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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덴서를 제작하는 ㅅ사는 전형적으로 낮은 피비알 기업 중 하나이다. 이 회사 주식에 투자한 자산운용사 차파트너스는 지난 3월 주총을 앞두고 ㅅ사에 경영 개선을 요구하는 공개 주주제안을 했다. 그 내용을 보면 이 회사가 가진 순 현금성 자산이 지난해 말 기준으로 3200억원이고, 주차장, 텃밭 등으로 쓰고 있는 비영업용 부동산도 2000억 원대에 이른다. 주주제안 시점에 이 회사 주식의 시가총액은 2300억원 정도였다. 누군가 주식을 모두 사들인 뒤 회사 자산을 팔면 2900억원이 남는다는 계산이다.
이 사례처럼 한국 자본시장에는 피비알이 1이 안 되는 기업이 많다. 지난달 12일 현재 코스피와 코스닥 상장사의 약 50%가 피비알 1이 안 된다. 주가가 극히 저평가된 상태인 피비알 0.3 미만 기업도 약 6%나 된다. 지난해와 올 초 주가가 많이 올랐는데도 상황이 이렇다. 같은 아시아권인 일본(35%), 대만(17%)에 비교해도 우리가 유독 비율이 높다. 미국도 27% 수준이다.
물론 설비 투자 규모가 큰 전통 제조업은 구조적으로 피비알이 낮고, 회계 기준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수치가 달라질 수 있다. 그렇다 해도 기업가치가 순자산 만큼도 되지 않는 선에서 오래 거래되는 것은 투자자들이 회사의 수익 창출 능력이나 주주 환원 의지를 신뢰하지 못한다는 뜻일 수 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은 같은 토론회에서 “3% 이자를 주는 예금에 만족하지 못해 연 10% 수익을 기대하고 펀드에 가입했는데, 펀드매니저가 자금의 90%를 주식이 아닌 예금에 넣어 놓고 있는 상황”이라고 비유했다. 한국 자본시장의 오랜 낙인인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불투명한 지배구조, 인색한 주주 환원, 자본의 효율성 저하가 결합한 결과이고, 낮은 피비알은 그 단면이다.
‘주가 누르기’와 낮은 피비알
브이아이피 자산운용은 지난 3월 중견 자동차 부품회사 ㄷ사 주총에서 “현금 활용 계획을 밝힐 것”을 이사회에 요구하는 등 투자자로서 공개적인 목소리를 냈다. ㄷ사는 순자산이 많고 지난해 770억 원대 순이익도 냈지만 피비알이 0.5가 안 될 만큼 심하게 저평가된 기업이다. 지난해 말 현재 보유한 현금성 자산만 4100억원인데 시가총액은 3월 12일 종가기준으로 2500억원에 불과하다. 저평가의 원인으로 브이아이피자산운용은 몇 년째 한 자릿수에 머무는 배당 성향과 함께 지배주주가 따로 세운 자회사와의 불투명한 내부 거래를 지목했다. 창업자의 3세에게 ‘살찐 회사’를 세금 적게 내고 물려주려 주가를 일부러 낮게 유지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실제 3월의 주가 수준에서 이 회사 지배주주가 물어야 할 상속·증여세는 약 300억원 정도이다. 만일 비상장사였다면 470억원이 많은 780억원을 냈을 것이란 계산이다. ‘주가 누르기 방지법’이 필요한 이유를 보여준다고 브이아이피자산운용은 밝혔다.
생산성 높이는 ‘머니 무브’ 필요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주가를 ‘밸류 업’하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자본의 효율성을 높여 경제에 활기를 돌게 하려는 목적이 크다. 그러려면 자본이 생산성이 높은 곳을 찾아 회사 내의 사업부나 다른 회사로 재배치돼야 한다. 기업이 투자할 곳이 마땅치 않으면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으로 주주에게 돌리고, 이 돈이 벤처나 스타트업 같은 혁신, 모험 산업으로 흐르는 게 생산성 있는 ‘머니 무브’이다.
일본은 이렇게 해서 오랫동안 무기력했던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정부는 2013년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착수해 ‘잃어버린 30년’ 탈출의 길을 모색했다. 특히 도쿄증권거래소는 2023년부터는 상장사에 ‘자본비용과 주가 의식 경영’을 요청하며 자본 효율성 중시 경영의 드라이브를 강하게 걸었다. 거래소는 알오이와 피비알이 낮은 기업에 개선 계획을 공시하도록 밀어붙였다. 이걸 도입할 당시 일본도 도요타, 소니 등 대기업이 속한 프라임 시장 상장기업의 약 절반, 스탠더드시장의 60%가 알오이 8% 미만, 피비알 1배 미만 상태였는데, 3년이 지난 지금은 크게 개선됐다. 자본비용을 의식할 때 자사주 매입이나 배당 확대와 같은 자본 재배치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경영진이 자본비용을 상회하는 수익성을 지속해서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라는 취지라고 도쿄증권거래소는 설명한다.
그래서 어떤 대책을 마련?
피비알이 낮은 기업을 공개하는 방안도 이르면 올해 안에 추진한다. 이억원 금융위원장은 3월 18일 청와대에서 열린 ‘자본시장 안정과 정상화 간담회’에서 “피비알이 낮은 기업은 명단 공개 등 ‘네이밍 앤드 셰이밍’(naming and shaming 공개해서 창피 주기) 방식으로 기업가치 제고 노력을 유도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피비알이 동일 업종 내 하위 20%에 해당하는 기업을 6개월 마다 공개하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주가 누르기를 막기 위해 상속·증여세 기준을 바꾸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이소영 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속·증여세법 개정안의 핵심은 상장 주식의 상속·증여 시 주가가 주당 순자산 가치의 80%에 못 미치는 경우(피비알 0.8 미만)엔 비상장 회사처럼 순자산과 순이익을 기준으로 공정가치를 계산해 세금을 매기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대주주가 주가를 낮게 유지해도 세금을 줄이는 효과를 얻지 못하게 된다.
지난해 7월 상법 개정 이후 기업지배구조 개선과 코리아디스카운트 해소 정책은 빠른 속도로 추진됐다. 이제 남은 과제는 자본이 실제로 비생산적인 곳에서 빠져나와 혁신과 성장의 현장으로 흘러가 한국경제의 체질을 바꾸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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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은 돈을 쌓아두지말고 임금 인상을 해주던가 주주에게 돌려주던가 투자를 하던가 해야죠
이런 강력한 대책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