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민주당이 ‘중도보수’여야 한다고 천명했습니다.
이곳의 많은 분들도 민주당이 이재명 대통령과 함께 보수적 가치의 수호자로 자리매김하고, 국민의힘은 자민련처럼 역사 속으로 사라져야 한다는 데 동의하시리라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그것이 민주당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가치를 포기한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지금의 우파가 보여온 후안무치함을 닮아가자는 뜻도 아닐 것입니다.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그런 뜻으로 말씀하신 것은 아니라고 거의 확신합니다.
지지난 대선 때 이재명 후보가 당선되지 않아 참 아쉬웠던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물론 윤석열이 안 되어야 할 이유는 백만 가지도 더 댈 수 있겠습니다만, 그와 별개로 "이재명"에게 기대했던 것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법치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새로운 행정의 모습을 기대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법률가로서 법치주의를 신봉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어느 자리에서든 제 역할을 해낸 인생사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끌려간 군대에서조차 표창을 받고, 수감 중에 사법시험에 합격하고, 연수원에서도 수석을 한 그의 행적은 그의 성향을 잘 보여줍니다.
하지만 문재인의 이런 질서 수호의 뜻은 결국 그 질서를 악용하고 마음대로 휘젓는 윤석열 무리, 즉 검찰과 사법부와 온갖 기득권 세력에게 농락당했습니다. 법치주의적 제도만으로는 선한 의도까지 담보되지 않습니다. 선한 의도를 가진 사람들이 악의에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시스템은 오히려 그 악의에 의해 붕괴됩니다.
문재인 대통령의 법치주의는 권력분립에 대한 이상적 믿음 위에 있었습니다. 각 권력이 서로의 한계를 넘지 않고, 각자 제도와 정책의 본질에 맞게 행동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 반면에 이재명은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어 살아온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행정가로서 그는 복지부동하는 공무원들을 다잡아 성과를 끌어내고 할 일을 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가 문재인 대통령이 보여준 법치주의의 한계, 즉 제도가 스스로 선하게 작동하리라는 기대의 한계를 어떤 방식으로, 어떤 노하우로 극복할지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둘째 이유는, 자본주의 질서 속에서 기본소득과 같은 새로운 패러다임을 우리가 시도해볼 기회라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코로나를 엄청난 상호 희생을 감내하면서 선도적으로 이겨냈습니다. 이를 두고 자율성이 떨어지는 농노제의 관습이라 폄훼하는 외부의 시선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수준의 인식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우리가 서구의 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의외로 막나가는 자유"만능"주의의 역사를 갖지 못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면도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결국 공동체적 희생이었습니다.
자본주의는 계속 변해왔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많은 것들도 사실은 그 시대의 물질적 토대 위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대공장 시대, 전쟁에 투입되는 군사 하나하나가 중요하던 시대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자본주의 질서의 상당 부분을 만들어냈습니다.
저는 대형노조가 더 이상 사회발전의 중심축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대형노조가 노동의 대표성을 가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노동의 형태도, 산업의 구조도, 사회적 약자의 모습도 너무 많이 달라졌습니다. 정규직 대기업 노동자의 이해가 곧 사회 전체 노동의 이해라고 말하기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새로운 분배 방식, 새로운 사회안전망, 새로운 시민권의 개념이 검토되어야 합니다. 기본소득은 그런 문제의식에서 나온 의제였습니다. 그것이 완성된 정답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기존의 복지와 임금노동 중심 질서만으로는 더 이상 모든 사람의 삶을 포괄하기 어렵다는 문제를 새롭게 정치의 중심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에서 중요했습니다.
물론 트럼프 같은 인물이 나타나 세계의 질서를 과거로 되돌리려는 흐름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계속 발전해왔다는 사실 자체는 분명합니다. 당장 70년대 중반생들만 해도, 아버지가 월급을 가져오고 외도만 안 하면 집안의 왕처럼 여겨지던 시대를 기억합니다. 지금의 가족상은 그때와 많이 다릅니다. 장단점과 호불호는 있겠으나, 적어도 개인의 존엄이나 가족 내부의 민주성은 과거에 비교할 수 없게 발전했습니다.
정치도 마찬가지여야 합니다. 더 이상 70년대 독재시대의 언어가 보수를 대표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보수가 아닌 퇴행일 뿐입니다.
민주당이 ‘중도보수’를 말한다면, 그것은 기존에 민주당이 역사속에서 추구하던 가치를 버리겠다는 뜻이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히려 지금의 보수가 버린 안전하게 믿고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라는 보수적 가치를 민주당이 책임지겠다는 뜻이어야 합니다. 법치의 형식을 악용하는 자들로부터 법의 본질을 지키고, 시장만 쫓아 공동체를 훼손하는 이들에 맞서 시민의 삶을 안정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
저는 그런 의미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중도보수’가 민주당의 우클릭이라기보다, 한국 정치 보수의 빈자리를 민주당이 채우겠다는 선언으로 이해합니다.
민주당이 이제껏 만들어온 민주주의와 인권은 이제 지켜야 할 '보수'의 가치입니다. 민주당은 2020년대에 맞게 정립된 지켜야 할 가치를 지키는 보수 정당이어야 합니다. 과거로 퇴행하는 이들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과거세대와 우리세대, 미래세대가 일구고 일궈야 할 가치를 지켜나가는 진짜 보수가 되어야 합니다.
격변의 현장에서만 휙휙 바뀌고요.
저도 동감하는 부분입니다.
깊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글의 내용엔 전적으로 공감할지언정 소위 뉴이재명이라는 분들이 이러한 시대정신을 망각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물론, 게중에는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뉴이재명이라고 일컫어지는 집단을 그러한 성질을 가진 집단이라고 정의내릴 순 없다는 겁니다.
우리는 고뇌하는 시민과 고뇌없는 쾌락주의자들을 구분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