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들의 갈등은 박정희 정권 시절인 1977년 국사편찬위원회가 김문기를 사육신으로 현창해야 한다고 결의하면서 시작됐다.
1456년 군 최고위직인 삼군도진무였던 김문기는 단종 복위 운동에 군대를 동원하는 역할을 맡았다가 실패하고 몸이 찢기는 거열형에 처해졌다.
사육신묘에는 원래 성삼문·박팽년·이개·유응부만 안장돼있었으나, 서울시는 국사편찬위원회 결의에 따라 묘역을 성역화하면서 하위지·유성원·김문기의 가묘를 새롭게 조성했다.
기존의 사육신 후손들이 주축인 선양회는 생육신(生六臣) 중 한 사람인 남효온(1454∼1492)이 쓴 사육신 전기인 '육신전'에 김문기의 이름이 없다고 지적한다.
갑작스레 사육신에 포함된 배경엔 김녕 김씨로 김문기의 후손인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입김이 있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반면 김문기 후손들이 몸담고 있는 현창회는 사육신의 처형을 기록한 조선왕조실록에 유응부 대신 김문기의 활동상이 적혀있다고 반박한다.
갈등이 첨예해지며 급기야 2011년에는 김문기 후손이 선양회 회원들이 차린 제사상을 뒤엎는 등 사육신묘 앞에서 몸싸움이 벌어졌다. 선양회 측 인사가 김문기를 비난하는 댓글을 썼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벌금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왕을 지킨 남자' 사육신 후손들 갈등에…올해도 '두쪽' 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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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기를 비난하는 댓글을 썼다가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당해 벌금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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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지 수십년도 넘어간 사람은 역사의 일부로 평가받아야 되지 않나 싶은데 말입니다.
사자명예훼손 대상이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