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체실험」
그러니까 그게 초등학교 고학년 즈음의 일이었나?
…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그 경험은 강제로 파편화되었고, 감각만이 날카롭게 내장 어딘가에 박혀있을 뿐이다.
그날 그곳에 가는 길은 설레었을 것이다.
내 부모보다 더 사랑했던 외할머니를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날의 하늘은 유난히 맑았고,
뭉개구름이 자리잡고 있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 그곳으로 향했다.
두건을 쓰고 그곳에 도착한 것도 아닐텐데
내가 어떤 외관의 건물에 들어갔었는지 기억나질 않는다.
그곳 안에 도착했을 때, 친척들이 가득 차있던 방안 분위기만이 생생할 뿐이다.
어두운 조명이 켜져있던 그 방안은 옛 시골 집에서나 볼 수 있던 미닫이문을 앞에 두고,
친척들은 조용히 대기하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을 기억하고 싶다. 생각을 읽고 싶다.
수술실에서 그 기억을 도려낸 것마냥 공백으로 남아있기에 그럴 수가 없다.
다만 아직 남아있는 내 어린 시절 감정에 비춰보면,
어른들은 일상과 다를 바 없이 속닥거리며 대화를 나누는 분위기였고,
사촌 형제들은 별 생각 없이 구경하고 방바닥에 누웠다가 부모의 제지에 의해
지루함을 참고 앉아 있었던 것 같다.
그때의 친척 어른들은 그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명확히 인지를 하긴 했을까?
그런 표정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보려 하지 않았던 걸 수도 있다.
내가 가장 사랑했던 외할머니.
이번 모임은 그녀가 주도한 일이었을까?
아니었으리라 생각한다.
아마 높은 확률로 큰이모의 계획 하에 벌어진 일이었을 것이다.
그 시절 가난했음에도 뛰어난 학구열로 명문대에 입학하여 언론계를 거쳐 정치계까지 발을 담군 큰이모.
늘 전교회장과 같은 리더의 위치에 있던 사람이었다.
그런 큰이모에게 하나뿐인 아들은 그녀가 벌였던 그 어떤 일보다도 더 중요한 일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에서 성공만 하던 그녀는 스스로 봐도, 남들이 봐도 그녀의 선택에 의심을 갖기 힘들었다.
그런 그녀는 어느 시기에 일생일대의 고민에 빠진다.
자신만큼 명문대에 갈 성적을 거두지 못하는 친척형을 보며 최고가 아닌 결과물을 얻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는 아들을 성직자의 길로 가게하여 교회에서의 우두머리인 목사가 되는 삶을 계획하게 된다.
어쩌면 나의 오해이자 과대해석일지 모른다.
어느 시기에 진심으로 큰이모 가족이 종교에 빠지게 된 것인지,
혹은 둘 다 어느정도 섞여있을지는 당사자만이 알 일이다.
그날의 모임은 계획의 첫 단추를 꿰는 일이었다.
그렇다 할지라도, 큰이모가 친척들을 어떤 수단으로 계산하여 이용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진심으로 믿었고, 진심으로 잘되길 바랐을 것이다.
그 시절, 눈치도 없고 순수하기만 했던 나는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들 속에 있다보니
한껏 기가 살아 장난을 자랑하듯 친다.
그때쯤이었을까.
미닫이 문 너머에 검은 형체가 들어오고,
이내 한명씩 그 안으로 들어간다.
누가 들어가든 말든 나는 아무런 생각이 없다.
단순하고 어리석기 그지 없는 나는 초등학교 고학년임에도 어리광만 피울뿐이다.
그러니 미닫이 문이 열리고 나오는 사람들의 표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고,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다.
다만 그 누구도 눈에 띄는 돌발 행동이 없었단 것은 기억한다.
검은 형체가 오기 전 대기하던 때와 미닫이문을 닫고 한 명, 두 명 나온 이후에도
차이는 느껴지지 않는다.
그곳에 부자연스러움은 없었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내 차례가 먼저였을까 엄마 차례가 먼저였을까.
아마 내가 먼저였던 것 같다.
인자하신 할머니를 무심코 한번 쳐다보고, 미닫이문을 열고 그 방에 들어간다.
검은 형체는
나에게 누우라고 한다.
옷을 젖혀 배를 드러내라고 한다.
호기심이 많은 나는 문득 모든 게 재밌다.
이 색다른 일은 또 어떤 일일까 생각해본다.
그때 그것의 손바닥과 내 뱃가죽이 만나며 "짝" 소리를 낸다.
주먹이 아니라 손바닥이다.
아마 여성인 것 같다.
손바닥의 감촉이 거칠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말한다.
"몸에 들어 있는 악한 기운을 쫒아내야 한다"
그때부터 쉼 없이 내 배를 내려친다.
처음엔 그렇게 고통스럽지 않다고 느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통증이 점점 올라온다.
계속 친다. 그것은 계속 중얼거린다.
나를 위해주는 것처럼 들린다.
그 방에 큰이모도 같이 있었나?
그랬어? 큰이모?
'언제까지 맞는거지?' 라는 생각이 들 즈음,
통증이 본격적으로 느껴진다.
피부가 부풀어오른다.
붉은 색이 푸른 색이 되고,
푸른 색은 다른 색으로 번진다.
울음이 터질 것 같다.
괴롭다.
무섭다.
이해 할 수 없다.
그러다 문득, 나보다 어린 사촌동생들이 아무렇지 않게 그 일을 마치고 나왔던 모습이 떠오른다.
나는 울 수 없다. 그들보다 못한 사람이 될 수 없다.
혹시 그들은 맞지 않았던 걸까. 내 몸에만 악한 기운이 있는 걸까.
아니면 맞고도 남자답고 씩씩하게 참았던 것일까.
그러고 보니 맞는 소리가 안들렸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어느 순간 감각이 무뎌진다.
내 배가 아니라, 다른 무언가를 때리는 느낌.
그것은 여전히 멈추지 않는다.
조금은 신이 난 것 같기도 했지만
여느 노동자처럼 성실하게 일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제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가 흐려진다.
내가 겪는 일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러니 친척들 모두가 저렇게 아무렇지 않겠지.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내 정신이 온전할 것 같다.
문득 이 시간에 PC방에서 놀 친구들이 떠오른다.
그 이후의 기억은 없다.
방에서 나왔을 때, 울음이 터질 것 같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한 사람들 속에서
내가 뭘 할 수 있는가.
도저히 내 감정을 드러낼 수 없다.
그곳에서,
아니 어쩌면 이 사회에서는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금기다.
남들처럼 무던하게 시스템을 따르지 않는,
나란 존재는,
역시 악한 기운을 털어내야만 했던 존재인 것일까.
미동도 없는 친척들을 지나,
나는 엄마 옆에 앉는다.
이런 저런 많은 말들을 엄마와 하고 싶다.
그러나 이번엔 엄마 차례다.
엄마를 걱정할 정도의 성숙함과는 거리가 먼 나는,
내 안위만 생각하며 아무렇지 않은 척 부단히 애쓰기만 한다.
잠시 후 엄마는 평온하게 방에서 나온다.
그 모습이 이상했다.
다른 사람들과도, 나와도 달랐다.
그날 이후, 친척형은 결국 목사가 되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말한다. 사랑을 말하고, 용서를 말하고, 하나님의 뜻을 말한다.
그렇다. 그날의 일도 하나님의 뜻 중 하나였을 것이다.
형은 잘못한 것이 없다.
내 행복한 기억 속의 형은 말이다.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곳을 나와서 어떻게 돌아왔는지.
다만 엄마의 말만 기억난다.
"이상해서 안 하고 나왔다"
그 무언가를 하지 않아서 너무 잘됐고 후련하다는 엄마.
날 낳아주신 엄마.
날 길러주신 엄마.
세상은 낳아주고 길러준 엄마에게 감사해야한다고 한다.
그럼 맞고 말고.
피범벅이 될 때까지 느꼈던 고통보다, 평생에 걸쳐 남은 건 엄마의 무심함이었다.
자식을 위해 평생을 그렇게 아끼고 열심히 돈을 모으며 뒷바라지 해줬다는 엄마와 아빠는.
그 날의 나에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내 배때지를 칼로 쑤셨던 그들보다 날 어둠에 넣은 건 엄마의 표정이었다.
자기는 안맞아서 그렇게나 기분이 좋은 엄마.
엄마?
뾰족한 칼날이 내장안으로 들어오는 느낌은 아프기보다 차갑더라.
마치 엄마가 날 볼 때의 표정만큼.
아래는, 같은 시선을 다른 매체인 사진으로 옮겨본 작업입니다.
인체실험, 그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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