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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공원

트로이 목마는 이렇게 작동합니다 — 함돈균 발언의 해부 9

7
2026-03-20 00:27:49 71.♡.158.201
rexmarina

트로이 목마는 이렇게 작동합니다 — 함돈균 발언의 해부

지난 3월 1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뉴이재명을 논하다' 토론회에서 문학평론가 함돈균 씨가 한 발언이 파문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병자'로 규정하고, 검찰 개혁을 '노무현 트라우마의 소환'으로 격하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왜 이 발언이 단순한 실언이나 논리적 실수가 아닌지, 다섯 가지 차원에서 차근차근 해부해 보겠습니다.


1. '그리움'을 병리화하는 오류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그리워하는 감정은 단순한 팬덤이 아닙니다.

그것은 검찰 권력에 의해 한 대통령이 죽음으로 내몰렸던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정치적 기억입니다. 그 기억이 있었기에 사람들은 박근혜 탄핵 광장에 나왔고, 윤석열 내란의 밤을 버텼으며, 마침내 검찰 개혁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함돈균 씨는 이 그리움을 '병리'로 규정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한 감정 비판이 아닙니다. 정신의학적 언어를 정치적 공격 도구로 전용하는 것입니다. 과거 권위주의 체제가 반체제 인사를 '정신이상자'로 낙인찍던 방식과 구조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는 문학평론가입니다. 인간의 상실과 그리움에 언어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본업인 사람이, 정치적 맥락에서는 그 동일한 그리움을 병리로 규정했습니다. 이것은 논리적 실수가 아니라, 언어를 아는 사람이 언어를 의도적으로 무기로 쓴 것입니다.


2. '다원주의 옹호자'의 자기모순

함돈균 씨는 평소 다원주의를 강조해왔습니다. 조국 대표와 김어준 씨의 '갈라치기'를 "독재적 언어"라고 강하게 비판하며, 민주주의의 본질은 관점의 차이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수백만 명의 감정적 정체성을 단 한 단어 '병자'로 묶어버리는 것은, 그 정의에 따르면 가장 강력한 형태의 갈라치기입니다.

그가 진정으로 다원주의를 내면화한 사람이었다면, 그 원칙은 자신의 발언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어야 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는 것은 다원주의가 그에게 원칙이 아니라 특정 세력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였음을 보여줍니다.

비판의 칼은 모든 방향에 동일하게 날카로워야 합니다. 한 방향으로만 날카로운 칼은 무기입니다.


3. 역사적 맥락의 의도적 단절

함돈균 씨는 검찰 개혁을 "20년 내내 실패만 한 노무현 트라우마"라고 규정했습니다.

이것은 교묘한 언어적 조작입니다. '트라우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순간, 검찰 개혁의 현재적 필요성과 구조적 근거는 사라지고,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과거에 집착하는 비합리적 집단으로 자동 규정됩니다.

그러나 사실을 보겠습니다.

검찰 개혁이 20년간 살아남은 것은 노무현에 대한 감정 때문이 아닙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거치며 검찰 권력의 정치화가 실제로 심화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윤석열이라는 인물 자체가 검찰 권력의 정치화가 낳은 가장 극적인 산물이었습니다. 그의 내란 시도는 검찰 개혁이 왜 필요한지를 역사상 가장 강력하게 증명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검찰 개혁 법안은 실제로 통과되었습니다. 20년의 노력이 마침내 입법적 성과로 이어진 것입니다. 실패의 역사만 부각하고 성취의 역사는 지워버리는 서술은 객관적 역사 인식이 아닙니다.

최강욱 전 의원이 "뉴라이트 발언 같았다"고 비판한 것은 바로 이 지점입니다. 의도가 어떻든, 발언의 효과가 누구에게 이로운지를 따지는 것은 정치적 발언을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4. '갈라치기 비판자'가 수행한 가장 심각한 갈라치기

이 토론회가 만들어낸 가장 위험한 구도는 이재명 지지자들을 '뉴이재명'과 '올드이재명'으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새로운 지지층을 환영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는 기존 핵심 지지층을 병리화하면서 새로운 지지층을 우월한 존재로 대비시키는 구도입니다.

새로운 지지자를 진정으로 늘리고 싶다면, 기존 지지자를 존중하면서 포용해야 합니다. 기존 지지자를 병자로 규정하면서 새 지지자를 환영하는 방식은 포용이 아니라 대체이며, 분열이 목적이 아니라면 나올 수 없는 구도입니다.

그가 비판한 갈라치기와 그가 실제로 행한 갈라치기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도 있습니다. 의견의 차이는 토론으로 극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감정과 정체성을 병리로 규정하는 것은 그 사람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훨씬 더 폭력적인 행위입니다.


5. 트로이 목마는 이렇게 작동합니다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입니다. 왜 하필 이언주 의원이 주최한 자리였는가.

이언주 의원의 정치적 궤적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민주당에서 출발해 국민의당, 바른미래당, 미래통합당을 거쳐 보수 진영에서 활동하다 다시 민주당으로 돌아온 인물입니다. 이승만·박정희 칭송 강연 논란까지 있는 인물이 '뉴이재명'이라는 간판을 달고 토론회를 주최했습니다.

트로이 목마의 핵심은 적이 아군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외부의 적이 공격하면 사람들은 결집합니다. 그러나 내부에서 '우리 편'을 자처하며 핵심 지지층을 병리화하고, 역사적 성취를 지우고, 정체성을 해체하면 훨씬 효과적으로 조직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함돈균 씨가 이언주 의원의 정치적 성격과 이 자리의 의도를 몰랐을 가능성은 낮습니다. 그가 평소 정치적 맥락과 언어의 구조를 날카롭게 분석하는 인물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알면서도 그 자리에 섰다면 그것은 공모이고, 정말 몰랐다면 그것은 그가 그토록 강조해온 비판적 사유의 심각한 결여입니다. 어느 쪽이든 그에게 유리한 해석이 아닙니다.


정리하자면

다섯 가지를 종합하면 하나의 일관된 그림이 완성됩니다.

그리움의 병리화는 핵심 지지층의 감정적 정체성을 무너뜨리고, 다원주의의 자기모순은 그 공격에 지적 위장막을 제공하며, 역사적 맥락의 단절은 핵심 지지층이 이룬 성취를 지우고, 갈라치기 비판자의 갈라치기는 진영 내부를 실제로 분열시키며, 이 모든 것이 이언주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졌습니다.

이것이 우연한 논리적 실수들의 집합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하겠습니다.

민주당과 이재명 대통령을 진정으로 지지한다면, 그 지지의 뿌리가 된 사람들을 병자로 불러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질문에 납득할 만한 답이 없다는 것이 이 발언의 본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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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9]
내가나를모르는데
IP 58.♡.146.77
03-20 2026-03-20 00:34:49
·
저는 그 사람 말을 듣고, 세월호와 폭식투쟁이 떠올랐습니다.
민주주의를 지킨다면서 가장 비인간적이고 전체주의적인 표현을 사용하는 것 같았습니다.
골드플랫멤버
IP 211.♡.196.95
03-20 2026-03-20 00:42:02
·
함씨는 그냥 바보입니다. 냅두세요. 이미 피고발인 신분이에요 ㅋㅋㅋㅋ
꿈쟁이
IP 24.♡.148.21
03-20 2026-03-20 04:30:42 / 수정일: 2026-03-20 07:52:32
·
함돈균씨의 발언이 아니라 원글님의 반론에 대한 저의 이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 노무현에 대한 감정은 단순한 그리움이 아닐 수 있습니다. 그의 고통을 알아보지 못했다는 죄책감, 혼자 내버려뒀다는 부채의식, 그를 죽게 한 구조에 대한 분노가 뒤엉킨 복합 감정일 수 있습니다. 그 복합적 감정을 '그리움'이라는 온화한 언어로 포장해 정당화하는 것은 불편합니다. 정당한 감정이었다 해도, 그것이 지금의 정치를 끌고 가야 할 건강한 동력인지 —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두 번째. '다원주의는 불편하다'는 부분입니다.(이후 빠뜨린 부분 수정했습니다). 진리가 한 진영에 있지 않다는 것을 진심으로 받아들인다면, 내 편의 논리도 비판하고 상대편의 논리도 수용해야 합니다. 함돈균의 '병자'라는 공론장에서의 단어 선택은 거칠었다고 저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발언이 겨냥한 질문 — 20년 된 트라우마가 지금의 정치를 건강하게 추동하고 있는가 — 은 지금 이 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되는 질문입니다. 불편하다고 질문 자체를 봉합하는 것은, 원글님께서 그토록 강조하시는 다원주의의 원칙과 정면으로 충돌합니다.

세 번째. 사회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의 중년 세대도 한국전쟁의 기억에서 자유로웠고, 지금의 20·30대는 노무현을 잃은 집단적 고통에서 자유롭습니다. 그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20년 전의 트라우마가 지금의 정치 언어를 독점하는 한, 새로운 세대는 이 공론장에 들어올 자리가 없습니다.

네 번째. '갈라치기'라는 언어 자체가 흥미롭습니다. 그 언어는 하나의 집단이 하나의 목표로 움직여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 그것은 전체주의적 발상과 다르지 않습니다. 나라를 빼앗겼을 때, 독재에 맞섰을 때 유효했던 집단적 정치의식을 지금도 요구하는 것 — 그것이야말로 대한민국의 정치가 아직 진화하지 못했다는 가장 강한 증거입니다.

진리는 독점되지 않습니다. 어떤 진영도 옳음을 혼자 가질 수 없습니다. 여러 곳의 이성적인 조각들을 모아 총의를 만들어가는 것 — 그것이 민주주의적 공론 형성의 본래 모습입니다. 우리가 아직 도달하지 못한 다음 단계이지만, 선진 민주주의로 나아가려면 지금 배머리를 돌려야 합니다.

다섯 번째는 솔직히 실망스럽습니다. 의견의 가치가 누구의 초대로 발제되었는가로 결정된다는 논리 — 그것이야말로 원초적 확증편향입니다. '확증편향을 경계하는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말입니다.
archon
IP 211.♡.204.36
03-20 2026-03-20 05:38:40 / 수정일: 2026-03-20 05:45:41
·
@꿈쟁이님 저건 다양한의견이 아니라 수용불가한 것입니다. 님같은 주장때문에 늘 진보는 분열하고 보수로 회귀하게 되었죠. 저런사람들까지도 수용하려면 얼마나 큰 사회적 비용을 치뤄야되는지 모르시는건가요? 진중권 안철수를 품으라고 하는것과 같은거 아닐까요? 이익에 따라 생각도 변하는 그저 그런사람들의 주장이 진보에 무슨 도움이 될까요?
rexmarina
IP 71.♡.158.201
03-20 2026-03-20 05:45:16
·
@꿈쟁이님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다만 몇 가지 지점에서 이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 번째에 대해

노무현에 대한 감정이 복합적이라는 지적, 맞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원글의 논지를 반박하지는 않습니다. 원글이 비판한 것은 그 감정의 복잡성이 아니라, 그것을 ‘병자’로 규정한 방식이었습니다. 댓글 작성자께서는 ‘병자’ 대신 ‘건강하지 않은 동력’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방향은 동일합니다. 세련된 언어로 같은 주장을 반복하신 것입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는 표현은 많은 사람이 의심한다는 사실이 그 의심의 정당성을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두 번째에 대해

여기에는 중요한 범주 오류가 있습니다. 원글은 ‘20년 된 감정이 건강한 동력인가’라는 질문 자체를 봉합하자고 한 것이 아닙니다. 그 질문을 수백만 명을 ‘병자’로 규정하는 방식으로 던진 것을 비판한 것입니다. 질문의 존재와 질문의 방식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다원주의는 모든 질문을 허용하지만, 모든 방식의 질문까지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병자로 규정하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낙인입니다.

세 번째에 대해

20·30대가 노무현의 고통에서 자유롭다는 것이 왜 그 역사의 구조적 의미까지 무시해도 된다는 근거가 됩니까?
한국전쟁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세대도 그 역사를 정치적으로 인식하고 판단합니다. 직접적 감정 경험의 유무와 역사적 맥락의 이해는 별개입니다. 이 논리는 결국 역사적 의제를 세대의 감정 경험으로 환원하는 것으로, 검찰 개혁을 ‘노무현 트라우마’로 축소한 함돈균 씨의 논리와 같은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네 번째에 대해

‘갈라치기’ 언어의 전체주의적 속성에 대한 지적은 흥미롭습니다만, 원글의 논지와는 다른 이야기입니다. 원글이 비판한 것은 갈라치기라는 언어 자체가 아니라, 갈라치기를 가장 강하게 비판하던 사람이 정작 더 심각한 갈라치기를 직접 수행했다는 자기모순이었습니다. 그 자기모순에 대한 반박은 없이 전혀 다른 주제로 화제를 돌리셨습니다.

다섯 번째에 대해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확증편향이라는 주장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동일한 발언이라도 누구의 자리에서, 어떤 청중을 향해, 어떤 효과를 내며 행해졌는지는 그 발언의 정치적 의미를 판단하는 데 불가결한 정보입니다. 맥락을 완전히 무시하고 내용만 떼어내는 것이 오히려 더 단순한 사고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의 “확증편향을 경계하는 분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라는 표현은 상대방의 이미지를 이용해 현재 주장을 무력화하려는 시도로, 논리적 반박이 아닙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짚겠습니다. 댓글 전체에서 “진리는 독점되지 않는다”, “다원주의는 불편하다”는 고상한 언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런데 실제 내용을 보면 함돈균 씨의 핵심 주장들을 세련된 언어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원글이 제기한 가장 핵심적인 질문, 왜 하필 이언주 의원이 주최한 자리였는가에 대해서는 끝까지 실질적인 답을 내놓지 않으셨습니다. 그 질문을 확증편향으로 일축하셨지만, 맥락을 고려하는 것이 왜 확증편향인지에 대한 논리적 설명은 없었습니다.

균형의 언어로 포장된 글이지만, 실제로 향하는 방향은 일관되게 하나입니다. 그 점을 이 글을 읽는 다른 분들도 함께 생각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꿈쟁이
IP 24.♡.148.21
03-20 2026-03-20 08:15:02
·
@rexmarina님 토론을 이성적 언어로 이어가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점에서 저는 원글님과 같은 목표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함돈균이 누구인지 모르고, 그분의 글을 직접 찾아볼 시간도 없었습니다. 다만 원글님을 통해 전달된 내용 중 제 생각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었고, 그에 대한 원글님의 반박에 동의할 수 없어 글을 올렸습니다.
'이언주'는 맥락이 아니라 매체입니다. 발언자가 어떤 자리를 선택했는가가 그 발언의 논지를 규정한다면, 토론은 내용이 아니라 출처로 판단되는 것이고, 결국 진영 간 낙인찍기로 돌아갑니다. 그런 방식으로는 토론이 불가능합니다.
'균형의 언어로 포장된 글'이라고 하셨는데, 저는 그 표현을 기꺼이 받겠습니다.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포장으로 보인다면, 그것이 바로 지금 우리 공론장이 얼마나 기울어져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최근 제게 익숙했던 진영의 언어를 의식적으로 내려놓고, 외면하려 했던 목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글입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삭제 되었습니다.
꿈쟁이
IP 24.♡.148.21
03-20 2026-03-20 08:26:20
·
@archon님 말씀의 방향이 결국 진영의 언어로 돌아가는 것 같아, 이 지점에서는 더 이상 대화가 어렵겠다 싶습니다.
rexmarina
IP 71.♡.158.201
03-20 2026-03-20 12:00:31 / 수정일: 2026-03-20 12:01:23
·
@꿈쟁이님
꿈쟁이님, 진지하게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요즘 이런 주제를 다루는 공간에서 편을 나누어 헐뜯고 비방하는 글들이 넘쳐나는 가운데, 이렇게 논리로 맞서는 방식의 토론은 그 자체로 의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꿈쟁이님께 먼저 감사를 드립니다. 다만 그렇기에 더욱 솔직하게 몇 가지를 짚고 싶습니다.

1. 함돈균 씨를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분의 발언을 직접 확인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 발언에 대한 원글의 반박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1차 발언은 모르고 그에 대한 반박만 읽은 상태에서 반박의 반박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정보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시면서 강한 의견을 피력하시는 것, 논리적으로 성립하기 어렵습니다. 함돈균 씨의 발언을 직접 찾아보신 후에 판단하셔도 늦지 않습니다.

2. "이언주는 맥락이 아니라 매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정치적 발언에서 어떤 자리를 선택했는가는 단순한 매체의 문제가 아닙니다. 동일한 내용의 강연이라도 어디서, 누구 앞에서, 어떤 목적으로 행해졌는지는 그 발언의 정치적 의미를 이해하는 데 불가결한 정보입니다. 이것을 맥락으로 읽는 것이 출처만으로 내용을 판단하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전자는 발언의 의도와 효과를 이해하려는 시도이고, 후자는 내용과 무관하게 출처만으로 옳고 그름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원글은 후자를 한 것이 아닙니다.

3. "균형을 잡으려는 노력이 포장으로 보인다면, 그것이 공론장이 기울어진 증거"라고 하셨습니다.
이 논리는 자신의 주장에 대한 어떤 비판도 공론장의 문제로 돌릴 수 있는 구조입니다. 내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유를 항상 상대방이나 환경의 탓으로 귀속시킬 수 있다면, 그 주장은 사실상 반증이 불가능해집니다. 균형을 추구하는 것과 그 추구가 비판으로부터 면제되는 것은 다른 이야기입니다.

4. "익숙했던 진영의 언어를 내려놓는 중"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과정의 진정성을 의심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동시에 매우 강력한 수사적 효과를 냅니다. 스스로를 편견을 극복하는 중인 사람으로, 상대방을 아직 진영의 언어에 갇힌 사람으로 암묵적으로 대비시키는 구조입니다. 진정성과 수사적 효과는 양립합니다. 다만 그 고백이 논리적 반박의 취약함을 감정적으로 보완하고 있다는 점은 함께 인식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말씀드립니다.
꿈쟁이님께서는 탈진영을 표방하시면서, 함돈균 씨의 발언은 직접 확인하지 않은 채 그 발언을 비판한 원글에만 반박하셨습니다. 결과적으로 어느 방향으로 기능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두 번의 댓글에 걸쳐 끝내 답하지 않으신 질문을 다시 드립니다.

함돈균 씨는 왜 하필 이언주 의원이 주최한 자리를 선택했습니까?

이것이 단순한 매체 선택이라면, 그 선택이 발언의 정치적 효과와 무관하다면, 그렇게 판단하시는 근거가 무엇인지 듣고 싶습니다.
꿈쟁이
IP 24.♡.148.21
03-20 2026-03-20 13:25:19 / 수정일: 2026-03-20 13:30:05
·
저는 함돈균이 누구인지, 그 발언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제가 주목한 것은 원글님이 그것을 해석한 관점이었습니다. 민주적 토론의 언어를 쓰고 계시면서도, 그 내용 안에 전체주의적 사고와 팬덤 정치의 흔적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언주 의원의 매체에 대해서도 저는 문제의식이 없습니다. 저는 무엇보다 조선일보도, 한겨레도, 오마이뉴스도 소비하는 사람으로서, 출처 자체를 이념으로 환원하지 않습니다. 비슷한 관점을 가진 사람을 초청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원글님과의 논쟁의 우위가 아닙니다. 한국의 모든 정치 게시판—클리앙을 포함해서—이 조롱과 낙인찍기, 적대적 구도로 인해 열린 토론의 숨구멍이 막혀가고 있습니다. 저는 그 안에서 다른 언어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적어도 민주적 토론의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이어야 가능할 것 같았고, 원글님의 긴 글이 흥미로웠지만, 전혀 민주적으로 해석되지 않은 어떤 부분에 제 의견을 덧붙였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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