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는 때때로 서로 다른 시대의 장면을 겹쳐 보게 만든다. 돌로 쌓은 성벽의 시대와 마이크와 네트워크의 시대는 겉으로는 전혀 달라 보이지만, 공동체가 자신을 지키는 방식에는 묘하게 닮은 구조가 있다. 고구려의 안시성을 지켜낸 성주와 현대 한국의 미디어 공간에서 버텨 온 김어준을 나란히 놓아보면, 그 공통점은 “진지를 지키는 사람”이라는 데서 드러난다.
7세기 동아시아의 전쟁에서 성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방어망의 거점이었다. 고구려의 성들은 서로 고립된 요새가 아니라 길과 보급로, 군사 이동로로 연결된 네트워크였다. 그래서 하나의 성이 무너지면 단지 그 성만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성이 지키던 통로와 주변 방어선 전체가 흔들렸다.
실제로 고구려–당 전쟁 과정에서 당군은 요동 일대의 여러 성들을 차례로 공략하며 전선을 밀어 올렸다. 일부 성들이 먼저 함락되면서 방어선의 균형이 흔들렸다. 그럼에도 마지막까지 버틴 성이 바로 안시성이었다.
그 성을 지킨 인물이 양만춘이다. 그는 단지 성벽 위에서 전투를 지휘한 장수가 아니라, 이미 여러 거점이 무너진 상황에서 방어망의 마지막 축을 붙잡은 지휘관이었다. 성 하나가 버티는 동안 전선 전체가 시간을 벌었고, 결국 이세민이 이끄는 당나라 군대는 철수할 수밖에 없었다. 안시성의 승리는 거대한 반격이 아니라 “버팀”의 승리였다.
정치사상가 안토니오 그람시는 이런 구조를 설명하는 개념을 남겼다. 그는 권력 투쟁에는 두 가지 방식이 있다고 보았다. 하나는 정면 충돌로 권력을 단번에 장악하려는 기동전, 다른 하나는 사회 곳곳의 기관과 문화 공간을 장기적으로 확보해 가는 진지전이다. 그람시에 따르면 현대 사회에서는 기동전보다 진지전이 훨씬 중요하다. 왜냐하면 국가 권력 뒤에는 언론, 교육, 문화, 종교 같은 수많은 시민사회 기관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기관들이 하나의 거대한 방어선처럼 사회의 방향을 결정한다.
이 점에서 오늘날의 미디어와 문화 공간은 일종의 현대적 성곽이다. 방송, 인터넷 플랫폼, 대학, 문화 산업, 종교 공동체가 각각 하나의 진지다. 그리고 이 진지들이 서로 연결되며 거대한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그람시적 전략이 좌파만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보수 진영이 오래전부터 이런 문화적 진지전을 매우 적극적으로 수행해 왔다. 보수 싱크탱크와 정치 전략가들은 언론뿐 아니라 학교, 교회, 연구기관, 미디어 네트워크 같은 시민사회 기관을 장기적으로 구축하거나 영향력을 확대해 왔다.
예를 들어 스티브 배넌은 공개적으로 그람시를 언급하며 문화전쟁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인물이다. 그는 정치 권력만으로는 사회를 바꿀 수 없으며, 언론과 문화 공간에서의 장기적인 헤게모니 경쟁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런 전략은 보수 미디어의 성장, 싱크탱크 네트워크, 복음주의 교회 조직, 그리고 교육 담론에 대한 영향력 확대 같은 형태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 속에서는 진지 하나의 의미가 더 커진다. 이미 여러 기관과 담론 공간이 특정 방향으로 기울어진 상황이라면, 남아 있는 거점 하나가 전체 네트워크의 균형을 지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맥락에서 김어준의 활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생겨난다. 그는 단순히 방송 프로그램을 진행한 인물이 아니라 인터넷 매체, 팟캐스트, 라디오, 온라인 커뮤니티로 이어지는 여러 미디어 거점을 만들어 왔다. 각각의 플랫폼은 독립된 공간이지만 동시에 서로 연결되어 하나의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한 진지가 흔들려도 다른 진지가 이어지고, 한 공간에서 형성된 이야기가 다른 공간으로 흘러가며 담론을 유지한다.
이것은 단번에 승부를 내는 기동전이 아니라 시간을 버는 진지전에 가깝다. 안시성 성주가 돌로 쌓은 성벽 위에서 버티며 전선 전체의 시간을 벌었듯이, 미디어 공간에서도 누군가는 거점을 붙잡고 서 있어야 한다. 이미 여러 성이 무너진 뒤라면, 그 거점의 의미는 더욱 커진다.
그래서 김어준을 안시성 성주에 비유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한 개인을 영웅화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거점의 의미를 말하려는 것이다. 성은 화려한 곳이 아니다. 그러나 그 성이 버티고 있기에 네트워크 전체가 유지된다. 하나의 성이 무너지면 길이 열리듯, 하나의 미디어 거점이 사라지면 담론의 흐름도 달라진다.
안시성의 이야기가 오늘까지 전해지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거대한 제국의 군대 앞에서도 성 하나가 버티면 역사의 흐름이 바뀔 수 있다는 기억. 현대의 미디어 전선에서도 마찬가지다. 누군가는 마이크와 스튜디오라는 현대의 성벽 위에 서서, 이미 기울어진 전선 속에서 남아 있는 거점들을 연결하며 버티고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어준을 안시성 성주에 비유하는 것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라 하나의 상징이다. 시대는 달라졌지만, 진지를 지키는 사람의 역할은 여전히 존재한다. 돌로 쌓은 성이든, 이야기와 정보로 이루어진 미디어의 성이든, 그것을 붙잡고 있는 사람이 있을 때 네트워크는 무너지지 않고 공동체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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