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어는 헬라어 τέκτων(tekton)인데, 기본 의미는 '장인, 공예가, 빌더(건축 기능공)'이랍니다. 나무만 하는 목수에만 한정되지 않고, 목재,석재,금속 등 도구를 쓰는 각종 기술 노동자를 부르는 포괄적인 말이었다고... 1세기 갈릴리는 목재가 적고 석회암이 풍부해서 주택과 건물 대부분이 돌로 지어졌으니 tekton은 돌을 캐고 다듬어 집의 기초와 벽을 쌓고, 지붕, 문, 문틀, 농기구, 멍에, 울타리 등을 만드는 집 짓는 기술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요셉에게는 정액 한 톨 물려받은 것 없는 남남이기는 해도) 아빠의 노가다 수저를 물려받아서 현장 일 뛰는 건축 설비 기술자 정도.... (AI 시대의 희망???)
xman
IP 39.♡.105.28
04-05
2026-04-05 12:46:04
·
@lcoy님 (보디)빌더 라는 거죠?
3월의 라이온
IP 121.♡.217.55
04-05
2026-04-05 13:21:56
·
로마인들이 예수를 위험하게 본 것이 아니라 유대교 사제들이 예수를 위협으로 보고 로마인들에게 처벌해 달라고 한 거죠 오히려 로마인들은 베타적인 기존 유대교보다 포용적인 예수가 자기들이 제국을 통치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봤구요
@3월의 라이온님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이후로, 당시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생존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유대교와 자신들을 철저히 분리해야 할 정치적 절박함이 있어서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 로마 당국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로마에 반역하는 저 유대인들과 다르며 로마 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줘야만 했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들이 따르는 사람이 로마에 저항하다 처벌받은 정치범이라고 해서는 안되었던 거죠.
그래서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마가-마태-요한복음으로 갈수록 빌라도에 대한 묘사는 큰 폭동으로 번지는 걸 막는 데 급급한 유약한 지도자에서 적극적으로 예수를 살려주려 노력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십자가형은 로마와 상관없이 유대인들이 직접 집행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주는 식으로 변하는 등 로마의 책임은 최소화하고 유대인들이 나쁘다는 쪽으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로마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일 때에도 '나쁜 건 유대인들이지 우리 로마가 아니다'라는 방향성은 마찬가지였구요.
도미닉 크로산 같은 학자는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등의 책에서 초기 교회가 로마의 십자가 처형을 유대인의 책임으로 교묘하게 떠넘기며 신학적, 문학적으로 각색한 바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3월의 라이온님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주장들에 헛점이 많다는 견해들을 더 많이 접하는 쪽인 거고...
피터 쉐퍼 같은 사람들도 그렇고, 탈무드의 예수 관련 전승은 예수 시대의 1차 사료라기보다는 주로 3~4세기 이후의 랍비 전승으로 편집된 것이어서 (십자가형이 아니라 유대교의 전통 형벌인 투석형으로 죽인 뒤 나무에 달았다고 기록한 거라든가, 처형 전 40일 동안 충분히 변호할 기회를 주었다고 기록한 거라든가...)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들...
뭐 어차피 양쪽 모두 할 말은 많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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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부활절입니다^^
어부, 건축가 등 출신의 근육 근육한 제자들을 우르르 이끌고 가나안 땅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니 죄를 니가 알라 나를 믿으라 이러면서 유대 민족 사람들을 우르르 따르게 했으면..
(심지어 다들 20~30대 초반...)
고위층은 당연히 무서웠을지도요.
나이도 많지 않은데 끝까지 그러지 않았다는 점에서
나머지 유태인들이 죄책감 느낄만하죠
나무만 하는 목수에만 한정되지 않고, 목재,석재,금속 등 도구를 쓰는 각종 기술 노동자를 부르는 포괄적인 말이었다고...
1세기 갈릴리는 목재가 적고 석회암이 풍부해서 주택과 건물 대부분이 돌로 지어졌으니
tekton은 돌을 캐고 다듬어 집의 기초와 벽을 쌓고, 지붕, 문, 문틀, 농기구, 멍에, 울타리 등을 만드는 집 짓는 기술자 역할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
(요셉에게는 정액 한 톨 물려받은 것 없는 남남이기는 해도) 아빠의 노가다 수저를 물려받아서 현장 일 뛰는 건축 설비 기술자 정도....
(AI 시대의 희망???)
(보디)빌더 라는 거죠?
오히려 로마인들은 베타적인 기존 유대교보다 포용적인 예수가 자기들이 제국을 통치하기에 더 적합하다고 봤구요
제1차 유대-로마 전쟁 이후로,
당시 로마 제국 전역으로 퍼져나가고 있던 초기 기독교 공동체는
생존을 위해 반란을 일으킨 유대교와 자신들을 철저히 분리해야 할 정치적 절박함이 있어서
이방인들에게 전도하고 로마 당국의 탄압을 피하기 위해
"우리는 로마에 반역하는 저 유대인들과 다르며 로마 제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줘야만 했던 시대적 배경이 있었다고 하더라구요.
자기들이 따르는 사람이 로마에 저항하다 처벌받은 정치범이라고 해서는 안되었던 거죠.
그래서 만들어진 순서에 따라 마가-마태-요한복음으로 갈수록 빌라도에 대한 묘사는
큰 폭동으로 번지는 걸 막는 데 급급한 유약한 지도자에서 적극적으로 예수를 살려주려 노력한 사람으로 변해가고
십자가형은 로마와 상관없이 유대인들이 직접 집행한 것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주는 식으로 변하는 등
로마의 책임은 최소화하고 유대인들이 나쁘다는 쪽으로 변화되었다고 합니다.
이후 로마에서 기독교를 받아들일 때에도 '나쁜 건 유대인들이지 우리 로마가 아니다'라는 방향성은 마찬가지였구요.
도미닉 크로산 같은 학자는 "누가 예수를 죽였는가" 등의 책에서
초기 교회가 로마의 십자가 처형을 유대인의 책임으로 교묘하게 떠넘기며
신학적, 문학적으로 각색한 바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유대교쪽 기록에는 예수에 대한 처벌이 로마가 아니라 유대교 지도자들이 내부 이단에 대해서 정당한 종교적 심판을 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배교 행위에 대한 정당한 심판이라는 자신감에서 기록에 남긴 것이죠
이게 기독교의 복음서와 유대교의 탈무드 사이에 교집합인겁니다.
크로산의 주장은 이런 역사적 사실들을 다 무시하고 그냥 자기 결론에 제한적 사료들만 가지고 끼워 맞춘 겁니다.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저는 그런 주장들에 헛점이 많다는 견해들을 더 많이 접하는 쪽인 거고...
피터 쉐퍼 같은 사람들도 그렇고,
탈무드의 예수 관련 전승은 예수 시대의 1차 사료라기보다는
주로 3~4세기 이후의 랍비 전승으로 편집된 것이어서
(십자가형이 아니라 유대교의 전통 형벌인 투석형으로 죽인 뒤 나무에 달았다고 기록한 거라든가,
처형 전 40일 동안 충분히 변호할 기회를 주었다고 기록한 거라든가...)
역사적 사실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들...
뭐 어차피 양쪽 모두 할 말은 많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