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주노초파남보 세상
어느날 명문대학교의 학생이 공원에서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학생의 부모와 언론사는 미디어에 명문대생임을 무척 강조한다.
명문대생 죽음 = 백
사람들은 나라의 소중한 인재가 사라졌음을 한탄하며 고결한 명문대생의 죽음을 애도한다.
외모까지 뛰어난 그 학생의 과거 사진 중 밝게 웃는 모습을 대중에 공개한 순간, 그는 그 어떤 것보다 밝고 투명한 흰색이 된다.
그 날 같은 시각 같은 곳에서 흔히 지잡대로 불리는 학교에 다니는 학생은 투신 자살로 생을 끝낸다.
그 학생은 고아원 출신에 절도까지 벌인 적이 있는 범죄자다.
범죄자 = 검정
자살이 너무 흔한 나라 속 미디어는 관심을 갖지 않았고, 극소수의 기사만이 조용히 표류한다.
몇 개의 조롱성 댓글과 함께.
미디어에 노출된 그 사진엔 명문대 훈남과 여성이 손을 잡고 있으며 연인으로도 보인다.
사랑꾼의 이미지까지 더해진 그는 대한민국 남녀노소 모두에게 이젠 빛 그 자체다.
사진에 찍혔을 당시 미성년자였던 여성은 이쁜 얼굴을 가졌으며 몸매도 성숙했다.
그는 미성년자란 점이 걸렸지만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진심이라 믿으며 그녀와의 정신적 육체적 교제를 이어간다.
그리고 그 일은 그의 주변에서 무용담처럼 소비된다.
죽기 두달 전의 지잡대생은 50대쯤 되어보이는 술에 취한듯한 아저씨가 길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곤 불현듯 자신의 아버지를 떠올린다. 얼굴도 모르면서. 그 아저씨가 온전히 집에 들어갈 수 있게 말을 걸어보고 상체만을 일으켜 세운 뒤 유심히 얼굴을 뜯어본다. 주변을 살피며 5분쯤 고민한 끝에 그 학생은 경찰에 연락하여 상황 설명을 한 뒤 제 갈길을 간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딛을 때마다 마음이 놓인다.
CCTV도 없고, 주변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하며 그 사람의 장지갑을 주머니에 더 깊숙히 찔러 넣은 채 걸어간다.
고아원 시설에서 남매처럼 자란 여동생은 불현듯 그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는다. 치맥을 쏘겠다며 만나자고 한다. 여자는 명문대 훈남 오빠와 강남 오마카세에서 고급진 음식을 먹는 중이었기에 거절한다. 소고기의 육즙이 치아 사이를 관통하며 찍- 하는 소리와 함께 전화하던 핸드폰에 튀기자, 여자는 짜증을 내며 전화를 끊는다. 시설에서 의지했던 오빠에겐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돈 많은 훈남 오빠의 얼굴을 천천히 음미하자 마음이 편해진다. 10년 넘게 그토록 외롭고 불안정했던 그녀는 드디어 보상을 받는다는 생각에 감격한 채, 이빨에 낀 샤토브리앙을 혓바닥으로 은밀히 빼낸다.
명문대생의 아버지는 가난하게 자랐고, 스스로 모든 것을 이뤄낸 사람이다.
그는 지금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가장과 남편의 역할을 빠짐없이 수행하고 있다.
운전기사에게도 존댓말을 쓰는 것이 그의 원칙이며, 그는 그런 자신을 꽤 괜찮은 사람이라 여긴다. 어느날 그는 지잡대 학생의 기사를 보며, 의지가 약하고 교양 없는 부모 밑에서 자라서 저렇게 된 것이라 단정한다. 잠시 후 걸려온 전화 속에서 미성년자의 부모는 분노했고, 그는 "혈기왕성한 젊은이들이 좋아서 그런걸 뭘 그러냐"라는 말을 남긴 채 통화를 끊는다.
명문대생의 사건 현장에서 가장 오랫동안 추모활동을 해온 50대 여자는 시간이 흘러도 그렇게 성실하고 똑똑한 아이가 세상을 떠난 것이 몹시도 통탄스럽다.
어느날 그녀는 집에서 딸과 같이 TV를 보다가, 명문대 의대생들이 딸 또래의 학생을 마취 후 강간했다는 사건을 접한다.
"저 저 남자새끼들은 하나같이 짐승새끼라니까?! 여자도 문제야, 처신을 잘해야지!"
딸은 엄마를 응시한다.
엄마는 756가지 색으로 조합되어 보인다. TV 속 영상은 1,270가지 색으로 보인다.
어릴적부터 엄마가 말할 때 딸이 그녀의 입에서 본 것은 색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명도였다. 흑과 백.
사람들의 입에서는 주로 명도만 보이며 때론 7가지 색상이 보이기도 한다.
그녀는 쉽게 입을 열 수가 없다. 숨이 막힌다. 애써 그들처럼 말에서 명도만 보이게 노력해본다.
어느날 친구가 웃으며 말한다.
"이번에 그 아이돌 진짜 잘생기지 않았냐?"
"완전 착하게 생겼더라."
그녀는 잠시 뜸들이며
친구의 입모양을 확인한 뒤,
그 방식을 그대로 따라 말한다.
"진짜 존나 흰색 그 자체라니까!!ㅋㅋㅋ"
구조를 다양한 매체로 풀어내는 작업을 합니다.
글과 사진, 그리고 영상까지.
아래 signature에 남겨두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