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 장군은 활의 명수였습니다.
사실 전장에서 드러나서 그렇지 당대의 이름난 장군 중에는 활의 명수가 상당했을 것으로 추정 됩니다.
조선의 무과가...그만큼 상당히 높은 수준을 요구하니 말입니다.
여튼, 개중에서도 이름 난 명궁이었지 않나 싶습니다.
특히 황진 장군은 동북현감으로 부임 했을 당시 고도로 훈련된 사수 부대를 조직한 바 있습니다.
조총에 대한 대응 방법 또한 알고 있어서 잘 훈련된 궁수들이 할 수 있는 전법을 사용했습니다.
흔히 당대 조총의 한계를 생각하면 잘 훈련된 궁수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머리속에 떠올리곤 하는데,
그걸 실제로 한 경우라는 것입니다.
당대 조총은 2분 이내에 재장전이 어려웠습니다. 아주 잘 훈련 되어 그 안쪽으로 들어 온다 해도,
활에 비하면 굉장히 느린 축에 속합니다.
이러한 단점을 만회 하기 위해 순차적으로 열을 지어 사격을 하지만 그럼에도 빈 틈은 있습니다.
그렇다고 아주 기회가 많은 것도 아니어서 일발필살의 저격 위주 훈련을 주로 했다고 합니다.
또한 궁수 부대는 견제조와 저격조를 나누어 운용하였는데,
화망을 구성하여 적의 접근을 늦추고, 나아가 저격조는 지휘관을 집중 제거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전술에 능할 경우 궁병은 지형 지물까지 활용할 경우
사거리가 매우 짧은 당시 조총 부대를 몰아칠 수 있었습니다.
다만, 그 만큼 적을 잘 알아야 한다는 점과 대응 훈련이 제대로 되어 있어야 할 것입니다.
당대 이순신 장군의 활약상의 이면에는 권율 황진의 활약이 있었고,
전라도를 지켜 냄으로서 전쟁을 지속할 수 있는 식량과 물자를 확보하는 큰 공을 세우게 됩니다.
이치 전투의 상대는 일본 군 내에서도 손꼽히는 정예군이었습니다.
당대 일본군은 오랜 전국 시대의 살아 있는 전쟁 머신들이었습니다.
단지 백병전만을 잘 아는 것이 아니라 전쟁 수행의 모든 면에서 베테랑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도 그렇고 황진 장군도 그렇고,
지형과 전술 면에서 준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양상이 달라 집니다.
황진 장군은 정예 궁수대를 운용하며 일본 정예군을 괴롭히는데 성공하며
대역전극의 베이스 기지를 지켜 냈습니다.
안타깝게도 후일 2차 진주성 전투에 9일간의 사투를 벌이던 중,
무너진 성벽을 보수하던 차에 일본군의 저격병이 쏜 탄환에 머리를 맞아 전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