실적이나,
세상 모든 일이 또렷한 세부적인 결을 짚어 내려 하면,
잡히지 않는 것을 잡으려는 것과 같이 됩니다.
말씀하신 주류가 보인 반응을 크게 둘러쳐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알겠습니다만,
모두가 하나 같이 같은 결과 같은 생각과 같은 방향으로 갈 수 없는 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대개의 경향성을 그 주류라는 이들이 보일 수는 있지만,
그 모두가 마치 통제 된 것처럼 그렇게 일괄적인 행태로 나타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 보다는 정치에 깊이 관여하게 된 이들이 기존 정치의 틀 안에 들어가
기득권이 되고, 기득권이 되었을 때 드러나는 행태 중에
과거 86 주류 출신의 두드러진 행보가 곁들여져 있는 것 정도로 보면 되지 싶습니다.
정치라는 큰 바다에 어떤 한 출신들이 한 방향을 모고 좌지우지 된다... 고 전 보지 않습니다.
될 리도 없고, 누가 의식하며 하려고 하지도 않고요.
어떤 큰 배가 움직일 때 노를 젓는 이를 100%로 친다면, 그중 20%가량이 같은 배경을 가져서,
알게 모르게 특징적인 행보가 있었다는 것을...
나중에 돌이켜 보면서 분석을 하게 되었다면,
그것을 모든 것의 기준으로 삼아 항해 중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해석하는 것은 ... 맞지 않다는 말입니다.
그 20%가 100% 안에 들어갔을 때 어떻게 섞여 들어가 어떻게 자라 잡고,
각자의 삶을 살며 구축해 나가는 그 모든 것들이 ... 같을 수가 없죠.
심지어 김대중 대통령을 보좌하던 이들 중 일부는 나이 먹고 나중에 반대 쪽으로 투신도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을 구성하는 요소들 중 젊은 시절의 노선이 매우 중요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보다 더 앞선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집안의 가르침일 수도 있고, 결정적인 인생의 전환점일 수도 있으며, 정치 스승 또는 인도자를 누굴 만나느냐에 따라서도 달라질 것입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가장 굵직한 틀이 되어 분석이 가능한 영역이 아니라
여러 참고 자료 중 일부로 보는 것이 맞지 싶습니다.
의미가 없다는 것이라거나 틀렸다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총합을 이루는 일부의 기준으로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도대체 지금 언제쩍 한국 정치판을 읽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뭐 86의 역사에 대해서는 잘 아시는 듯 합니다만..
노통이 86과 대립했나요? 경쟁했나요? 배척당했나요?
노통이 비주류인건 당시 평민당 지분 95프로 꼬마민주당 지분 5프로 민주당에서 그 5프로에 속한 영남인사였기 때문입니다. 대학 안나오고 비운동권 출신이라서가 아니구요.
그리고 노통이 46년생이던가 그렇죠. 86의 정치권 진입은 가장 빠른 김민석이 96년이고, 나머지는 95년 DJ의 2차 재야 영입 때 입당해서 00년 04년 08년 총선 때나 원내에 진입하는 타임라인이 주류입니다. 노통은 오히려 87년 6월 항쟁 때 재야(부민협, 민통련) 지도부로 86들을 지휘하던 삼촌뻘 세대라 애초에 86을 기준으로 하는 주류/비주류 논의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노통의 비주류성으로 인한 대결 전선은 86이 아니라 전통적으로 이어와 두껍게 적층된 우리사회의 기득권 사이에 팽팽하게 형성되었을 뿐입니다.
이잼.. 여기도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일단 이잼이 당내 86들과 대결 내지는 상호 배척하는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고 본다면 큰 왜곡입니다. 뭐 문통하고 86-운동권 출신을 엮고 이잼과 대결 구도를 만들고 싶어하는 층이 있는 건 아는데.. 이 또한 현상의 왜곡이죠. 일단 86 그리고 그 이전 70년대 학번 운동권(재야)이 현실 정치에 진입하고 나서 세월이 너무 많이 흘러 그들 자체가 과거의 출신의 권위에 기대는 시점은 아주 많이 지나갔습니다. 전혀 현재에 작용하는 힘이 아닙니다. 민주당 내에서 86 정신? 출신은 오히려 굴레로 작용해서 그 결과 다양한 변형을 만들어 낸지 오래입니다. 87년 한 복판에 있었던 송영길이 뉴이재명 세미나에 가는 시대죠. (돌아가서 문통은 72학번으로 대학만 갔다 뿐이지 재야 시절 테크트리는 노통의 복사판이라서 86이
과의 사이에 갖고 있는 관계성은 그대로 갖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이재명의 친위 세력에 김민석, 송영길 같은 성골 중의 성골 86이 포진하고 있는 것도 현재 이재명 정권입니다.
그리고 이잼은 본인이 학생회장 출신이 아니어서 그렇지 그 역시 대한민국의 86세대입니다. 그 세대의 가치관, 세대 경험을 고스란히 공유하고 있다는 걸 그의 정치 이력과 현재 행보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연수원 시절 연수원 내 꿘들과 어울렸고 인권 변호사로서의 성장도 그 지역 학생운동 사건들을 도맡으면서 입지를 다졌습니다. 그런 정체성이라 자연스레 민주당에 입당하고 민주당 정치인으로 커온거죠. 그가 당내 86들로부타 정통성을 추인받지 못하고 배척 당하고 있다고 보기엔 이미 86은 그만한 공동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이 아닙니다. 분화할대로 분화하고 변형될대로 변형되어서 백인백색 자기 앞가름이 제일의 급선무인 60대들입니다. 이잼은 그들과 경쟁하거나 갈등하거나 할 이유가 전혀 없고 그냥 협조 받으면 되는 상황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굴러가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 철지난 86 시대착오론 같은 걸 되새기는 것 자체가 구태에 시간 낭비, 셀프 감정 과잉이라고 생각되네요.
마치 이재명 대통령은 과거를 부정하고 지금 자리에 선 것처럼 착각하고 계시네요.
김용남 따위 지지하려고 민주당 역사를 지우는 자들이 과연 민주주의 진영인가 싶고 한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