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 메시지:
<코스피 7,500, 그리고 1만의 문턱 앞에서>
글로벌 지정학 불안이 이어지는 와중에도 코스피는 7,500포인트를 기록했다. 누군가는 지금 이 지점을 한번쯤 제대로 평가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이것저것 자료를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수출, 무역수지, 반도체 이익 전망, GDP 통계, 세수 구조까지. 이 글은 그 과정에서 정리된 생각들이다.
낯선 풍경들
요즘 주변에서는 “코스피 7,500이 말이 되냐”, “1만은 미친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심심찮게 듣는다. 솔직히 나도 처음엔 그랬다. 낯선 건 사실이니까.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지수가 이상한 건지 아니면 우리의 눈금이 낡은 건지부터 따져봐야 할 것 같다.
숫자부터 보자. 올해 1분기 GDP 성장률 속보치는 1.7%였다. 한국은행 전망치 0.9%의 거의 두 배다. 무역수지는 월별로 사상 최대 행진 중이다. 4월 수출은 전년 대비 48% 증가했고, 반도체만 따지면 173%가 넘는다. 어느 하나도 평범한 경기 순환에서 나오는 숫자가 아니다.
한 반도체 분야 전문가는 최근 내게 매우 공격적인 2027년 시나리오를 보내왔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합산 영업이익이 700조 원을 상회할 수 있다는 전망이었다. 처음엔 오타인 줄 알았다. 아니었다.
물론 이 숫자는 극단적인 낙관 시나리오에 가깝다. 다만 중요한 건 숫자의 정확성이 아니다. 적어도 2027년까지 메모리 중심의 특수가 이어질 가능성 자체는 시장도, 업계도, 글로벌 투자은행들도 대체로 고개를 끄덕이는 그림이다. 물론 2028년 이후까지 이 흐름이 얼마나 이어질지는 또 다른 문제다. 전문가들도 의견이 갈린다. 하지만 적어도 지금 시장은, 기존 경기순환의 눈금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국면을 상상하기 시작했다.
이익이 먼저 움직였다
코스피 얘기를 하기 전에 이익 규모를 먼저 봐야 한다.
한국거래소 집계 기준으로 코스피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을 보면, 반도체 혹한기였던 2023년엔 122조 원이었다. 2024년엔 195조 원으로 60% 뛰었고, 2025년엔 245조 원으로 또 25% 올랐다. 그리고 2026년 시장 전망치는 이미 과거 사이클과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 골드만삭스가 추정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단독 합산 이익만 해도 과거 한국 증시의 감각으로는 쉽게 상상하기 어려운 규모다. 불과 2년 전 상장사 전체 영업이익이 195조 원이었다는 걸 떠올리면,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변화가 얼마나 비연속적인지 실감이 온다.
주가는 결국 이익의 함수다. 이 숫자들을 놓고 보면 코스피 7,500이 왜 지금 여기 있는지 산술적으로 납득이 간다. 그리고 이익 전망을 믿는다면, 1만이라는 숫자 역시 단순한 공상이 아니라 현실화 가능한 경로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덧붙이자면, 이번 코스피 랠리를 반도체 하나로만 설명하는 건 과도한 단순화다. 오랜 숙원이었던 상법 개정과 지배구조 개선이 현실화되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구조적 원인이 일부 완화되기 시작했다. 이사의 주주 충실 의무, 소액주주 권한 강화 — 외국인 투자자들이 수십 년간 요구해온 바로 그것이다. 이익이 아무리 커도 지배구조 불신이 있으면 주가는 할인된다. 그 할인이 걷히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외국인 자금 유입, 원화 강세 기대, 주주환원 문화 확산까지 여러 힘이 함께 작동하고 있다. 반도체는 이 모든 흐름의 트리거였지, 전부는 아니다.
시장과 정책의 시간차
그런데 여기에 불편한 문제가 하나 있다. 시장은 이미 이 변화를 가격에 반영하기 시작했지만, 거시경제 통계와 정책 시스템은 그것을 실시간으로 따라가기 어려운 구조에 놓여 있다는 점이다.
대한민국의 재정과 거시 전망은 기본적으로 GDP 성장률 전망을 기초로 움직인다. 그런데 이번 반도체 호황은 기존 GDP 체계가 포착하기 어려운 특성을 갖고 있다.
문제는 GDP가 틀렸다는 게 아니다. 반도체처럼 품질 개선 속도가 가격 변화를 압도하는 산업에서는 기존 통계 체계가 현실 변화를 너무 느리게 반영한다는 데 있다. HBM처럼 성능·집적도·전력효율이 동시에 개선되는 제품은 가격 상승과 실질 생산 증가를 분리해 측정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진다. 명목 기준에서는 역사적 규모의 영업이익이 나타나는데, 실질 GDP는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이는 괴리가 생기는 이유다.
특히 한국은 이 문제가 더 극단적으로 나타난다. 반도체 단일 산업이 수출과 기업 이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기업 현장에서는 역사적 호황이 펼쳐지는데 GDP 성장률 전망은 보수적으로 나오는 상황이 반복되는 배경이다. 더 근본적으로는, 지금의 GDP 프레임워크 자체가 20세기 제조업 경제를 기준으로 설계된 측정 체계라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결국 지금 국면에서 현실을 가장 빠르게 보여주는 건 무역수지, 수출 데이터, 그리고 기업 영업이익이다. 시장은 이미 그 숫자를 보고 움직이고 있는데, 정책은 확인된 GDP와 확정 통계를 기다리며 뒤늦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건 특정 기관이나 담당자의 판단 미스가 아니다. 반도체 중심의 초고속 산업 사이클 앞에서 중앙은행·거시당국·예산당국 모두가 구조적으로 후행할 수밖에 없는 거버넌스의 한계다.
피터 드러커는 “측정할 수 없으면 관리할 수 없다”고 말했다. 측정하지 못하면 관리하지 못하고, 관리하지 못하면 정책은 현실보다 늦어진다. 지금의 변화는 그 오래된 문제를 다시 드러내고 있다.
26년 하반기 수정전망 — 이것이 분기점이다
이제 진짜 중요한 대목은 재정이다.
2027년까지 반도체 호황이 이어진다면, 2026년과 2027년의 세수는 역사적 규모에 이를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법인세뿐 아니라, 고소득 반도체 인력의 소득세, 무역흑자 확대에 따른 연쇄 효과까지 감안하면 역대급 초과세수가 쌓일 수 있다.
그렇다면 정책 시스템은 이 현실을 얼마나 빠르게 반영할 수 있을까. 올해 하반기에 나올 2026년 수정 경제전망이 첫 번째 분기점이다. 그 전망이 어느 수준까지 올라가느냐에 따라 2027년 세입 추계와 예산 총량의 방향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낙관이나 비관 자체가 아니다. 기존 프레임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규모의 산업 변화를 정책 시스템이 얼마나 유연하게 흡수할 수 있느냐다.
우리는 이번에도 후행적으로 움직일 것인가
이미 한 번 비슷한 장면을 경험했다.
2021년과 2022년, 코로나 이후 반도체 호황으로 역대급 초과세수가 발생했다. 그러나 세입 전망과 예산은 현실을 충분히 따라가지 못했다. 반대로 2023년과 2024년엔 업황이 꺾이면서 세수 부족이 나타났다.
이 패턴이 반복되는 데는 구조적인 이유가 있다. 경기중립적 추세보다 직전 연도의 경기 상황이 다음 해 세입 추계에 강하게 반영되는 방식 때문이다. 호황 다음엔 세수 부족이, 불황 다음엔 초과세수가 나타나는 역설이 여기서 비롯된다. 세입과 예산이 실제 산업 사이클보다 한 박자 늦게 움직이는 구조다.
이번 사이클의 규모는 그때보다 훨씬 클 수 있다. 기존 방식만으로는 대응 오차가 더 커질 가능성도 있다. 반도체 중심의 구조 변화가 실제로 진행 중이라면, 재정 역시 과거 평균값에 묶인 사고에서 벗어나 좀 더 유연하고 넓은 시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결론이 아니라 질문을 던져본다
결국 지금 다시 봐야 하는 건 지수 자체가 아니라, 그 지수를 해석하는 방식인지도 모른다.
시장에서는 이미 새로운 숫자들이 나타나고 있는데, 우리는 여전히 오래된 감각과 기준으로 그것을 이해하려 하고 있는 건 아닐까.
적어도 지금의 국면이 평범한 경기순환의 연장선만은 아니라는 점만큼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 정말 기울어져 가는건가 싶었다가도 엄청나게 성장하는군요...
청년층 실업 결혼 출산 등 문제도 회복되는 추세인거 같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