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아버지의 발자취를 찾다보니 클리앙에 흘러오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는 사회적으로는 유능하고 식견이 뛰어날지라도 가정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중학교 1학년때 집을 나간 아버지는 몇년에 한 번씩 연락이 오곤했지만 평범하지 않은 아버지의 모습은 만날때마다 너무도 자리가 불편했습니다.
아버지는 본인만의 방식의 삶을 살아가고자 했고 그 자리에 가족들은 없었습니다.
학창시절부터 민주화 운동에 심취한 아버지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장남의 이름을 지었고 둘째는 민주주의의 향이 나기 시작한다고 제 이름을 지었습니다.
저는 그래서 어릴때부터 정치와 제 이름이 너무 싫었습니다.
세월이 지나고 아버지가 응급실에 있다는 소식을 들어 5시간을 운전하며 병원을 달려가니 의사는 저와 형에게 연명수술을 하지 않을 거에 대한 서명을 쓰라고 하더군요
비록 부모와 자식간의 정은 없었지만 아버지의 늙은 얼굴을 바라보면서 눈물이 펑펑 나왔습니다.
아버지의 생사를 저와 형이 결정해야된다니 너무 무섭기도하고 서글프기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기자출신이었기 때문에 장례식장에 예전에 일하시던 동료분들이 찾아와 아버지의 그동안의 삶을 여쭤봤지만 부끄럽게도 저는 아무런 답을 할 수 없었습니다.
담배를 피고있는데 기자분 중 한 분이 말씀하시더라구요
아버지를 너무 원망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대단하신 분이었고 선구자였다고, 조중동이 모든걸 휘어잡던 시절에 선경 출신으로 해외사업을 경험하면서 언론의 미래는 신문이 아니라 인터넷이라고 느꼈고 민주주의를 위해서는 PC통신을 만들겠다는 신념하에 모든걸 쏟아부었다고
어렸을때 거의 주말에만 집에서 얼굴을 뵐 수 있기 때문에 뉴스를 틀어놓고 피곤한 표정으로 소파에서 잠든 아버지의 모습이 기억납니다.
어렸을때는 평범하지 않은 모습의 아버지와 살갑게 놀아주지 않는 아버지의 모습이 원망스러웠지만 나이가 좀 드니 아버지의 삶이 조금 이해가 갑니다.
더불어 부고 소식에 위로해주신 100명의 클리앙 분들 아버지에게 효도를 못한 못난 자식으로서 대신 감사드립니다.
술기운인지 제가 약해진 것인지 아버지가 그립네요
현재 아프리카티비(SOOP)의 전신이 나우콤이 맞긴하지만 창업자이신 저희 아버지의 기억은 지워져있습니다.
포털로 넘어가던 시기 나우콤은 제 기억으론 두루넷의 자본이 필요했었고 이 과정에서 경영권을 뺏기신걸로 알고있습니다.
아마 이 글은 지울 것 같습니다.
공감을 하는 것도 조건이 있네요 'ㅡ';;
너무 개인사를 이야기한 것 같아서 글은 조금 있다가 지우고자 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매우 어린 나이라 나우누리로 커뮤니티나 동아리 활동은 못했지만
아버지의 계정으로 종량제 게임을 했던 추억이 있습니다.
더불어 모뎀 쓴다고 전화가 안와서 어머님께 등짝을 맞았던 기억이 있네요^^
유년기 수 년을 나우누리와 함께했죠
찾아보니 나우누리 창업자분 자녀신가 보군요
아버님 덕분에 10대 20대때 좋은 추억 가지게 되었습니다
부고 소식은 이 글을 보고 알게 되서.. 뒤늦게나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채팅도 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밍 정보도 얻고 여가시간에는 바둑도 두고 머드 게임도 했었죠.
하이텔도 천리안도 있었지만 정들여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던 추억의 공간이었습니다.
그리운사람들님께는 나우누리가 경쟁관계였겠지만 저에게는 추억만 남은 공간이군요.
아드님께 대신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씨앗을 심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버님께서는 당시 다른 통신사와는 다른 철학으로 국내의 온라인 문화의 성숙에 큰 족적을 남기신 분입니다. 동호회 지원 정책 덕분에 저도 나우누리 시절 모임을 참가하고 운영하면서 많은 지원을 받았고, 오프라인 모임의 활성화를 통해 저변이 확대될 수 있었습니다.
저도 아드님께 대신 감사 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뵐 일은 없었지만 동시대를 지나며 선경건설, 한경 뉴미디어국과 접점이 있었고
나우누리에 대한 좋은 기억이라 늦었지만 가족분들께도 좋은 일이 많기를 바라겠습니다.
돌아가신 아버님대신 아드님께 대신 감사드립니다
비록 아버님과 많은 시간과 추억을 쌓지 못하셨어도
아버님덕분에 추억을 잔뜩 만든 저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물론 천리안, 하이텔도 있었지만 나우누리가 가장 규모가 컸던 걸로 기억합니다.
저도 열심히 활동했고... 지금 제 아내와도 각자 귀가후에는 나우누리 채팅을 이용했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나우콤에서 이직해온 직원들도 꽤 있었구요.
한 분의 말을 빌자면, 꽤 오픈되어 있는 조직이었다더군요.
(특별상여금이 나갈때, 본인의 별도 통장으로 받을지, 현금으로 받을지도 선택할수 있게 해주기도 했다는...)
아마 그분이 글쓴님의 아버님을 아실 것 같네요.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기운내세요.
지금의 와이프도 나우누리를 통해서 만났고,
20대에 나우누리가 없었다면 저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해봅니다. 고맙습니다.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저는 나우누리를 안 써서 그에 대한 추억은 없지만 불알친구는 인생에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아직도 그 때 인연을 끈끈하게 이어 가는 걸 보면, 나우누리가 그리고 아버님이 세상에 뿌리고 간 게 많은 것 같네요. 그 선한 영향력에 감사 드리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보통 사회적으로 사명이 큰?분들이 가정에까지 충실하긴 너무 어렵더군요......
나우누리의 찬우물 통해서 많은 의견을 나눌수 있고 오프모임도 활발했었죠. 넓은 세상을 바라보는 창구와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때의 형, 누나, 동갑내기들, 동생들은 이제 다들 잘 살고 있겠지요. ㅎㅎ
go c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