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건 쉐브르 조약입니다. 1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오스만 제국은 서구 열강에 의해 완전히 쪼개지게됩니다.
수도 이스탄불은 공동관리 지역, 왼쪽은 그리스 (동트라키아와 스미르나-현재의 이즈미르), 남부는 이탈리아, 동남부 및 현재의 이라크, 키프로스 지역은 영국이 관리하고, 카파도키아, 디야르바크르, 시리아는 프랑스가 차지합니다. 트라브존과 에르주룸, 아라라트산 (노아의 방주) , 또 쿠르디스탄 자치령까지 두면서, 그야말로 오스만 제국은 거의 사라지게 됩니다.
이때 등장하는 사람이 무스타파 케말 파샤입니다. 오스만 제국에서 탈출해 흑해 삼순으로 들어간 케말 장군은 앙카라에서 튀르키예 국회를 설립하고, 독립군을 만들어 서구 열강과 전투를 벌이게 됩니다. 전력 자체는 매우 열세이지만, 서구 열강들은 강하게 저항하는 터키독립군, 민병대 들에게 쉽게 이기지 못했고, 방금 세계 전쟁을 끝낸 상황이라 전쟁을 계속 이어나가기는 어려웠습니다. 결국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등이 차례차례 전쟁에서 손털고 나왔고, 튀르키예는 아르메니아와의 전쟁에서 승리하면서 동부전선은 어느정도 정리가 됩니다.
문제는 마지막으로 남은 상대는 그리스 왕국이었습니다 (아래사진) . 그리스는 어떻게든 콘스탄티노플과 서부 아나톨리아를 차지하려고 터키를 집요하게 공격하였고, 방금 만들어진 독립군 정도로는 그리스를 막아내기 쉽지 않았습니다. 이스메트 장군이 현재의 Eskisehir 지역 이뇌뉘 강에서 그리스군을 저지했고, 새로운 수도 아카라까지 밀려온 그리스 군과의 사카리아강 전투 (우리로 치면 낙동강 전투)에서 3주간 버텨내면서 그리스 군 패퇴시키게 됩니다. 그리고 위에 이뇌뉘 강에서 그리스 군을 막은 이스메트 장군을 스위스 로잔에 파견하여 조약에 대해 회의를 하였고, 그 사이 튀르키예는 무스타파 케말 장군은 8월 30일 돔루프나르 전투에서 그리스 군을 박살내고 이즈미르까지 탈환하면서 아나톨리아 반도에서 그리스 왕국군을 몰아내게 됩니다.
결국 그리스까지 몰아낸 튀르키예는 서구열강과의 협상을 통해 이스탄불을 받고 지중해 거의 대부분의 섬을 그리스로 넘겨주는 딜을 하게 되면서 현재 튀르키예가 만들어지게 됩니다.
쉐브리에서 로잔으로 이어지는 이 조약은 튀르키예 현대사에 매우 중요한 역사적 사건으로, 튀르키예에 매우 중요한 상황인데 현대 튀르키예 공휴일의 대부분이 이때 만들어집니다. 튀르키예의 국회가 만들어진 4월 23일(어린이날과 겸한 공휴일), 아타튀르크가 이스탄불에서 나와 삼순에 도착한 5월 19일(아타튀르키 기념 및 청소년, 체육의날) 돔루프나르 전쟁에서 이긴 8월 30일은 승전일 공휴일, 튀르키예 공화국 수립일 10월 29일이 모두 공휴일입니다. 또, 이 독립전쟁을 승리로 이끈 무스타파 케말은 많은 사람들이 아는 아타튀르크가 되고, 이뇌뉘강에서 승리하고 로잔조약을 이끌어낸 이스메트 장군은 이뇌뉘를 성으로 삼고, 초대 총리와 2대 대통령이 됩니다. 튀르키예 국가도 이때 만들어지게 됩니다.
이때 대부분의 영토를 확보하지만, 국력이 약한 튀르키예로서는 몇 군데 놓치는데, 첫번째가 키프로스고 두번째는 하타이 주(그림 가운데 아래쪽 보라색으로 칠한 곳입니다. 그러나, 하타이는 1939년에 다시 터키로 병햡됩니다, 여담으로 이 하타이주에 있는 이스켄테룬 항에서 1950년에 튀르키예 여단이 한국전쟁에 참전하기 위해 출발하는 항구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놓친 곳이 바그다드와 모술인데....거기서 검은 물이 나올 줄은 몰랐겠죠.. 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