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상은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해야 하는가'**라는 복잡하고 민감한 주제에 대해 이동진 평론가가 철학적, 예술적 관점에서 심도 있게 다룹니다.
주요 논점:
-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주장의 한계 (1:34-4:50): 악인을 단순하게 낙인찍는 방식은 위험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내면에 악의 씨앗을 가질 수 있으며, 악을 단순히 '악인'이라는 인물 중심이 아니라 '악한 행동'이라는 행위 중심으로 바라봐야 합니다. 또한, 악인이 세상을 만드는 것인지 세상이 악인을 만드는 것인지에 대한 복합적인 관점이 필요합니다.
- 악을 이해해야 하는 이유 (12:53-15:44): 범죄 수사(프로파일링)에서의 실용적 필요성뿐만 아니라, 인간 본성과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 악을 탐구하는 것은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악을 괄호 치고 외면하는 것보다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합니다.
- 예술과 언론의 차이 (7:06-9:45): 실제 사건을 보도하는 언론은 피해자의 고통을 가리지 않도록 더 엄격한 윤리 기준이 필요하지만, 예술은 보다 느슨하고 포용적인 태도로 인간과 악의 문제를 탐구할 수 있는 장이 되어야 합니다.
- 예술에서의 재현과 윤리 (25:05-38:37): 영화가 악을 다룰 때 악인을 매혹적이거나 동정적인 존재로만 그려 변명거리를 주어서는 안 됩니다. 28년 후나 존 오브 인터레스트와 같이 장르적 특징과 거리감을 잘 조절하여 악의 실체를 보여주는 방식이 예술적 승리가 될 수 있습니다.
결론: 이동진 평론가는 '악인에게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슬로건을 **'악인에게 잘못된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로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악을 이해하는 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과정이며, 예술은 그 과정을 돕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동진 평론가는 책 리뷰어로도 유명합니다.
가끔씩 이런 철학 영상을 봐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큰 힘을 가진 악인(특히, 개신교 계열)이 선인을 끝없이 시험해서
선인을 정신병에 걸리게 만드는 명분을 준다는 점이죠.
'네 속에도 분명히 악이 존재한다, 네가 이래도 악한 행위를 안 할래?' 라면서
끝없이 선인을 괴롭히는 도구로 악용한다는 거...ㅋ
보편적인 인간과 절대악인을 구분하는 방법이나 기준이 수학의 정리처럼 뚜렷하진 않아도
법이라는 기준과 지능 높은 동물보다는 더 높은 지능을 가진 인간의 기준으로
절대 악인이라고 판단되면 선인과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보통사람과는 다른 부류로 선악구분의 경계는 그어줘야죠.
악을 이해하는 것과 동의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말입니다.
철학과 심리적인 부분에서 악에 대해 이해한다면, 사회적 고찰을 할 수 있고 범죄를 줄여나갈 수 있는 거죠.
영상을 다 보셨다면 악인에게 잘못된 서사를 부여하지 말라는 게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있으셨을 겁니다. 악인의 사연팔이가 아니죠.
사회에서 도덕, 양심, 선을 배우기 위해서 악에 대해서 알고 있어야지 선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제 댓글은 영상과 상관없이 주요 논점의 첫 번째 요약에 대한 반대의견이었습니다.
또한, 악에 대한 이해는 오해를 불러 일으키기 십상이죠.
악에 대한 해석이 필요하다든지 해석해야 한다가
오해를 방지하는 올바른 표현이러고 생각합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악에 대한 파악이 필요하다는 정도로 이 영상에서 표현했었으면 더 좋긴 했겠어요.
범죄에 대한 연구는 앞으로 인공지능과 길거리에 깔린 cctv의 결합으로 빛을 발할 겁니다.
사소한 행동패턴으로도 범죄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같은 시대가 올겁니다.
세상 자체가 거대한 판옵티콘이 될 테니…ㅋ
이러한 감시 시스템은 범죄 가능성을 잡아내는 것이 아니라 행동 통제 시스템으로 작용해요.
범죄를 연구할 필요 없이 보고 잡아내는 것이라 악에 대한 파악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 통제 하는 것은 범죄 예방을 위해서 행동하는 게 아닙니다.
게다가 바람직하지도 않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