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전혜린은 헤르만 헤세로부터 편지를 받는다.
편지 받고선 일기를 쓴다.
출판 의도가 없던 일기는 결국 출판되어 세상으로 나온다.
한달 전,
나는 데미안을 두번째로 읽는다.
20년 전에도 느꼈지만 다시 느낀다.
모든 작가를 통틀어 헤세가 가장 뛰어나다고.
그의 예술성을 생각하면 난 범부라 느끼지만 그의 섬세함과 예민함은
왜인지 나를 위로해주는 느낌이다.
13일 전,
처가댁에 아내가 보관해둔 전혜린 에세이를 본다.
두번째로 그 책을 읽는다. 여전히 그녀의 고통이 생생히 느껴지는 강렬한 글이라 느낀다.
어느새 그녀와 나는 아래 문장에서 잠자리를 가진다.
드디어, 나는 불륜을 벌인건가.
나는 모든 피상적인 것을 증오한다.
나는 모든 경박한 것을 증오한다.
...
모든 철면피한 것, 둔한 것, 무례한 것, 조야한 것, 소란하고 시끄러운 것 등등을 나는 증오한다.
사랑이란 두 영혼 사이의 지속적인 대화이어야 한다.
전혀 영혼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 정신적인 것, 순수한 정신을 나는 추구한다.
창백하고 순수한 달의 그 무감각한 냉정을 나는 갈망한다.
나는 끈끈한 것, 숨이 뜨거운 것, 야비한 것, 친숙한 것을 증오한다.
나는 평범한 것을 증오한다.
...
모든 유동하지 않는 것, 정지한 것은 퇴폐(Dekadenz)다.
...
깊은 감정이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을 나는 증오한다.
피상적이고 자신에게 진지하지 못한 사람들 ... 파스테르나크가 묘사했듯이 '공공연한 의태에서 생겨나서 인생을 감각의 연쇄로 보는' 사람들을 ...
...
일상 생활의 평면성이, 내용 없는 인간들이 나를 질식시킨다. 나를 절망 속으로 몰아 넣는다.
...
학교 점수는 아이의 장래에 대해 말해 주지 않는다. 그것은 부모들의 우스꽝스런 허영이다. 그것을 나는 증오한다. 나도 초등학교 졸업 때까지 부모의 허영심을 만족시켜 왔다. (일부 생략) 나는 차라리 성경이나 요가를 공부했어야만 옳았다. 혹은, 재능이 있다면 그림을 공부했어야 했다. 난 내 아이에게 좋은 점수를 받으라고 결코 요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부모들이 할 수 있는 가장 비열한 짓이다. 대부분 가장 그럴 만한 자격이 없는 부모들이 특히 그런 짓을 한다.
...
아, 나는 인간을 매우 잘 이해할 수 있겠다. 그들은 돌로 머리를 쳐서 자살을 하지 않도록, 어떠한 미혹이 무조건 필요하다. 종교와, 술과 사랑과, 혹은 일종의 자기 찬미가, 생이 살아갈 가치가 있는 것처럼 자신을 미혹시킬 수 있기 위하여 필요한 것이다.
파스칼(Pascal)도 불안을 가졌었다. '무한한 공간의 영원한 침묵이 나를 불안에 떨게 한다.'
그렇다. 이 침묵이 사람을 미치게 만든다. 미래 앞에서의 이 무지. 무엇 때문에, 정말 무엇 때문에 우리는 태어난 것일까?
'하나의 식물이 자라듯 맹목적인 우연(blinder Zufall)' 이 외에 어떤 이유가 있을까?
...
머리가 몹시 혼란하다. 내 자신이 몹시 낯설고, 버림받은 느낌이다. 나는 인간을 더 이상 이해할 수 없다. 모든 사람에게 나는 묻고 싶다. 당신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냐고, 피안의 소망(Hoffnung des Jenseits)을 가지고 있느냐고, 인생이란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믿느냐고 ... 나는 모든 사람에게 솔직히 대답해 달라고 묻고 간청하고 싶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스스로 체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죽음이 없는 것처럼 그렇게 행동하지 말라고. 원컨대 죽음의 생각을 회피하지 마시길! 죽음은 매일같이 점점 가까이 우리를 향해 다가와서는 끝내는 우리를 삼켜버릴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시기를!
제발, 우리 함께 그것에 대한 방편을 숙고해 보자고! 서로 서로 돕자고 ...
...
인간의 사고는 단절된다. 그렇지 않다면 배겨내질 못하는 것이다. 사고를 멈추지 않고서는 가스 마개(Gashahn)를 돌리거나, 목매어 죽을 것이다. 죽음이 모든 것을 질식시킬 때까지 이 조그마한 생을 살아내기 위하여 인간의 사고는 단절되어야 하는 것이다.
사물을 근본에까지 사고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가능한 한 피상적으로, 가능한 한 지엽적인 것, 공허한 것, 진부한 것을 사고해야 하리라.
죽음에 대한 생각을 마비시킬 수 있기 위하여.
그렇지 않고서야 살아내지를 못할 것이다.
인간이 동물화하면, 그것이 이상적이리라. 인간이 더 사고할 수 없게 된다면, 그게 낙원일 것이다!
...
아이는 내 몸 안에서 매우 힘차게 태동한다. 그것이 몹시 싫다. 아이는 벌써 빨리 세상을 보자고 이젠 보챈다. 그러나 도대체 인생이란 살아갈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일까? 사랑? 기막히게 빨리 사라져 가는 달콤한 꿈과 환멸에 불과한 것이다. 하루하루는 위대한 사랑을 죽여 버리고 하찮은 사랑을 묵살한다.
...
밤중에 자주 내 가까이에서 죽음을 느낀다. 그리고 나는 전율한다.
나는 죽음에 대비하여 내 몸을 보호하고 내 마음을 돌린다. 그러나 죽음은 언제고 되돌아온다.
내가 허심 탄회하게, 분별을 가지고 생각해 볼 때 지금 죽거나, 20년 후이거나, 30년, 혹은 50년 후에 죽는다 해도 결국 마찬가지다.
꼭 같은 것이다.
...
손가락 사이로 흘러 떨어지는 모래, 시간, 햇빛 ... 이런 것 이상의 아무것도 아닌 육체, 그러나 그것의 미가 얼마나 우리를 현혹케 하는 것인가.
...
몇 겹의 고독이 나를 에워싸는지 모른다.
찰나에만 가능한 이해나 찬미나 친화력 ... 그에 뒤따르는 보다 강한 고독의 쓴 맛, 사람은 결국 '고독한 존재'인 것을 생이 나날이 나에게 가르쳐 준다. 따라서 우리는 대인 관계에 있어서 욕심쟁이어서는 안 된다. 고독을 초극시켜 준 것 같이 느낀 일순간을 우리는 언제나 감사해야 한다. 그 뒤에 온 공허나 허무감은 인간의 던져져있는 상태에서 온 본연의 감정이지, 누구의 과오나 악의는 아닌 것이니까.
...
우리의 고독은 그러니까 '마음의 전달'이 불가능한 데서 나오는 불안과 회의에 싹트는 것이다. (이하 생략)
고귀한 순간, 가득 찬 순간이란 자기 의식과 타자 의식이 완전히 융합되어 하나가 된 '대자 즉자 존재'의 상태인 것이며 어떤 의미로는 'Fata Morgna', 환상(Illusion)에 불과한 것이다. 그 순간만이 바랄 가치(Erstrebenswert)가 있고, 그 순간은 포착되고 응결될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생의 가치의 전부인 것이다. 마치 생 그 자체처럼 허무한 ...
헤세의 그것은 내 뇌 구멍에 깊숙이 박혔고
내 그것은 전혜린의 심장 구멍에 깊숙이 박혔다.
그로부터 6년 후,
전혜린은 서른한살에 자살한다.
그로부터 13일 뒤,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작업합니다.
사진과 글, 그리고 영상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blinder Zufall은 들어봤는데...
어릴 때? 읽었는데 참 강력했던 인상,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우연히 전혜린을 좋아하는 사람을 알았는데요,
그분이 피아노를 치던 분이셨죠.
그분의 넓은 지식 덕에 대학때 교양수업 시험을 잘 봤어요.
요즘 가끔 예전일이 생각나네요.
애들도 다 크고 이젠 즐거운일이 안생기다보니
과거만 떠오르나봅니다… ㅎ
어느덧 요절한 작가들보다 나이가 들었네요….
각자의 오래된 감각들이 댓글로 이어지는 느낌이 묘하네요.
그리고 오타 지적 감사합니다. 수정했습니다.
제 취향에ㅜ맞는 작가였는데
아직까지 기억에 오르 내리는 군여
암튼, 그게 일제 강점기 시절이라 부친이 친일파 였다는 이야기죠.
정확한지? 확실치는 않는데, 대략 맞을 겁니다.
부친이 어쨋던 감수성 높은 당시 대단한 작가임은 틀림 없죠.
자살의 원인도 제가 아는게 확실치는 않으나 당시 시중에 손가락질 받기 좋은 사유였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