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이면 제가 6살 때, 같은 전라도라도 워낙 낙후되어서 광주를 갈려면 3시간 반은 가야하는 곳에 살았습니다.
하지만, 3시간 반의 거리에서 그런 참혹한 일들이 벌어졌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아직도 소름이 돋고, 솟구치는 울분을 억누를 수 없을 거 같습니다. "계엄"이라는 명령 아래 군인들, 탱크, 소총들.. 그리고 길바닥에서 죽은 이들.. 참혹하게 죽은 이들..
정부에서는 감추었던 518 현장의 사진들은 전라도의 지역에서 돌아가며 사진전을 하였습니다. 차마 끔찍하고, 너무 슬퍼서 볼 수가 없었습니다. 과연 이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다고? 나랑 3시간 반 거리인 광주에서?
그후 87년 6월 항쟁이 일어나고 또 한몀의 안타까운 "이한열'열사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지방에서도 들끓었고, 중2였던 저는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에 데모 무리에 휩싸여, 처음 최루탄 가스를 마셔봤습니다. 눈물, 콧물, 쓰라린 고통, 옆에 형들이 얼른 치약을 눈밑에 바르라고 줘서 바르고, 어린 나이에 잘 알지도 못하는 "임을 위한 행진곡'을 막 따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군무정권 아래에서 일어난 이런 잔인무도한 폭정을 막기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희생되고, 다쳤습니까? 도망가면 잡아가서 패고, 대가리 꺠지고, 끌려가고..
'계엄' 이라는 말 그 자체의 무게감은 겪어본 이들에게 어마어마하게 무서운 단어입니다. 이 나라의 보수라는 사람들이 진정 국민을 지켜준 적이 있습니까? 그들이 자행해 왔고, 미국에 고마움은 있지만, 그렇다고 현시대에 굽신거릴 필요는 없습니다. 탱크의 무한궤도가 사람의 몸을 짖이기고 지나가고, 칼빌 총에 머리가 뚫리고, 과연 이것이 보수가 말하는 "계몽"입니까?
그렇다면 그대들을 지지하는 자들이 많은 곳에 탱크와 k2 소총을 장착하고, 계몽을 하러 꼭 가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클리앙 가입하고 글은 한번도 써본적은 없지만, 스타벅스, 멸콩 이 들의 518에 대한 아픔을 희화화하는 걸 보니 너무 눈물이 나고, 슬픕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과 한 나라에 살고 있다는 기분이 화도 나지만 같은 나라 사람이라는 데 너무 수치스럽기 까지 합니다.
소녀상의 비난 및 뉴라이트,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에 한 없이 답답하고, 너무 슬픈 현실인 듯 합니다.
"임을 위한 행진곡"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 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접기
광주시민들 그대들이 있어, 제가 지금 이렇게 그나마 나라다운 나라에 살고 있나봅니다. 부디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
그들의 조롱 섞인 행태에 분노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