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몽 (grapefruit)은 귤이나 한라봉과 다르게 덜 단 맛이라서 저는 가끔 사 먹고 있습니다.
자몽에는 약간 쓴 맛이 있는데, 나이가 들면서 쓴 맥주를 먹게 되는 것처럼 쓴 맛에 견디는 능력이 생긴 것도 자몽에 대한 흥미가 다시 생긴 이유인 것 같습니다.
예전에 아는 분이 유치원 기금모음 행사를 자몽 박스 판매로 해서 자몽을 한 박스 싸게 사 준 적이 있습니다. 그 때 자몽이 12개 정도 생겼는데 먹기가 힘들어서 결국 제가 수동 주스기에 대고 완력으로 눌러서 주스로 만들어서 먹어버렸습니다. 자몽은 껍질이 두껍고, 속껍질까지 잘 까지 않으면 속껍질에서 나는 쓴맛이 강하거든요.
최근에 자몽을 다시 먹으면서, 어떻게 먹을지 여러 방법을 시도했습니다.
- 귤처럼 껍질을 벗겨서 먹기 : 과육 사이 막이 질기고, 불가피하게 속 껍질이 조금 남아서 과일 맛이 씁니다.
- 절반을 잘라서 수저로 파먹기 : 과육 사이 막 사이로 수저가 쏙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수율이 나쁘고, 즙이 손에 묻고, 품위가 없습니다.
- 사과처럼 칼로 껍질을 깎아서 먹기 : 과육 사이 막이 남고, 껍질이 깎여지면서 과육에서 즙이 흘러 버리는 양이 제법 됩니다.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겉껍질과 과육 사이 막을 칼로 벗겨버리고 과립만 남기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손으로 집어먹어도 과즙이 거의 묻지 않을 정도로 과립이 보존되는 장점이 있고, 과육 사이 막과 겉껍질이 거의 완전히 제거되므로 맛이 쓰지 않습니다. 저와 집사람이 식탁에 마주 앉아서 제가 자몽을 까는 동안 집사람은 사과를 까서 서로 절반을 맞바꿔 먹습니다. 어떤 때는 제가 까서 놓는 족족 집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집어먹다가 50% 이상을 먹는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까면 셀러드에 사용하기에도 보기 좋습니다.
제가 아래에 설명하는 방법으로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도 않습니다.
1) 양쪽 끝이 남아있으면 겉껍질을 벗길 때 과육 손상 (과육 덩어리가 분해되어 보기싫게 됨)이 큽니다. 그래서 양쪽 끝은 잘라 버립니다.


잘라진 끝을 보시면 거의 전부 겉껍질 두께고, 과육은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끝을 잘라 버려도 별로 아깝지 않습니다.
끝을 자르는 양을 결정하는 것은, 다음에 할 과육 사이 막을 벗겨내기 위해 칼이 들어갈 정도 길이가 나오도록 합니다. 너무 조금 자르면 칼을 넣기에 좁아서 작업이 안 됩니다. 너무 조금 자른 것 같으면 더 잘라주면 됩니다.

제가 사용한 칼은 끝이 뭉툭하고 날은 톱날로 된 칼입니다. 빅토리녹스에서도 나오고, 헹켈에서도 거의 같은 제품이 나옵니다. 빅토리녹스는 제가 오래 전 구입했는데 아직도 나오고 있습니다.
https://www.victorinox.com/en-US/Products/Cutlery/Paring-Knives/Swiss-Classic-Tomato-and-Table-Knife-Set-2-Pieces/p/6.7833.2

사과 깎기, 스테이크 자르기, 페퍼로니 소세지 자르기 등등 만능입니다.
2) 겉껍질을 벗깁니다. 겉껍질이 있는 상태로 과육을 분리하면 과육을 떼어낼 때 겉껍질의 곡률과 과육의 곡률이 불일치하는 시점에서 과육이 쪼개져서 볼품없게 되거든요. 그래서 과육을 분리하기 전 (강성이 높은) 겉껍질을 제거하고, 강성이 낮아서 곡률 유지성이 약한 속껍질은 남기는 것입니다.


겉껍질은 2~3 조각으로 분리해서 벗겨내도 됩니다. 한 조각으로 벗겨내려고 하면 겉껍질을 강하게 벗겨야 하는데, 그 때 속의 과육을 너무 힘줘 잡아서 과육이 상하니까요.

3) 과육을 두 조각으로 분할합니다. 그래야 칼을 넣어서 과육 사이 막을 잘라내기 시작할 수 있거든요.

(4) 칼을 과육과 막 사이에 넣습니다. 이 때 막을 찢지 않고 칼이 원활하게 들어가려면 칼의 끝이 뭉툭해야 합니다.

(5) 칼을 다 넣었으면 막을 중심부에서 잘라줍니다.

(6) 자른 막을 손잡이로 사용해서 과육 속껍질을 떼어냅니다.
속껍질을 떼어낼 때 잘못해서 과육이 홀라당 들려지면 과육의 외부 곡률이 투영되는 면이 90도 회전하지만, 그 면에서 속껍질은 평면이라서 (인접 과육면), 과육의 외부 곡률이 평면이 되려는 성질이 생기기 때문에 과육이 쪼개집니다.
따라서 아래 사진 제 왼손처럼 과육이 홀라당 들려지지 않도록 규제해주면서 원래 위치에서 속껍질만 당겨 벗겨지도록 해야 과육이 쪼개지지 않고 예쁘게 나옵니다.

(7) 속껍질을 제거했으면 과육을 맞은편 피막에서 분리합니다.

(8) 과육을 피막에서 떼어낼 때도 과육이 홀라당 들려올라가면 과육이 쪼개지므로, 아래 사진을 참고하십시오.

실수로 과육이 쪼개져도 자몽의 맛은 변함이 없습니다. 보기에 덜 멋질 뿐이지요.
그리고 과육의 쪼개짐 성향은 자몽의 신선함과 관련이 있습니다. 구입 후 1주일 정도 지나서 내부 수분이 증발한 자몽은 과육이 더 쉽게 쪼개집니다.
(9) 이렇게 속껍질과 과육이 연결된 실도 제거합니다. 속껍질 성분이 적을수록 맛이 안 쓰거든요. 조금 남아있는 것은 대세에 영향을 미치지 않습니다. 이 글 첫번째 사진이 제가 늘 얻어내는 결과물 수준입니다.


맛있는 자몽을 즐겨보세요!

오렌지먹을때 사등분하고 입으로 즙짜듯이 흡입하고
껍질과 흡입되고남은 질긴 섬유질은 버리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ㅎ
고민하신 흔적이 남은 글이라 좋네요ㅎㅎ
그리고 오렌지에 저 방법을 써 봤는데, 과립의 강도가 약해서 제가 손으로 취급할 수가 없어서 실패했습니다.
이런 글 너무 좋습니다.
그리고 (6), (7) 단계에서 과육이 옆껍질에서 홀라당 들려올라오지 않도록 해서 과육이 찢어지지 않으면서도 바깥껍질을 떼어낼 수 있었습니다. 옆껍질이 없으면 바깥껍질을 떼어낼 때 과육이 이리 찢어지고 저리 찢어져서 취급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부러 옆껍질 중 한쪽을 남겨놓은 상태에서 바깥껍질을 떼어내는 것이 (7) 단계입니다.
다 먹고 꽉 와서 쥬스내 마시면 조금은 수율 높아진 기분 들고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