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80년대 군사정권 시절 민주화 인사들을 상대로 한 고문 수사로 악명 높았던 이근안 전 경감이 25일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26일 경기일보 보도에 따르면 이 전 경감은 최근 건강 악화로 서울 소재 요양병원에 입원해 치료받던 중 숨을 거뒀다. 그는 치안본부 대공수사관으로 재직하며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강압 수사를 이끌었던 인물이다.
이 전 경감은 197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치안본부에서 대공수사업무를 담당하며 전기고문을 비롯한 각종 가혹행위로 피의자들로부터 허위자백을 강요했다는 의혹을 받아왔다. 이런 수사 방식으로 인해 '고문 기술자'라는 오명을 얻었다.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과거사 청산 작업이 본격화되자 이 전 경감은 1988년 수배령이 내려졌다.
그는 12년간 도피생활을 지속하다가 1999년 스스로 자수했다. 이후 고문 및 불법구금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대법원에서 징역 7년과 자격정지 7년을 확정받고 복역했다.
영화 ‘1987’ 고문기술자 실제 인물... 이근안 전 경감 사망, 향년 88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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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살았군요
mb도 부탁합니다.
[정준희의 논] 마침내 사망한 이근안과 우리가 기억해야 할 국가 폭력의 얼굴들ㅣ2026년 3월 27일 금요일
대학을 졸업하고 시민단체 활동가로 일하던 시절입니다. 단체 기념식이 열렸고 김근태 선생이 손님으로 오셨죠. 그런데 민주화운동의 거물로 전해 들었던 선생이 행사 내내 자리에 앉아 눈을 감고 계셨습니다. 인사말도 어딘가 어눌했습니다.
행사를 마치고 선배에게 김근태 선생의 ‘태도(?)‘가 실망스러웠다고 말했습니다.
선배에게 무지하게 혼났습니다. 김근태 선생께서 고문후유증으로 보통 사람의 일상적인 생활도 힘든 몸상태라고요. 학생운동했다는 놈이 그 정도도 모르고 함부로 말한다고요.
그런데 이근안이 살만큼 살다가 가는군요. 앞으로도 이근안=고문기술자 라는 연관이 계속 따라 다녀서 계속 해서 단죄받아야 할 것입니다.
저도 간절히 소망합니다.
지옥이 있다면 그곳으로 꼭 가길 바랍니다.
88세까지 계속 고통받았기를 바랍니다
육체적인 고통과 더불어 정신적인 데미지도 입으셔서 돌아가시기 직전 섬망증세 나타날때 손이랑 발 묶지 말라고 계속 말씀하셨다고 하네요..
그래서 염 할때도 편안하게 보내드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여하튼.. 속이 다 시원 하네요.
다음달즈음에 조부님 봉안당 찾아뵙고 인사드려야 겠네요. ㅠ.ㅠ
끊임없이 반복해서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