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본주의가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것이 아니라면,
그 이론적 시발점이 있을 것입니다.
1906년생인 사이드 쿠틉은 부유하게 자라 미국 유학을 다녀 오면서
이슬람주의 사상가로 전향하게 됩니다.
일설로는 당대 미국 내의 지독한 인종 차별과 성적 무분별에
친 서방적이던 사고가 변해 극단주의를 띄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는 이집트로 돌아와 이전 글에서 다룬 무슬림 형제단에 가입하고,
여러 저서를 집필하여 알 카에다를 비롯한 극단 세력의 사상적 기초를 제공하게 됩니다.
무척 중요한 인물임에도 다루는 매체가 없는 듯 하여 이 글을 쓰게 됩니다.
이 사상의 시작이자 끝은 이슬람의 가르침으로 지배되지 않는 것을 자힐리로 규정하고,
인간이 만든 법은 우상 숭배이므로 배척해야 하며,
결국 모든 세상은 신정 질서를 통해 다스려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국 이러한 위험한 사상은 이집트의 세속주의 정권에게 위협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감옥에 잡혀 들어가 사망하게 됩니다.
이후, 그의 사상에 영향을 받은 이들이 대거 늘어나게 되고,
사우디와 파키스탄 등에도 퍼져나가게 됩니다.
극단주의자들이 세속 헌법 및 그 헌법을 가진 다른 무슬림들까지
이교도에 가깝게 보고 전쟁까지 불사하는 이유는
정화 및 척결 해야 하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쿠틉에게는 샤리아법만이 정치 사회 전체를 지배해야 하는 유일한 법체계이므로,
현대적 민주주의를 전면 부정할 뿐만 아니라 타도하고 척결해야 하는 대상이 됩니다.
이와 같은 사상이 퍼져나가게 되면 악용하는 단체들이 기승을 부리게 되는데,
이전 여러 글에서 이야기 한 대로 신의 뜻을 자신들의 해석으로 둔갑시켜,
따르지 않는 자는 불경의 죄를 물어 죽여도 상관 없는 논리로 덮어 버립니다.
샤리아를 다시 생각해 봅니다.
관용이 미덕이던 시대에 살던 법학자들에 의해 만들어져 왔다는 의미는,
각 시대 마다의 필요에 따라 이혼할 때는 이렇게 해야 된다, 이럴 때는 이리 해야 한다..
라는 디테일한 규칙을 만들며, 법전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통해 점진적이고 타협적인
실 생활 적용 및 종교법으로서의 역할을 통해 무슬림들의 신앙 및 삶을 이끄는 기준이 되길 바란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사이드와 같은 자들이
원리 원칙대로 (라고 읽고 지 멋대로 해석한) 해야 한다며,
근본 주의 를 설파하는 여러 저서를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고,
다시 이것을 받은 이들 중 일부는 집권까지 하는 등
오늘 날 반복되는 비극의 뿌리와 같은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집트 정권이 이러한 위험한 사상을 탄압하면서,
그의 이론에 영향 받은 사우디, 아프간, 이란 등에 모두 깊은 정치적 파장을 불러 오게 됩니다.
그는 오사마 빈 라덴 같은 이들 뿐만 아니라,
조직인 무슬림 형제단, 알 카에다, IS 와 같은 곳의 사상적 기초이자 전부이기도 하며,
우리가 근래 가장 많이 이름을 듣게 된 사람 중 한 명인 호메이니 역시
사이드 쿠틉의 이슬람주의에 영향을 받아 이란의 신정 체제를 꾸리게 됩니다.
만악의 근원 같은 인물로, 오늘 날 아프리카와 중동 지방에서 횡행 중인
극단 주의 세력의 공통 이데올로기... 를 만들어 낸 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을 쓴 이유는 이란의 호메이니, 하메네이 등이 아무리 얻어터지고 피를 흘려도,
포기하지 않고 혁명 수출을 멈추려 하지 않거나, 샤리아를 통해 다스려지는 지역 또는 나라의 확대를
절대 포기하려 하지 않는지 알기 위함입니다.
절대불변의 진리를 갖고 있다면서 다원주의를 거부하는 일체의 사상들은 반민주주의이고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거부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