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근접전에 강했던 것은
조선군에 비해 평균적으로 왜소한 체구임에도 불구하고,
단연...풍부한 실전 경험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 격투기의 예
현대 사회는 과거 글로만 보던 것에서 벗어나
실재하는 현상을 직접 목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잘 먹고 잘 훈련하여 엄청난 체력을 소유하고 있는 격투가들도
몇분 단위로 뛰고 쉬고를 거듭하지 않으면 금새 녹초가 됩니다.
그 시간 내내 생사를 오가는 것이 아님에도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 갑주와 칼
왜군 모두가 풀 방어구를 착용한 것은 아니나 기본적인 방어구를 착용한 상태에서
전투에 임했을 때 칼이나 창을 휘두르게 되었을 때.
위의 격투기의 예 보다 훨씬 더 빠르게 체력이 소진 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 단 칼에 양단 설
지난 번에 다룬 ... 오늘날의 칼 보다 낮은 성능의 칼로,
영화나 게임에서 보듯 일도양단이 가능한 것처럼 과장 된 기록이 있듯,
일반 병사도 수십명을 베었다는 식의 묘사는 과장일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 수많은 전쟁기록들
유럽의 많은 전쟁 기록을 보면 수 천명 단위, 수 백명 단위의 전쟁 기록들에서
그 중 10~20%만 죽고 물러나도 대패가 되고,
또 후퇴 할 때 주로 사상자가 몰립니다.
전투 지속시간이 몇 십분 일지 몇 시간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병졸이 적군을 수십 명씩 벤다는 것은 애초에 성립이 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 추정
여기서 추정해 볼 수 있는 것은 조선 군 중 훈련 경험 자체가 없거나 거의 없는 경우,
농민군인 경우...상대적으로 도망을 치거나 방어구 및 무기가 너무 부실한 경우,
오합지졸의 특성상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못하고 뿔뿔히 흩어질 때
일방적인 학살을 당한 케이스가 있을 수 있습니다.
지극히 제한적인 상황이어야 했지만 당시 급조한 케이스에선 꽤 높은 빈도였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한 사람당 수십명... 불가능하다고 생각됩니다.
또 다른 케이스도 있습니다.
대응하지 못하는 대상... 예를 들면 부실한 무기라도 들고 집단으로 대적하는 경우가 아니라
무방비한 어떤 마을에 들이닥쳐 일방적인 학살을 하는 경우입니다.
이 때는 전장의 긴장감이 상대적으로 덜하고, 연속적인 전투가 아니므로 수 십 명이 가능합니다.
# 무기의 물리적 마모.
즉, 날의 무뎌짐 또는 파손입니다.
아무리 부실한 군이라고 하더라도 아무런 무장이 없는 농민군이 아닌 이상은
기본적인 방어구는 갖고 있었다고 볼 때,
인간의 단단한 뼈 위에 방어구가 있을 때
과거의 칼날은 뼈에 한 두 번만 부딪혀도 이가 나가거나 휘어집니다.
또한 전투가 반복 되어 아무리 중간중간 수선한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지방과 피가 칼날에 묻으면 마찰력이 커져서 더 이상 물체를 베는 것이 어렵게 됩니다.
창의 경우는 그나마 조금 나은데,
과장 된 기록은 대개 창이 아니라 칼로 베는 것을 묘사하므로,
더욱 말이 안되는 이야기라 볼 수 있습니다.
일본도가 아무리 예리하게 제련 되었다 하더라도 수십 명의 뼈와 갑옷을 베어내기 어렵습니다.
과장 된 말을 보태기 위해 하는 또 다른 말은
바로 손목을 베었으니 가능하다고 하는 주장입니다.
애초에 사람의 체력이 그렇게 될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기에 하는 생각일 것입니다.
# 전장의 현실
1대 1로 서서 차례로 상대를 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아군 한 명을 서너 명이 반대의 경우도 있으며, 활과 창이 오가는 전장에서,
아무리 검술이 뛰어나도 두 세 명에게 포위를 당한다면...
시야의 한계 및 방어 반경의 제약으로 인해 제압 당하기 쉬우며,
설사 엄청난 검호라 할지라도 심적- 체력적 소모가 상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 결론.
현대 격투기를 그렇게 보면서도 현실과 동떨어진 일이 과거에 있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컨텐츠를 만드는 경우가 종종 보입니다.
가능하지 않은 과장된 일이라는 것이 제 주장입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왜군의 실전 경험 대비 조선군은 한참 모라잤기 때문에,
군 전체의 사기 면에서도 실전 상황에의 대처 등에 있어서
초기에는 많이 밀렸고,
나중에 나아졌어도 근접전에서는 어려웠습니다.
황진 장군의 경우도 특별히 키운 궁수 집단을 통해
지상전과 수성전에서 승리한 케이스로,
어지간한 정예들로 구성 되어 있어도 칼질만으로는 왜군을 상대하긴 어려웠습니다.
본문의 요지는... 과장이라는 것 뿐입니다.
부녀자를 무자비하게 죽였을겁니다.
동래성 해자에서 나온 유골만봐도 일반인을 죽여서 해자를 메꾼후 동래성을 함락시켰으니까요
당연합니다.
당연해서 서두에 풍부한 실전 경험.... 때문에 잘 싸웠다 정도로... 정리하고,
다음 주장을 이어갔습니다.
잘 싸우는 것과 본문 내용은 무관해서요.
양측 정확한 숫자를 추정키는 어렵지만, 이성계의 사병인 기별초가 중심이 되어 싸웠을 겁니다.
옆의 관군은 그냥 숫자만 보태는 정도가 아니었는지? 싶네요.
기별초의 최대 인원이 2천명 정도이니, 대략 1천~1천 5백이었지 않겠냐? 싶고....
왜놈은 대략 만명은 넘었지 않겠나? 싶네요.
왜놈이 그 길로 개성까지 가자는 말까지 나왔고, 말을 1200마리 노획했다고 하니, 왜군 기병도 상당 강했으리라 봅니다만....
만명인지? 만명이 넘는지 알수는 없으나, 살아 돌아간 왜놈이 70명인가?
싹쓰리 도륙 당했다는 말이 적합하겠죠.
훈련이 아주 잘되었다는 일당백의 기별초이니....
대략 일당 10을 물리 쳤다는 말이고, 도망 다니는 왜놈의 울음 소리가 산을 진동했다네요.
기별초 출동의 고동으로 만든 나팔, 이게 뭐더라?.... 암튼 고동 소리만 들으면 상대는 벌벌 떨수 밖에 없었겠죠.
명나라에는 왜군 하나 제압하려고 여러명이 달라붙는 전법두 있었죠
조선은 나태해진거고
대한민국 국군도 역사를 되새김질 하면서긴장해야합니다
엄청 강했던 것이 맞습니다. 아니라고 한 적은 없어요.
다만...몇 가지 기록이 과장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신체 구조상, 검날이 버티지 못하는 등
이유를 적어놨습니다.
강하지 않다는 말은 없어요. 강해도 안 되는 건 안되는 거라는 것입니다.
맞습니다.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그런 양상과는 많이 다릅니다.
적절한 말씀이십니다.
조선보다 긴 칼을 사용하며
주로 조선군의 손목 발목을 노렸다는 기록이 있어
칼과 칼이 맞부딛치는 사극장면과는 달랐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