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역사 중 가장 가까운 왕조이다 보니,
나름 조선 왕조에 대해 제각각의 평가를 알게 모르게 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 기준은... 호감이냐 아니냐... 거나 좋고 나쁨의 문제로 보고 있지 않습니다.
대개 자신도 모르게 호감으로 대하다 보면 어떤 비판에 대해 왜 그렇게 과하게 보느냐고 따지기도 하고,
불호인 경우에는 가열차고 혹독한 평가를 내리기도 합니다.
무엇이든 기준은 오늘 날의 나와 우리이고,
이것은 먼 훗 날 역시 마찬가지이므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기준에 의하면 옛 왕조는 그저 과거에 존재했던 역사의 한 주체 중 하나로 보면 충분한 것 같습니다.
제 경우 유물의 귀중함도 역사의 한 증거로 이해할 뿐이어서,
예술적 가치 같은 것은 그다지 관심을 가지지 않는 편입니다.
반면 역사의 바탕하에서 예술적 가치를 더하는 분이 있다면 그러한 관점을 이해하고 수용합니다.
즉, 각자의 판단에 의하는 것이지 절대적인 무언가는 없다는 것이고,
그런 면에서 조선 왕조를 제 나름대로 몇 차례 평가를 했었습니다.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이 어떤 의도로 한 것인지.. 이런 것을 따지기 보다는,
그러한 인물이 나타나게 되는 사회적 배경을 보고,
이성계는 부패로 얼룩진 고려 말에 신진사대부가 일어서던 시기,
당대의 필요를 타고 역성혁명을 성공시켰으므로,
제 평가는 호불호가 아니라....시대가 소환한 인물이라고 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지 그 뜻이 숭고하고 뭐 이런 것은 아니어서 존경 할 인물로 보는 것은 아니고,
걸출하고 대단했던 위인 정도로는 보고 있습니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역량으로 왕조를 바꾼 것은
세계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괜찮은... 적절한 타이밍이었고,
그 이후 세종 대왕에 이르기까지 조선은 더욱 발전하고 더욱 살기 좋은 나라로 가는
비교적 훌륭한 길을 걸어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제 평가는 끝입니다.
시대에 앞서면 앞섰지 쳐지지 않았던 시기는 짧게 지나가고,
어느덧 더욱 가열한 변화와 속도를 내야 할 시기에...
점 점 더 닫혀가는 세계관 속에 갇혀 허우적 대는 시기로 넘어가니...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 되는 것이 세상이므로,
조선 중기 무렵 또는 임진왜란 후 왕조가 바꾸거나
다른 체제가 들어서야 하는 필요가 발생했지만 변화는 없었습니다.
역사에 만약은 없다고 하지만, 조선이 들어 선 것 역시
시대의 부름을 이해하는 자들의 뜻이 모여 이루어졌다는 점과 세계사에는 이런 케이스가 흔하디 흔할 정도로
시대가 필요로 하면 그런 인물이 나타나 결국엔 변화를 만들어 내곤 했었으므로,
임진왜란 이후 왕조가 바뀌는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런 결과는 없었지만...
실기 하게 되면 후유증이... 고착화된 권력 구조와 대외 정책,
내부 시스템의 완고한 기득권에 의해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여러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이 모든 것에 영향을 주는 폐쇄적 세계관의 주인공인 성리학...
다시 말해 건국 당시 앞서 있던 학문에서 어느새 뒤쳐진... 시대에 뒤떨어진 사상이 되어 버린
성리학을 이런 관점에서 제가 종종 비판했던 것입니다.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 훌륭한 학문이자 사상이나... 어느 때에 이르러,
시대와 맞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얘기 하다 보니 또 길어졌는데요.
이런 관점에서도 인정 할 수 밖에 없고 존경할 수 밖에 없는 이순신장군님이나
세종대왕은...그러니까 역사 자체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어떤 시대에 중요한 문화적 변화와 지역 역사의 물줄기를 바꾸었으니...
어떤 관점을 갖더라도 모두가 인정할 수 밖에 없는 경우인 것 같습니다.
고종은 그럴 만 합니다.
사람이 좋고 나쁘고가 아니고요. (이런 점도 따질 부분이 있겠지만...전 아닌)
예전에는 이성계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더 컸었지만,
지금은 본문에 적은 것처럼 변화를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는 측면에서는
평가 할만 하다 생각하고 있고,
말씀하신 것처럼 이후의 왕들은...그저 그 시스템 안에서 제 역할을 했는가 안 했는가 정도..
다만 세부적으로 보았을 때 성군이었던 왕이라면... 굳이 박하게 볼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전 부다... 성군... 이런 식의 묘사는 저도 좋게 보진 않습니다.
누굴 좋고 나쁘고...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제 역할을 할 때에 하지 못한 사람을 비난하는 것도 아니라...
그저 제 역할을 해냈던 위인을 평가하게 됩니다.
그런 인물이 아주 적죠. 주로 권력 층에서는요.
조선 후기에는 상품화폐경제가 발달하고 도시와 상업이 성장했으며, 신분 질서에도 균열이 생겼습니다.
실학과 북학도 그런 변화 속에서 등장했고, 청의 문물·제도 일부를 받아들여 현실 개혁을 추구하려는 흐름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회 내부에는 분명 변화 에너지가 있었는데, 문제는 그 에너지가 국가 체제 전체를 바꿀 만큼 제도화되지 못했다는 데 있었다고 봅니다.
맞습니다.
그런 점에서 제가 이전에는 이성계를 비교적 박하게 보았었다가
지금은 대단한 인물로 재평가하는 이유입니다.
요구는 그것을 응집시킬 인물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에너지가 모이고 변화를 만들어낼 구심점이 있어야 하고,
대개 사람이 직접 하기는 어려움이 많아 사상을 동반합니다.
하나만 더하자면,
후기에 상품화폐경제의 발달에 대해 말하자면...
역사는 면면히 이어지므로,
그 이전과 대비해서는 적잖은 변화였다고 볼 수 있지만,
더 큰 맥락에선...미친 혁신의 시대에 발을 맞추는 정도는 되지 못했습니다.
조선 후기의 세계는 가속이 가속을 부르는 때였습니다.
국력을 축적하고, 세계에 귀를 열고 눈을 뜨고 있었다면...
삼국 시대에도 성행했던 교역과 에너지가 있었다면...
말씀하신 후기의 변화는 더욱 가열하고 더욱 가팔랐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