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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일본 무사들과 서양의 기록을 보면 대략 감이 오지 싶습니다. 2

1
2026-05-18 22:32:21 수정일 : 2026-05-18 22:53:37 122.♡.56.205
천문공

지난 글에서 제가 왜군의 풍부한 실전 경험이 가장 강력한 무기라고 한 지점과 맥을 같이 하는 글입니다.


병사 하나가 전장에서 수십명을 베었을 정도라는 기록이 과장이라는 말은,

왜군이 강하지 않다.. 라는 말이 아닌데, 굳이 강했다 라는 댓글을 보게 됩니다.

검날의 내구, 방어구, 피, 체력 등등 여러 이유를 적어 두었는데 말입니다.


상대적인 기록도 여럿 같이 살펴봅니다.


임진왜란 직후 사무라이 출신 낭인들이 남중국해 일대에서 서양 해적과 부딪힌 기록이 있습니다.

해적 존 데이비스는 임진왜란 후 일이 부족해 낭인이 된 이들이 많은 왜구의 배를 나포했으나

무기를 압수하지 않은 실수로 백병전이 벌어져 양측 모두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입게 되었는데,

그 때의 기록을 살펴 보면, 왜구에 대해 생포 되지 않으려 하는 잔인하고 필사적인 자들이라 묘사합니다.

일도양단과 같은 허무맹랑한 소리는 없지만 사지 정도는 자를 수 있는 위력이라 기록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도 엿볼 수 있는 것은 약간의 과장입니다.

사지를 절단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서양 해적들은 방어구를 믿고 레이피어로 찔러 들어 오는 전술에

고전하였다는 다소 다른 기록이 나옵니다. 결국 궤멸적 타격을 입 왜구 대부분은 배와 함께 수장됩니다.


여기서 엿 볼 수 있는 것은 경험입니다.

검술이라는 것은 무기와 연동 되어 있고, 그것을 운용하는 검리 또한 동반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여러가지 차이가 있었지만, 그 중 실전 경험의 차이가 가장 컸다는 것입니다.

그런 왜군 출신 낭인들조차 생소한 레이피어 전술에 고전하다 수장 됩니다.

그렇다고 서양 해적들이 압도한 것이 아닙니다. 선장 존이 죽을 정도로 큰 타격을 입었습니다.


나포하고 방심하다 백병전이 벌어졌던 일화입니다.


비슷한 시기 에도막부의 기록에도 비슷한 평가가 나옵니다.

당시 서양 검술을 본 막부 기록에는

무기로서의 무게감이 느껴지지 않고 뱀이 대가리를 흔들며 독침을 쏘는 것과 같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어떤 쪽이 더 우월했다기 보다는 경험이 풍부한 쪽 대비

경험이 없는 쪽에서 느끼는 공포가 컸을 것임을 짐작케 합니다.


이러한 상대적 대비를 고려해서 보아야 한다는 것이 제 생각이고,

임진왜란 당시 기록 일부는 상대에 대한 무서움을 표현하기 위한 과장된 기록이었을 것이라 보는 것입니다. 

강하다는 것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표현에 있어서 인간의 체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비슷한 사례는 여럿 있는데, 모두 왜군의 강함을 묘사합니다.

그러나 강하다는 것이지 그로 인해 압도당해 패배했다는 내용은 아닙니다.


공통점은 죽음을 불사하고 파고드는 대담함과 잔인함인데,

스페인의 정예 강습 보병 테르시오가 왜구 토벌을 위해 나서게 되고 백병전이 벌어지게 됩니다.

테르시오의 장창을 붙잡고 창날을 잘라내며 백병전으로 밀고 들어 왔다는 표현이 있습니다.

중보병 장창과 한손검을 쓰는 테르시오와 카타나를 쓰는 왜구의 대결에서

경험이 풍부한 왜구가 토벌을 위해 나선 정예 보병을 상대로 선전을 했지만,

역시 정예 보병의 다양한 준비성에 밀려 토벌 되고 맙니다.

측, 스페인군은 왜구의 강한 기세를 접하고, 창, 칼, 머스킷의 준비성으로 제압하게 됩니다.


프놈펜에서의 일화 역시 기록의 내용은 왜군들의 생소한 전술,

대담함 등에 대한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1605년 캄보디아 왕실은 왜구 용병단과 서양 기사용병을 고용하고 있었는데,

이들이 부딪힘의 결과는 어떠했을까요.

왜군 못지 않은 경험과 다양한 전술 무기가 준비 되어 있던 서양 기사쪽의 승리였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을 보면 초반 맞부딪힘에서...

무서운 기세로 몰아 부치는 일본 무사들의 모습은

서양 검사들을 압도하는 것처럼 보이게 합니다.

여기서 경험이 부족하고 준비가 덜 되어 있을 경우 상당한 피해와 함께,

승패를 가를 순간이 될 수 있었겠지만,

서양 용병들은 상대의 기세를 보고 앞서의 사례처럼 요새와 선박에 거치된 포 및 여러 전술을 응용하여,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기록에는 상대의 기세 및 생소함에 대한 과장이 늘 필연적으로 따라 붙게 되어있고,

실제로는 백병전 당시 서양 기사가 죽은 것은 10명 이상 정도로 되어 있으나,

왜구 역시 비슷한 사상자가 나오다 결국 총포에 의해 60명 이상의 왜구가 궤멸당하게 됩니다.

왜구가 단숨에 총포를 활용하기 전의 기사들을 수십을 순식간에 베고 ...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기세에 대해서는 강하게 묘사했던 것입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필리핀 카가얀 전투인데,

왜구 약 600~1000명 가량의 대규모 집단이 스페인 정규 해군 보병 40명에게 패배한 기록입니다.

재미 있는 점은 여기서도 비슷한 맥락의 백병전 기록이 있습니다.

즉, 왜구는 장창을 상대할 줄 아는 경험이 흔히 존재한다고 추정해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상대적으로, 왜구 또한 카타나의 베기 공격이 통하지 않는 스페인군의 방어구에 놀라게 됩니다.


종종 전투마다 다른 양상이 벌어지기도 하는데, 기사와 전투를 벌여 본 경험이 있거나

갑주 검술에 능 사무라이는 서양 기사들에게도 똑같이 써먹기도 했지만,

이러한 경험이 없거나 부족한 경우의 양상은 미묘하게 달랐습니다.

무장이 충실한 기사들에 의해 왜구는 추풍낙엽이 되어 쓰러집니다.

단 몇명의 전사자만 기록한 스페인군과 달리 왜구는 약 1/3 가량인 2~300명 가량이 사살 되었다고 기록 됩니다.


재밌는 점은 이 기록 역시 과장이라는 점입니다.

파블로의 보고서에 적힌 숫자는 그러니까 전쟁 중에 벌어진 일에 대한

각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과장을 하게 되는지 보여줍니다.

실제 전투에 능한 일본 무사의 숫자는 100명 가량으로 본다고 합니다. 나머지는 숫자도 과장이고, 무사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는 인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과장 외의 축소도 있었는데, 스페인 정규군 외의 사상자들은 기록에서 제외한 것입니다.


이렇게 상당한 수의 기록은 교차 체크해야 하는 것이고,

이렇게 체크해도 다 알 수 없는 대목들이 있으며,

동서양을 막론하고 과장된 기록은 늘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당시 스페인군 지휘관과 일부는 최고급,

그외 대부분의 스페인군인들의 무장 상태는 하프플레이트, 머스키티어 아머였고,

카타나는 이 방어구에 속수무책이었습니다.


일도 양단할 기세였다면 머스킷티어 아머 정도는 가를 것 같지만...안 된다는 것입니다.


요는 이렇습니다.

준비성, 경험 이것에 주목해서 기록을 보아야 한다는 것이고,

다소 과장된 표현이 적인 기록에서조차 실제 어떠했는가에 대한 흔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 기록을 살펴 보면,

앞서 여러 번 적었지만 

풍부한 실전 경험으로 단련 된 왜구들의 담대한 실전 전술, 악과 깡, 장창 등에 대한 대비 훈련 여부 등을

짐작할 수 있게 합니다.

다만, 상대가 아주 초라한 경우가 아니라면 완전히 압도할 순 없었다는 것입니다.

즉, 일본군의 무서운 기세는 공통적으로 드러나지만 승패는 거기서 결정 되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고,

그 무서운 기세로 인한 좁은 결과만 보더라도 상대 역시 풍부한 경험이 있다면,

기세를 앞세운 왜구에게 일시적으로 밀린다 해도...그렇게 큰 격차가 아니었으며,

엄청난 무언가는 없었다는 것입니다.


임진왜란 이전부터 전쟁을 준비한 장군들이 있었습니다. 아무런 방비가 없었다는 것은 잘 못 전해진 것입니다.

그런데, 워낙 속수무책으로 왜군에게 당했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단지 왜군이 강해서 그러했을까요.

전 아니라고 보는 입장입니다.

강해서만이 아니라 강하면서 경험이 풍부했기 때문이라 보는 것입니다.


정리하면, 

왜군 또는 왜군 출신 왜구들은 강했고, 여러 기록에서 강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아니라고 부정하는 기록은 보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을 접한 이들이 남겨 놓은 일부 과장된 표현을 일일이 진실로 받아 들일 필요는 없다는 말입니다.

특히 아예 말이 안되는 그런 일부 과장들 말입니다.

천문공 님의 게시글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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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
아테나GT
IP 223.♡.227.38
05-18 2026-05-18 23:36:10 / 수정일: 2026-05-18 23:37:35
·
평생 싸움만하던 집단인데
잘싸우는게 당연하겠죠.
전국시대 쯔음엔 싸우는걸로 먹고사는 집단이었으니
영국해적만큼 잘싸웠겠죠.

우리야 농사꾼들이 임시군인이었고
고려시대 무인들 사병들은 사무라이급 되지않았을까 싶네요.
컴구조
IP 58.♡.189.231
05-18 2026-05-18 23:43:40 / 수정일: 2026-05-18 23:48:55
·
제대로된 갑주를 입은 조선 무장은 그들에게도 경외가 될 정도였습니다. 송상현이나 정발의 경우를 보면 알죠. 황진도 그렇고..
두정갑 자체가 활이나 웬만한 창검으로는 단번에 제압이 안되니까요. 게다가.. 무과 시험보려고 10여년을 무예 연습한 사람들이라서..
갑주 걸치면 제아무리 전국시대 거친 사람들이라고 해도 일반 병졸들이 조선 무장에 대적할 수준은 아니죠.

기본적으로 임진왜란의 경우 사실상의 기습에.. 초기 정예병의 숫자에서 발린거고.. 또 군이 적의 집단군에 각개격파 당한 거라서..
신립의 경우는 솔직히 멍청한 제승방략(制勝方略) 체제로 인해.. 오합지졸로 답이 없으니.. 그냥 배수의 진을 치고 사실상 죽음을 각오한거고..

이후 보면.. 이치전투 같은 경우를 봐도 황진은 그냥 권율의 명에 의해 쌍칼(일본에서 구입했던 일본도 -_-;; ) 휘두르며 별동대로 일본군에 돌진합니다.

이 백병전을 일본군이 당해내지 못했죠. 심지어는 일본군들이 황진을 포위해서 공격했는데도 황진에게 썰렸습니다.
칼싸움으로는 답이 없으니 조총 일제 사격으로 황진을 부상입히고 저지하죠.

노비 출신무장인 한명련(韓明璉)의 경우는 정말 칼 잘쓰기로 유명했죠. 오죽하면 장군들이 서로 데리고 가려고.. 난리..
7년 전쟁 동안 조선군도 적응했고.. 전쟁에는 칼이 아니라 창과 화기, 활이 주로 전쟁을 결정지었죠.

기본적으로 조선 사람들이 당대 일본인들 보다 덩치가 커서.. 싸움에 적응하면서는 그리 밀리지 않았을겁니다. 리치가 중요하죠. ㅋ
애초에..칼싸움 벌어질 일이 생각보다 별로 없죠. 또 당시 조선 사대부들은 전부 활은 기가막히게 다 잘쐈죠.
조선 사대부 여인들까지도 활은 잘 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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