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칼을 휘두르는 인간은,
주로 결핍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조처럼 세종 대왕 못지 않은 엄청나게 뛰어난 머리와
그것을 집중시킨 성리학의 정통함은...
개인으로서는 대단하지만,
시대로 보면 그리 좋은 결과로 이어질 수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제가 누차 이야기 한 바 성리학은 12세기에 집대성 되었을 때는
정교하고 완성도 높은 사상이었지만,
그것이 중요한 역할을 하더라도...나라의 기둥이 되어서는 아니 되었습니다.
되었더라도...길어야 15세기면 그 수명이 이미 다해 스러지고 말았어야 했습니다.
그렇다고 대안이 있었을까... 없었을 것입니다.
세종대왕이 과학을 비롯해 모든 면에서 왕성하게 조선을 부국강병하게하였지만,
딸랑 혼자 한 것이 아니라 태조부터 이어온 조선 전기의 모든 이들의 노력이
세종 대왕에 의해 정점을 찍게 되었던 것입니다.
즉, 세종대왕은 그런 풍토 위에서 그 어떤 누구도 하기 힘든 많은 업적과
개인적인 뛰어남으로 인해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발명 중 하나인 한글까지 남길 수 있었습니다.
제목을 대체 역사라 한 이유는 이럴 때 필요한 것이 '칼'이기 때문입니다.
영조가 그런 인물이었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결핍이 있던 영조는 그것 때문에 정치를 잘 하기도 했지만
그것 때문에 여러 문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제 말은 실제 역사 속 영조가 어떠한 인물인가를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영조 시대에 기존의 질서를 뒤 집는 칼의 역사가 있어서,
성리학의 지배 체계를 뒤집어
정조 대왕이 왕권 강화를 위해 힘쓰는 일이 없이,
그저 강력한 왕권을 가진 채... 시작부터 개혁을 할 수 있었다면...
하는 가정이 있다면...
정조의 개혁이 성공까지 갈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말입니다.
즉, 성리학이 교조주의 적인 면이 거의 미친 수준에 이른 상태가 아닌,
정조가 시작부터 개혁에 집중할 수 있던 배경이었다면,
정조의 개혁은 성공적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 개혁의 성과는 어떻게 나타났을까요.
바로 주변 여러 나라와 교역하며 부를 쌓고 기술적인 기반이 탄탄해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도 이미 당대의 서구 열강과 직접 부딪히면 깨지는 것은 어쩔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힘을 가진 나라라면 대화의 상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나라의 국력이 쌓여 있는 상태였어야 19세기 중 후반에 나타난
아시아 여러 나라의 격변의 시기를 잘 대비하며 대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정조 사후 국력은 바닥을 치고, 세도정치는 암흑기를 만들어 냅니다.
이는 성리학의 지배 이념 하에서는 벗어날 수 없는 어떤 거대한 틀입니다.
정조가 역사 속에서 보다 더 뛰어났거나
더 오래 살았어도 피할 수 있었을까... 전 어렵다고 봅니다.
애초에 다 논외로 하고 영조가 왕권강화에 성공하고 정조가 바통을 이어받아 세종과 같은 정치를 펼치더라도,
이미 서구와의 격차는 개인이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사회전체의 구조적 문제였습니다.
또 조선이라는 나라 자체는 왕 한명으로 좌지우지 되는 나라가 아니라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나라이기에 조선초기같은 그런건 정말 환타지죠.
대체 역사물이라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과거로 돌아 가서 역사를 바꾸는 내용의 작품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장르를 감안해서 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 같네요.
정조 보다는 영조 시대가 오히려 대체 역사..
과거에 이랬다면... 하는 주제에 더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전한 것입니다.
아 그냥 소설이야기였군요.
그렇다면 이해가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