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7년 대선의 화두는 '정권교체'였습니다.
ABC를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들을 모아 내었기에 역사상 첫 평화적 정권교체이자 지금 민주당의 뿌리가 첫 집권을 이뤘습니다.
당시 20대 초반이었던 제 경우와 주변을 돌아보면..
저는 당시 강준만 교수 등의 책을 탐독하던, 서울에서 살다 이사가서 광주에서 초등학교 졸업하고 다시 경기도권으로 와서 학교는 서울로 다니던, 인사이더의 정체성을 갖기 어려운 삶이었습니다.
제게 3당 합당은 단순한 민주세력의 독재세력과의 배신 뿐 아니라 , 비전라도권의 전라도권에 대한 정치적 포위 사건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동나이대 주변인들에 비해 DJ의 집권에 대한 감격이 꽤 높았습니다.
어제 공소청 법안이 통과되었고, 오늘 특별한 일이 없다면 중수청 법도 통과될 것입니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십수년 염원의 달성을 목전에 두고 있습니다.
최근 저는 저보다 더 가치지향적인 A형 인물들이 가득한 곳에서 상대적으로 B스러운 세상으로 와 있습니다. 종종 저보다 20년 이상 어린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고요..
제가 느낀 것은 기존에 제가 생각하고 알고 있던 '민주당 이념'과는 확실히 결이 다름을 느낍니다.
생각해보면 그럴 것이. 제게는 87년의 양김 단일화 실패의 좌절보다 90년 3당 합당이 제겐 더 많은 정치적 충격을 남겼습니다. 97 대선 때 당시 BBS에서 저보다 윗 선배들의 DJ에 대한 깊은 실망 같은 것이 제게는 약했습니다.
아마 지금 세대에게는 노통의 죽음과 그 당시 그를 지지해주지 못한 우리의 부채의식이 없는 것 같고, 조국의 도륙에서 노통을 떠올리며 다시 한번 지켜야 가치가 무너진 것에 극심한 분노가 덜 한 것 같습니다. 오히려 최근 조국 대표의 애매한 정치 행보들이 더 눈에 띨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이 엄청난 검찰개혁도 그들에게는 이렇게 한시대의 마지막에서야 이뤄지는 어찌보면 해묵은 과제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마치 제 동년배들에게 다가온 97년 정권교체처럼요.
달리보면 현실조차 그럴 수도 있겠다 싶습니다. 97의 DJ가 이미 우리 사회가 받아들일만큼 안전한 사람이었듯, 이제 검찰개혁은 받아들여질만한 꽤 안전한 가치일수도 있습니다.
이미 사법카르텔의 핵심은 검찰과 법원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내란 사건에서 판결들이 쭉 보여준 바도 어차피 보낼 윤석열과 김용현 정도는 보내고, 나머지 대형로펌이 작동하고 있음을 보여줘야 하는 사건들은 정말 잘 방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우인성 판사의 황당한 판결은 누구에게 보여주는 신호였을가요. 이제 권력은 행정부, 사법부의 일개 기관 구조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닌 다른 차원의 더욱 복합적인 카르텔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나마 입법이 할 수 있는 권력기관의 개편 중 우리가 아젠다로 삼을 것들도 얼마 남지 않은 것 같습니다. 민간의 역사와 인맥이 섞인 심연의 카르텔들을 어떻게 "조용하게 완전한 계획을 준비하되 실행할땐 자신들이 개혁당했는지도 모를만큼 신속히 끝낼"수 있을지 아직 잘 떠오르지도 않습니다.
작년 12.7. 탄핵이 부결되었을 때. 그 암담한 상황에서 국회를 둘러싸고 밤을 지새우며 목놓아 구호를 외치던 젊은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포기하지 않고 지지치 않던 모습은 그 후 온갖 부침속에 4.4.탄핵이 이뤄질 때까지 견딜 수 있던 또 하나의 힘이었습니다.
며칠 전 집회들을 주도했던 비상행동의 다큐멘터리 비상12.3의 국회 상영회가 있어서 다녀왔습니다. 그날 자원봉사자들 중 한 젊은 친구가 자신들이 세상을 바꿔나가겠다고 자신있게 소감을 말할때, 그것이 허세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젊은 친구들이 자신들이 목놓아 지킬 수 있는 새로운 세상의 아젠다를 발굴해내고 이뤄나가길 기대합니다.
우리는 그저 민주주의는 지켰으니까요.

저는 민주세력과 청년들이 더 이상 과거에 발목잡히지 않고 미래지향적인 아젠다를 설정할 수 있으면 합니다. 이번기회에 반드시 진정한 민주주의 사회로 기틀을 놓아야겠습니다.
더해서 미래세대에게 무언가 나중에 그들이 안도해줄 무언가의 초석도 놓을 수 있으면 더욱 좋은 일이겠고요.
이번 지선도 잘 치러져서 과거 이재명 시장처럼 좀 더 미래를 내다보며 고민하는 인물들이 행정에 들어오면 좋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