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전공수업으로 방송과 저널리즘을 배우는 시간인데,
저널리즘의 역사를 조금 말씀하시곤, 좋은 여자를 만나려면, 예술의 전당을 가라는 현실적인 결혼 정보를 전달해주시던 교수님. 나중에 방송위원회 부위원장까지 하셨던 그 분. 제 개인적인 경험이기도 하고, 과장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게 90년대 우리나라 저널리즘을 가르치는 대학교수의 모습이였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더 나아졌을까요?
신문사, 방송사 기자들이 신뢰의 위기에 처하거나, 오보로 문제가 생길 때 마다 ‘저널리즘’을 자신들의 방패로 신줏단지처럼 들이대는 것을 보며, 자신들이 필요할때만 꺼내쓰는 단어로 취급받고 있다고 봅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을 하나 더 말하자면, 모 경제지 기자를 취재원과 기자관계로 만나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S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입사한 사람으로 중소기업을 돕기위해 노력하고, 취재원에게 얻어먹던 게 당연했던 시절인데도 자신이 밥값을 내고, 심성도 착하고, 일명 1면 2면에 걸친 기획기사도 잘쓰는 능력있는 기자. 20년이 지나 우연히 그가 편집국장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그가 편집국장으로 있는 동안 온갖 왜곡기사와, 노동자의 죽음을 다루는 기사를 보며, 그 기자는 심적으로 많이 힘들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원래 저런 분이 아니였는데, 여러 이유로 저럴 수 밖에 없었겠지. 대부분의 기자들이 직장인처럼 조직에서 하라는 대로 살아갑니다.
요즘은 어떨까요? 일명 공중파, 주요 언론사 입사하는 신입기자들 대부분이 강남 8학군, 잘사는 부모를 둔 이들입니다. 개천에서 용이 나올 수 없는 사회가 된 지금 언론사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사회현상을 바라보는 시각 안에 저소득층, 노동자, 농촌은 들어 있지 않습니다. 경험을 안해봤으니, 알 수가 없죠. 느낄 수도 없고. 신입기자들의 시각이 경영자층과 거의 일치합니다.
이런 미디어 상황에서 장인수 기자라는 존재, 저에게는 좀더 애틋하게 바라보게 되더 군요.
대선 전 김건희 파일 폭로가 막히자, MBC를 뛰쳐나와 차가운 거리에서 어렵게 취재하며 특종을 해왔던 장인수 기자. 누구는 업계 관행(특종의 원칙)에서 벗어났다. 게이트키핑이 부실했네, 어떻게 대통령이 관련된 건에 대해 이런 불확실한 찌라시를 보도할 수 있냐? 왜 기사 형식이 아니냐? 등등 그동안 기레기라고 온갖 팩폭을 당하던 방송, 특히 인쇄매체에 종사하는 직원들이 물 만난 물고기처럼 장인수 기자를 난도질하고 있고, 특히 방송거리가 부족한 인스턴트 패널들은 ‘야 이거 며칠 동안 써먹을 아이템이네’하고 입에서는 자동반사처럼 하나마나한 온갖 입바른 말을 쏟아내는 것을 보며, 류승범의 대사 ‘참 열심히들 산다’ 생각났습니다.
털보도 적지 않은 실수도 하며, 지금 이 자리에 있듯이, 독립기자 장인수 기자도 이번 건으로 인해 좀더 성숙해지고, 단단해져서 자신이 가고자 하던 길을 흔들리지 말고 갔으면 합니다.
저널리즘을 필요할 때만 꺼내다 쓰는 기존 월급쟁이 언론사 종업원들이 아닌, 힘들고 어렵겠지만, 저널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자신있게 걸고 기자의 본업에 충실하려고 하는 장기자의 건투를 빕니다.
MBC, 한겨레 등 기존 신문사, 방송사 출신이 아니여도, 내가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기자로 도전하겠다는 사람들이 많이 나왔으면 합니다.
특히, 다문화 가정 출신의 기자, 농촌출신 기자, 노동자출신 기자, 국졸 출신 기자가 나와 여론시장이 다양화 됐으면 합니다.
장인수, 이명수 , 봉지욱, 장윤선 기자의 건투를 빕니다.
이런식이면 앞으로 장기자의 기사를 어떻게 신뢰할까요.
저도 장인수 기자 고맙지만 아번일은 스스로 되돌아봐야할겁니다.
더욱 잘해내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