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 현업 택시 기사입니다.
평생 도로 위에서 인간의 실존을 목격하며, 우리가 알고 있는 '선악과 사건'에 대해 조금 엄밀한 논리적 분석을 단편소설 형식으로 풀어보았습니다.
3회로 나누어 연재해볼 예정입니다. 신학적 고정관념을 넘어선 '제3의 사유'에 대해 함께 고민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역설적 요소때문에 다소 지적 긴장감을 요구며 어려울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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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설적타락론
*머리말*
왜 신학은 하나님 말씀을 믿고 선악과를 먹는 경우를 말하지 않는가?
인류 최초의 타락은 대개 이렇게 설명된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았고, 그래서 불순종했다.
그러나 이 설명은 논리적으로 완결된 것일까.
선악과 사건을 말씀에 대한 태도와 행위라는 두 축으로 나누면, 경우의 수는 논리적으로 4가지 매트릭스가 존재한다.
1 하나님 말씀을 믿고 먹지 않는다
2 믿지 않고 먹는다
3 믿고 먹는다
4 믿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다
전통 신학은 오직 1번,2번, 즉 순종 그리고 불신과 불순종의 결합만을 다뤄왔다.
하지만 3번, 말씀을 믿었음에도 불구하고 먹는 경우는 왜 논의에서 사라졌을까.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는 말을 철저히 믿었기에
그 죽음을 감수하고 선택하는 행위는 정말 불신일까.
아니면 자기 실존을 걸고 응답하는,
가장 극단적인 선택이지는 않을까.
다시말해서
이 질문은 선악과 사건을
단순한 도덕 위반이 아니라
인간이 자기 선택에 책임지는 존재로 서게 되는
실존적 전환의 순간으로 볼 수는 없는 걸까?
이 문제제기는 전통 신학을 부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신학이 무엇을 설명해왔고, 무엇을 설명하지 못했는지를 묻는 질문이다. 수천 년간 해석의 틀 속에서 빠져 있던 하나의 경우의 수를 정확히 테이블 위에 올려놓자는 제안일 뿐이다.
신학이 살아 있는 학문이라면, 가장 불편한 질문 앞에서 침묵이 아니라 언어를 내놓아야 한다.
하나님 말씀을 믿고 선악과를 먹는 경우는
정말 신학적으로 말할 수 없는 영역인가.
아니면 우리가 아직 말하지 않았을 뿐인가.
혹은 말해서는 안 되는 영역인가.
*아래의 글은 성경의 특정 사건을 바탕으로 한 교리적 해석이 아니라, 하나의 사유를 확장하기 위해 구성된 이야기입니다.
제1장: 천지 창조
태초에 빛이 있었다. 그러나 그 빛은 정적인 완성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대한 설계도 위에 그어진 첫 번째 잉크 자국이었고,
그 곁에는 신의 손과 발이 되어 만물을 빚어내던 천사장 누시엘이 있었다.
하나님은 우주의 법도를 세우셨고, 누시엘은 그 법도를 질료 삼아 구체적인 생명들을 빚어냈다.
창조의 정원은 거대한 실험실과 같았다. 신은 거시적인 질서를 선포하셨고, 누시엘은 미시적인 생동감을 채워 넣었다.
그러나 누시엘은 가끔 열정에 취해 신의 설계를 앞질러 나갔다.
어느 날이었다. 누시엘이 갓 빚어놓은 짐승을 보시고 하나님은 걸음을 멈추셨다.
"누시엘아, 저것은 무엇이냐?"
하나님이 가리킨 곳에는 유연한 몸과 날카로운 이빨을 가진 고양이 같은 동물 한 마리가 서 있었다.
그런데 그 고양이의 네 발에는 엉뚱하게도 물살을 가르는 '오리발'이 달려 있었다. 고양이는 땅 위를 걷지도, 물속을 제대로 헤엄치지도 못한 채 뒤뚱거리고 있었다.
"보십시오, 주님! 고양이가 물고기까지 사냥할 수 있다면 훨씬 더 완벽한 포식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저는 이 생명이 모든 영역을 정복하기를 바랐습니다."
누시엘은 자신의 창의성에 도취해 눈을 반짝였으나, 하나님은 엄하게 나무라셨다.
"누시엘, 욕심이 과하였구나. 땅의 것은 땅의 순리를 따라야 하며, 물의 것은 물의 길을 가야 한다.
한 존재가 모든 능력을 갖추는 것은 완성이 아니라 '괴물'이 되는 길이다.
모든 것을 가질 수 없기에 비로소 각자의 '자리'가 생기는 법이지. 당장 가서 다시 만들라."
누시엘은 무안한 듯 머리를 긁적이며 오리발을 떼어내고 고양이에게 날렵한 솜방망이 발을 선사했다.
그런 누시엘의 뒷모습을 보며 하나님은 작게 미소 지으셨다.
지난번에는 쓸데없이 모기를 만들어 잠도 못 자게 만들더니...으흠~
엉뚱한놈...
창조는 그렇게 '명령'과 '수정' 사이의 긴장 속에서 완성되어 갔다.
제2장: 아담의 창조
만물은 말씀으로 빚어졌으나, 사람은 친히 하나님의 손길로 빚어졌다.
하나님은 땅의 흙을 끌어모아 정성스레 형상을 만드셨다.
그것은 누시엘이 짐승들을 빚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몰입이었다.
신은 자신의 형상을 그 흙 인형 속에 투영하셨고, 마침내 그 코에 자신의 숨결을 불
어넣으셨다.
"아담."
신의 목소리가 닿는 순간, 흙은 살이 되고 숨은 생명이 되었다.
아담이 처음 눈을 떠 창조주를 바라보았을 때, 하나님은 형언할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셨다.
만들고 보니, 정말이지 사랑스러웠다.
그것은 단순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넘어선 것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의 맑은 눈동자 속에서 자신의 무한함을 보았고, 그가 내뱉는 서툰 첫 숨에서 자신의 생명을 보셨다.
아담은 신의 가장 완벽한 거울이었으며, 동시에 신이 외로움을 잊기 위해 만든 유일한 연인이었다.
하나님은 아담을 바라보며 생각하셨다. '나의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깝지 않구나.'
신에게는 우주의 별도, 신비로운 천사들도 이미 발아래에 있었다.
그러나 아담만은 달랐다. 하나님은 그에게 에덴의 모든 권한을 맡기셨고, 그가 거니는 모든 길 위에 자신의 사랑을 쏟아부으셨다.
아담이 이름을 붙이는 대로 만물의 이름이 되는 권능을 주신 것은, 신이 가진 '정의'의 권력마저 그에게 나누어 주었음을 뜻했다.
아담의 존재 자체 만으로도 신의 기쁨이었고, 신은 그를 위해 온 우주를 배경으로 깔아두셨다.
신의 가슴속에는 아담을 향한 단 하나의 열망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이 아이가 영원히 자신의 품 안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기를.
제3장: 신의 고민
아담은 에덴의 그늘 아래서 평화로웠다.
그러나 그 평화를 지켜보는 하나님의 눈빛에는 짙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아담은 너무나 순수했지만, 그 순수는 역설적으로 '무지'와 맞닿아 있었다.
그는 신이 정해준 울타리 안에서만 안락할 뿐, 스스로 가치를 판단하고 책임지는 '독립된 인격'으로 자라지 못하고 있었다.
'내 사랑하는 아담... 언제까지 내 품 안에서 철없는 아이로만 머물게 할 것인가.'
하나님의 고민은 깊어졌다. 진정으로 아담을 사랑한다면, 그를 영원히 '애완용 인간'으로 가두어 둘 수는 없었다.
그가 신과 대등하게 마주 앉아 선과 악을 토론하고,
스스로의 삶을 결정하는 ‘진정한 어른(성인)’이 되길 원하셨다.
그러나 그 성숙이 어떤 방식으로 찾아와야 하는지,
그리고 그 과정을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 도무지 생각이 떠오르지 않앗다.
하나님은 식음을 전폐하고 고민에 빠지셨다. 신의 침묵이 길어지자 에덴의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옆에서 하나님을 보조하던 총명한 누시엘조차 그런 신의 모습이 낯설고 궁금했다. '무엇이 그 전능하신 분을 이토록 괴롭게 만드는가?'
수없는 번민이 스쳐 지나간 며칠 뒤, 마침내 하나님의 눈이 번쩍 뜨였다. 무릎을 탁 치며 신이 외치셨다.
"그래, 그 방법뿐이로구나!"
하나님은 자신의 방 밖에서 궁금증에 가득 차 있던 누시엘을 불러 세우셨다.
"누시엘, 이리 가까이 오너라. 네 도움이 필요하다. 오직 너만이 할 수 있는 아주 특별하고도 위험한 임무다."
누시엘은 긴장한 채 신 앞에 무릎을 꿇었다. 하나님의 목소리는 낮고 엄숙했지만, 그 안에는 인간을 향한 거대한 사랑의 승부수가 담겨 있었다.
제4장: 하나님의 명령과 해와의 창조
하나님은 누시엘과 비밀스러운 대화를 마친 뒤, 다시 아담 앞에 서셨다.
신의 눈동자에는 아담을 향한 애틋함과, 곧 닥쳐올 거대한 변화에 대한 우려가 교차하고 있었다.
하나님은 아담의 어깨를 짚고, 전과는 다른 낮고 떨리는 목소리로 엄중한 법을 선포하셨다.
"아담아, 네게 단 하나의 약속을 구한다.
이 동산의 모든 것은 네 것이나, 단 하나, 내가 허락할 때까지 순결을 지켜야 한다.
이것은 너와 나 사이의 약속이며, 반드시 지켜야 한다.
신은 알고 계셨다. 법이 주어지는 순간 아담에게는 '어길 수 있는 자유'가 생기며, 그 자유를 사용하는 대가는 혹독할 것임을. 그래서 신의 목소리는 떨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자식을 험한 세상으로 내보내기 전, 문 앞에서 마지막 당부를 하는 아버지의 떨림이었다.
그러나 아담은 여전히 고독해 보였다.
신의 사랑은 완벽했으나, 아담에게는 자신과 같은 높이에서 눈을 맞추고 살을 비빌 '같은 종류의 존재'가 없었다.
신은 아담의 고독을 깊이 측은히 여기셨다.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너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나님은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셨다.
그리고 그의 갈빗대 하나를 취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존재를 빚으셨다.
아담이 깨어났을 때, 그의 눈앞에는 자신을 닮았으나 자신보다 훨씬 부드럽고 생동감 넘치는 존재가 서 있었다.
"이름은 해와라 하라."
아담은 해와를 보는 순간 외쳤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해와의 등장은 아담에게 우주 전체보다 더 큰 기쁨이었다.
이제 아담은 혼자가 아니었다. 사랑을 나눌 대상이 생겼고, 동시에 신이 주신 '순결의 법'을 함께 지켜내거나, 혹은 함께 깨뜨리고 나갈 동반자가 생긴 것이었다.
두 사람은 에덴의 눈부신 햇살 아래 서로의 손을 잡았다.
하나님은 멀리서 그들을 바라보며, 자신이 준 '떨리는 법'과 '사랑스러운 짝'이 만들어낼 거대한 역설의 서막을 묵묵히 지켜보셨다.
제5장: 비련의 베르테르, 누시엘의 눈물
누시엘은 하나님의 곁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분의 마음을 읽어온 존재였다..
하나님이 아담을 만드시고, 그의 성장을 위해 식음을 전폐하며 고민하는 모습을 가장 가까이서 본 것도 누시엘이였다.
누시엘은 하나님과의 은밀한 계획을 생각하며 고민했다..
하나님은 아담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그가 신의 품을 떠나 스스로 서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하지만 그 일은 누군가 '악역'을 맡아 아담과 해와를 떠밀어야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것은 지독한 저주를 짊어져야 하는 일이었다.
하나님은 그 비극적인 임무를 자신에게 명하실때 몇번을 말씀 도중에 멈추시며 고뇌하셨다, 누시엘은 그런 하나님을 보며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주님, 당신의 고통을 제가 가져가겠습니다.
저 아이들이 성인(어른)이 될 수만 있다면, 당신의 그 깊은 사랑이 완성될 수만 있다면... 제가 기꺼이 저주의 이름을 뒤집어쓰겠습니다."
이것은 공모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는 이를 위한 스스로의 파멸, 신에 대한 충성스런 자기 투신이였다.
누시엘은 아담과 해와를 유혹하는 악마가 아니라, 그들이 신의 형상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자기 자신을 제물로 바쳐 '뱀의 가죽' 속으로 기어 들어간 비련의 주인공이 되는 것이었다.
그는 뱀의 혀를 빌려 말하겠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자기가 유혹하는 그 순간부터 자신은 신의 곁을 떠나 어둠 속을 기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제6장: 아담과 해와의 이야기
에덴의 오후는 눈부시게 평온했다. 아담은 해와의 손을 꼭 잡고 생명나무 아래를 거닐며 신이 주신 '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아담에게 그 법은 무거운 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약속하신 찬란한 미래로 가는 유일한 이정표였다.
"해와, 기억해야 해. 하나님이 허락하시기 전까지 우리는 순결을 지켜야 해. 그건 이 우주를 만드신 지엄하신 하나님의 법이야. 법은 지켜야만 하는 거야. 알았지?"
아담은 해와를 향해 확신에 찬 미소를 지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직접 결혼식을 올려주시겠지. 수많은 천사가 나팔을 불고, 만물이 우리를 축하하는 그 거대하고 웅장한 예식 말이야. 우리는 그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돼."
해와는 아담의 맑은 눈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숲의 그늘 속에서 뱀의 가죽을 뒤집어쓴 채 숨죽이고 있던 누시엘은, 아담의 그 천진한 희망을 들으며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는 것을 느꼈다.
누시엘은 낮게 읊조렸다. '아담아, 네가 꿈꾸는 화려한 예식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너희는 영원히 신의 품 안에서 철없는 아이로 머물 것인가, 아니면 고독한 결단을 통해 축복 속의 성인(成人)으로 태어날 것인가.'
누시엘은 자신이 맡은 배역의 비극성을 다시 한번 되새겼다. 아담과 해와가 '어른'이 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그들을 안락한 요람에서 밀어내야만 했다. 그것이 신이 자신에게 차마 쉽게 말하기 어려웠했던, 고뇌에 찬 신의 명령, 혹은 자신이 신을 사랑하기에 스스로 짊어진 잔혹한 사명이었다.
이제 누시엘은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해와가 아담의 손을 잠시 놓고 숲의 향기에 취해 홀로 걷기 시작한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뱀의 혀는 갈라져 있었으나, 그 너머에서 들려올 목소리는 그 어떤 천사의 노래보다도 치명적이고 매혹적일 것이었다.
계속....
신과 동등한위치가 되었을때 또는 신을 완전 부정하는 위치일때 신을 섬기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테니깐요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것을 깊게 생각하시고 표현 하나하나에 굉장히 세심하게 고민하신 흔적이 보입니다.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이어지는 글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