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작은 회사 이야기 1
10년여 전, 지인의 회사에서 잠시 일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구직을 요청한 것이 아니고 긴 시간 알고 지낸 어떤 친목집단에 함께 속한 이 회사 오너의 요청에 의해서였습니다.
이 오너분은 제가 입사하기 직전 부친상에 큰 돈을 부의금으로 쾌척하신 일이 있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특별한 계획도 없이 쉬고 있었는데,'노느니 뭐라도 해야 사람이 녹슬지 않는다'는 생각에 고향을 떠나 서울에 월세 60만원짜리 오피스텔을 계약하고 그 사무실에 출근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명 정도가 일하는 작은 사무실이었고, 어떤 특정 주제에 관한 컨텐츠를 제공하는 웹사이트와 앱을 직접 만들어 서비스하는 회사였는데, 저를 포함해 두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 인원들은 오너까지 모두 개발자였기 때문에 컨텐츠가 아닌 개발이 주 업무인 회사라고 저는 파악하고 있었고, 개발자가 아닌 저는 '회사가 정상 궤도에 오르면 내 자리는 없다' 라는 당연한 인지를 한 채 1~2년 정도 일할 생각이었죠.
제 업무는 컨텐츠 관리, 자세히는 외주 작가가 쓴 글을 여러 번역 커뮤니티에서 섭외한 번역가들에게 맡겨 외국어로 번역해 받은 결과물을 정리해 사이트에 게시하는 일을 메인으로 하고 사이트의 정책적인 부분을 오너와 상의하여 결정하는 정도로 그다지 힘들거나 하지는 않았습니다. 그 만큼 급여도 그다지 높지는 않았지만, 애초에 돈이 필요해서 취업을 원했던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현상유지만 되어도 만족했습니다.
그런데 출근하기 시작한 지 그리 오래지 않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4개월차부터 급여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당장 사정이 어려우니 회사의 운영이 나아질 때까지 조금 기다려 달라... 뭐 뻔한 소리구요.
이 때부터 제가 가지고 있던 고마움이 저를 옭아매는 족쇠가 됩니다.
회사가 어려우니 지출을 줄이기 위해 영어 번역가를 내보내고 어느 정도 영어가 가능한 제가 번역까지 맡게 됩니다. 여기까지는 OK...
급여가 계속 밀립니다. 3개월째 밀리자 숨통이 차 오르기 시작합니다. 제가 가진 현금이 당시에 2억 가까이 있었고 저와 사적인 대화를 많이 나눴던 사장이 그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돈으로 버틸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급여를 지급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그런 생각을 했을거라 믿습니다. 하지만 그 돈의 대부분은 어머니에게 빌려 드리고 투자를 하거나 친구에게 빌려주거나 해서 제 수중에 없었습니다.
서울로 이사할 때 가져간 현금은 700정도. 오피스텔 보증금으로 500이 들어가고 수중에는 200과 3개월치 급여에서 쓰고 남은 몇백... 그 돈으로 60만원의 월세와 월 17만원 정도의 관리비를 내며 언제 지급될 지 알 수 없는 급여를 기다리며 버티려니 5평 오피스텔이 내가 죽어 묻힌 관짝같아지고 하루하루 점점 숨통이 막혀 옵니다.
결국 수중에 돈이 떨어져 월세를 낼 돈이 없게 됩니다. 평생 단 한번도 휴대폰 요금이나 전기료, 월세를 제 때 못 내 본 적이 없습니다. 직장인 마이너스통장이나 대출을 알아봅니다. 급여 지급 통장에 급여가 안정적으로 지급된 내역을 요구합니다. 글렀군...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아 일단 월세를 내고 오너에게 현금이 떨어져 대출까지 받아 월세를 냈다 급여 지급해 달라, 요청합니다. 소용이 없습니다. 스트레스로 일이 손에 안 잡힙니다.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내가 여기서 뭘 하는 짓인가... 혼자 되신 어머니 손 잡고 좋은 곳 구경이나 더 시켜 드렸어야지' 이제 늦기 전에 탈출해야겠습니다. 부친상때의 부채감은 이제 사라집니다. 빚은 다 갚은 것 같으니 나는 달아나야겠다.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지만 약 6개월 일한 시점이었던 것 같습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몸이 이상합니다.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몸이 바람 빠진 풍선처럼 흐느적거립니다. 발을 뻗어 바닥을 밟는 발바닥이 화끈거리고 쓰라립니다. 바닥을 딛고 일어나려는데 무릎이 꺾이며 뒤로 벌렁 쓰러졌습니다. '몸이 이상하다...'
즉시 사장에게 몸이 아프다고 말하고 한 번쯤 사무실을 나와 병원을 찾았던 것 같습니다. 아픈 원인은 못 찾았고 이 때 쯤부터 기억의 순서가 분명치 않아요.
전철로 6정거장 출퇴근 하는 시간이 너무 아프고 힘들며 출근해서도 밤새 아파 잠을 못 잔 탓에 꾸벅꾸벅 졸게 되고 온몸이 아파 똑바로 앉아 있기가 힘이 들었습니다. '내 가치를 0원으로 느끼게 해 준 이 사무실에서 내가 0원치 이상의 일을 해 줄 필요가 있나?' 라는 생각과도 싸워야 했습니다. 당연히 업무 처리량이 평소의 절반도 안 나옵니다. 돈 문제와 몸 상태로 인한 스트레스로 정신없이 지내다 결국 아픈 채로 6개월을 더 채워 딱 1년째에 더이상 출근하지 못하겠다 말하고 급히 고향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과정에 스트레스로 예민해진 저는 몸 상태도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을 것 같고 옆에 누가 있다는 게 부담감이 되어 여친과의 관계도 정리했습니다. 급여는 끝까지 받지 못했구요. 아마 사장 쪽 입장은 '쟤 1인분도 못 하는데 내가 약속한 급여를 다 주는 건 부당하다' 라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픈 채로 출근했던 6개월 간 나는 몸과 마음이 많이 아팠지만 그건 남 일이기 때문에 꾀병인지 뭔지 알 게 뭐람?
이 회사를 다니면서 오너에게 여러 번 실망했습니다.
당연히 제 급여를 지급받지 못한 게 첫번째입니다. 그리고 회사 외부 프리랜서에게 일을 맡길 일이 간혹 있었는데 제게 '가능하면 건마다 돈을 지급하기보단 나중에 회사가 커 지면 크게 보답하겠다는 방향으로 공짜로 일하게 설득해 보라' 는 취지의 말을 했습니다. 사장의 실제 마음이 어땠는 지는 일개 직원인 저로서는 알 수 없지만 '이 사람은 사람을 공짜로 쓰겠다는 거구나' 로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내 상황과도 맞아 떨어지구요. '나중에 회사가 커지면' 이라는 말은 저도 들었지만 내가 오너라면 회사가 커지면 지인 나부랭이보다는 전문성을 가진 사람으로 대체할 것 같은데?
외부 사람을 접촉할 일이 생기면 간혹 사장과 제가 동석해 미팅을 갖기도 했는데요, 사장이 자주 하는 말이 '저는 돈을 벌기 위해 회사를 운영하는 게 아닙니다' 였습니다. 사실 그 회사의 메인 업무인 컨텐츠 제공이라는 부분에서는 매출이 전혀 없기는 합니다. 컨텐츠 생산을 위한 지출만 계속 하고 있고 웹사이트나 앱에 광고도 없으니 수익이 0입니다만 그건 제가 보기엔 덩치를 키워 팔기 위해서였지 돈을 바라지 않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사의 컨텐츠를 관리하는 건 당시 저 혼자였습니다. 나머지는 모두 개발자인 회사. 그렇습니다. 개발이 메인인 회사입니다. 이 회사의 서비스는 개발자들의 포트폴리오일 뿐이다 - 라는 게 제 판단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돈을 바라고 이 사업을 하는 건 아니라는 말은 반은 거짓말인 것입니다. 그리고 어찌 당당히 '나는 BM이 없는 사업을 하고 있다' 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는 지, 오너가 아닌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기도 했고, '직원 급여도 못 챙겨 주는 오너가 할 말도 아니라는 생각을 옆 자리에 앉은 급여를 몇 달째 못 받아 월세를 대출받아 납입한 직원이 하고 있을 거라는 상상도 못 하는 건가?'
화룡점정이 남아 있습니다. 저는 이 회사에 절망하고 몸은 점점 더 나빠져 불안장애 증상이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사람을 마주보면 그 사람의 얼굴이 집채만해져 내 코앞까지 다가오는 환상이 보였습니다. 물어 뜯길 것 같은 불안감이 엄습하고 다리가 후들거리기까지... 그래서 다른 사람과 눈을 맞추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 때쯤 오너도 절망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누구라도 원하면 회사를 팔고 싶다, 네가 싸게 운영권을 가져갈 생각은 없냐?'는 취지의 이야기를 했습니다. 'BM도 없고 가진 거라고는 지금까지 쌓아 온 컨텐츠밖에 없는, 그 컨텐츠라는 것도 계속해서 갱신하려면 돈이 계속 들어가며, 돈이 부족해 갱신을 멈추면 시간이 지나 컨텐츠의 신선도가 떨어져 가치가 없어질 껍데기는 나에게 넘기고 알맹이인 개발자들만 쏙 빠져나가겠다?' 사장의 말을 듣자마자 든 생각이었습니다. 나를 바보로 아나...?
1화 끝. 2화는 있을 지 없을 지 모르겠어유...
자신의 꿈을 위해 타인을 착취하는 곳에
오래도 버티셨네요.
대단하십니다.
https://www.clien.net/service/board/park/18754433CLIEN
클리앙에서 본 진리입니다.
누구에게 악덕 사장이 누구에게는 자상한 가장일 수 있으니깐요.
부조금 챙겨주신 그분은 좋은 사람이었지만
사장으로서 그분은 최악이네요.
그런데 급여를 주지 않으면 노동부에 신고하거나 해서 처벌받게 할 수도 있었는데, 그것을 알고도 그냥 참으신 건가요?
감히 월급을 주지 않은 사장의 무지함이랄까, 용기랄까, 참 희안하군요.
2편 기대하겠습니다. 은근 글을 재미있게 쓰시는 듯합니다.
뒷이야기도 좀 있긴 한데 본론은 이미 다 풀어 놔서 재미가 없을 지도... 혼자 메모장에 끄적거리다 정리가 되면 올려 볼까 합니다.
동업, 보험, 차 구입, 핸드폰 등등 지인한테 하면 절대 안되는 게 몇 개 있죠.
나중에 모든 직원들의 월급이 밀렸을때 강하게 컴플레인 하는 직원들을 먼저 주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회사에 공헌하고 헌신한 직원들에게는 이해해 주겠지 하는 맘이 사장에게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나고 보니 나중에 보상은 없습니다. 오늘 지금만 있습니다.
저는 다행히 퇴사하고 좋은 회사로 이직에 성공했습니다.
가끔 오너인 그 사람의 진심은 뭘까 궁금합니다. 절대 진심을 솔직하게 털어놓지 못할 것 같아서 기대는 없습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