찌그러진 얼굴
금은방에 놓인 깨끗한 거울에 누군가가 비친다.
거울 속 주인공은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표정 없는 남자다.
검은색 모자와 검은색 반팔, 그리고 회색 반바지를 입은 그는
화려하게 치장한 채 손님을 맞이하는 여사장과 달랐고,
두 명의 여성 손님과도 분위기가 달랐다.
그들은 구름 위에 떠 있는 듯한 표정을 띄고 있지만
그는 먹구름 속에 가려진 사람처럼 희미하게 보인다.
앞선 두 여성 손님을 기다리며 그는 의자에 앉아
로즈골드 빛 반지를 쳐다본다.
예전부터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잘 고른 디자인의 반지라 생각한다.
아내와도 무척 잘 어울렸다.
그는 반지를 금은방에 파는 일보다
그간 아내의 손가락에 껴 있던 시간이 적었다는 사실이 더 아쉽다고 느낀다.
출산 후 살이 찐 그녀는
그 이쁜 로즈골드 빛 반지를 더 이상 낄 수 없다.
애초에 정해진 수순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본다.
결혼식을 올리는 과정에서
급하게 살을 뺐던 것이었으니까.
어쩌면 임시 결혼 반지였고,
임시 인생은 아니었을까.
그는 시선을 오른쪽으로 돌려
자신의 손에서 뺀 무광 반지를 쳐다본다.
남자가 유광 반지를 차는 것은
어쩐지 게이처럼 느껴졌던 그였다.
거친 스크래치 속에
자신의 세월이 해리티지처럼 축적된다고 느껴왔다.
그런 그의 반지와도 이제 작별이다.
남은 게 뭐가 있나.
생각해보지만,
몇 푼 되지도 않는 결혼 반지까지 파는 상황에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이젠 무언가를 파는 행위 따윈
무감각해져버렸다.
처음이 가장 서글펐을 뿐.
그의 아내는
자신의 피아노였던 Yamaha S90 ES를 팔았을 때
그의 곁에서 울었다.
그는 로드 자전거인 Canyon Ultimate CF SLX Di2를 팔았을 때부터
얼굴에 그늘이 지기 시작했다.
그땐 몰랐지만,
아내는 그에게 죽상하고 있지 말라는 말을
그때부터 유독 자주 했다.
금은방은 원래 이렇게 유리가 많은 공간인가 싶은 생각을 하던 그는
창문 밖 햇빛과 로즈골드 빛을 함께 떠올린다.
쉴 새 없이 종알거리던 손님들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며 말을 건네는 사장의 눈은
이전보다 조금은 생기가 죽어 있다고 느낀다.
앞선 손님들을 응대하느라
그런 것이리라 짚어 넘긴다.
여사장은 반지를 들어 올린다.
반지를 보여주며 팔겠다고 한 남자는
약간 당황한다.
반지를 자른다고 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때까지 그는 금은방에서 무언가를 팔아본 적이 없다.
끝내 잘린 반지는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는 표식 같다.
특히 아내의 로즈골드 반지는
유광의 매끄러운 곡선이 돋보였으나,
잘린 반지는
날카로운 금속 단면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기에
그 괴리감이 더욱 도드라진다.
여사장은 아까와는 달리 재빨랐다.
어느새 가격 책정이 끝나 있었고,
그는 개당 20만 원 남짓의 현금을 손에 쥔 채
유달리 투명한 유리문을 열고 나간다.
그는 조수석에 불편한 자세로 앉아
운전석 반대편 창문만 바라본 채 지루한 시간을 버티고 있다.
그가 운전자에게 잘 보여야 할 이유는 없다.
불편하면 적당히 자세를 고쳐 앉으면 그만이고,
그와 운전자의 관계는 비즈니스 관계일 뿐이다.
‘핸드폰을 구매한 뒤 공기계를 넘겨주면 현금을 받는다.’
지극히 단순한 공식만이
그들의 관계를 지탱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쉬운 입장에 서 있는 것은
그와 아내다.
그는 약속된 사람을 만나러 가기 전
몰래 바지춤에 흉기를 숨겨 갈 생각도 했다.
의심 많은 그는
조폭이 나오는 건 아닐까 상상했고,
알 수 없는 경로로 자신들을 데려간다면
위기 상황에서 어떻게 탈출해야 할지 대략적으로 계산해봤다.
흉기가 없는 그와 아내는
무방비 상태로
그저 운전자의 운전에 모든 걸 맡길 뿐이다.
운전이 길어진다.
두 시간이 넘은 시점,
주택가에 내린 그들은 드디어 도착했다 생각했으나
다른 차로 갈아타야 하는 상황이었다.
말린 오징어처럼 웅크린 그의 자세는
걱정을 키우는 동작처럼 보이기도 했다.
‘핸드폰 하나 사는데 얼마나 멀리까지 가야 하는 것인가.’
‘아이가 도착하기 전까진 끝내야만 하는데…’
그는 웅크린 자세와 어울리지 않는 다듬어진 목소리로
언제쯤 도착하는지 운전자에게 묻는다.
운전자는 최근 통신사 개인정보 유출 사건 때문에
핸드폰 구매가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대리점마다 계속 연락을 돌리고 있다는 말만 할 뿐이다.
‘나는 어디까지 흘러가는가.’
그는 문득 아내의 표정이 궁금해진다.
하지만 고개를 뒤로 돌려 보기엔
몸이 말을 따르지 않는다고 느낀다.
휴게소에 도착한 그들은
각자 화장실을 다녀오기로 한다.
그곳에 즐비한 사람들의 표정을 바라보던 그는
미묘한 설렘의 감정을 엿본다.
어딘가 여행을 가는 사람들이라 생각한다.
‘설레겠지…’
그는 여전히 두근거리는 심장을 느끼며
순서대로 지퍼를 내린 뒤 소변을 본다.
가장 늦게 차량으로 돌아온 그는
차 안의 운전자와 아내의 모습을 보며 묘한 감정을 느낀다.
휴게소에서 느꼈던 가벼운 밀도의 공기가
어쩐지 차량 안에서는 높은 밀도로 느껴진다.
당연히 폐까지 들어와야 할 공기가
콧속 어딘가에서 막혀버리는 느낌이다.
도대체 언제쯤 도착할까.
도착할 그곳은 정말 핸드폰 대리점이 맞을까.
폰 화면 속 숫자를 멍하니 바라보며
그는 직장에서 함께 일하던 동료들과 상사들을 떠올린다.
‘그들은 한창 바쁘게 일할 시간이다.’
‘난 알 수 없는 곳으로 흘러가는 중이다.’
한때는 모든 것을 다 알 것만 같았던 그였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밤 11시 30분.
그는 아내와 아이를 차에 태운 채
집 근처 공원으로 향한다.
아이가 키운다고 했지만
사실상 그가 키우던 장수풍뎅이를
풀어줄 때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 공원의 제 2주차장에는
가로등 불빛조차 거의 없다.
그날 따라 자욱한 안개를 뚫고 가는 길에
아내는 별다른 감정 없이
툭 던지듯 말한다.
“우린 정말 특이한 것 같아.”
“이런 상황에 굳이 누가 이런 걸…”
그는 장수풍뎅이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왔다.
대단한 케어를 해준 것은 아니지만
인간의 욕심으로 좁은 통 안에 계속 가둘 수는 없었다.
공원에 도착한 그는
아이와 함께 자욱한 안개를 뚫기 위해 손전등을 켠다.
우거진 숲에 풀어주려 했던 당초 계획과 달리,
피곤함을 느낀 그는
공원 입구 화단에 장수풍뎅이를 풀어줘야겠다고 생각한다.
미처 챙기지 못한 곤충 젤리가 떠올랐지만
더 이상은 어쩔 수 없다.
그렇게 놓여진 장수풍뎅이는
캄캄한 어둠과 흐릿한 안개 속에서
어딘가 알 수 없는 곳으로 기어간다.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사진과 글, 그리고 영상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다른 작업들과 겹쳐보면 조금씩 다른 느낌이 생기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