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늦은 밤 기분이 쎈치해져 이상한 의문이 들었습니다.
저는 기독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별로 좋아하진 않고,
예수를 존경 합니다. 허나, 예수를 신으로 보진 않고
메시아정도로 생각하고 있어요.
이건 마치 이슬람 종교관과 비슷하다더근여.
그럼에도 하나님을 믿는 건. 예수를 존경하고
예수의 말을 따르다보니 하나님도 같이 믿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인간을 보낸 이유를 아시나요?
저도 안지는 오래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인간을 세상에 보낸 이유가
이 세상을 더 나은 세상으로 만들기 위해 인간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니까 대충 뭐.... 자기 일손 부족했다... 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근데 자꾸 말 안 듣고 싸우고 뿌수니까 여러번 인간 청소를 하려한게 아닌가
뭐 그런 생각도 들구 뭐 암튼 그렇긴 한데...
아무튼 인간을 지구에 보낸 목적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함이라는데...
물리학에서는요
빅프리즈라고 해서. 결국 엔트로피가 마지막까지 상승 하다보면
우주에는 아무 활동도 없는 절대영도의 상태가 되고 무(無)의 상태가
된다고 하는데... 도대체 인간은 무엇을 위해 일을 한 걸까요?.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고 지구에 인간을 보낸 하나님
근데 어차피 우주 종말이지롱 ㅎㅎ 하고 구조를 만드신 하나님
기독교가 무조건 맞다 그런말을 하고 싶은 건 아닌데
아무튼 신념에 위배되는 괴리감을 생각하니 답할 말이 없네요. ㅋㅋㅋㅋㅋㅋ
진짜 별 의미 없는 생각이죠? ㅋㅋㅋㅋㅋ
까르페디엠
지금 이 순간을 믿으세요.
물리법칙에 부합하지도 않고, 부합할 필요도 없죠 ^^;;
다만 이걸 신앙인이 인정하면 종교적 믿음과 모순이 생기니까
그냥 양자간에 흐릿한 회색지대를 남겨놓는게 정신건강에 좋다고 생각합니다ㅎ
궁극의 질문들(빅뱅 이전엔 뭐가 있지? 우리 우주의 끝이 있다면 그 다음은? 인간은 왜 만들어졌을까?...)에 대한 태도에 있는 것 같네요.
어쨌든 답이 있어야 해. 그렇지만 알 수는 없어... 그럼 신이 있다고 생각해보자. <- 종교인
답이 없으면, '아직 모른다'고 해야 해 억지 답을 꾸며내지 말고. 많이 답답하지만 참을 수 있어. <- 비종교인.
성경에 쓰여 있는데로만 보자면, 창조주 야훼는 본인의 본성을 사랑으로 규정하고 있고 그 사랑은 비합리적인 희생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그 본성인 사랑으로 창조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세상 어떤 것도 창조주 야훼를 사랑할 수는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란 자유의지가 있는 존재만 할 수 있는 것인데, 그 자유의지를 준다는 것은 창조주 야훼와 동급이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사랑하기 위한 피조물인 아담을 창조하고 그에게 선택의 자유를 줍니다. 그것이 선악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야훼의 피조물 중에서 선악과를 가지고 있는 피조물은 아담이 유일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예수가 "나는 너희들이 하나님이라는 것을 안다.", "너희는 종이 아니라 자녀이고 친구다. 어느 주인이 종을 위해서 죽어 준단 말이냐."라는 말을 합니다. 그 이후는 잘 아시는 것처럼 아담은 야훼 하나님을 버리고 선악과를 선택했고, 그 결과 실낙원해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것이 현 지구입니다. 이때 아담.하와를 꾀었던 악마도 같이 떨어져서 지구의 주인이 됩니다. 악마가 예수에게 이르기를 "이 세상은 나의 것이니 나에게 절을 하면 너에게 주겠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나 야훼나 이 지구에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사실 창조주라면 이 우주나 지구를 순식간에 수백개도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래서인지 성경에 가장 많이 써 있는 단어가 "사랑"과 "구원"입니다. 예수는 어떻게 해서든 인간들을 이 지옥에서 구원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야훼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라고 강권합니다.
그리고 핵심은 야훼 하나님을 1등으로 가장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야기만 합니다.
예수란 이름은 그당시 유대인에게 가장 흔했던 이름으로 동네에 네다섯명은 예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브리엘 천사가 야훼 하나님이 예수로 이름지으라고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결국 예수란 이름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던 것입니다. 예수란 그냥 모든 사람을 나타내는 일반명사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이 3가지 인격체 중에서 진짜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은 성부 야훼 하나뿐입니다. 야훼는 태초에 아담을 가장 사랑했다는 말을 했고, 그 말이 육신을 입어 예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예수가 오기 전의 모세나 아브라함도 예수를 안다고 했던 것이라고 합니다. 즉 예수의 육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창조주 야훼가 아담을 가장 사랑한다는 말씀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이라는 뜻으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창조주 야훼가 인간을 가장 사랑한다는 것을 믿느냐라는 말과 동의어로 보입니다.
그런데 교회 목사들은 이야기를 다르게 합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 나라로 만들려고 한다느니, 야훼 하나님을 사랑하기만 하면 되지 가장 사랑할 필요는 없다느니... 아마 교회의 성도 숫자를 늘리고 교권을 강하게 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튼 신앙이나 종교를 떠나서 성경에서 야훼나 예수는 이 지상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형무소 리모델링해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특히나 모든 물리법칙을 벗어나는 창조주에게는 더 할 것입니다. 인간들만 이 지구에 집착이 강합니다. 오죽 관심이 없는 것이 오해를 받았는지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오"라고... 떡도 중요하긴 하다는 식의 이야기를 합니다.
내가 죽은 뒤에 아무것도 없다면 그것 자체가 종말과 다를바가 없는데, 우주가 터지든 핵전쟁이 나든 무슨 상관이냐는 허무주의로 생각이 빠질 가능성이 높거든요
혹은 인류가 다음 빅뱅을 일으키고 우주의 신으로 등극할수도 !!!
금강경 1장 부처님의 모습대로만 살면 그런 한가한 취미는 별 의미 없습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서 천이백오십 명의 스님들과 함께 계셨다. 마침 세존께서는 공양하실 때가 되어 가사를 수하고 발우를 들고 사위성에 들어가 걸식하셨다. 성안에서 차례대로 걸식하신 뒤 처소로 돌아오셨고, 공양을 마치신 뒤에는 가사와 발우를 거두시고, 발을 씻으신 다음 자리를 펴고 앉으셨다.
그중 첫 번째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을 사랑하십니다.
부모가 되어보면 그 사랑을 아주 조금이나마 체감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운 것을 기뻐하시고, 죄를 미워하십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깁니다.
사랑의 대상인 인간이 죄를 범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이로 인해 딜레마가 발생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용서하고 싶으시지만,
동시에 공의로우시기 때문에 죄에 대해 반드시 심판하셔야 합니다.
이 딜레마를 해결하는 방식이 기독교 교리의 가장 핵심적이고 독특한 지점입니다.
누군가가 그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 대가를 치르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이 역할을 하나님께서 직접 감당하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인간의 죄를 대신 지고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구원의 핵심이며, 삼위일체 교리의 중요한 토대가 됩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이 교리 안에서 개인이 취사선택을 할 수 있는 여지가 있을까요?
기독교는 단순히 개인의 사유에서 출발한 사상이 아닙니다.
기원후 초기 교회 이후 약 1000년 이상,
각 시대의 가장 뛰어난 지성들이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이 문제를 탐구해 왔습니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논쟁이 있었고,
때로는 교회 분열이나 전쟁으로까지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치열한 검증과 논의를 거쳐 오늘날의 교리가 형성된 것입니다.
또한 성경 역시 원래 히브리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고,
이를 여러 언어를 거쳐 오늘날 한국어로 번역된 텍스트입니다.
이 과정에서 의미의 층위가 복잡해지고 해석의 난이도가 높아지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실제로 기독교인이라 하더라도 성경을 읽으며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습니다.
본문 자체도 단일한 목소리로만 이루어져 있지 않습니다.
시대와 저자가 다른 여러 문서들이 모여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서로 긴장 관계에 있는 서술이나 강조점의 차이도 존재합니다.
또한 장과 절 구분은 후대에 추가된 것이며,
본문 역시 오랜 시간에 걸쳐 편집과 정리 과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문맥을 무시하고 일부 구절만 따로 떼어 해석하면
서로 상반된 주장도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 남북 전쟁 당시 남부와 북부의 교회는 동일한 성경을 근거로
노예제를 각각 정당화하기도 하고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오직 성경”이라는 원칙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성경만을 단편적으로 읽는 방식은 오히려 해석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개인이 성경만을 읽고
기독교의 본질과 교리를 온전히 파악할 수 있을까요?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습니다.
오늘날 제시되는 다양한 개인적 해석이나 주장들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지난 수백 년에서 천 년 이상의 신학적 논쟁 속에서 검토되었고,
그 과정에서 비판되거나 배제된 경우가 많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