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라는 명칭을 만든 방정환님
스물한살인 1919년 3.1운동때 동료들과 함께 조선독립신문을 집집마다 돌리고
종로경찰서에서 일주일간 고문을 당하고
스물세살 도쿄 도요대학 문화학과 입학
아동심리학과 아동문학 전공
도쿄의 서점에서 수백권이 꽂혀있는 어린이책 코너를 바라보다
어른들이 만든 세계 속에서 조선의 아이들은 이름도 얻지 못한 채 자라고 있다.
1920년 개벽 3호에 한 편의 번역시를 싣습니다.
제목은 “어린이노래 : 불켜는 이”
그 시에서 어린아이를 높여 부르는 말로 ‘어린이’ 란 단어를 이 땅에서 처음 사용
1921년에 귀국하여 친구 김기전과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만들고 전국을 돌며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구연함
매년 일흔번 평생 천 번 이상
일제 고등계 형사가 그의 강연마다 따라붙음
1922년 7월 개벽사에서 그의 유일한 단행본 출간
제목은 “사랑의 선물”
안데르센의 동화, 그림형제 이야기, 오스카와일드, 페로
세계 각국에서 가려뽑은 열 편을 직접 번역하고 번안하여 엮음
그 서문에 씌여진 글
학대받고 짓밟히면서
차가운 어둠 속에 있는 우리와
또 자라나는 불쌍한 어린 영들을 위하여
그윽히 동정하고 아끼는 사랑의 첫 선물로 나는 이 책을 짰습니다.
1922년 5월 1일
그는 이 날을 세상 어디에도 없던 어린이날로 정함
그로부터 1년 뒤 1923년 5월 1일
제 1회 어린이날 기념식이 열림
서울 시내에 선전물 십이만장이 뿌려짐
서구보다 1년 앞선
세계에서 가장 먼저 발표된 아동인권선언
선언문에는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마시고
치어다 보아 주시오
어린이에게 경어를 쓰시되
늘 보드랍게하여 주시오
어린이들이 서로 모여 즐겁게 놀만한
놀이터를 지어 주시오
그 사이에도 그의 삶은 일제의 감시 속에 있었고
개벽은 여러번 발매 금지 되고 창간호부터 그의 소설
네편이 압수 됨
1931년 7월 개벽사 사무실
그는 원고를 쓰던 중 책상 위에 코피를 쏟으며 쓰러짐
병상에서도 그는 간호사들에게 동화를 들려주었다합니다.
7월 23일
그는 아내 손용화의 손을 잡고 마지막 말을 남깁니다.
문간에 검은 말이 끄는 검은 마차가 날 데리러 왔으니 떠나야겠소.
어린이를 두고 떠나니 잘 부탁하오
향년 서른셋
어린이날을 만든 남자가 어린이를 두고 떠났습니다.
그의 호는 소파, 작은 파도라는 뜻
아내에게 남긴 말이 전해집니다.
내 호가 왜 소파인 줄 아시오
나는 여태 어린이들 마음속에 잔물결을 일으키는 일을 했다
이 물결이 날이 갈수록 커져서 훗날 큰 물결이 되서 출렁일 것
부인은 오래오래 살아서 그 물결을 꼭 지켜봐 달라
1922년
그가 서울 시내에 뿌린 전단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10년 후의 조선을 생각하라
인스타에 좋은 내용이 있길래 가져와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