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네타냐후, 병적 자기애…"내가 하는일 모두 옳다"
31분 전
극단적 전쟁범죄 저지르는 두 인간의 정신세계
편집증적 광기·공감능력 부재로 반사회 성향
전 세계인이 ‘미치광이’ ‘통제 불능 인물’ 지탄
정신의학 전문가들 ‘초기 치매’ 증상까지 의심
독재자들에게 나타나는 청소년기의 트라우마
자신만이 세계 구한다는 ‘전능 망상’ 이어져
이 대통령 비판 못 견디는 유대인 선민의식
마가의 미 우선주의와 함께 스스로를 망치고
세게를 혼란과 불안의 도가니로 몰아넣어
불법 이민자를 색출하기 위해 자국민 '살인'까지 저지르는 사건에 책임이 있는 국토부 장관을 추켜세우다 결국 토사구팽하기도 했다. 엡스타인 성추문 사건에 시달리던 트럼프는 갑자기 법무부 장관마저 자신의 연루 부분을 매끄럽게 해결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경질...
.....
.....
예수님...행세하는....
또랏푸...라는....요...
.....또람푸의...일상...입니다...
자존감 과잉
즉 나만 사랑할줄 알고 남은 사랑는걸 배우지 못한 반사회적 성향인데,
금쪽이 중2병에서 비롯된겁니다.
과도한 자존감을 억누리기 위해
세계적으로 교육과정에 체벌도입이 시급합니다.
현 극우는 과도한 인권중심 자유주의 사상이 낳은 괴물입니다.
다만, 적어주신 논리에는 조금 모순적인 부분이 있지 않나 조심스럽게 생각해 봅니다.
먼저, 극우의 반사회적 성향이 '인권 중심 자유주의 사상' 때문에 생겨났다고 하신 부분은 조금 의아합니다. 보통 인권과 자유를 강조하는 사상은 내 권리만큼 타인의 권리도 소중하다는 점을 전제로 하는데, 극단적 이기주의의 원인을 오히려 진보적인 인권 교육 탓으로 돌리시는 것 같아서요.
게다가 이런 '과도한 자존감'을 누르기 위해 '체벌 도입'이라는 방식을 제시하신 것도 역설적으로 느껴집니다. 남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를 비판하시면서, 그 해결책으로 누군가를 물리적으로 억누르고 통제하는 권위주의적인 방식을 꺼내시는 건 오히려 극우적인 억압의 방식과 닮아 보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타인을 존중하지 않는 반사회적 성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체벌과 억압보다는, 오히려 책임감과 진정한 공감 능력을 길러주는 방향이 더 맞지 않을까 싶습니다. 남겨주신 글 덕분에 저도 여러 가지로 깊게 생각해 보게 되네요.
권위주의가 강압적 억압이라면
민주주의는 자율적 억압입니다.
억압이 없으면 사회가 해체되요.
민주주의가 실제 그렇게 이상적 자유주의가 아니에요.
인간이 사회를 구성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할게 자존감 부터 꺽어야 해요.
유년기 형성된 과도한 자존감을 꺽는 수단이 학교의 체벌입니다. 이건 교육과정으로 이해해야 하요.
이걸 이해하지 못해 교육이 안되는겁니다.
인간이 자존감을 못 꺽으면 야만인 그대로 크는겁니다.
그게 극우에요.
학원이라면 내쫓아야 할 문제아들이 왜 학교에서 행패부리게 두는지 이해가 안됩니다.
또한 교육학적인 관점에서 자존감과 이기적인 자기중심성을 혼동하고 계신 것 같습니다. 자존감은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감의 튼튼한 밑바탕이 되는 건강한 마음이며, 우리가 교육을 통해 조율해야 하는 것은 타인을 무시하는 미성숙한 자기중심성입니다. 야만적인 이기주의를 비판하시면서, 그 해결책으로 체벌이라는 물리적 폭력을 동원해 개인의 자존감을 꺾어야 한다고 주장하시는 점은 굉장히 역설적으로 다가옵니다.
물리적인 폭력에 의해 자존감이 꺾인 사람은 타인을 존중하는 민주 시민이 되기보다는, 그저 강한 힘에 굴복하고 맹목적으로 순응하는 권위주의적인 인간으로 자라기 쉽습니다. 이기심과 방종을 경계하시면서 도리어 가장 억압적이고 통제적인 방식을 대안으로 제시하신 부분은,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민주주의와 진정한 교육의 의미를 다시 한번 고민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사회는 본질적으로 인간의 본능과 욕망을 억압하는것에서 출발합니다.
자유주의 반대가 사회주의 라는걸 이해하셔야 하고요.
교육은 시기별로 단계적 으로 거쳐야할 과정이 있답니다.
왜 자존감이라고 말하냐면 이건 부모가 심어주는거라서 그렇게 표현합니다.
애정과 사랑으로 자존감을 가족이 심어주는겁니다. 남은 못심어줘요.
이 자존감을 배우는 나이가 유아기입니다.
유아기때 자존감을 배우며 나 자신을 사랑하는것을 배우게 됩니다. 삶의 원동력이죠.
하지만 여기까지 교육이 되면, 그냥 야만에서 살아남는 법만 배우는거죠.
자존감은 반드시 유아기때 심어줘야 하지만.
이것 하나만 배우면 성인이 됐을때 이기주의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사회가 없이는 생존이 안됩니다.
인간은 유아기 과정을 거친후 크면 사회화 교육을 받습니다.
남도 나만큼 존중해 주며 사랑해주는걸 배워야 하는겁니다.
이건 학교에서 배웁니다. 이걸 사회화 라고 합니다.
부모는 못가르쳐요.
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려면 기본적으로 유아기때 심어준 과도한 자존감을 억눌러야 합니다.
체벌처럼 효과적인게 없답니다.
체벌 없이 사회화 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스스로 사고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매우 적어요.
그리고 어릴적 자존감이 주어진 아이들은 이 자존감이 절때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 체벌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지금 70년대생은 처음으로 금쪽이로 자라서
어마어마하게 맞고 자란 세대입니다. 이들은 체벌이 아무 문제가 안되고 오히려 대단히 사회화가 잘된 세대에요.
학교에서 체벌이 문제가 된다는건, 70년대 생을 보면 그 주장이 허구임이 이미 충분히 증명 된겁니다.
폭력을 하지 말라는건 어럴적 가정에서 자존감 형성기에 하지 말라는겁니다.
이걸 모든 체벌을 다 금지한다 이러면
진짜 교육 자체를 이해 못하는 무지상태에요
마치 근본주의자 같은겁니다.
인간의 교육 과정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체벌은 예방주사 같은 성격입니다. 폭력이 아닙니다.
체벌을 반대하는건 예방주사도 반대하는 매우 극단적 사고입니다.
다만, 적어주신 내용 중에 학술적, 사전적 개념과 다르게 적용된 부분들이 있어, 다른 분들의 오해를 방지하고자 몇 가지 사실 관계를 담백하게 짚어 설명해 드리고자 합니다.
> 억압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의 본능적 자유의지를 억누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한 수단을 다 억압이라 표현할 수 있어요. 자율적 절제도 억압의 한 종류입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억압의 의미는 "자기의 뜻대로 자유로이 행동하지 못하도록 억지로 억누름"입니다. 주로 강제적인 힘이나 권력을 사용하여 타인의 의사를 제한하는 강제성을 내포합니다. 반면,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자율적 절제는 시민이 타인과의 공존을 위해 이성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욕구를 조절하는 능동적인 선택입니다. 주체와 동기가 다르기 때문에, 자율적인 절제를 강압적인 억압과 동일한 범주로 묶는 것은 사전적 의미와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 자유주의 반대가 사회주의라는 걸 이해하셔야 하고요.
정치학에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은 국가나 집단의 통제를 우선시하는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입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비되는 경제 및 분배 시스템에 관한 개념이므로, 자유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은 학술적 분류에 맞지 않습니다.
> 남도 나만큼 존중해 주며 사랑해주는 걸 배워야 하는 겁니다. 이건 학교에서 배웁니다. 이걸 사회화라고 합니다. 부모는 못 가르쳐요.
사회학과 교육학에서는 가족을 1차적 사회화 기관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타인에 대한 공감, 규칙 준수, 도덕성의 기초를 가장 먼저 배우는 곳은 가정이며, 부모와의 상호작용이 사회화의 가장 핵심적인 토대가 됩니다. 따라서 부모가 사회화를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학계의 정설과는 다릅니다.
> 어릴 적 자존감이 주어진 아이들은 이 자존감이 절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학교 체벌은 문제가 되지 않아요.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은 고정불변의 특성이 아닙니다. 유아기에 자존감이 형성되었더라도, 성장 과정에서 지속적인 강압이나 체벌 등에 노출되면 심리적 위축이나 트라우마로 이어져 자존감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 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려면 기본적으로... 과도한 자존감을 억눌러야 합니다. 체벌처럼 효과적인 게 없답니다. 체벌 없이 사회화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스스로 사고하는 사람이 생각보다 매우 적어요.
스스로 사고하는 성숙한 시민을 기르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하지만 물리적 고통에 기반한 체벌은 이성적 사고를 촉진하기보다는 두려움과 순응을 학습시킬 우려가 큽니다. 또한, 현재 유럽을 비롯한 60여 개 이상의 국가에서 학교 및 가정 내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에서도 시민들의 사회화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체벌 없이 사회화되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주장은 현실의 통계와 다릅니다.
> 지금 70년대생은... 어마어마하게 맞고 자란 세대입니다. 이들은 체벌이 아무 문제가 안 되고 오히려 대단히 사회화가 잘 된 세대예요.
특정 세대의 사회화 성공 여부를 과거의 체벌 환경 덕분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당시의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교육 환경이 현재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권위주의적 위계 문화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사회학적 분석도 존재합니다.
> 체벌은 예방주사 같은 성격입니다. 폭력이 아닙니다.
세계보건기구, 미국소아과학회, 미국심리학회 등 주요 보건 및 심리학 기관들은 체벌을 아동의 인지 발달을 저해하고 공격성을 높일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분류하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이를 질병을 막는 의학적 척도인 예방주사와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습니다.
우리 사회가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다만, 그 목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학문적으로 검증된 사실과 사전적 개념을 정확히 구분하여 접근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 의견을 남깁니다.
>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억압의 의미는 "자기의 뜻대로 자유로이 행동하지 못하도록 억지로 억누름"입니다. 주로 강제적인 힘이나 권력을 사용하여 타인의 의사를 제한하는 강제성을 내포합니다. 반면, 민주주의에서 말하는 자율적 절제는 시민이 타인과의 공존을 위해 이성을 바탕으로 자발적으로 욕구를 조절하는 능동적인 선택입니다. 주체와 동기가 다르기 때문에, 자율적인 절제를 강압적인 억압과 동일한 범주로 묶는 것은 사전적 의미와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억압의 사전적 정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자기의 뜻대로 자유로이 행동하지 못하도록 억지로 억누름. ≒압억.
「2」 『생명』 제2의 돌연변이가 최초의 돌연변이 유전자의 발현을 억눌러 본디 형질이 발현되는 현상.
「3」 『심리』 의식적 또는 무의식적으로 어떤 과정이나 행동, 특히 충동이나 욕망을 억누름.
억압은 능동이던 수동이든 다 억압에 해당됩니다.
스스로 욕망 본능 무의식을 억제하는것도 억압에 들어간다고 국어 사전에 분명히 적혀 있습니다.
>정치학에서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개념은 국가나 집단의 통제를 우선시하는 권위주의 또는 전체주의입니다. 사회주의는 자본주의에 대비되는 경제 및 분배 시스템에 관한 개념이므로, 자유주의의 반대 개념으로 사용하는 것은 학술적 분류에 맞지 않습니다.
권위주의의 반댓말은 자유주의가 아니고 민주주라고 부르는거고요.
민주주의 체하하에 자유주의도 있고 사회주의도 있습니다. 더 나아가면 공산주의 까지 가고요. 좌우라고 부르죠.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서 말하긴 어렵습니다. 경제정책은 결국 정치에서 나오는것입니다.
> 사회학과 교육학에서는 가족을 1차적 사회화 기관으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아이가 타인에 대한 공감, 규칙 준수, 도덕성의 기초를 가장 먼저 배우는 곳은 가정이며, 부모와의 상호작용이 사회화의 가장 핵심적인 토대가 됩니다. 따라서 부모가 사회화를 가르치지 못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학계의 정설과는 다릅니다.
그러면 학교를 갈 필요가 없군요!!!
대단한 이론이십니다.
사람하고 부대껴야 사람과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방구석에서 사회를 못배웁니다.
요즘은 가정에서 다 왕자 공주로 키워요.
심리학에서도 ~6세 까지가 성격 12세 ~ 사회화 과정으로 봅니다.
>심리학적 연구에 따르면 자존감은 고정불변의 특성이 아닙니다. 유아기에 자존감이 형성되었더라도, 성장 과정에서 지속적인 강압이나 체벌 등에 노출되면 심리적 위축이나 트라우마로 이어져 자존감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프로이드는 5세(혹은 6세) 이전 부모와의 경험이 성격의 기본 구조와 무의식을 형성하여 인간 발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습니다.
심리학에서 6세 이전 경험이 성격에 결정적이고, 6세 지나면 큰 영향을 안받는다고 합니다.
심리학자와 정 반대의 주장을 하시는군요.
>스스로 사고하는 성숙한 시민을 기르는 것은 교육의 중요한 목표입니다. 하지만 물리적 고통에 기반한 체벌은 이성적 사고를 촉진하기보다는 두려움과 순응을 학습시킬 우려가 큽니다. 또한, 현재 유럽을 비롯한 60여 개 이상의 국가에서 학교 및 가정 내 체벌을 법으로 금지하고 있으며, 이들 국가에서도 시민들의 사회화는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체벌 없이 사회화되는 사람이 극소수라는 주장은 현실의 통계와 다릅니다.
네 나이 먹어도 스스로 사고 못하는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현실을 너무 모르십니다. 무뇌 극우화는 유럽 서구에서 먼저 시작된 흐름이랍니다.
> 특정 세대의 사회화 성공 여부를 과거의 체벌 환경 덕분이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당시의 강압적이고 수직적인 교육 환경이 현재 한국 사회에 남아있는 권위주의적 위계 문화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는 사회학적 분석도 존재합니다.
4050 세대는 누구보다 탈권위적입니다. 극우도 드뭅니다. 그만큼 사회화가 잘됐다는겁니다.
그러니까 체벌로 권위주의 사회가 된다는건 4050세대를 볼때 대단히 엉터리 주장이란게 증명된겁니다.
오히려 체벌 없이 서구식 교육환경에서 자란 젊은 세대가 더 권위주의적이고 극우적입니다.
>세계보건기구, 미국소아과학회, 미국심리학회 등 주요 보건 및 심리학 기관들은 체벌을 아동의 인지 발달을 저해하고 공격성을 높일 수 있는 위험 요인으로 분류하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이를 질병을 막는 의학적 척도인 예방주사와 동일선상에 놓기는 어렵습니다.
네 아동과 학생은 구분하시기 바랍니다.
체벌을 금하는건 어린시절 아동에 해당되는 겁니다. 심리학에서도 6세에 성격이 결정되며, 그 이후에는 크게 영향을 안받는거로 말하고 있습니다.
아동과 10세 넘은 학생의 차이를 구분할줄 아셔야 합니다. 이 둘을 섞어 버리는건 확대해석입니다.
>우리 사회가 타인을 배려하는 공동체로 나아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깊이 공감합니다. 다만, 그 목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학문적으로 검증된 사실과 사전적 개념을 정확히 구분하여 접근하는 것도 중요할 것 같아 의견을 남깁니다.
현실을 너무 모르고 하시는 소리네요.
이명박때 법으로 체벌금지가 된 이후로,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선생님은 그냥 자리를 피합니다. 거기에 개입하면 선생이 고소당하고 감옥가요. 이게 현실입니다.
학교내에서 문제아가 전혀 통제가 안됩니다. 이로 인해 많은 학생이 피해를 보고 있으며, 문제아는 일베로 양산되며
그렇게 학폭과 학교폭력에 노출된 아이들이 문제가 되고 있답니다.
이건 왜 생각안하세요
한국 사회에 일베가 생긴게 체벌금지 시점이랍니다.
체벌 금지할때도 체벌찬성 여론이 더 높았답니다. 맞고 자란 세대도 체벌은 해야 된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냥 서양이 한다면 다 따라한다는건 생각이 없는거에요. 사대주의입니다.
서구 교육은 극소수 엘리트만 키우고 나머지는 포기하는 교육제도입니다.
이로인해 무지성과 극우가 대량양산되며, 그게 선진국의 현실이랍니다.
코로나때 선진국의 실체를 보셨잖아요. 이래도 선진국 타령하십니까?
선진국의 교육은 실패한 교육이에요. 따라해선 안됩니다.
방대한 인구와 자원이 있는 나라는 그렇게 해도 소수의 엘리트가 끌고 가겠지만. 요즘 미국보면 망나니가 나와도, 나라는 잘 굴러갑니다만. 한국은 윤석렬 또 나오면 그냥 IMF 입니다.
한국은 나 보다 우리를 중시하는 문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게 안하면 한국인은 벌써 멸종됐습니다.
하지만 회원님께서 전개하신 논리는 객관적 사실에 기반한 토론이라기보다는 본인의 폭력적 억압론을 방어하기 위해 기초적인 학문적 사실마저 자의적으로 비틀어버린 궤변에 가깝습니다. 다른 분들의 오해를 막기 위해 글 속에 담긴 치명적인 오류들을 담백하게 짚어 드립니다.
> 그러면 학교를 갈 필요가 없군요!!! 사람하고 부대껴야 사람과 같이 사는 법을 배우는 겁니다. 방구석에서 사회를 못 배웁니다.
타인의 글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는 기본적인 문해력의 아쉬움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사회학에서 가정을 1차적 사회화 기관이라 부르는 것은 도덕과 공감 능력의 기초 공사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지 2차 기관인 학교가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기초 공사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지붕은 안 덮을 거냐며 화를 내시는 격입니다.
> 심리학에서도 6세에 성격이 결정되며 그 이후에는 크게 영향을 안 받는 거로 말하고 있습니다. 체벌을 금하는 건 아동에 해당되는 겁니다. 아동과 10세 넘은 학생의 차이를 구분할 줄 아셔야 합니다.
백 년 전 프로이트의 유아기 결정론을 마치 현대 심리학의 유일한 정설인 양 가져오신 부분은 몹시 안타깝습니다. 현대 발달심리학은 인간의 자존감과 성격이 청소년기를 거쳐 평생에 걸친 환경 요인과 상호작용하며 발달한다고 봅니다.
> 이명박때 법으로 체벌금지가 된 이후로,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선생님은 그냥 자리를 피합니다. 거기에 개입하면 선생이 고소당하고 감옥가요. 이게 현실입니다.
교권 추락과 학교 폭력의 심각성에 공감하지만 회원님의 주장은 허위 사실과 단편적인 비약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교사는 학교 폭력에 반드시 개입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제도의 맹점을 과장해 모든 교사를 무책임한 방관자로 매도하는 것은 현장을 지키는 교사들을 모욕하는 억지입니다.
> 문제아는 일베로 양산되며
체벌 금지가 곧바로 특정 혐오 커뮤니티의 양산으로 이어졌다는 논리 역시, 경제적 불안이나 국가 기관의 조직적 개입 등 복잡다단한 사회 구조적 병리 현상을 단순히 학교에서 매를 들지 않아서로 환원해버리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거짓 원인의 오류입니다
> 한국 사회에 일베가 생긴 게 체벌 금지 시점입니다.
이 대목에서는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단편적인 시각과 인과관계에 대한 심각한 오판이 엿보입니다. 체벌이 금지된 시기와 특정 커뮤니티의 탄생 시기가 우연히 겹친다고 이를 인과관계로 연결하는 것은 전형적인 거짓 원인의 오류입니다.
해당 커뮤니티 자체가 국가기관에 의해 직접 만들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그 커뮤니티가 급격히 몸집을 불리고 혐오 문화가 확산되던 시기에 국가정보원이나 군 사이버사령부 등이 온라인 공간을 활용해 조직적인 여론 조작과 정치 개입을 벌였다는 정황은 이미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이처럼 당시의 정치적 양극화, 경제적 불안 그리고 국가 기관의 온라인 심리전 등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거대한 사회 병리 현상을 두고 단순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때리지 않아서 생겨났다고 단정 짓는 것은 세상을 너무나 1차원적이고 단순하게 해석하는 아전인수격 논리입니다.
> 서구 교육은 극소수 엘리트만 키우고 나머지는 포기하는 교육제도입니다.
아울러 서구 교육이 엘리트만 키운다는 단언은 보편적이고 평등지향적인 북유럽이나 서유럽의 공교육 시스템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셨음을 보여줍니다. 본인에게 익숙한 과거의 억압적 방식만이 정답이라 믿기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사대주의라 깎아내리시는 편협한 시각이 씁쓸합니다.
회원님께서 이토록 다양한 개념을 왜곡하고 기초적인 사실관계까지 부정해가며 물리적 체벌을 맹목적으로 찬양하셔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아마도 회원님 본인께서 억압적인 환경에서 맞고 자라셨고 이미 아이들을 체벌로 키우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체벌이 낡고 폭력적인 억압에 불과하다는 현대 지성의 합의를 인정해 버리신다면 폭력에 순응해야 했던 본인의 과거와 이미 행해버린 본인의 훈육 방식을 스스로 전면 부정하는 셈이 될 테니까요.
자신만의 굳건한 세계관을 지키시려는 그 절박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왜곡된 팩트 위에서 억지로 쌓아 올린 논리는 결국 스스로의 모순과 상처만 더 선명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 타인의 글을 있는 그대로 읽어내는 기본적인 문해력의 아쉬움이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사회학에서 가정을 1차적 사회화 기관이라 부르는 것은 도덕과 공감 능력의 기초 공사가 가정에서 이루어진다는 뜻이지 2차 기관인 학교가 필요 없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기초 공사가 중요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지붕은 안 덮을 거냐며 화를 내시는 격입니다.
문제아들은 전혀 사회화가 안되서 학교에 온답니다.
가정에서 교육은 가정마다 천차만별이고, 부모가 무지 무관심 문제부모도 상당수 많답니다.
너무 현실을 모르시는군요!!!
결국 최종적으로 사회화를 가르쳐야 할 의무는 학교입니다. 좀 인정할건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 백 년 전 프로이트의 유아기 결정론을 마치 현대 심리학의 유일한 정설인 양 가져오신 부분은 몹시 안타깝습니다. 현대 발달심리학은 인간의 자존감과 성격이 청소년기를 거쳐 평생에 걸친 환경 요인과 상호작용하며 발달한다고 봅니다.
현대 발달심리학에서 프로이트 이론이 갖는 위치는 다음과 같습니다.
초기 경험의 중요성: "어린 시절의 경험이 성인기의 성격과 심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라는 핵심 아이디어를 심리학계에 각인시켰습니다.
단계별 발달 개념: 인간이 정해진 순서(단계)에 따라 발달한다는 모델을 처음 제시하여, 이후 에릭슨이나 피아제 같은 학자들이 자신만의 발달 단계 이론을 만드는 발판이 되었습니다.
님이 말한 발달심리학은 프로이드 토대 위에 세워진겁니다.
> 교권 추락과 학교 폭력의 심각성에 공감하지만 회원님의 주장은 허위 사실과 단편적인 비약으로 점철되어 있습니다. 교사는 학교 폭력에 반드시 개입할 법적 의무가 있음에도 제도의 맹점을 과장해 모든 교사를 무책임한 방관자로 매도하는 것은 현장을 지키는 교사들을 모욕하는 억지입니다.
요즘 학교 현실을 모르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체벌이 금지된 이후로 다른 대안 강구하다 다 아동학대로 고소 고발이 되는게 현 상황이라
사실상 문제아 교정은 손 놓고 있답니다.
> 체벌 금지가 곧바로 특정 혐오 커뮤니티의 양산으로 이어졌다는 논리 역시, 경제적 불안이나 국가 기관의 조직적 개입 등 복잡다단한 사회 구조적 병리 현상을 단순히 학교에서 매를 들지 않아서로 환원해버리는 지극히 일차원적인 거짓 원인의 오류입니다
일베의 특성을 전혀 모르고 계십니다.
일베나 극우의 특성은 반사회적 성향을 가집니다. 이것 자체가 사회화 교육이 안됐다는 반증으로
학교의 문제아의 연장선입니다.
현재 문제아 교정이 안되고 있고, 이것이 바로 일베로 성장하는겁니다.
> 이 대목에서는 사회 현상을 바라보는 단편적인 시각과 인과관계에 대한 심각한 오판이 엿보입니다. 체벌이 금지된 시기와 특정 커뮤니티의 탄생 시기가 우연히 겹친다고 이를 인과관계로 연결하는 것은 전형적인 거짓 원인의 오류입니다.
> 해당 커뮤니티 자체가 국가기관에 의해 직접 만들어진 것은 아닐지라도 그 커뮤니티가 급격히 몸집을 불리고 혐오 문화가 확산되던 시기에 국가정보원이나 군 사이버사령부 등이 온라인 공간을 활용해 조직적인 여론 조작과 정치 개입을 벌였다는 정황은 이미 여러 언론 보도를 통해 밝혀진 바 있습니다. 이처럼 당시의 정치적 양극화, 경제적 불안 그리고 국가 기관의 온라인 심리전 등이 복잡하게 얽혀 만들어진 거대한 사회 병리 현상을 두고 단순히 학교에서 아이들을 때리지 않아서 생겨났다고 단정 짓는 것은 세상을 너무나 1차원적이고 단순하게 해석하는 아전인수격 논리입니다.
과거에는 지금보다 더 심한 반공교육과 언론통제속에서 왜곡된 주입된 정보만 보고 자랐습니다!!!
그럼에도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고 성장했답니다.
외부 환경에 의해 일베가 됐다는건 촉매제 정도지 주 원인이 될수 없습니다.
일베난 극우의 공통적 정서는 미성숙 반사회라는걸 모르고 계십니다.
반사회적 현상은 교육의 실패에서 오는것입니다.
> 아울러 서구 교육이 엘리트만 키운다는 단언은 보편적이고 평등지향적인 북유럽이나 서유럽의 공교육 시스템을 단 한 번도 제대로 들여다보지 않으셨음을 보여줍니다. 본인에게 익숙한 과거의 억압적 방식만이 정답이라 믿기 위해 글로벌 스탠다드를 사대주의라 깎아내리시는 편협한 시각이 씁쓸합니다.
코로나때 서구사회를 보고도 이런말이 나옵니까?
교육이 살아있는건 오히려 동아시아입니다. 혼동상황에서 선진국이라는 나라는 다 아비규환 무질서로 변하고
동아시아만 질서를 유지했습니다. 이게 교육의 목적입니다.
> 회원님께서 이토록 다양한 개념을 왜곡하고 기초적인 사실관계까지 부정해가며 물리적 체벌을 맹목적으로 찬양하셔야만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조심스럽게 짐작해 봅니다.
> 아마도 회원님 본인께서 억압적인 환경에서 맞고 자라셨고 이미 아이들을 체벌로 키우셨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만약 체벌이 낡고 폭력적인 억압에 불과하다는 현대 지성의 합의를 인정해 버리신다면 폭력에 순응해야 했던 본인의 과거와 이미 행해버린 본인의 훈육 방식을 스스로 전면 부정하는 셈이 될 테니까요.
> 자신만의 굳건한 세계관을 지키시려는 그 절박한 마음은 이해하지만 왜곡된 팩트 위에서 억지로 쌓아 올린 논리는 결국 스스로의 모순과 상처만 더 선명하게 드러낼 뿐입니다.
궤변에 가깝군요.
전 학창시절 공부잘하고 모범생이라 가정이든 학교든 단체기합과 성적하락으로 인한 체벌 외에는
맞은 적이 없답니다. 선생님으로보터 지극히 보호받고 학교 다녔습니다. 잘못해도 안맞았어요.
학교에서 반장만 쭉하고 자랐고, 그래서 아이들 심리상태를 누구보다 더 잘압니다.
통제 불능 아이들이 있습니다. 당시 선생님만 문제아 교정한게 아니라
반장이 1차적으로 이 아이들에 대한 통솔과 제압을 하게됩니다. 하극상이 장난 아니랍니다.
수단과 방법 안가리고 일단 문제아에 대해 거의 완벽한 평정 제압을 했습니다.
나중에 다 순해지고 말잘듣고 친해졌어요. 지금도 사이좋게 지냅니다.
학교 현실을 전혀 모르고 계십니다. 학교 다닐때 리더가 아니었다면 알수가 없긴 하죠.
첫째, 회원님이 본인 논리를 본인 입으로 부정하고 계십니다.
체벌이 사회화에 필수라는 걸 증명하시려고 꺼내신 근거가 "저는 맞은 적이 없고, 선생님께 지극히 보호받았고, 반장으로서 다른 아이들을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제압했다"입니다.
즉 회원님은 체벌의 수혜자가 아니라 체벌을 면제받은 쪽이었습니다. 회원님이 훌륭하게 사회화되셨다면 그건 체벌이 효과적이라는 증거가 아니라, 맞지 않고 자란 사람도 잘 자랄 수 있다는 증거입니다. 본인 주장을 반증하는 사례를 본인 주장의 근거로 제시하시는 구조를 스스로 알아차리지 못하고 계십니다.
덧붙여 "수단과 방법 안 가리고 평정 제압했다"를 자부심의 언어로 쓰시는 감각은, 오늘날 기준에서 어떻게 읽히는지 한번 거리를 두고 보셨으면 합니다.
둘째, 회원님은 근거 없이 던진 본인의 단정을 그 다음 댓글에서 이미 증명된 사실처럼 다시 꺼내 쓰십니다.
“사회는 억압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본디 야만인이다”, “체벌은 예방주사다”, “자존감 과잉이 극우의 핵심이다” — 이런 거대한 명제들을 근거 한 줄 없이 한 번 확정적으로 내려놓으시고, 바로 다음 댓글부터는 그 명제를 전제로 깔고 상대를 가르치십니다. “예방주사를 반대하는 극단적 사고다”, “극우 심리를 모르면 이 논의를 할 수 없다”, “사회화의 본질을 이해 못 하신다” 같은 방식으로요.
논증이라는 건 근거를 제시하고 결론을 조심스럽게 도출하는 과정입니다. 그런데 회원님께서는 그 순서를 거꾸로 하십니다. 결론부터 확정해놓으시고, 그 결론을 다시 근거처럼 재사용해 다음 결론을 찍어내십니다. 자기가 만든 미검증 명제가 다음 단계에서는 검증된 전제로 탈바꿈하는 구조이고, 이러면 외부에서 어떤 자료가 들어와도 회원님 체계 안에서는 이미 “틀린 것”으로 분류됩니다. 회원님의 단정이 이미 그 반대편을 규정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상대가 통계를 가져와도, 판례를 가져와도, 현장 증언을 가져와도 회원님은 같은 명제로 돌아오십니다. 논의의 시계가 움직이지 않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움직일 수 있는 구조로 세워진 글이 아닙니다.
셋째, 이 게시판에서 나온 좋은 의견들이 회원님의 단순한 반박 한 줄에 계속 버려지고 있습니다.
댓글에는 현직 초등교사, 판례를 찾아 인용하시는 분, 통계를 들고 오신 분, 교육학 개념을 차분히 정리해 답을 주시는 분들이 계셨습니다. 적지 않은 시간과 성의를 들여 회원님과 대화하려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자료 앞에서 회원님의 답은 매번 같습니다. "현실을 모르시네요", "특이 케이스입니다", "그건 회원님 생각이고요". 근거를 갖추어 질문하신 분께 근거 없는 단언 한 줄로 답하시고 대화를 끝내십니다.
누군가가 판례 링크를 찾고, 통계를 정리하고, 법조문을 짚어가며 글을 쓰는 데는 꽤 많은 품이 들어갑니다. 그런 노력들이 회원님 한 분 앞에서 "그래도 제 생각은 변함없습니다" 한 줄로 증발하고 있습니다. 이건 회원님 개인의 소신 문제가 아니라, 이 자리에서 오갈 수 있었던 귀한 대화들이 통째로 헛수고가 되고 있다는 문제입니다.
수많은 반박을 받으시면서도 한 줄도 수정하지 않으시는 것을 회원님은 소신이라 여기시는 듯합니다. 하지만 소신이란 본인이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감당해본 사람에게만 허락되는 단어입니다. 누구의 검증도 받지 않고 굳어진 생각은 소신이 아니라 그저 닳지 않은 채로 오래 방치된 신념일 뿐입니다.
글을 자주 쓰고 그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고 반박받는 일을 일상적으로 겪어온 사람의 문장에는 일정한 흔적이 남습니다. 회원님의 글에는 그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반박이 들어와도 소화되지 않고, 같은 주장을 문장만 바꿔 반복하십니다.
지금 회원님께서 살아가시는 자리가 비평적이고 날카로운 사고를 일상적으로 요구하는 자리가 아닌 것 같습니다. 본인의 판단이 더 엄격한 판단과 매일 부딪히고, 어설픈 단언이 곧바로 되돌아오는 환경이라면, 여기에 올라온 문장들은 그렇게 쓰여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다져지지 않은 생각을 들고 오늘 이 자리에서 "체벌만이 답이다"라고 단언하고 계시니, 읽는 입장에서는 회원님께서 주장하시는 "잘 사회화된 인간"의 모습이 과연 어떤 것인지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그 고집이 하필 "맞아야 사람이 된다"로 수렴하는 이유는, 체벌 제도가 아니라 회원님 자신에 관한 질문일 수 있습니다. 만약 회원님 주장이 다 맞다면, 회원님 스스로 맞아 본 적이 없어서 이러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증명하고 계신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첫째, 회원님이 본인 논리를 본인 입으로 부정하고 계십니다.
그 옛날에도 많이 처맞고 다닌건 주로 문제아들이었답니다.
나머지는 실제 그렇게 많이 맞지는 않았습니다. 성적이나 숙제 단체기합이 다입니다.
문제아들은 조직에 대해 하극상을 하며, 본인들이 반의 일진이 되서 폭행 갈취하려는 심각한 현상이 벌어진답니다.
그당시 상황을 전혀 모르시는거 보면 나이가 대단히 젊은분이군요.
그 이하 글들은 다 본 주제에서 벗어난 꼬투리 잡기 인신공격성 발언들입니다.
한마디로 긁히셨군요.
현실을 제대로 보시면 됩니다. 논문이고 나발이고 상황파악을 먼저 하시면 됩니다.
상황을 모르면서 가르치려고 드는건
일베 용어로 PC주의라고하며, 보통 선민주의라고 합니다.
억압의 사전적 정의부터 이해하고 오시기 바랍니다.
사회가 무엇인지 생각해보고요
학창시절 학교의 상황을 둘러보시기 바랍니다. 순한 양만 존재하지 않았답니다.
님이 말한게 거의 다 틀렸어요.
문제아들은 자아가 대단히 강한상태랍니다.
그 과도한 자아를 꺽는걸 사회화라고 부르며, 이게 안꺽이면 반사회화가 됩니다. 지금의 극우 일베죠.
한편 폭력의 정의도 자아를 꺽는거랍니다.
이해 가세요?
수많은 댓글을 읽으면서, 오늘도 클리앙을 받들기 위해 묵묵히 바위를 밀어 올리신 시지프들을 보았습니다. 카뮈는 “우리는 시지프가 행복했으리라 상상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 글을 보진 않으시겠지만, 오늘 이 자리와 여러 자리에서 근거를 건네고 판례를 짚고 통계를 정리해 올리신 그분들도 부디 행복하셨기를, 조용히 응원해봅니다.
문제를 고치는건 현실을 정확히 보는것으로 시작합니다. 판례나 통계에 나오는게 아니고요.
현실을 보고 대책을 찾아야지 현실은 모르면서 책만 보면 답이 나옵니까?
현재의 한국을 비롯한 세계적 극우화는 서구식 인권 교육문제에서 비롯된겁니다.
이상주의자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교육은 인권적으로 하면 안되요.
사회화라는게 억압을 하고 자아를 꺽어야 하는문제입니다.
스스로 억압을 잘하면 폭력이 필요하지 않겠지만. 전부 이런 부류가 아니에요. 이들은 애시당초 학교가 필요 없는 부류이지만.
인간이 모두 다 그렇게 이성적인 집단이 아니랍니다. 이런경우 타의에 의해서 자아를 꺽어줘야 합니다.
그런걸 폭넓은 범위로 물리적이든 정신적이든 다 폭력이라고 하는거죠
사회화엔 이게 필수라서 교사의 폭력을 합법적으로 어느정도 인정해 줘야 합니다.
그중 부작용이 적은 폭력이 체벌입니다.
님 좋아하는 판례도 그래요. 가벼운 체벌은 처벌하지 않으나,
물리력 없는 정신적 폭력을 오히려 법원에서 더 심하게 처벌하고 있는게 팩트입니다.
진보는 선민주의가 참 문제입니다.
서구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고 선민주의 때문에 교육도 망해가고 있습니다.
민주화 세력은 선민주의때문에 늘 난관에 봉착합니다. 유구한 전통이죠.
그냥 멍청한건지 지능이 낮은건지…
하인츠 코헛 (자기심리학, 1970년대): 나르시시즘은 자기(self) 구조의 결핍에서 비롯된다고 봅니다. 유아기 부모의 ‘거울반영(mirroring)’과 ‘이상화(idealization)’가 부족하면 자기감이 불안정해져, 지속적인 외부 인정(admiration)을 갈구하게 됩니다. 병적 나르시시즘은 이 결핍을 과대자기(grandiosity)로 메우려는 시도이며, 공감 결여·취약성(비판에 과민반응)·관계 이용이 특징입니다.
오토 컨버그 (객관관계 이론, 1970년대~): **악성 나르시시즘(malignant narcissism)**을 가장 엄격하게 정의한 학자입니다. 이는 자기애성 인격장애(NPD) + 반사회적·편집적·가학적 요소가 결합된 형태로, 원시적 방어기제(분열·투사·전능 환상)를 사용합니다. 특징: 과대자기 + 타인 경멸 + 적대적 투사(비판자를 ‘적’으로 봄) + 현실 왜곡(자기 서사 유지 위해 사실 왜곡). 컨버그는 트럼프 같은 공인에 대해 “직접 진찰하지 않았으므로 임상 진단은 불가”라고 명확히 밝혔지만, 공개 행동에서 악성 나르시시즘의 특질이 관찰된다고 일부 분석에서 언급되기도 합니다.
라고 LLM model들이 거의 비슷하게 이야기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