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의 힘은 강력합니다.
도시를 형서하고 사회를 이루고 살게 된 사람들이 만들어 온 가장 강력한 힘입니다.
유럽의 다문화 정책을 비롯해 기존의 인식의 문제는
이 문화가 갖는 힘을 애써 무시해 왔다는 것입니다.
어렵고 고달픈 시기 또는 융성했던 시기를 오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문화는,
사회 안에 속한 개인들의 삶의 궤적이 세월에 따라 녹아 들고 또 녹아들어 만들어져 온 것이며,
그것을 묶어 주는 역할을 종교가 주로 담당해 왔습니다.
그 종교의 교리에 따라 강제력이 들러 붙게 되면, 더욱 더 타이트한 조임을 갖게 됩니다.
이슬람이 이러한 케이스입니다.
뿌리 깊은 문화적 전통이 가장 강하여 삶 자체에 녹아 있는 것은 힌두교라 볼 수 있겠습니다.
르네상스 이전의 유럽이나 유교가 들어 오기 전의 불교 국가였던 우리나라의 과거도 그렇겠습니다.
인생의 가장 중요한 관문이라 여겨졌던 관혼상제 모두 불교식 방식을 따랐던 시기가 있었습니다.
유교는 겉으로는 덜한 듯 보이나 사고 방식에는 아주 큰 차이를 만들어 냈습니다.
유교 이전에도 이미 형성 되어 있던 여러 개념들 중 일부가 특히 강조 되며,
당신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하고, 그 신분 질서를 잘 따를 때 개인의 삶과
국가가 튼튼해진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유교는 근본적으로 백성을 위한 사상이 아니라 지도자들의 덕목으로 시작되었습니다.
백성을 위할 줄 알야야한다는 유교적 덕목이 있다면, 그게 그거 같아 보일 수 있지만...
기준점이 다릅니다.
후일 보다 넓은 포용을 보이려 했지만 근본이 지배자의 통치 이념이었기 때문에,
한계가 뚜렷한 사상이었습니다.
그러하기 때문에 유교의 본고장인 중국에서도 일반 백성의 삶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파고 들긴 했지만 완전히 뿌리내리지는 못했습니다.
조선의 중 후기가 유일하게 유교가 백성들의 삶까지 뿌리내린 케이스입니다.
물론 가장 앞서서 종교가 문화 그 자체로 일치해버린 힌두교를 따라 잡기는 어렵겠습니다만...
이렇게 지구촌의 가장 대표적인 문화 중 다수가 종교/문화/개인의 삶이 일체화 되어 있고,
이것이 국가적 정체성 보다 우위에 있는 경우에는
제도가 작은 범위의 용광로는 작동할 수 있어도,
국가 단위의 용광로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게 됩니다.
그래서 숫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럼 안 되는 것이냐...모두가 버릴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한 사람의 세대 안에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민자들 중 적응을 잘 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수십 년이 걸리게 되고,
죽을 때까지 적응하는 척만 하는 케이스가 적지 않은 것입니다.
종교의 시작과 발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개념적 차이도 있습니다.
힌두교의 형성 및 역사적 이력을 보면 비교적 포용이 강합니다.
그래서 불교적 개념 또한 그다지 어렵지 않게 받아 들여 녹여 냅니다.
반대로 다른 것을 배척하고 결혼 상대조차 마음대로 고르지 못하는 등
절대적으로 지켜야 할 금기가 많고, 강제력이 강한 종교일수록,
다른 문화와 부딪힐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늘 그래 왔던 것은 아닙니다.
기독교도 그렇고, 이슬람도 그렇고 왕권이 강해지면 종교를 멀리하려 하게 됩니다.
권력의 속성과 잘 안 맞는 부분들이 있고 맞는 부분이 있는데,
이게 어느 시점, 어느 상황에서는 부딪히게 됩니다.
아니 정확히는 계속 부딪힘이 있지만 수면 위로 올라오지 않다가
격렬하게 부딪히게 되는 상황이 어김 없이 찾아 오는... 경향이 있습니다.
왕권이 강하고 나라가 성장 중에 있을 때는 어떤 종교든 포용적 모습을 보입니다.
그런데 어떤 나라가 오랜 세월 계속 흥할 수가 있나요.
어느 순간 백성, 지금으로는 시민의 삶이 어려워지고,
권력이 부패해지게 되면, 포용은 사라지고 생존 본능에 따라
파를 가르고, 차별적 의식이 금새 모든 것을 잡아 먹게 됩니다.
이렇게 권력의 부패가 곧 민생을 어렵게 하는 직접적 원인임을 모두가 알게 되면,
혁명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다문화는 그것을 준비하고 있을 때 관리를 잘 할 수 있는 것이지,
그 자체로 융합은 기대 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밀어내는 힘이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더 크고 더 오래, 더 많이 땔감을 준비해 용광로를 철저하게 관리 할 줄 아는 역량이 있어야 합니다.
제도와 융화의 과정을 관리하는 것. 이것이 다문화입니다.
늘 빠르게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배타적 힘이 더 강하게 만들어 주는 원인을 스스로 만들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어서입니다.
태양은 인간이 만들어 내고자 하는 1억도 이상의 온도가 아니지만,
그 거대함이 만들어 내는 질량과 중력으로 내부에서 핵융합 반응이 일어납니다.
모든 것을 집어 삼키는 그런 힘입니다.
지구는 태양처럼 될 수 없습니다.
태생적으로 그러하고,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다문화 사회가 된지 꽤 오래 되었습니다.
받아 들이는 속도가 더 빨라지지 않아야 관리가 됩니다.
기본적으로 아직은 한국 사회가 용광로 역할을 하긴 하는 것 같습니다.
완벽하진 않아도 ... 상대적으로 타국 보다는 ... 나은 것 같습니다.
앞서 종교의 힘이 묶어 주는 역할을 한다면,
경제는 그 묶는 힘의 크기와 양을 넓히게 해줍니다.
이걸 풀어 말하면, 겅제가 쪼그라들면 ...양적 팽창이 아니라 축소하게 되어,
융합도가 떨어지는 누군가 또는 집단은 구심점에서 점점 더 멀어지게 됩니다.
붙잡는 힘이 약해지니까요.
앞으로 우리나라의 다문화 정책 방향에 있어
아주 심각하게 이민 정책에서 실패한 여러 국가의 사례를 보고 연구하여,
제도와 인식 개선으로 이왕 한국으로 이민 온 이상
보다 더 잘 적응할 수 있게 돕고,
그런 시스템이 이상적으로 잘 작동하도록
보다 더 체계화 된 관리로 나아가야 할 때인 것 같습니다.
사회적 통합을 위해서는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 중에
사회적 관습, 생각이 모두 자리를 잘 잡고,
그 안에 누군가가 들어 왔을 때 녹아 들게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먼저고,
경제 외에는... 받아 들이는 수의 조절이 가장 중요한 것 같습니다.
예를들어, 독일같은 유럽 난민오케이 국가를 누군가는 성공이라고 하고 누군가는 실패라고 하죠. 기준점이 달라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원 발제자의 기준점을 소개하는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p.s 저는 유럽은 평타는 쳤다 봅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