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친문친명 들어봤는데 김대중 전대통령님은 딱히 언급된게 없더라구요. 워낙 큰 어른이시라 그럴까요? 총재님? 이라고 불리시는건 들어봤네요. 전대통령님 시절엔 제가 워낙 어릴때라ㅠ할머니께서 당선 되시고 너무너무 좋아하시던 모습이 어렸던 제 기억에도 남아있네요ㅎㅎ나중에 정치에 대해 잘 모를때도 엄마 말씀으론 할머니가 한이 없다 할 정도로 좋아하셨다니 큰 인물은 맞다 생각했죠. 지금 와서도 민주진영의 뿌리같은 분이신데 친‘땡’이 김대중 전대통령님껜 붙여지지 않아 오히려 너무 큰 어른이셔서 그런가 궁금합니다.
사실 부정적인 뉘앙스로 많이 쓰였다고 기억됩니다.
친노패권, 친문패권 이런 식으루요.
3김 시대 때는 동교동계, 상도동계 이런 식으로 불렀습니다.
그 표현이 지지세력을 다 포괄하지는 못했는데
그렇다고 친김이라는 표현은 안 쓰고 썼다면 친DJ계 정도였을 것 같은데 그마저도 익숙한 표현은 아니네요.
김대중 대통령님 때까지는 이른바 "총재" 시스템 당이라서
다양한 의견이 나오기 어려웠던 환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총재가 공천권 부터 시작해서, 정치자금까지 다 틀어쥐고 있던 시절입니다.
주요 정치인들중 일부는 "가신"이라고 칭하던 시대에요.
이런 시대에 김대중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던게 유시민 작가님이죠.
이를테면 님의 댓글에 첨언하자면,
동교동계(김대중), 상도동계(김영삼)이었습니다.
20대 유시민도 엄연히 평민당원으로 이해찬 초선 의원의 보좌관이었고 당시 김문수 학생운동 선배에게 평민당에 입당하라고 조언했으며, 좀 지난 뒤 DJ가 유시민에게 총재 비서를 제의해 왔다는 회고도 요즘 봤습니다.
제 견해로 유시민은 김대중 총재 시절과는 세대가 안 맞았다고 평가합니다. 88년 김대중 총재 평민당 체제에서 이해찬은 만 35세의 제일 젊은 의원이었고 그보다 젊은 보좌관이 유시민이었는데 두 분 다 그 초선의원 시절에 노무현이라는 차세대 재목에 반합니다. DJ 를 '뭔가 인간계의 경지를 뛰어넘는 분"이라고 평가하는 이해찬 의원마저 91년에 당시 제왕적 총재 정치 관행에 항의해 유시민 보좌관 등 휘하 당원들을 데리고 평민당을 탈당 했던 역사가 있습니다. 이후 노무현 도움으로 이해찬은 복당하고 유시민은 독일로 떠나지만요. 이해찬, 유시민 두 분이 동교동계를 벗어나 친노의 타이틀을 붙이게 된건 저는 일종의 시대의 자연스러운 흐름이자 세대교체 현상을 보여준거라 봅니다.
이후 유시민은 선배 이해찬과는 잠시 열린우리당을 같이 했던 시절을 제외하곤 계속해서 민주당 바깥에서 정치를 했고 이해찬은 민주당 내부에서 길을 찾아내고 만드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유시민의 최근 10여년간 언급을 보면 DJ를 폄하하거나 비판하거나 지나치게 객관화하는 언급은 없습니다. 오히려 굉장히 인정하고 있죠.
제 표현이 적절치 못한것 같네요.
다만 그 시절에 그래도 어려운 이야기 한건 높이 평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성해주신 다른 의견은 이견 없이 동의합니다.
상세한 말씀 감사드립니다.
친김 하기엔 김영삼씨도 세력이 커서 상도동계.
김대중 대통령의 인동초 같은 삶과 행동하는 양심 같은 정신은 민주당 내 구성원, 지지자들에겐 거의 잊혀진 과거유산 처럼 여겨지는거 같아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