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런 장면이 한국에서 벌어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권력을 잡은 사람이 자신의 재판을, 자신이 임명한 특검과 자기 정당의 힘으로 끝낼 수 있는 구조. 이것은 우리가 그동안 비웃어 온 삼류 독재국가의 풍경입니다. 적어도 대한민국에서는, 아무리 진영이 갈리고 정쟁이 격해져도 이 선만큼은 넘지 않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선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여기 클리앙도 처음엔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불과 얼마 전까지 이 게시판의 다수 의견은 이랬습니다. 떳떳하게 재판받으면 된다. 무죄라면 법정에서 밝히면 된다. 검찰이 조작기소를 했다면 재판 과정에서 드러날 것이다. 이 말이 맞았습니다. 이 말이야말로 정상적인 민주국가의 상식이었습니다.
여권 내부에서도 의원들이 공소취소를 전면화한 모임을 만들었을 때, 오히려 대통령에게 부담을 주는 일이라는 비판이 많았습니다. 클리앙에서도 그랬습니다. 그게 정상적인 감각이었습니다.
그런데 공소취소가 현실 정치의 카드로 떠오르자, 그 감각이 통째로 뒤집혔습니다. 어제까지 떳떳하게 재판받으면 된다고 하던 같은 게시판이, 오늘은 재판 자체가 조작이니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정의당이 반대하니, 이제는 정의당을 비난합니다. 진보정당이 보수 편을 든다는 식으로 몰아갑니다. 공소취소를 우려하는 글에는 비추가 박히고, 옹호하는 글에는 추천이 박힙니다.
기억은 너무 쉽게 바뀌었고, 원칙은 사라지고 진영만 남았습니다.
분명히 짚고 가야 합니다.
검찰의 정치적 기소를 비판하는 일은 가능합니다. 수사 절차의 위법성을 따지는 일은 필요합니다. 조작기소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는 일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결론이 처음부터 대통령 본인 사건의 공소취소 한 곳으로 수렴된다면, 그것은 진상규명이 아닙니다. 진실의 매장입니다.
조작이 있었다면 그것이야말로 재판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무리한 기소였다면 그것이야말로 법정에서 깨져야 합니다. 무죄라면 그것이야말로 판결문에 새겨져야 합니다.
공소취소는 진실을 밝히는 행위가 아니라, 진실을 영구히 묻는 행위입니다.
형사소송법상 공소는 1심 판결 전까지 취소가 가능합니다. 제도 자체는 존재합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가능한 일과 정치적으로 해서는 안 되는 일은 다릅니다. 현직 대통령의 형사사건에 집권세력이 정치적으로 그 제도를 활용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법 절차가 아니라 권력의 자기보호 장치가 됩니다.
이 사안의 본질은 한 사람의 재판이 아닙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가장 위험한 질문이 지금 던져지고 있습니다.
권력을 잡으면, 자기 재판도 치울 수 있는가.
사실 이 질문은 새로운 질문이 아닙니다. 오래된 법치의 원칙은 이미 이 문제에 답을 내놓았습니다.
Nemo iudex in causa sua.
누구도 자기 사건에서 재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자기 이해관계가 걸린 사건에서 심판자를 자신이 좌우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입니다. 이것은 고대 로마법 전통에서부터 이어져 온 법치의 오래된 상식이고, 오늘날에도 공정한 재판의 기본 전제로 남아 있습니다.
자기를 심판할 사람을 자기가 정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온전한 재판이 아닙니다.
그리고 로마는 이 원칙이 무너졌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도 우리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갈리아 총독 임기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올 때,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정적들의 형사 기소였습니다. 그는 둘 중 하나를 골라야 했습니다. 시민의 자격으로 법정에 서느냐, 군대를 끌고 루비콘을 건너 권력으로 재판을 무력화시키느냐.
그가 강을 건넌 그날, 로마 공화정은 사실상 종언을 향해 갔습니다. 카이사르가 곧바로 황제가 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권력자가 자기에게 불리한 사법 절차를 권력으로 돌파할 수 있다는 사실이 입증된 순간, 법이 권력을 통제한다는 공화국의 약속이 깨졌기 때문입니다.
그 뒤 로마는 다시는 이전의 공화정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물론 오늘의 대한민국이 로마 말기와 같다는 뜻은 아닙니다. 군대를 끌고 강을 건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위험의 본질은 닮아 있습니다.
권력자가 자기에게 불리한 재판을 정치권력으로 우회하려는 유혹.
자신을 심판할 구조를 스스로 바꾸려는 유혹.
법의 심판을 받는 사람이 오히려 법의 절차를 재설계하려는 유혹.
이것이야말로 이천 년 전 로마법이 경계했던 바로 그 문제입니다.
머릿속에서 진영만 한번 바꿔봅시다.
국민의힘 대통령이 자기 사건을 조작기소라 주장하면서, 여당 의원들이 공소취소 모임을 만들고, 대통령이 임명한 특검이 그 사건을 넘겨받아 공소를 취소할 수 있는 구조를 짠다면 지금 공소취소를 옹호하는 분들 중, 그 상황에서도 박수칠 수 있는 분이 단 한 명이라도 있습니까.
아닐 겁니다. 그때는 민주주의 파괴, 삼권분립 훼손, 권력형 사법농단이라고 외칠 겁니다. 클리앙 메인이 통째로 그 비판으로 도배될 거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압니다.
그래서 문제입니다.
기준이 법과 원칙이 아니라 내 편이냐 아니냐에 있다는 사실이, 그 순간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내 편이면 정치탄압, 상대편이면 사법정의. 내 편이면 재판도 멈춰도 되고, 상대편이면 끝까지 수사해야 하고. 내 편이면 검찰개혁, 상대편이면 사법방해.
이런 기준은 법치가 아닙니다. 진영의 편의주의입니다.
이 문제는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닙니다. 여야의 문제도 아닙니다. 지지 정당의 문제도 아닙니다. 이건 양심의 문제입니다.
가장 무서운 건 선례입니다.
오늘 내 편을 위해 만든 길은, 내일 상대편이 그대로 걸어 들어옵니다. 오늘은 검찰개혁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정권은 똑같은 구조를 다른 명분으로 활용할 것입니다. 그때 가서 그건 다르다고 항변해 봐야, 이미 길을 깔아준 사람들이 할 말은 아닙니다. 권력은 자기를 위해 만든 무기에 결국 자기가 베입니다. 한국 정치사가 그걸 수십 번 증명했는데, 우리는 또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저는 이재명 대통령이 유죄라고 결코 단정하지 않습니다. 무죄일 수도 있습니다. 검찰 수사가 부당했을 수도 있습니다. 정치적 의도가 개입되었을 수도 있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재판으로 결론을 내야 합니다.
정말 억울한 기소였다면, 권력으로 재판을 없애는 것보다 법정에서 무죄를 받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정치적 정당성을 줍니다. 검찰의 조작이 있었다면 재판 과정에서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가장 명료한 단죄입니다.
반대로 공소취소로 사건이 사라지면, 훗날 역사책은 이렇게 쓸 겁니다. 무죄를 입증한 대통령이 아니라, 권력으로 재판을 피한 대통령이라고.
전자는 명예회복이고, 후자는 의혹의 영구보존입니다.
우리는 공소취소를 외칠 게 아니라 무죄 판결문 한 장을 받아내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그게 지지자가 할 일입니다.
민주주의는 내 편이 불리할 때 진짜 시험대에 오릅니다. 법치주의는 내가 싫어하는 검찰이 관여한 사건일 때 진짜로 시험됩니다.
원칙은 상대편에게만 휘두르는 장식품이 아닙니다. 원칙은 내 편에게 불리할 때 지켜야, 비로소 원칙입니다.
정치는 진영으로 해도 됩니다. 선거도 진영으로 해도 됩니다. 그러나 법치주의까지 진영논리로 처리하면, 그 순간 우리는 우리가 비웃던 자들과 같아집니다.
로마는 루비콘을 건너고 다시는 이전의 공화정으로 돌아가지 못했습니다. 우리도 한번 이 강을 건너면 돌아가기 어렵습니다.
아무리 지지하는 정당이라도 아닌 것은 아닌 겁니다. 아무리 좋아하는 정치인이라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있는 겁니다.
권력으로 재판을 치우려 해서는 안 됩니다.
이건 결국 양심의 문제이고, 상식의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 양심은, 상대편에게 그어 본 잣대를 내 편에게도 똑같이 그어볼 수 있는가에서 시작합니다.
민심과 국회, 사법부가 할일입니다.
삼권분립은 대통령이 직접 판결문을 쓰지 않으면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입법부와 행정부 권력을 이용해 사법절차에 영향을 주는 것도 삼권분립의 취지와 충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민심과 국회, 사법부가 할 일”이라고 하셨는데, 바로 그 말이 위험합니다.
재판은 민심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사재판은 여론조사로 결론 내는 절차가 아닙니다.
국회가 정치적으로 유불리를 따져 특정인의 재판을 정리하는 절차도 아닙니다.
사법부가 증거와 법리에 따라 판단해야 하는 일입니다.
검찰 기소가 조작이었다면 재판에서 깨면 됩니다.
무죄라면 무죄 판결을 받으면 됩니다.
수사기관이 잘못했다면 재판 과정과 진상규명, 그리고 제도개혁으로 책임을 물으면 됩니다.
그게 법치입니다.
제가 비판하는 건 그 절차를 끝까지 가보기도 전에, 권력을 가진 쪽이 자기 사건에 유리한 방식으로 게임판을 바꾸려는 시도입니다.
윤석열이 싫으신 건 알겠는데, 윤석열을 끌고 와도 이 원칙은 바뀌지 않습니다.
윤석열이든 김건희든 이재명이든 누구든 마찬가지입니다.
혐의가 있으면 수사받고, 기소되면 재판받고, 억울하면 법정에서 다투면 됩니다.
권력을 잡았다고 자기 사건만 다른 통로로 정리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게 제가 말한 핵심입니다.
그런데 200년 전만 하더라도 나라와 나라가 싸우는 전쟁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죽고 전쟁에서 패하면 무자비한 보복이 일어났죠. 전쟁이 난 곳의 여인들은 거의 만신창이가 되고 남성들은 죽임을 당하고 아이들은 노예로 팔려나갔습니다.
그런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는 것은 정당하다는 주장에 어떤 사람은 그 정당성을 누가 정하는 거냐며 따집니다.
그렇다면 자신을 죽이려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정당 방위냐? 나를 죽이려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괜찮은 것이냐? 따집니다. 사람을 죽이려는 사람을 죽이는 것도 사람을 죽이는 것이라 말합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는 어떤 경우에도 용서 받을 수 없는 행동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책임없는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입니다.
검찰이 정치적 기소라는 칼을 들었다면, 재판이라는 칼로 맞서는 것이 정당방위입니다.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것, 조작기소를 재판 과정에서 폭로하는 것, 검찰개혁 입법으로 제도를 고치는 것. 이것이 같은 차원의 대응입니다.
저는 한 번도 정치인이 무방비로 당해야 한다고 말한 적 없습니다.
검찰의 정치적 기소를 비판하라.
진상규명하라.
전부 적극적 대응입니다. 무책임한 평화주의가 아니라, 절차 안에서 정면으로 싸우라는 말입니다.
그런데 내가 임명한 특검에게 공소를 취소시킨다는 것은 정당방위가 아닙니다.
그것은 칼싸움이 아니라 심판을 자기 사람으로 바꾸는 일에 가깝습니다.
같은 차원의 응수가 아니라, 권력으로 게임판 자체를 바꾸는 일입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이 있습니다.
정당방위는 시민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권리입니다. 그러나 공소취소를 정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은 권력자만 쓸 수 있는 힘입니다.
보통 시민은 부당기소를 당해도 결국 재판에서 다투는 수밖에 없습니다. 무죄를 받아내고, 수사기관의 위법을 다투고, 국가배상을 청구하고,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방식으로 싸워야 합니다.
그게 시민에게 허용된 정당방위입니다.
그런데 권력자만 자기 권력으로 재판을 치울 수 있다면, 그것은 정당방위가 아니라 권력 사용권의 특권입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자기를 공격하는 칼을 자기 손으로 막는 것은 정당방위입니다.
하지만 경기 중에 심판을 자기 편으로 갈아치워 경기를 끝내는 것은 정당방위가 아닙니다.
형식은 방어처럼 보일지 몰라도, 본질은 절차의 우회입니다.
책임 있는 정의를 말하려면, 가장 책임 있는 방식으로 싸워야 합니다.
본인이 법정에 서서 무죄를 받아내고, 검찰의 잘못은 재판과 진상규명으로 드러내고, 제도의 문제는 검찰개혁으로 고치는 것.
그것이 책임 있는 정의입니다.
권력으로 절차를 우회하는 것은 정의가 아닙니다.
그것은 정의라는 이름의 특권입니다.
검찰이 정치적 기소라는 칼을 들었다면, 재판이라는 칼로 맞서는 것이 정당방위입니다. 라는 말에 검찰이나 법원이나 한 통속이라고 보는 저같은 사람들에게는 무의마한 것이죠.
정의를 외치는 사람들은 그 정의 때문에 스스로 자멸하는 경우가 참 많은 거같아서 안타깝습니다.
정의는 사람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아요. 현실에서는 하나의 절대적인 가치가 성립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전 악으로 악을 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적 정의를 따지다 보면 위 예시처럼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절대 해서는 안되는 행동이 됩니다. 자기 자신이 살기 위해 남을 죽이는 것 또한 정의롭지 못하기 때문이죠. 누가 총으로 위협을 해서 저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널 죽이겠다고 했을 때 내가 살기위해 누군가를 죽이는 것이 가능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재판관들이 제대로된 재판을 한다는 전제에서 이런 글은 환영받을 수 있겠지만 지금의 사법부가 정상인가부터 자문해보시기 바랍니다.
조작기소 수사 재판을 그리 성역화하면서 피해자를 가해자로 만드는 이런 글을 보면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구나 싶네요
(물론 이 글을 쓰신 이유는 다르겠지만 말이죠)
이재명 당시 후보 유죄취지로 파기환송 그게 조희대의 판결문이에요
님이 주장하시는 그 판결문대로면 투표를 못했다니까요?
성난 민심에 재판이 뒤로 연기가 돼서 우리가 투표를 할 수 있었구요
님의 그런 주장이라면 선거 전에 재판이 열리고 판결을 받았어야 하는 것이죠
파기자판이든 파기환송이든 그 목적이 달라지지 않죠
유죄다 라는 목적
국정조사 제대로 한번이라도 보고 저기 내란당
패거리와 정치개검들 헛소리하는거 한번이라도
봤으면 합리적인척 중도인척 이리 장황하게
글 못쓰요
저쪽은 기를쓰고 모든 수단 동원해 김건희 무죄
때리는데 씹선비 민주당은 또 이리저리 정의
따지다 계란말이 받아쳐먹는 언론눈치 볼꺼요 ?
진심으로 글쓰기전에 국정조사 정독하고 이재명
이화영 그리고 정치개검들한테 법테러 당한 이들
보고 오쇼
지금은 중립이 문제가 아니고 모든 언론 개검
기득권과 맞써 싸울때요
양심없는 자들이 양심을 부르짖고
공정하지 않은 자들이 공정을 부르짖는
해괴한 현실입니다.
이른바 양심 프레임 아닐까 여겨지네요.
만약 프레임이라면 안 갇히는 게 절실히 요구됩니다.
프레임성 글에 대해서도 언젠가 분석하도록 해보겠습니다.
아시다시피, 제 판단착오일 수도 있습니다.
댁이 적은 글인데 작성글의 요점이 여기있네 --;;;
뭔 소리여 ?
조작기소로 지금 죽을고생하는 사람이 한둘인가 ?
내 장담하는데 쓰니는 국조 본적없고 합리적인척
글 쓰는척 여론전 하는거 같은데 클리앙 그런데
아니니 척 그만하고 국정조사나 정독하고 오쇼
피꺼솟안하면 숨어있는 내란당 지지자지 --;;;
지난건 모르겠고 너는 이러면 안돼~ 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