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인류가 마주한 가장 거대하고도 위협적인 변수는 단연 기후위기다. 수많은 기후 과학자들이 인류 생존의 '돌이킬 수 없는 마지노선'으로 제시해 온 산업화 이전 대비 '섭씨 1.5도 상승' 돌파가 이제 가시권에 들어왔다. 이 임계점을 넘어서면 북극 빙하의 반사율 감소와 영구동토층의 메탄 방출 등 이른바 '양성 피드백(Positive feedback)'이 연쇄적으로 촉발된다. 인류의 통제력을 완전히 벗어난, 경험해 보지 못한 고온의 '찜통 지구(Hothouse Earth)'로의 진입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약 이러한 기후위기가 피부에 닿는 실질적 피해로 가시화되고 전 지구적인 공포가 덮친다면, 인류는 파국을 막기 위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지구 평균기온 상승의 핵심 원인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라는 사실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인류 역사상 이 배출량이 극적으로 역행했던 순간이 단 한 번 존재했다. 바로 전 세계가 멈춰 섰던 'Covid-19 팬데믹' 시기다. 팬데믹으로 인한 셧다운이 이어지던 2020년 동안, 글로벌 탄소 배출량은 전년 대비 약 7%라는 경이로운 감소세를 기록했다.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측면에서만 본다면 유례없는 성과였다.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직시해야 할 것은 그 '탄소 감소 7%' 이면에 도사린 참혹한 대가다. 팬데믹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제1차 세계대전의 사상자를 웃도는 약 3,000만 명의 희생이 남았다. 그리고 이 비극의 무게는 결코 평등하지 않았다. 희생자의 압도적 다수는 기초적인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지 못하는 제3세계 국가의 국민들이었으며, 선진국 내에서도 저소득층, 고령자 등 철저히 '사회적 약자'들에게 피해가 집중되었다. 반면, 자본과 권력을 쥔 기득권층의 생존 방식은 전혀 달랐다. 그들 역시 바이러스의 물리적 전파 경로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나, 자본을 통한 신속한 의료 서비스 접근과 백신 선점 등으로 피해를 통제했다. 오히려 각국 정부가 팬데믹발 경제 위기를 방어하겠다며 단행한 전대미문의 양적완화(QE)는 자산 시장의 폭등을 불렀고, 자본가들의 부는 팬데믹의 공포 속에서도 극적으로 팽창했다. 이른바 'K자형 양극화'의 민낯이다.
이러한 팬데믹의 역사적 경험은 다가올 기후위기 앞에 서늘한 경고를 던진다. 기후재난의 공포가 극에 달하고 시스템의 존립이 위협받을 때, 권력과 자본은 과거와 동일한 선택을 반복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기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은 기득권의 막대한 비용 지출과 기득권의 포기를 요구한다. 위기에 내몰린 그들에게 가장 손쉽고 매력적인 선택지는 모두가 공존하는 험난한 길이 아니라, 구조 하단에 위치한 계층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도려내는 것이다. 한정된 거주 가능 구역과 자원에 장벽을 치고, 후진국과 사회적 약자들을 시스템 밖으로 밀어내며 자신들만의 요새를 구축하는 '기후 아파르트헤이트(Climate Apartheid)'나 국지적 무력 충돌이 현실화될 우려가 크다. 생존이라는 대명제 아래, 약자의 희생은 효율적인 문제 해결 방식으로 둔갑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마주한 진정한 위기는 기온 상승 그 자체에만 있지 않다. 위기를 명분 삼아 다수의 약자를 벼랑 끝으로 내몰며 기존의 질서를 유치하려는 배타적 권력의 속성이야말로 가장 끔찍한 재난이다. 팬데믹이 남긴 이 섬뜩한 힌트를 그저 방관해선 안 된다. 특정 계층의 '선택적 생존'이 불가능하도록, 환경 비용을 부유층과 화석자원으로 이익을 얻는 자본에 정당하게 묻는 '정의로운 전환(Just Transition)'이 시급하다. 자원의 배분과 정책 결정 과정이 밀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도록 투명한 데이터 공개와 시민 사회의 강력한 민주적 감시망을 구축해야 한다. 권력자들의 책상 위에서 '약자의 희생'이라는 선택지가 영구적으로 삭제되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 그것이 임계점을 향해 달려가는 인류가 당장 시작해야 할 마지막 연대일 것이다.
아마 인간은 기후변화에 적응못하고 멸종할거라 생각합니다.
인간이라는 종족은 연결된 집단의 크기에 비해 꽤나 배타적이라서요. (aka 나만 아니면 돼 마인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