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벅스의 5.18 폄하 혐오 마케팅 논란보다,
이런 사태마다 어김없이 등장하는 극우들의 '응원 소비 운동'이 더 불편합니다.
유니클로 때도, 국대떡볶이 때도 그랬습니다.
일관된 신념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면 동의는 못해도 존중은 할 수 있겠지만,
그것도 아닙니다. 공동체의 최소한의 상식과 인간성에 정면으로 반하는 이 행동들이
우리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가 거기 있습니다.
이들의 행동 원리는 단순합니다.
사익, 또는 자신이 증오하는 대상에 대한 무조건적 반대. 그게 전부입니다.
상황에 따라 논리를 바꾸는 사람에게서 느끼는 불편함, 즉 일관성의 결여와 정확히 같은 맥락입니다.
세상에 절대적 진리는 없을지언정, 인간이 수천 년간 생존하고 발전해 온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자연 앞에서 신체적 열세였던 인간은 공동체를 형성했고,
상호 생존을 위해 보이지 않는 약속과 규범, 즉 지켜야 할 선을 만들어 제도화했습니다.
이 선을 문화적으로 공유하고 지키는 것이 인간 사회의 기본입니다.
사회과학에서 말하는 사회적 자본이 바로 이것이며,
이 선을 지키는 힘이 사회의 성숙도를 가르는 척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선이 없는 집단이 있습니다.
그 기저에는 대한민국 특유의 권위주의적 서열 의식,
이른바 부정적 꼰대 문화가 자리 잡고 있습니다.
이 문화의 가장 깊은 병폐는 "사과는 패배"라는 왜곡된 인식입니다.
이들에게 세상은 상호 존중과 페어플레이의 장이 아니라,
나이와 진영으로 서열을 가려 반드시 이겨야 하는 전장입니다.
인생을 참 피곤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내 집단이 이기기 위해서라면 공동체가 합의한 최소한의 도덕도,
역사적 비극에 대한 공감도 수단으로 삼는 것을 서슴지 않는다니요.
이런 심리는 데이터로도 확인된다고 하네요.
공공재 게임 실험을 활용한 국제 비교 연구에서,
한국은 공동체에 기여하는 이를 자기 돈을 써서 공격하는
반사회적 처벌 지수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이례적으로 높게 나타났다고 합니다.
경제발전 수준에 비해 이 수치가 유독 높다는 점이 씁쓸합니다.
분노의 방향이 사회발전의 무임승차자가 아니라 협력자를 향하는 역설,
이것이 이 우리 문화의 고질적 문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일은 패배가 아닙니다.
오래전 해외에서 살 때, 다른 것은 다 잊어도 부러웠던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사소해 보이지만, 잘못에는 바로 사과하고 상대를 배려하는 언어적 습관이었습니다.
거창한 덕목이 아니라 몸에 밴 습관이었고, 그게 곧 성숙한 사회의 모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대한민국은 이미 전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서열주의와 진영 논리에 갇혀 공동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이들이 여전히 존재합니다.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면 다행이겠지만, 이 문화가 대물림된다면 이야기가 달라지는거죠.
그것이 유일하게 남는 미성숙의 흔적이 될까 우려됩니다.
더 성숙한 사회로 가는 길은 이기는 사나움이 아니라 인정하는 용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나이 든 꼰대 중 한명지만, 적어도 제 꼰대정신은 혼자 품고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다음 세대가 조금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조금 희망인 것은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들이 스스로의 퇴행을 증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과거보다는 사회 전체가 알아보기 시작한 것 같기는 합니다. 사회분위기가 그런 자들이
스스로 부끄러워 고개들지 못하게 하는 모습으로 발전하기 바랍니다.
본문에서 짚어주신 공동체의 최소한의 선을 넘은 집단에 대해 깊이 공감합니다.
말씀하신 '스스로 부끄러워하는 문화적 자정작용'의 시기는 이미 한참 지났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역사적 비극마저 진영 논리의 수단으로 삼는 이들에게 상식과 용기를 기대하기는 어렵기에, 이제는 법적이든 사회적이든 강제적인 제재가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씁쓸하지만 우리 사회가 더 성숙해지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엄중한 현실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됩니다.
말씀하신 강제적 제재, 저도 필요성은 공감합니다.
선의 기준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정해둘 필요가 있다고 보니까요.
다만 그 기준을 누가 정하고, 칼을 누가 휘두르느냐는 여전히 숙제입니다.
그래서 결국은 여론과 소비자의 선택,
그리고 부끄러운 것을 부끄럽다고 말하는 문화의 축적,
더 느리더라도 그 길이 더 안전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은, 제도는 칼을 쥔 쪽이 바뀌면 방향도 바뀐다는 겁니다.
쇠뿔도 당긴 김에 뽑으라고, 지금 상식적인 정부가 있을 때가 그 선을 만들 적기라고 봅니다.
대중은 생각보다 수동적이라 대세가 굳어지고 어느 정도 지속되면,
공동체 이익에 크게 반하지 않는 한 결국 따르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도가 문화를 만들 수도 있는 시기인 것 같기는 합니다.
그 이후 사법으로 재단합니다.
역사와 집단 지성의 가치 기준이 소멸하자,
일개 판사의 판단에 모든 걸 맡기게 됩니다.
종교가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공동체의 기여한 어른들은
꼰대라는 이름으로 공격당하면서 한국은
사법에 의존하는 국가가 된 겁니다.
법치국가와 사법국가는 다르지만 가치기준을
상실하면서 가장 쉬운 법을 선택한 거죠.
어쩌면 민주주의의 가장 큰 맹점이
집단적 가치 기준 상실이 아닌가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