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 중독자
그땐 내가 마케팅 일을 다시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강남 테헤란로 한복판의 칼날 같은 빌딩에서 문을 박차고 나올 때,
나는 무척이나 도전적이었다.
노력하면 다 이룰 수 있을 것 같았고
자기개발은 숨쉬는 것과 같았으며
상위권이란 말로는 만족스럽지 않았고
늘 무언가를 배출하는 과잉된 에너지가 들끓고 있었다.
어쩌다 이렇게 흘러오게 된걸까.
선배의 오래된 차 조수석에 앉아
덜컹거리는 진동을 느끼고 있으면
내 미래 역시 머지않아 어딘가 망가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그날도 우리는 차 안에서 말이 없었다.
처음 그를 만났을 땐
그가 무척이나 매너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어쩌면
지나치게 배려하는 척하는 사람이라 느꼈는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회사의 40대 직장인들과는 어딘가 달랐다.
권위의식에 찌들어 있지 않았고
나와는 결이 달랐지만
그 또한 길에서 많이 벗어난 사람처럼 보였다.
난 독립적으로 작업하는 사람으로서 사장에게 직접 소개를 받고 일을 시작했기 때문에,
비록 그가 선배였지만
적어도 우린 파트너에 가까운 관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계급을 내세우지 않는구나 싶었다.
그와의 첫 괴리감을 느끼기 시작한 건
운전하는 모습을 보면서부터였다.
처음엔 내가 20년 넘게 살아온 서울의 도로가 이렇게 울퉁불퉁했던가 싶었다.
실상은 그가 불필요할 정도로 잦은 차선 변경을 반복하고 있었고,
그때마다 차의 축이 거칠게 흔들리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에게 중요한 건 목적지에 도착하는 일이 아니라
도착하기 전까지 얼마나 더 많은 차선 사이를 비집고 지나가느냐인 것처럼 보였다.
만일 시간이 촉박했다면
난 그를 이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더 빨리 도착하기 위한 움직임이 아니었다.
타인의 감정은 물론이고
내 목숨과 그의 목숨,
그리고 도로 위 수많은 사람들의 생명까지,
그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 사람처럼 보였다.
나와 처음 악수하며 인사할 때
그는 허리를 90도로 꺾었었다.
차라리 그가 흔한 사람들처럼
어깨를 툭 치며
“환영해요. 고생 좀 하겠네.”
하고 낄낄대기라도 했다면,
난 오히려 마음이 편했을지도 모른다.
세상은 원래 그러니까.
적어도 내가 살아온 곳에서는.
말없이 달리던 그날
차 안의 그는 많은 것을 내게 보여주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는 이상할 정도로 들떠 있었다.
어떤 각도에서는
아이처럼 순수해 보이기까지 했다.
그 상태로 그는
자신의 불륜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기 시작했다.
요즘 시대에 불륜쯤이야
놀랄 일도 아닐 수 있다.
난 그보다 더 추악한 것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가 이해할 수 없었던 건
언제나 그 괴리감이었다.
그 당시의 그는 왜 그렇게까지 저자세로
나를 대했던 걸까.
생각해보면 그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지나치게 예의를 갖추었고
나를 일개 직원으로 대하기보단
접대해야 할 중요한 사람처럼 대했다.
나는 지금도 형식적으로 웃을 때면
오른쪽 입꼬리만 유난히 올라간다.
그날 차 안에서
난 아마 오른쪽 입꼬리만 잔뜩 올라간 얼굴을 하고 있었을 것이다.
내 형식적인 맞장구가
그에겐 진심처럼 느껴졌던 걸까.
아니면 정말로
아이처럼 순수했던 걸까.
혹은 내 의사 같은 건 애초에 고려 대상조차 아니었기 때문에
그저 내 앞에서 배설하듯 쏟아냈던 것일까.
진실은 알 수 없다.
내게 90도로 인사하던 모습의 진실을 알 수 없듯이.
그 회사에 해맑은 얼굴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사장의 자식들 역시 아이처럼 해맑았다.
사장은 어찌나 가정적이던지
최수종이 울고 갈 정도였다.
직원들에게도 늘 교양 있는 말투로 예의를 갖췄고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파트너였던 선배도 그렇고
이 회사는 비슷한 결의 사람들을 선호하는 건가 싶기도 했다.
아마 나 역시 겉으로 보기엔
그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나도 모르게 오른쪽 입꼬리만 과하게 올라가는 것만 빼면,
나 역시 교양 있는 집안에서 자란 사람처럼 행동했으니까.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나를 뽑은 사장의 눈은 정확했는지도 모른다.
내가 첫 직장을 그만두며 아내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것처럼,
사장 역시 사업이 자리잡기 전까지
아내에게 많은 고생을 시켰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며 죄책감에 눈물을 글썽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적어도 그는 사회에서 흔히 마주하는 떼묻은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차 안의 선배가 흥분을 주체 못하며 말하는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말이다.
“동남아 여자들이 그렇게 맛이 좋던데요?”
그는 그런 말을 하면서도 끝까지 존댓말을 유지했다.
“사장이랑 임원진이랑 다 같이 여자 불러서 마사지 받는데,
그게 그렇게 황홀할 수가 없더라구요.”
“이번 여름에도 출장 갈 테니까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을 즈음
내 오른쪽 입꼬리는 아마 거의 코끝까지 올라가 있었을 것이다.
그 모습을 본 걸까.
못 본 걸까.
알 수 없다.
다만 그는 그 순간 이후로
조금 더 솔직해지기로 마음먹은 사람처럼 보였다.
회사가 야심차게 준비하던 대규모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그는 조만간 핵심 경쟁 업체로 이직해
그 프로젝트를 그대로 펼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계획만 세운 것이 아니라,
이미 해당 업체 관계자와 이야기가 어느정도
오간 상태였다.
사장은 곧 그를 승진시켜
막중한 책임을 맡길 예정이었다.
여전히 난 알 수 없었다.
불륜이고 난교 파티고 간에
그딴 것으로 도덕성을 논하고 싶은 건 아니었다.
단지 왜 그렇게까지 괴리를 벌려놓는 것인지
그것만은 견딜 수가 없었다.
선배도, 임원도, 사장도.
그럴 거라면
아내 이야기를 하며 울 필요도 없지 않았는가.
일개 직원인 나에게
뭐 그리 잘 보이고 싶었던 걸까.
난 몇 달 되지 않아 사표를 냈다.
그들의 위선 때문만은 아니었다.
동등한 위치에서 함께 작업하기로 했던 약속과 달리
시간이 갈수록 모든 방향은 일방적으로 정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난 사표를 내던 날
선배의 계획을 그대로 말했다.
믿든 말든 상관없다.
내가 이런 말을 해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하며.
회사가 준비 중인 핵심 프로젝트를
그가 경쟁 업체로 가져가려 한다는 사실을 그대로 전했다.
사장의 눈은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말투 속 교양과 품위는 끝까지 유지했다.
어쩌면 유지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형식적인 말들이 오갔고
난 다시 회사의 문을 박차고 나왔다.
이틀째였을까.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 선배를 잘랐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내게
그가 맡기로 되어 있던 자리에 앉을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난 무언가 단단해질 만큼 짜릿했다.
이번엔 오른쪽 입꼬리만 올라가 있지 않았다.
이마의 근육은 눈썹과 눈꼬리를 위로 끌어당기고 있었고,
광대의 근육은 하관 전체를 억지로 들어올리고 있었다.
기대감에 들떠 있던
얼핏 순수해 보이기까지 했던
그의 모든 계획이 산산조각 난 것이다.
부서진 건 내 미래가 아니라
그의 낡아빠진 쇼바였다.
어느새 내 몸에 들러붙어 있던
구역질 나는 괴리감을
비로소 깨끗이 씻어낼 수 있었다.
난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예의 그 아나운서 같은 톤으로 말했다.
“아니오”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사진과 글, 그리고 영상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